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18일의 공연은 매우 좋았다. 시아준수가 극의 80%를 좌우했던 모차르트!와는 달리 엘리자벳은 여러 배역에게로 비중이 분산되어 있어 모든 캐스트가 골고루 조화를 이루어야만 좋은 공연을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더블은 물론 트리플인 캐스트까지 있는 탓으로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 엘리자벳에게는 유독 딱 오늘이다! 싶은 날이 없었다. 18일도 완벽하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4월 들어 모든 배우들의 합이 가장 잘 이루어졌던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깐토드. 뿌리 염색을 다시 해서 안쪽까지 부드러운 샛노랑이 되었다. 눈썹도 15일보다 훨씬 진해져서, 이젠 정말 다른 토드들의 분장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프롤로그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동작은 매번 봐도 좋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귀여워. 이때 눈을 가늘게 지그러뜨리고 혀를 내밀어 웃는데 즐거워서라기보다는 단지 그런 식으로 사악함을 분출해내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씩은 있는 새로운 발견. 첫 만남과 종을 칠 때도 죽음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첫 만남에서는 시씨 일가의 전원을 배경으로 한 영상에 아주 희미하게 그림자가 덧입혀지고, 종을 칠 때는 시아준수의 움직임을 따라 그림자도 오르내리며 종을 치던데! 그걸 이제야 보다니.

<마지막 춤>은 다른 날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다. 다른 날만큼 좋았던 게 같았고, 다른 날이 무색할 만큼 월등히 좋았던 게 또 달랐는데, 완전히 달랐던 건 마지막 후렴. 순간적인 악센트 때문이었나? 시아준수가 한쪽 발을 탁하며 구르고 팔을 내리꽂으며 춤을 추기 시작하는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그때도 대체 그 느낌이 어디에서부터 온 건지 의아해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집요하게 좇았는데 끝내 이유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 마지막 후렴의 느낌만 기억이 난다. 춤, 표정, 노래의 삼박자가 눈과 귀와 심장에 착착 달라붙어 스며들었던, 마지막 춤이 그대로 흡수되는 것만 같았던 그 순간이.

그리고 "착각일 뿐"의 촉촉한 느낌, 비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은 느낌 되게 좋다. 11일, 15일 공연에서도 그랬지만 착~각의 발음 자체도 부들부들 말캉말캉한데 거기에 맞춰서 손을 까딱거리니까, 아 정말. 알게 모르게 얄밉고 귀엽고 그럼에도 멋있음. 나쁜 남자와 초월자 사이에 놓인 느낌으로. 어떻게 보면 자신이 차인 걸 애써 부정하려고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데 그게 또 너무 귀여워서, 이때 자꾸 흐뭇하게 웃게 된다. 대체 몇 가지 얼굴의 시아준수를 보는 건지. 

리프트에 올라서서 몸을 뒤로 꺾어 마지막으로 내지를 때, 말라서 세모난 턱에 동그랗게 자리 잡은 밋밋한 턱살은 또 그 와중에도 귀엽고. 만질만질해 보여서 만져보고도 싶고..

<황후는 빛나야 해>는 오랜만의 이정화 배우라서 너무 좋았는데, 18일 공연 따라 김선영 엘리자벳이 받아치는 강도가 약했다. 그때부터 이미 체념한 느낌, 피곤한 느낌. 전자라면 연기의 변화, 후자라면 컨디션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나는 나만의 것>을 보고 나니 컨디션의 문제는 아닌 듯했다. 18일의 나는 나만의 것은 정말이지 완벽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2월 29일 이후로 3, 4월의 공연에서는 큰 기복 없이 안정적이었던 김선영 엘리자벳이 18일 공연에서 또 한 번!!! 무섭게 휘몰아치는 연기와 감정을 보여주었다. <아무것도>에서는 시작하기 전부터 울컥한 얼굴이 되어 초반부에 거의 흐느끼다시피, 장례식에서도 대체 이 폭포처럼 흘러 내리는 감정들은 뭐지? 싶었던. 감정 자체도, 노래의 조화도 더할 나위 없었다. 엘리자벳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호감 여부를 떠나, 김선영 엘리자벳이 연기하는 감정들을 보고 듣는 것은 참 좋다.

