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대하던, 번갈아 AE 종일반. 하루에 양 옆면의 정면을 모두 볼 수 있는 대망의 날(별표). 낮과 밤의 시야를 합하여 완성한 이 하루를 오래오래 기억하리라. 

낮공은 분홍분홍하게 물든 내린샤큘. 
밤공은 내린샤큘의 1막, 깐샤큘의 2막.
낮공에서 내렸던 머리를 밤공에서 올리면 안개가 걷힌 느낌이다. 아름다운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운 표정을 고스란히, 전부,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으니까.


1. 드라큘라의 성
첫 만남의 손키스. 미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집요한 눈빛은 역시 다시 봐도 좋다. 사백 년을 기다려 다시 만난 사랑. 그녀의 두 손을 소중하게 꼬옥 틀어쥔 그의 오래 묵은 손 역시 늘 바라보게 되는 곳.


2. Fresh Blood
오, 묘하게 부드러웠다. 소프트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첫 음성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어. 시작부터 완전히 타오르는 불꽃이었던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고요하게 일렁이는 느낌으로 시작하여 차츰 강도를 더해가는 소리가 불씨의 발화를 청각화한 듯했다. 나직하고 위험하게 엄습하는 기운이 안개처럼 자욱했다. 도입부에서 특히.
이 변화 때문일까. 흡혈 후 젊음을 되찾고 나서의 파워와의 대비가 확연했다. 요즘 들어 늘 소름을 선사하는 젊음의 소리라서 더욱더. 특히 낮공의 다시 챠-즌 내 힘므아아앙! 은 진짜 어느 때보다 강렬! (그리고 귀여웠음).


3. Lucy & Dracula 1
‘그-렇-게-해주지'의 느릿하게 경고하는 음성이 좋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는 듯한, 으름장 같은 대사.


4. 삼연곡
'미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진실된 러브스토리를 들려드릴게요.' 여기 미나를 부르는 산뜻하고도 달뜬 음성(밤공)이 귀에 콕. 그렇게 부르고 싶던 그 이름을 불러보는 기분은 어떠한 가요? 에 대한 대답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소리라 생각했어.


She
재연 들어서의 변화 한 가지 더. 엘리자벳사가 칼에 맞는 순간의 끝음절을 채 마무리하지 못한다. 재연에서 한 번도 이 음절의 음을 끝까지 이어간 적이 없어. 끊기고 마는 그 소리가 공연이 거듭될수록 쌓이고 쌓여 안타까움을 더해간다. 매듭짓지 못한 그 노래가, 끝을 강요당한 그의 사랑과 꼭 닮아 있기에.

엘리자벳사를 끌어안고는 변함없이 처절하게 아름답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이목구비만 빨갛고 홧홧한 애절함으로 빛나는 모습이 마치 흰 도화지에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만 같아. 

악↗마↗에게 팔아서라도에는 28일보다 더 높고 격한 악센트가 실렸다. 낮공 때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어쩐지 정복해버려와 같은 발전사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 밤공에서도 변화를 이어가셨당.

포효는 오늘 다시 제단을 벗어났다. (낮밤 모두) 무릎으로 바닥을 찍듯 내려와, 엘리자벳사의 주검 앞에 무릎을 꿇은 절규. 수정된 부분이 아니라 애드립이었단 말인가. 그날그날의 연기에 따라 절규의 위치가 바뀌는 거라면 대흥분이다. 애드립의 즉흥은 극에 활기를 심어주는 건 물론 그날의 그의 연기, 그날의 감정에 대한 힌트를 얻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니까.

엔딩. 노래를 끝마친 후의 표정이 기억에 아득하다. 순식간에 현재로 돌아와 숨을 쌕쌕 몰아쉬는 얼굴에서 400년의 시간이 차르륵 빨리감기며 압축되는 모습이 아득아득했다. 시간의 테이프를 비잉 돌려, 마음을 감고 감아 이르른 오늘의 그. 그 오늘에서야 다시 만난 그녀.


