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로 적은 마음을 오로지 시아준수의 슬픔의 행방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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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러분, 들어주세요. 카나시미노 유쿠에.’

나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슬픔의 행방이었다. 첫 소절의 ‘오시에떼’를 듣고 나서야 꿈과 헷갈리지 않을 수 있었다. 현실이었다. 기억의 서랍 안에 고이 잠들어있던 노래가 시아준수의 인도로 무대 위로 돌아온 것이다.

 

앞서 그가 말했다. 혹여 서툴어진 일본어로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한 듯이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향수를 일으킬 수 있는 노래’를 준비했다고. 새로운 트렌드나 장르에 도전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분들이 좋아하고 사랑해주셨던 저의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면서.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양보인지 시아준수의 성정을 알기에 알 수 있었다. ‘리플레이’라는 선택지를 언제 그가 염두에 둔 적이 있던가. 똑같은 것은 두 번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앙코르 콘서트를 하느니 새로운 콘서트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딱 한 번 있었던ㅡ그것도 솔로 3집을 사랑해준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준비한 15년도의 앙코르 콘서트조차도 ‘앙코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새로운 세트리스트로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그랬던 그가 순전히 자신을 기다려준 청중을 위하여 공연을 기획하였다 했다. ‘향수를 일으킬 수 있을 노래’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자신이 받아왔던 사랑을 돌려주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있었다.

댄스 메들리로 시간과 기억을 확실하게 돌려가는 그에게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보였다. 나비처럼 살랑이는 하얀 블라우스가 그의 마음을 닮아 아름답게 나풀거렸다. 기꺼이 무대 바닥에 엎드려 꽃받침을 그리는 그의 웃음꽃 핀 얼굴은 그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그가 준비한 마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늘 그랬듯 성공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지니타임을 끝마친 그가 말했다.

들어달라고. 자신이 준비한 또 하나의 기억의 조각을.

슬픔의 행방을.

 

별이 내리는 무대, 눈부신 우주 속의 시아준수. 그리고 그의 앞으로 펼쳐진 점점이 붉은 빛의 마음들. 향수는 별을 타고 와 어느새 내게 내려왔다.

향수라는 이름의 시간이 눈앞으로 차곡차곡 지나갔다. 

 

10년도 홀로서기를 시작한 XIAH로서의 그가, Thanksgiving Live에서 드넓은 돔을 가득 채웠던 그의 목소리가. 12년도의 그가 쏘아올린 역사적인 브랜드 콘서트에서 이 콘서트의 계기나 마찬가지인 곡이라고 슬픔의 행방을 소개하였던 시아준수가, 그러고서는 한국 땅에서 생경한 일본어 곡으로 팬들은 물론 객석의 모두를 같은 마음으로 물들였던 그의 노래가.

 

슬픔의 행방은 가수로서의 그가 열어나갔던 거대한 시작을 함께한 곡이다. 그와의 아름다운 시작에는 언제나 슬픔의 행방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돌아온 그가, 돌아왔음을 재차 알리는 무대 위로 이 곡을 다시 끌어왔다.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느냐 묻는 사람처럼.


앞서 댄스 메들리로 우리가 함께하여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되새겨주었지.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한다면 이 손을 다시 잡아주겠느냐고, 상냥한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오늘의 우리도 그때와 같이 아름다운 시작을 새롭게 만들어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조급해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을 전할 뿐이었다. 아주 천천히, 음절로 시간을 엮듯이 몹시 공을 들여서 마음을 노래에 실었다. 아주 귀중한 것을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노래했다. 결이 많은 그만의 특유한 목소리가 공간을 살포시 휘감고, 이어서 단단한 울림이 그 안을 채웠다.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이를 결코 빈손으로는 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빈틈없이 꽉 찬 시아준수의 소리 안에서, 온몸으로 노래하는 그를 홀린 듯이 보았다.

노래라는 이름의 약속을 듣는 것 같았다.

행복이 끝나는 것보다 변해가는 것이 더 쓸쓸하다고 노래하면서도, 변해가는 행복까지도 지켜낼 것 같은 음성으로 그가 마음을 두드렸다.

 

그런 시아준수의 슬픔의 행방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함께했던 사랑의 기억들을 눈앞으로 차르륵 펼쳐 보이며, 또다시 이렇게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오직 사랑, 그뿐이었다.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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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4.07

3분 46초 네~무레즈니를 따라 오빠의 목소리가 터덜터덜 미끄러질 때 마음도 같이 미끄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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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4.07

어떻게 슬픔의 행방을 이렇게 부를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부를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화하여 잿더미로 만들어놓고는, 그 쓸쓸한 세상에서 혼자만 상냥한 빛을 머금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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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4.07

잿더미 속에서 전하는 사랑의 소리는 이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http://leaplis.com/180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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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4.07

사쿠란보의 시아와세일까 생각했지만, 슬픔의 행방이 도래한 이후부터는 다른 무엇 아닌 슬행의 시아와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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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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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준수에게는 어째서 단 한 번도 결정적이지 않은 계절이 없을까. 적당히 사랑하며 흘러갈 수도 있을 텐데 왜 늘 결정적 순간을 선사하여 전력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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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4.11

우리가 지나온 변혁기 한 중앙에서 태어난 노래가 여전히 우리를 이어주고 있어요. 그 때문일까요. 슬픔의 행방 앞에서는 마음을 갈무리하기가 참 어려운 까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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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5.26

우리 슬행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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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2.05.26

우리 슬행, 이제 12살. 생일 축하해. 올해의 5월 26일에는 데스노트 공연이 있어서, 오랜만에 너를 들으면서 갈까 해. 아름다운 하루가 되겠지. 네 안의 변함없는 행복이 오빠의 것이기를 바라며.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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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2.07.10

19년의 슬픔의 행방은 22년의 슬픔의 행방이 되어 돌아와 주었다. http://leaplis.com//777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