인터파크는 날 외면했어.


마찬가지로 예술의 전당에서도. 딱히 기대할 게 없음을 느끼면서 오늘 역시 기다리고는 있다. 이튿날의 고비를 넘기니 기다림 자체는 고되지 않다. 졸음으로 눈이 꾸벅꾸벅 감기던 것도 이젠 없다. 시계를 아침에 맞춰놓기는 어려워도 아예 놓아버리기는 이렇게나 쉽다. 해가 떠도 신체 시계는 끝없이 새벽 2시와 5시 사이의 어딘가를 부유한다.


기다림 끝에 시간이 되어도 막상 하는 건 없다. 다섯 시를 넘겨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될 때까지 그저 오늘은 어떤 표가 나왔고, 전날에 비해 잔여석 수는 어땠는지 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 파악이 끝났다 싶어지면 그대로 화면을 끌 뿐이다.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하는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매일 일정 고지를 찍는다는 관성에 의한 심리가 이 시간을 놓지 못하게 한다.


드문드문 비는 시간에 친구가 추천해준 책을 읽으려고 키보드 옆에 놓아두기는 했는데 일주일 동안 겉장에 손을 한 번 얹어보지도 않았다. 취소표를 기다리는 동안을 가능한 만큼 내 시간으로 활용해보자던 계획은 시작도 못 해본 셈이 됐다. 앞에 둔 낱장의 문장 몇 개만 이리저리 들쑤시다가 생각나면 새로고침을 해보고 트위터를 조금 들여다보고 그러다 다시 종이 몇 쪼가리로 시선을 떨구는 식의 반복이다. 오늘은 그나마도 몇 자 보지 않았다.


재연 소식을 듣고 나서 가진 막연한 기대ㅡ한 번쯤은 엄마와 함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던 바람은 실현되기 어렵겠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연석이 아닌 편이 내 쪽에서는 조금 더 마음 편한 관람이 되겠지만, 반대로 엄마로서는 연석이 아니고선 함께 보는 의미를 느끼기 어려우실 테니.


정규 2집까지 일주일. 콘서트까지 3주. 엘리자벳까지 5주. 예년에 비해 조밀한 여름을 앞두고 어떤 각오 같은 것이 비장하게 스며들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번득하다 없어지길 반복한다. 반년 동안 개인적인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생각보다 많이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산행이 화두로 오를 때마다 이렇게 잔뜩 심란해질 리가 없다. 사소하게는 스탠딩이냐 좌석이냐의 고민도 예전보다 훨씬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새삼스럽다.


엘리자벳은 여전히 맺힌 멍울이다. 오빠의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극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자기 염오에 빠진 것과 같다. 나의 문제임에도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저 기다리고 있다. 오빠의 죽음이 가져다 줄 첫 순간의 재림에 모든 것이 씻겨져 나갈 수 있기를.


<곧>이란 전제 하에 예정된 모든 일들을 하나씩 곱씹어볼 때만이 꾸밈없이 기쁘다. 다만 솔로 활동과 뮤지컬이 곧장 이어지는 만큼 정규 2집의 여운을 오롯이 간직할 시간이 다소 부족하겠다는 개인적인 염려는 있다. 무엇이든 휙휙 걸어나가는 오빠와 달리 나는 언제나 소화가 느린 편이니.


오늘도 어김없이 새소리를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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