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내린 토드, 보랏빛 섀도우. 
어제까지만 해도 내린 앞머리가 분명히 눈썹까지 내려와 눈동자를 어스름히 덮었었는데, 살짝 다듬은 모양이다. 앞머리가 눈썹 위로 가지런한 경계를 이루어 귀여움이 반짝반짝했다. 섀도우에도 조금의 변화를 주어, 푸르스름한 느낌이 감도는 보랏빛이 되었다.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낮공. 1월 17일로 정점을 이루었던 조화를 굳혀가는 공연이었다. 죽음을 비롯하여 모든 배우들이 새로운 엘리자벳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밤공은 과연, 주말의 밤공, 6연공의 마지막 공연다웠다. 근래 들어 가장 압도적인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였다.


무엇보다 이번 주의 공연에서 보았던 새로운 디테일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루돌프를 계단으로 이끌어가며 손을 내밀 때, 황태자가 홀린 듯이 따라오자 매혹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해주었다.
계단 위에서는 ‘망설일 시간 없-어’ 채근하며 루돌프의 멱살을 또 잡았다! 멱살을 움켜쥐듯이 턱을 꽈악 잡았다가 탁 풀어내는 절도 있는 동작이 노래의 박자와 맞아떨어지며, 너무나도 근사했다.
헝가리 국민들에게 ‘원하는 대로 해주겠소.’ 루돌프의 승낙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웃음소리가 마이크가 켜지지 않았음에도 또랑또랑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내어 웃기보다는 주로 입 모양이나 어깨로만 웃어 보이는 대목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분명하고 큰 웃음은 또 처음이었다.


〈전염병〉에서도 새로운 디테일의 정착을 이어갔다. ‘혈색은 창백해’의 웃음 삼키는 소리를 또 들어서 기뻤다. 소파에서 뛰어내리고 나서 재차 점프하며 도약하는 듯한 모션도 다시 보아서 좋았다. 땅에 닿지 않는 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 전부 유려했다.
참, 모자를 벗은 후의 흐트러진 앞머리도 오랜만에 보았다.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일부러 흩트려놓은 듯한 흐드러짐이 무척이나 예쁘고 섹시했다.


기억에 남은 얼굴은 〈내가 춤추고 싶을 때〉. 독수리 조각상에서 내려오던 그가 그녀를 흘긋 보고 픽 웃던 순간. 승리감에 도취된 그녀가 썩 귀엽다는 듯 피식 웃는데, 그녀를 훤히 내려다보는 듯한 미소에 업신여기는 빛까지도 감돌아 오싹했다. 잘생김은 물론.


기억에 남는 소리는 〈마지막 춤〉. 공긴 ‘습하고’ 탁해. 목소리가 순간 잠기며 그윽하면서도 정말로, 늪지 같은 음성이 되었다.
밤공의 마지막 춤에서는 브릿지 위 최후의 소절에서 좌우로의 머리털기가 진짜로 강렬했다.


마지막으로, 낮밤 모두 1막의 그림자에서 웃고 있었다. 시작부터 은은한 미소가 감도는 얼굴이었다. 지상의 슬픔이 전혀 닿지 않는 높은 곳에서 아무런 동요 없이 웃는 얼굴이 말해주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은 안중에도 없음을.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일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1막의 그림자에서 그가 웃고 있는 날이면 〈추도곡〉에서의 변화가 더욱 사무치게 다가온다. 오늘도 그랬다. 낮밤 모두, 1막의 그림자에서는 몰랐던 그녀의 상실감을 절감하게 된 추도곡의 눈동자가, 차갑고 냉혹했던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풀 꺾인 눈빛이 안쓰러웠다.


삼중창에서는 어제와 같이 아주 매서운 미소를 보였다. 눈매가 꼭 불꽃처럼 이글이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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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21

참, 밤공. 박태양 루돌프. 베개에 쓸려 부스스하게 잔뜩 일어난 뒷머리가 완전히 까치집이었다. 코앞에서 그 모습을 보고도 웃지 않았던 시아준수 역시 프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