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그가 그림을 올려다보았다. 천이 걷혀 드러난 그림 속에 그와 그녀가 있었다. 올려다보는 그의 입매가 가라앉는가 싶더니, 울음을 꾸깃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조심스럽게 그림으로 향하였던 손을 얼마 뻗지도 못한 채로.

 

허공에서 멎은 그의 손 너머로 자꾸만 그림 쪽으로 시선이 갔다. 정확히는 그림을 덮어둔 천으로. 응접실에 둔 그녀의 초상과는 달리 두 사람이 함께하는 그림은 검은 천 속에 파묻혀있다. 대번에 이해되었다. 차마 볼 수가 없었겠지. 그림을 보는 순간 현실을 직시하게 될 터이니. 그래서 응접실이 아닌 관의 지척에 두었으면서도 꽁꽁 묻어둔 채로 400년이었을 것이다. 제 마음을 죽이고 시간만 견뎌온 세월이, 400년. 솔리터리맨의 외로움이 그림을 두른 천에 겹겹이 싸여있었다.

또한 어느 사이엔가 흡혈 전의 짙은 공허를 두른 눈의 그가 눈앞에 있었다. 모든 것을 끝낼 준비를 마치고.

 

*

 

음량이 다시 작아졌다. 대체 왜 하루건너 하루씩 들쑥날쑥 하는 거지?.. 

 

농담.. 농담입니다 대신 말쑥한 ‘농담입니다’로 돌아왔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좋아하는 편이라 반가웠다. 이어서는 두 번째 애드립. 린지 미나의 대사에 맞추어서:

“여자를 웃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셔야겠어요.”

“이게.. 연구한 겁니다.”

자못 당당하여 뿌듯해 보이기도 하는 태도가 큰 웃음을 주었다.

 

내 영혼을 악마에서 ‘팔아서라도’ㅡ굉장히 드물게도 갈래갈래 쉬어 이탈하는 소리를 들었다. 찢긴 심장을 청각화한 듯한 소리였다. 비극을 소리로 듣는다면 이렇겠지.

 

Loving You Keeps Me Alive. 어느 때보다도 널뛰기가 심했던 오케스트라. 쏠렸다가 늘어졌다가를 반복하는 박자에 그의 노래에도 여러 차례의 밀고 당기기가 있었다. 마치 썰매를 탄 듯한 러빙유였달까. 색다른 박자감에 귀가 쫑긋했고, 심장은 초조했다.

 

웨딩, 김수연 루시의 부케 받기 첫 성공! 그녀와도 부케를 받는 쪽으로 의견을 조율한 듯하다. 

 

Life After Life 의 첫 소절 ‘끝이라 생각 마 이제 시작일 뿐’은 또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끝음을 갈퀴처럼 낚아 올리는 동시에 그르렁거림도 추가! 그러나 전반적으로 음량이 약하여 넘버의 희열이 반감되었다. 배우의 노래는 어제와 오늘이 차이가 없는데, 아니 나날이 강세를 더하여 새로워지는데 음향이 따라주지 않았다. 속상했다.

 

Mina’s Seduction. 흡혈의 시간. 유독 눈에 들어온 건 침대 위에 부러 꼿꼿하게 세운 그의 두 발. 마치 긴장이라도 한 것처럼 발끝이 하늘을 향하여 바짝 서 있었다. 그녀에게 피를 나누어주면서는 모로 기울며 천천히 무너지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동시에 스르륵 힘을 잃고 스러지는 맵시가 몹시도 아름다웠다.

 

인상 깊었던 건 오늘의 트레인 시퀀스. 박자가 미묘했다. 익숙하게 듣던 대로가 아니라 귀가 쫑긋. 린지 미나의 박자가 다른 미나들보다 느리고 차분하여 평소보다 미나의 소절이 길었다. 자연히 그녀를 따라 오케스트라가 길어졌고, 관 속의 시아준수 역시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드라큘라의 선창에 미나가 홀린 듯이 호응하는 시퀀스라기 보다는, 미나의 혼란(박자)를 충분히 이해하고 귀 기울여준 드라큘라가 감싸 안는 듯한 형태였다. 드라큘라의 미나를 향한 사랑과 함께 상대 배우와 최선을 다하여 호흡하는 배우 김준수가 동시에 느껴졌던 순간.

 

줄리아의 죽음. 반헬싱의 힐난에 두 눈을 떨군 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난 그녀를 사,사랑해.”

피날레에서도 가라앉아 잠긴 음성이 첫 마디를 온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

“(난) 400년 동안 당신을 사랑했어요.”

후자가 오늘의 레어라면, 전자는 앞으로도 이어질지 궁금해지는 부분.

 

 

덧. ‘멍청한 놈’은 속삭임이 되었다. 침묵에서부터 피어난 듯한 고요하고 나직한 음성.

조나단의 십자가가 무대 밖 객석으로 떨어졌다.

It’s Over, 십자가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손준호 반헬싱, 힘내주세요.

김도현 렌필드. 핏빛이 다시 ‘그 빛’이 되었다. 가사가.. 이렇게 매일 달라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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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2.24

오늘(23일)의 Underscore 를 듣고 생각났다. 22일의 미-나-가 꽤 달랐다는 것. 두 음절을 고루 평탄하게 끄는 예의 음성이 아니었다. ‘나’가 반음쯤 내려오다 한숨처럼 흐트러졌는데, 소리 반 공기 반이었다. 독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