At Last
앳 라스트는 위대하다. 어쩜 이러지. 초연에서 흡수한 드라큘라가 당신의 안에 살아있고, 당신은 그저 그 감정을 따르기 때문인가. 주체를 모를 정도로 앳라스트에서 마음이 범람한다. 

대사의 마디마디, 두 사람의 음성 음성이 박혀들어. 게다가 그의 손. 드라큘라의 성에서 처음 미나 머레이를 만났을 때와 같이 꼬옥 쥐고 한시도 놓지 않는 손. 애틋하게 겹쳐얽힌 두 사람의 마음처럼 마주 잡은 손도 볼수록 아파서. 두 눈에 시려서 내내 마음이 따끔거렸다.

당신은! 결혼했어. 재연 들어 이 마디의 느낌이 항상 다르다. 그가 말한 것처럼 연기하는 상대로부터 받은 '그날의 감정'이 반영되어 있어. 때문에 훨씬 더 생생하게 훨씬 더 아프게 스며든다. 오늘은 결혼'했’어 였다(낮공). 밤공에선 바르작이듯 튕겨올라 들썩이던 상체로 쿵, 바닥을 내려쳤다. 당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어째서 아직도 외면하냐는 듯이. 결혼했어.. 


Loving You Keeps Me Alive
오늘도 무릎을 꿇었다. 헌사하듯이. 그의 허무한 삶의 유일한 빛을 향하여 무너지듯이, 구원을 바라듯이. 하지만 야속하게도. 무릎 꿇은 그를 한 번을 돌아봐주지 않는다. 어둑어둑 그림자진 등의 셔츠 주름이 처창히 갈라진 그의 마음 같았다. 

그의 소리에 마침내 화답하여 '함께 춤춰요'에 이끌려 오는듯하다가도, 끝내 외면한 채 등을 보이는 그녀를 항해(올 듯하다가 안 오는 게 더 나빠ㅠ) 동그랗게 말린 몸은 주저앉아 한참을 땅만 바라본다. 진정되지 않는 숨을 쌕쌕 들이키며. 자포자기한 것처럼도 보였다. 왜, 왜 진실을 알고서도 나를 외면하는 거야?...

밤공에선 아주 귀중한 경험을 하였다. 마지막 소절을 부를 때 미나가 아슬아슬하게 그를 가리는 듯 가리지 않는 위치에 멈추어 섰는데 미나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를 곧바로 보았다. 미나의 시선 그대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이런 얼굴이겠구나. 동시에 자꾸만 닿는 그의 눈동자가, 나를 무대 위로 불러올렸다. 마치 미나가 된 듯한 일시의 환각.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루시의 웨딩을 마칠 때 온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사악하게 웃는 얼굴이 왜 이렇게 잘생긴 거지요? 심각하다 정말. 


5. Life After Life
첫공부터 좋았던 부분인데 이제야 쓰는 것. 너는 나의 첫 창조물! 뱀파이어로서의 루시가 세상을 처음 눈에 담는 얼굴, 그런 루시를 지켜보는 그의 미소. 이 대목의 팽팽함 정말 최고양.

밤공. 이제 함께, 하며 루시를 볼 때 마치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 같던 날카로운 얼굴! 사나운 본능의 어린 짐승을 보는 것 같았다.


6.  Mina’s Seduction
오늘의 도입부 별표 1215개!

손등으로 어깨를 어르던 손짓이 시작이었다. 어깨, 팔꿈치, 손목까지 차례로 쓸어내린 그가 늘어뜨린 그녀의 두 손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유혹의 멜로디를. 손길로도 소리로도 그녀를 결박하는 것 같던 그 부드러운 아찔함에 내가 다 홀려드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살얼음 같은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밤공. 흡혈 의식에 앞서 어깨가 드러났다. 훤히 벌어진 블라우스 덕에 왼 어깨의 둥그런 둔덕이 뿅. 이건 또 처음 있는 일이네. 물론 드러나자마자 임혜영 미나가 다시 여며주어서 무사히 원위치되었다.


