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의 마법을 이어간 28일. 
24일이 지피고, 27일이 이루어내었으며, 28일이 이어간 이 마법. 9월 27일의 도리안 그레이에 기념비를 꽂고 28일을 27일과 같이 사랑할 것이다. 27일이 여물어갈 앞으로의 공연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마법의 시작은 너를 보낸다 reprise 부터, 도리안 그레이. 그리고 엔딩에 이르기까지. 
 
 
1. 등장 
별무리를 헤아리는 얼굴에서 오늘은 미소보다 눈망울이 빛났다. 어렴풋하게 올라간 입꼬리 위로 더없는 무구를 간직한 눈이 아름다웠어. 이렇게 착한 눈이 또 있을까.  
 
2. 찬란한 아름다움 
헨리 워튼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오늘도 배질을 곁눈질하는 시선을 보았다. 시빌 베인의 죽음 이후 오페라에 보러 가자는 제안에 배질을 보는 시선과도 겹쳐지며, 마음을 묘하게 하는 눈길이었다. 헨리 워튼과 같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영향력은 아닐지라도 그에게 있어 배질이라는 존재의 무게감이 언뜻 비추어지는 시선이었다고 할까. 
 
아름다웠던 얼굴은 그의 소리를 입은 찬란한 아름다움에서. 눈썹과 입꼬리가 하나의 능선을 그리며 이지러지는 옆얼굴이 정말로 아름다웠다.  
 
3. 당신은 누구일까
청혼할 계획을 말하기 전 흠, 살짝 목청을 가다듬는 소리가 울렸다. 짐짓 중대선언을 준비하는 그 얼굴이 귀여웠어.  
 
오늘의 애드립. 아 이게 배질이 말한 나쁜 영향.. 쓰레기ㅡ의 억양이 좋았다. 매우 좋았어. 나긋나긋 나지막한데 정말 경멸조로 쐐기를 딱 박는 느낌이라. 헨리 워튼도 오늘 좀 심한데? 했을 정도. 
 
그리고 눈맞춤에 나 죽었당. 깨꼬닥 >_< 
 
4. 최악의 줄리엣 
이 장면의 진정한 줄리엣은 사실 그이지 않을까? 로마오의 대사는 사실 그를 위한 게 아닐까? 
'턱을 괸 모습. 그 손의 장갑이 될 수 있다면!' 
시빌 베인이 그를 흘긋이는 그 마음이 이해된다.  
 
퇴장 직전 난간을 탁 내려치며 팽 엎어져 비련에 잠기기 직전의 얼굴을 보았다. 거의 울듯한, 마구잡이로 일그러진 얼굴이었어. 아아 갈라진 왕자님의 마음이여.  
 
당신은 내 사랑을 죽였어ㅡ의 선언 전 평소보다 물끄러미 시빌 베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눈에 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5.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시빌 베인은! 일갈하는 목소리에 가까스로 울음 잦아든 얼굴의 혼망한 빛이 정말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좋다. 눈에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쌕쌕이며 막 진정되어가는 찰나의 얼굴이 정말로 정말로 예뻐. 
그 얼굴로 헨리 워튼의 궤변에 자석처럼 이끌려 가는데, 아 너무 안타까운데 그 홀린 얼굴이 예쁘고 또 예쁘고.... 
 
6. 1막의 패션쇼. 항상 그를 보느라 긴가민가 했었는데 브랜든 부인이 그의 간택을 기다리며 포즈를 잡았다가 탈락하자 앨런이 놀리는 게 맞구나. 두 분 다 귀여우셔라.  
철저하게 자신의 미의 기준에 의하여만 움직이는 그는 또 너무 도도하여 아름다운 왕자님이고.  
 
7. 넌 누구 
타이 아래로 잔뜩 헝클어진 셔츠, 내리누르고자 하지만 흘러나오던 밭은 숨. 오늘의 혼란하였던 아름다움.  
 
8. 무엇이 기다릴까 
요즈음 너무 힘들어요,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죠. 한껏 나른한 몸. 배질을 등지고 선 얼굴의 눈이 거의 감겨있었다. 눈꺼풀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약에 취한 얼굴에서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흘러넘쳤다.  
 
날 사랑했던ㅡ에 한숨이 섞여들었다! 동글동글해진 발음으로도 모자라 '사랑'에 엮인 농밀한 한숨이 지나치게 은밀하고 자극적이었어.  
 
