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해줘요. 우리 다시는 만나선 안 돼요.”

대번에 반발하며 그가 상체를 곧추세웠다. 

“그런 약속 못-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나누었던 것도 잠시, 어느새 저만치로 멀어진 그녀를 향해 그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질끈 감은 눈, 그 오른 눈꼬리를 타고 한 줄기 반짝이는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인지 피땀인지 정확히 분간할 여력은 없었다. 단 하나 분명한 건 오른 눈꼬리로부터 범람한 긴 자국이 러빙유 내내 그 자리에 그대로 얼룩져 있었다는 것.

 

원래도 피땀 눈물로 흥건한데, 눈물 같아 더욱 서러운 자국까지 얼룩진 세레나데. Loving You Keeps Me Alive의 막바지였다.

“당신만이 날 채워줄 나의 사-랑-”

드넓게 쏘아 올린 노래에도 그녀가 돌아봐 주지 않자, 내내 등만 쫓던 그가 걸음을 당겨와 그녀의 앞에 섰다. 비로소 조정은 미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그의 얼굴에 평소와는 다른 균열이 일었다. 그 틈을 따라 노래가 미약하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름만 속삭여도 내 세상은 떨려..”

예상치 못한 구간에서의 동요였다. 범람하는 지점이 보통날과는 달랐다. 조짐이 심상치 않다 느낀 것과 동시에ㅡ노래하는 얼굴의 안쪽 깊은 곳에서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뚝뚝뚝 끊어지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인, 연, 은-

노래가 뚝뚝 절단되기 시작했다. 가슴을 지나, 턱 끝까지 차오른 울컥함을 내리누르느라 노래가 밀린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소절ㅡ“시간을 넘”ㅡ의 마지막이 아예 지층 아래로 잠겨버렸다. 소리 없이 사라진 ‘어’에 급기야 나까지 북받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생경한 일. 시아준수가 스스로 노래에 울음이 스미도록 허락한 적은 있어도, 노래 중에 차오른 울컥함을 다스리지 못해 목이 멘 모습을 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탁월할 정도로 노래와 눈물을 양립해내는 그가 아닌가. 누구보다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서도 누구보다 노래와 울음의 배합을 지켜내는 사람이 시아준수이지 않나.

몹시 궁금해졌다. 범람의 연유에는 분명 정면에서 마주한 조정은 미나의 얼굴이 있었을 터. 도대체 그녀가 어떤 얼굴이었기에 그를 무너뜨렸는가. 오블이라 잠겨가는 그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던 건 감사하였으나, 미나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 반 안타까움 반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기웃거리던 차에,

“새벽을 향하여-”

눈물의 여정 끝에서 그가 숨결 같은 울음을 탁 놓아버림과 함께 상체를 무너뜨렸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공간에 선명하게 남겨진 숨소리가 마음을 묵직하게 눌렀다. 날 것과 같았던 생울음의 러빙유에 더없이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다시금 미나의 등 뒤에 남겨진 채로 고개를 떨구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두 번은 볼 수 있을까.

섣불리 확언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대단히 진귀한 6월 20일의 러빙유였다. 

 

*

 

이하 간략하게, Fresh Blood부터. 소리적으로는 ‘불타는 저녁!’의 용솟음에, 이미지적으로는 ‘수많은 새 생명 날! 거부 못 해’의 찰나에 오늘의 수훈을. 특히 후자. 왼블의 관객을 모두 함락시킨 그가 무대 정중앙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날!’ 하던 순간. 한 손을 갈고리처럼 구겨 쥐고서는 고개를 음미하듯 젖힌 채로 소리를 박아넣었던 그 찰나에는.. 분명 모두의 시간이 10초는 멈췄으리라. 

 

Wedding. 프레시 블러드에서 후드를 벗을 때부터 헤어 셋팅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러빙유에서는 물론 웨딩에서도 머리에 일절 손대지 않으신 백작님. 

 

Life After Life. 와, 갈퀴 같던 ‘갈! 증! 을! 채워!’ 엄청났다. 선민 루시와의 듀엣에서는 ‘달콤한 피’가 항상 튀는 피치를 찍게 되는데 시아준수, 앞뒤 소절에 새로운 강세를 넣어 이음새를 다듬는 것. 너무나 천재적. 

그리고 영원히의 런웨이에 오른 그의 손에서 루시로부터 옮겨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 섬뜩하게 아름다웠다.

 

Mina’s Seduction. 그댈 향한 내 맘 ‘변하지 않으리’의 폭주하던 음성 대체 무슨 일이지. 이건 또 새롭기에 귀가 쫑긋. 몰아치던 노래와는 다르게 무릎 꿇은 미나를 일으켜 세울 때는 고개가 아니라 손을 잡아주지 뭐야. 찰나의 다정함이었다.

 

 

2021 뮤지컬 드라큘라 사연 김준수 회차 공연 관람 후기

일시: 2021년 6월 20일 (일) 오후 7시

키워드: 김준수, 시아준수, XIA, 샤큘, 드큘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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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6.26

아직도 이날의 러빙유에서 살아.. 인, 연, 을, 하면서 닳아가던 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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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6.26

세 음절의 얼굴 안 잊으려고 매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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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6.26

아직 눈앞에 선명하여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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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6.26

그릴 수 있다면 그렸을 것이다. 그럴 수 없으니 그린 듯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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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이 얼굴 아직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 매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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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2.02.22

사실 내가 쓴 후기를 다시 보는 편은 아닌데 (머릿속에 있으니까) 드물게 보는 글. 러빙유만큼은 사연의 이날이 단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보고 싶네요 백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