15일에 발견하고 18일에 확인한 김선영 엘리자벳과 옥주현 엘리자벳의 연기 상 다른 점 중 하나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죽음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표정. 대관식의 환희에 취해있던 두 엘리자벳 모두 죽음을 발견하고 나서 서서히 얼굴을 굳히지만 김선영 엘리자벳은 표정을 완전히 굳히기 전에 죽음을 마주 보며 기쁘게 웃는다. 보란 듯이, 나의 승리를 너도 축하하라는 듯이. 과시하는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칭찬을 바라는 것도 같은 표정이 줄곧 여성스러운 김선영 엘리자벳에게서 소녀같은 천진함을 엿보이게 했다. 죽음은 석상이 돌아나오기 전부터 이미 엘리자벳만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죽음과 엘리자벳이 시선을 마주하고 씨익 웃는 그 순간 처음으로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기는 하구나 싶었다.

시아준수의 저음도 특히나 탄탄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정확히 어느 가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초반에 분명히 신음성 비슷한 한숨을 흘렸는데 어느 부분인지 다시 들어도 모르겠어.. 이래서 제때제때 써야하는데 ^_ㅠ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 초반, "우리 다시 만날 거란 그 약속". 이 가사에서 다른 날보다 유달리 앞으로 펼쳐내는 손동작에 웨이브를 넣어 뻗었는데 그 찰나의 움직임도 역시 남다르다. 이 넘버에서 가장 소름이 돋는 순간은 후반부에 계단이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운명"하고 내지른 후, "인간은 절대 볼 수 없지"로 쐐기를 박아 터트리는 때가 아닌가 한다. 터트려내는 소리에 의한 반동으로 상체가 앞쪽으로 휘청하며 난간에 의지하는 움직임도 진짜 진짜 진짜 헉소리 나게 좋다. 그때의 회전하는 그 무대가 꼭 시아준수를 위해 지구가 회전하는 느낌이라서, 이때의 모습이 기억에서 희미해지면 정말 슬플 것 같다.

그리고 장례식에 처음에 눈동자를 마구마구 굴리며 시선 둘 곳을 찾는 얼굴은 18일에 처음 보는 것이었고, 더 놀라웠던 것은 장례식 장면에서도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었다는 것. "아니!"할 때 한 번 웃고, "가!!!!!" 하며 엘리자벳을 내칠 때 문자 그대로 사악한 웃음이 씨이익 그려져서 응? 그 웃음은 뭐지? 하며 보는 내가 혼란에 빠졌다. 이제는 연민도, 동정도 사라진 걸까? 그도 아니면 자신을 향한 조소?

이어진 침몰씬에서 "훌륭하십니다"하며 팔을 벌려 황제를 조롱할 때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리며 유독 껄렁거렸는데, 얼핏 여유로워 보이면서도 스스로의 화를 견디지 못해 조급해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가 엔딩에서는 꼭 어미 잃은 짐승처럼 두리번 거리던 눈동자와 고개, 입술이 점점 예측불허가 되어가는 시아준수의 죽음이었다.


(+) 2막은 역시 이정화 배우. 이정화 조피일 때와 아닐 때 2막에 대한 집중도 차이가 현저하다.
(+) 전염병에서 리프트를 타고 오를 때 옆으로 걷는 걸음걸이.

댓글 '2'

12.04.23

헐 님 고소요 ㅡㅡ
완전 멀쩡하게 살아있었군 그랬군 그러면서 말도 없이 은둔테크타는 법이 있긔 없긔

유므

12.04.24

휴식이 필요합니다 (feat.토드)
혼자 충전 좀 하는 중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