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마도 루시의 장례식쯤. 이제 넘버 하나만을 남겨둔 상태라, 1막 내리 가라앉히고자 노력했던 흥분의 고삐를 다소간은 누그러뜨리려던 차였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온 김준수-조정은 페어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선사한 완성형의 1막을 곱씹자니, 심장 안쪽에서부터 차오르는 감각으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끝이 따가워져만 갔으니까. 

아, 그런데. 그 하나 남겨둔 넘버에서 1막의 모든 감동을 백지장으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한 방이 올 줄이야.

 

Life After Life. 

손짓 한 번으로 사고를 정지시켜버린 Life After Life.

 

사실 이예은 루시의 얼굴이 오늘도 23일 못지않게 피범벅이기에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니나 다를까, 무덤은 필요 없는 땅~ 우리 영혼 구원도 저주도 못 해~ 루시를 마주한 그가 팔을 올리기 시작했다. 에스코트하는 지점보다 일찍이 움직이는 그 동작에 심장이 뛰었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23일처럼, 엄지가 루시의 얼굴에 살짝 닿는 정도일 줄 알았다. 핏방울이 묻어난 엄지에서 멈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다. 천천히, 그러나 23일보다 훨씬 분명한 속도와 의도를 품고 루시의 얼굴로 올라간 엄지가 그녀의 턱을 살짝 쓸더니 글쎄, 글쎄, 그대로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고는 제게로 옮겨 묻히듯이 스윽 누르지 뭔가?

피 맛을 한 번 보는 것처럼! 

분명 혀까지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가 엄지를 할짝대는 모습을 본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 것도 한순간이었다. 아니 분명, 애당초에 시아준수가 그 환시까지 의도한 게 틀림없었다. 이 작정하면 무서운 사람이 그마저 노리고 둔 수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 

아니, 막공 주간의 프레시 블러드에서 볼 수 있는 점프나 달콤한 피 애드립과 가히 견줄 법한 파급력을 오늘 이렇게 툭 선사한다고요? 1막이 곧 끝난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아니라면 이후의 극으로부터 강제로 이탈되고 말 게 뻔했다. 동공 지진만으로 감당해내기에는 다 누를 수 없는 충격에 내던져진 셈인데, 어떻게 평시와 같은 집중을 유지할 수 있겠나요?!

 

막이 내리고 주위가 환해지는 순간 귓가로 몰아치는 수런거림 틈에 묻혀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드라큘라 삼연 프리뷰의 인터미션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른 것만 같았다. 숨 고르기도 벅찬 흥분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었다. 흥분이 흥분을 만나 점점이 번져가는 형상까지도 꼭 그때와 같았다. 무대를 마치고 유유히 걸어 나가는 장막 안쪽의 그도 이 소란들을 들었겠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어때요, 만족하시나요? 

대답으로는 허를 찔린 탄식과 기쁨이 싸고도는 나의 심장이 될 것이었다.

 

연신 새는 웃음에 소리가 깃드려는 것을 참았다. 시아준수에게 허를 찔릴 때의 환희가 자꾸만 재채기 같은 웃음들을 유발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불의타를 안겨주는 세상 유일한 사람. 시아준수. 

손짓 하나로 프레시 블러드와 삼연곡이 쌓은 감격을 압도하는 7월 25일의 Life After Lif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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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2.07.25

1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