찬란한 아름다움은 12일의 격정에서 한 계단 내려온 퇴폐였다. 이것을 28일의 퇴폐라고 부를래. 무엇보다 걸음걸이가. 비틀비틀 음에 취해 구심점을 잃고 잔뜩 휘청이는 걸음걸이가 퇴폐적인 소리 이상으로 배질을 충격에 빠트렸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감각적인 타락에 싸인 그를 보는 배질의 얼굴이 거의 공포에 가깝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눈. 입꼬리로는 매혹을 그리면서 도통 웃지를 않는 눈. 배질의 일거일동을 샅샅이 주시하며 탐색하는 그 눈. 무엇이 기다릴까의 유혹이 그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선택이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어주는 그 눈.  
 
9. 또 다른 나 
이-십-년-전? 못된 기지를 발휘해낸 얼굴이 살풋 웃었다. 어제와 같이 결백을 가장하는 뻔뻔한 얼굴.  
하지만 뒤이은 또 다른 나의 혼돈이 말해주듯, 습격자가 떠나자마자 털썩, 고꾸라지는 몸에서 그가 얼마나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는지 말해준다.  
 
또 다른 나는, 연출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루어낸 절정이었다. 라이프 오브 조이까지의 찰나의 정적을 참지 못하고 쏟아져나온 박수가 증명한다. 오늘의 또 다른 나에 첫 깃발을 꽂을 거야. 이 절정은 설명할 수 없다. 들어야 해.  
 
10. Life of Joy 
왜 그렇게 그 초상화에 집착하시는 거죠? 어제와 같이 배질의 어깨에 두 팔을 턱 얹으며 물었다. 하지만 어제와는 그 태도가 달랐다. 오늘은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투였다. 별 것 아닌 너의 집착을 깨부수어 주겠노라는 듯한.  
 
광란의 절창. 이렇게 귓속 깊숙이 검은 뿌리를 내리는 소리가 있었던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탁하고 엉망진창인 소리. 귀기울이면 각자가 양립할 수 없는 제 이야기를 토하느라 여념이 없고, 그것이 이루어내는 기묘할 정도의 화음 아닌 화음. 들어도 들어도 믿을 수 없는 노래다.  
후반의 절정에서 거의 광기에 휩싸인 사람처럼 음을 토해내는 그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어.  
 
12. 악의 꽃 
오늘도 피에로에게 나누어준 관심. 오늘은 한껏 기뻐하는 피에로도 보았다.  
 
13. 천사의 추락 
기묘한 얼굴이었다. 일그러졌다가 울 것 같아졌다가 한껏 처진 웃음을 그려냈다. 마치 이것이 내가 베푼 선행이노라고, 내가 베푼 용서라고 최면을 거는 것 같은 얼굴이었어.  
 
14. 너를 보낸다 reprise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 의 현격한 변화. 그지없는 나긋나긋함이 부드러이 물었다. 네가 나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이 나를 떠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살지 못했어! 초상화의 비밀을 스스로 들추어내기 직전의 표정을 보았다. 있는대로 일그러져 고통 범벅인 얼굴. 찢긴 가슴이 고스란히 투영된 얼굴이었다. 그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면서는 웃음을 쥐어짜내는데... '어때, 아름답지 않아?' 묻는 음성이 명치를 쳤다. 부러 끝음을 말아올려 둥글게 발음한 문장에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비통함이 느껴졌으므로. 
 
차마 영혼까지 긍정하지는 못하는 배질을 향하여 서러운 칼날이 날아들었다. 비명처럼 흩어진 울분과 함께. 기묘한 것은 배질을 찌른 직후의 얼굴이었다. 잔뜩 굳은 눈과 미묘하게 비틀려 올라간 입꼬리가 미소인가 싶은 착시를 자아냈다. 내가 너를 찌른 것이 마땅하다는, 당당하게 뒤틀린 얼굴이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이의 웃음이 남긴 타격. 둔탁한 충격을 입은 양심이 그제야 울음을 토해냈다. 서럽게, 비통하게. 
 
15. 앨런의 죽음 
어제를 고스란히 이어온 앨런의 죽음. 배질의 죽어가는 웃음이 남긴 타격에 온통 혼란인 그가 여실하다. 초반의 공연과 같은 평정심은 더는 없다. 여미지 못한 옷차림과 어렴풋이 쫓기는 말투. 가장된 살얼음의 평온. 지극히 인간적이라서 아린 그 모습.  
 