7. It’s Over
내린 머리일 때의 좋은 점은 장풍을 쏠 때 흐드러지는 머리칼을 볼 수 있다는 것. 머리칼의 움직임마저도 그림 같아요. 깐샤큘일 때는 더없이 위압적이다. 하지만 내렸든, 올렸든 장풍을 날릴 때 콱 주먹 쥐는 손이 자그마하여 너무나도, 매한가지로 귀엽다는 건 안 비밀.

낮공 도입부의 속사포는 유난히 날카롭고 차가웠다. 노래를 저주의 주문처럼 다다다다 쏘아붙였어. 하이라이트의 모두 죽여주!마! 으르렁하면서는 즐겁다는 듯이 붉은 입술을 씩 끌어올려 웃었다. 가소로운 것들. 유희는 그만두고 이젠 끝장을 내주지! 포!기해의 강강도 진짜 강하게, 쾅. 


8. The Longer I Live
바스러질 것 같던 밤공. 유난히 그랬다. 유달리 그랬어. 내 '사'랑의 선택의 소리가 절정이었다. 바람 앞의 촛불 같던 그. 중심을 잃고 연이어 휘청거렸다. 육신으로도, 소리로도. 가득하던 생명력의 당신이 어쩌다 이렇게나 야위어버렸나 싶게끔.


9. At Last
앳라스트는 역시 위대하다2

석상을 오래도록 올려다보던 눈물 어린 눈의 그는 잔뜩 지쳐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걸음으로도 그녀를 향하던 그가 어쩔 수 없는 뒷걸음을 선택해야 했을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십자가를 내던지고 어둠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그녀와 달리, 한걸음 한걸음 그녀가 다가올수록 비틀이며 뒷걸음질을 치던 그. 이제야 진심으로 연인이 다가온다 하는데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는 그의 사랑..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 그녀를 어르다가, 달래다가 결국 울부짖는 그를 보았다. 끝없는 쾌락의 밤이라, 별빛보다 영원한 삶이라 속삭였던 전부를 사실은 송두리째 부정하며. 
무너져내린 무릎으로 우는 그 모습에 그녀도 차마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저 울음할 뿐. 

그를 일러 악마라 거듭 칭하는 인간들에게 묻고 싶었다. 이런 삶 이런 인생 죽음보다 괴롭다는 그가 어떻게 악마일 수 있느냐고. 

이윽고 찾아온 죽음. 과연 이것이 구원이 맞기는 한 걸까. 죽음의 격통을 고스란히 맞은 얼굴이 너무 아프다. 잔뜩 화하여 빨갛게 빛나는 관속의 찰나가 고통스럽다. 끝내는 오늘도 팔을 뻗지 못했다. 한 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뻗어보는 것조차도 버거운 마지막이라.
 
그래서 그녀도, 나도 바라만 보았다. 죽음의 고통이 덮친 얼굴로 관에 기댄 채 간신히 서있을 뿐인 그를. 구원이길 바라는 소멸이 그에게 영원의 안식이 되기를 소망하며.



*

낮공에선 농담입니다.
밤공에선 안 웃겨요? (밤공의 웃음소리는 재연 들어 가장 컸다. 남성 관객의 웃음소리도 꽤 들려서 오빠가 들었다면 좋아하셨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낮공부터) 반헬싱의 대사가 수정되었다. 트레인 시퀀스 이후 얻어낸 정보들로, “그래 우리의 예상이 맞았어! 성으로 가고 있어!” 라고.
그렇다면 이제 다음 과제로는 무대 위의 조명을 좀 더 밝히는 일이 되면 좋겠다.

댓글 '2'

연꽃

16.01.31

어제 밤공-특히 1막의 처연함이 자꾸 감돈다.

연꽃

16.01.31

1막의 At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