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공연 이후 나흘 만의 염색. 염색 주기가 이렇게 짧아졌다고? 이토록 빠르게 다음 염색이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터라 새빨간 머리색을 보고도 선뜻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삼연곡에서 하얀 블라우스를 점점이 새빨갛게 물들이는 피땀을 보고는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로 단 7회 남은 공연. 이제까지 50회의 공연을 하고도 그는 여전히 드라큘라에 목마른 모양이다. 새빨갛게 새 단장하고 온 머리칼은 물론 열연에 열창을 더한 오늘의 공연이 말해주었다. 드라큘라를 보내기 아쉬워하는 그의 마음을, 여전히 드라큘라가 너무 좋아서 들끓는 그의 심장을. 

 

‘열창’을 가장 소름 돋게, 생생하게 느꼈던 순간은 Life After Life. 최근의 음향이 Fresh Blood에서보다 공을 들이는 1막의 엔딩곡. 야망과 포부가 느껴지는 사운드 위를 그가 파도처럼 바람처럼 노닐었다. 이렇게까지 목을 갈아 넣는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내일을 생각지 않는 소리였다. 강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노래 사이에는 마치 안무처럼 빈틈없이 채운 동선과 디테일이 자리했다. 열창에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열연이 노래하는 내내 이어졌다. 열창인 동시에 열연이 되고 열연이 결국 열창이 되는 순환. 뮤지컬이 지향하는 ‘종합예술’이란 바로 이런 경지일 것이었다. 

 

그림이었던 건 She. 차라리 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마지막 소절, 마지막 어미에 짜 맞춘 듯이 그의 오른뺨 가장자리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미 ‘서’가 고통을 타고 솟구치는 동안 심장에서 난 피눈물은 볼을 타고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타이밍이 있을 수 있는지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시각과 청각이 서로 합을 맞춘 듯이 그림이었다.

참, 제단 위로 막 올라서서는 손으로 십자가를 짚었다. 성마르게 끌어올린 육신의 균형을 찾으려는 듯이. 이 대목에서 십자가를 손으로 만진 건 처음이다. 

 

27일의 연장선이기도 하였던 At Last.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은 그가, 그 위로 고개를 묻을 듯이 상체를 웅크렸다. 둥글게 웅크린 몸이 참 작아 보였고, 가엾게도 떨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참 슬펐던 순간. 

그녀가 몸을 달싹이며 틈을 만들자 엉금엉금 무릎을 끌어 거리를 좁히는 모습도 어제, 오늘의 눈물 포인트. 

 

그리고는 혼신의 러빙유였다. ‘열창’의 사전적인 의미를 소리로 풀어낸다면 오늘의 Life After Life와 러빙유일 것. 열창하는 동시에 등대처럼 오케스트라와 삼중창의 박자를 정확하게 짚어 이끄는 그를 보았다. 노래하는 동시에 무대를 전체를 인지하고, 무대 위의 모든 소리에 열려있는 그를 목격할 때마다 감탄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는 그림의 Finale. 최후의 소절.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울음에 먹혀 촉촉한 ‘게’를 지나고 어미만을 남겨둔 순간이었다. 그 잠시 잠깐의 정적에 그의 왼쪽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두 사람이 마주 잡은 두 손 사이로 수직낙하했다. 두 손 위로, 그러니까 칼 위로. 

칼을 적신 눈물 한 방울. 그건 마치 동화의 엔딩과도 같았다. 왕자의 눈물이 닿은 칼이 왕자에게 구원을 준 것만 같은 오늘이었다. 

 

 

덧. 기차역의 애드립. “그럼 다른 걸로 다시 한번.. 미안합니다.”

그림자 대화. 이제까지 중 가장 강하게 버럭한 “난 우리가 예전처럼.”

It’s Over. 마지막 소절 “다 끝났어”에서 돌아온 검지 공격.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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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5.30

오늘(30일) 웨딩을 보면서 생각난 것. 이날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머리카락이 반지에 걸렸었다. 그래서 반지 낀 손의 이동 경로를 따라 머리카락이 한 움큼 삐쳤었지. 그게 꼭 빗질해놓은 것처럼 예뻤다. 아니 뭐 얼굴이 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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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5.31

근데 어쨌든 머리카락이 걸린 걸 단번에 슥! 빼낸 거라 혹 따끔하진 않았으려나 잠시 걱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