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오늘을 처음부터 되짚어보면 12시 30~40분까지는 넉넉하게 경기장에 도착해야 했으므로 이동 중에 연아선수의 경기를 볼 각오를 해야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연아선수의 예상 출전시간인 11시 47분이 되었을 때 나는 월드컵경기장 행 버스를 기다리는 도로 위에 있었다. 갖가지 교통수단이 도보를 지나쳐 가고, 시시각각으로 기다리는 버스가 당도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이것이 경기의 관전을, 나아가 작품의 감상을 방해할 순 없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레 미제라블은 극도로 저하된 화질에도, 가끔씩 끊기는 와이파이 수신망에도 찬연했다. 부드럽게 흐르는 악셀, 강약이 살아있는 스텝과 상체의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 거대하고도 견고한 단독 플립.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견제해보려 해도, 가능한 선에서나마 흠집을 내보려 애를 써도 그 모든 시도를 무위로 만드는 완벽하고도 견고하며 차원이 다른 엣지와 높이, 회전수와 존재감의 플립이었다. 쇼트에서 이미 차원이 다른 연기를 선보이고도 더욱더 완벽할 것만을 요구하는ㅡ단 한 명의 선수에게만 한정된 엄격함을 가장한 심판과 언론에게 보란 듯이 보여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박의 여지가 없는 연기를 해낸 후에야 심판은 최상의 존재에 대한 예우를 갖추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자신이 선보이는 만큼의 연기에 대한 마땅한 인정과 찬사를 일반적인 수순에 의해 받기보다는 적군을 함몰시켜야만 하는 전선에 나아간 장수처럼 스스로 모든 것을 쟁취해내야 했고, 그 방법은 가능한 한도까지 완벽해지는 길뿐이었다. 오늘 그녀가 성취한 도전은 바로 이러한 성질의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녀에게만 더욱 어렵고 부당하기만 한 세계에서 그녀는 스스로 피었다. 그녀의 우승은 단순히 1등이라는 말로 가치매겨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연기를 통해 그 어떤 의의도 갖지 못할 뻔했던 대회가 영예를 얻고, 스포츠의 한 종목이 잃어버릴 뻔했던 날개를 찬란히 펼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경기장 안에 존재하는 모든 선수와 심판보다 거대한 존재였다. 오늘도 그녀의 경기를, 프로그램을 볼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다. 그녀가 기쁘게 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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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므

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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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벅찬 마음을 안고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첫 순간에 딱 본 시아준수가 이쪽을 향해 전에 없던 인사를 고개를 꾸벅 숙여가며 해준 거야. 그것도 쑥스러운 듯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그 순간 나는 마음이 너무 간지러울 정도로 행복하고 기쁘고 봄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연둣빛 그라운드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으로 보여서 축구를 보는 내내 날아갈 것만 같았다.

13.03.19

우승 ㅊㅋㅊ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