다락으로 앨런을 몰아간 후에는 지끈이는 듯이 한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왜 배질을 죽였느냐는 고함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피로한 얼굴이었다. 타닥타닥 퇴장하는 때의 끌리는 걸음에서도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16. 사라진 아름다움. 
터덜터덜, 곧바르지 못한 걸음걸이 끝에 그가 한 발을 탁, 지상에 얹었다. 네가 만든 그 악마를 봐! 하는 앨런의 일침에 쐐기를 박는 것 같은 발소리였다. 바로 네가 만든 악마인 이 나를 보라는 것 같은. 
또 듣고 싶은 발소리라고 생각했다.  
 
배질이 살해당했을 거라는 생각, 해본 적 있어요? 
헨리, 만약에 내가 배질을 죽였다면요? 
묻는 등이 한없이 고요했다. 헨리 워튼의 대답을 기다리며 침묵에 잠긴 작은 등이 실낱 같은 희망에 잠긴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너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결코 살인을 하지 않아.  
우회적인 거절에 침묵의 등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A에서는 그의 등과 뒷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잠차 울음 번져가며 떨림이 격해지는 등으로도 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히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를 외면하는 헨리 워튼이 그가 보는 시야와 같이 담기는 A의 시야. 허상이라 해도ㅡ사라진 아름다움을 시작하며 그에게서 멀어지는 헨리 워튼이 서글펐다. 그의 시선에도 같은 시야가 담길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헨리 워튼의 소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외면당하는 순간을 그의 시선을 따라 보고 있노라는 감각에 마음을 가눌 수 없었어.  
 
'넌.' 
초상화가 들추어진 후 처음 들려온 목소리에 퍼뜩 들린 고개에서 두 눈이 황망하게 휘청거렸다.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였다.  
'아름답지 않아.' 
어느 때보다 차가운, 차가워진 헨리 워튼의 목소리에 두려움 가득하였던 눈동자에 믿을 수 없어하는 절망이 어렸다.  
'헨리, 헨리. 헨리!' 
점점 더 다급히 뛰어 쫓아보는 뒷모습이 한없이 아이같았다.  
 
17. 오늘의 도리안 그레이. 
역시 27일을 이어온 오늘의 도리안 그레이. 울면서 웃는 얼굴이 당장이라도 산화될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미소로 회한하는 얼굴이, 울음에 가득 파묻혀 자조하던 때보다도 아팠다.  
 
왜, 왜 울면서 웃는가. 왜, 그런 얼굴로 내 심장을 뒤트는가. 원망스러운만큼 좋았다. 울면서 웃음으로써 오히려 처절한 고통을 극한으로 빚어내는 그 얼굴에서 비추어지는 인간성이 기뻤다. 도리안 그레이를 통해 회복해내는 그의 양심이 사무치리만큼 반가웠다.  
 
24일을 딛고 27일을 다시 건너, 이러한 노선으로 바뀌고 난 뒤부터 커튼콜에서의 얼굴도 한결 개운해 보이기에 나 역시 울음으로 웃는 얼굴이 되어 화답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지금 당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이들이 당신의 구원이기를.  
 
18. 엔딩 
시빌 베인과의 다시 만남에서 쓰게 삼킨 울음의 숨. 
배질을 향하여 그렁그렁하던 눈.  
헨리 워튼을 마주 하고 떨리는 울음으로 빚은 입가의 웃음.  
 
19.  
그리고 오늘 너무나 귀엽고 멋졌던 것. 콧물풍선에 이을 콧물줄기가 유독 진하고 짙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줄기가 인중을 가득 메웠고 그의 입술에 맺혔으며 턱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가장 굵은 줄기는 꽤 오래 대롱대롱, 고드름처럼 맺혀 흘러내렸지. 그 모습이 귀여운 와중에 너무 프로다웠다. 멋있었어. 
커튼콜에서 그새 말끔해진 말간 얼굴에는 또 잠시 웃었네.  
 
(+) 
  
Against Nature, 넌 어디로. 스모그가 적당히 나왔으면... 
세상이 바뀐 시간. 오늘의 쿠션은 글로스터에게 명중했다. 
돌아 올 그날까지. 샬롯 배우가 바뀌었다. 
그리고 배질이 이발했다. 그덕에 헨리 워튼의 대사는 '부스스한 검은 머리.. 오늘은 단정한데? 그래도 별로야.'가 되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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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9.29

다시 들어도 오늘 '쓰레기'의 발음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