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직전 한 마디가 추가되었다.

간직해온 사랑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듯. "할 수 있을까?"

짧은 되물음으로 인해 명확해졌다. 옥상으로 올라가 이연을 안던 얼굴에 잔뜩 고인 울음에서도 그 해답을 보았다. 이별이 미안하여 우는 얼굴이 아니었다. 서글프고, 서럽고, 처절하기까지 한 사랑의 울음이었다. 지욱은 끝내 이연을 잊지 못한 것이다.

조금 더 친절해진 극의 설명 덕분이기도 하고, 노래도 연기도 오늘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12월>이었다. 앞뒤 개연성을 모두 떼어놓고 단 하나 12월만 보았을 때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로 좋았다. 감정이, 노래가, 얼굴이. 도입부의 '하얗게 지워져 간 시간'에서 아름다운 가성. 후반부의 '너에게 닿지못↗한 내 노래'에서의 울부짖음. 노래 안에서 시아준수가 펼쳐내는 드라마가 지극히 좋았다. 기승전결의 모든 순서를 밟아 완전한 정점으로 향하는 전개였다. 나무랄 데 없었다. 오늘의 <12월>을 오래오래 들을 것 같다.

(+) 그런데 하필 지욱이 '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 뒤 거울 속에서 나타나는 이연의 모습은.. 마치 지욱이 떠나려 하자 이연이 나타나 지욱의 발목을 잡는 전개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잊지 못할 가슴 시린 사랑이기도 하겠지만, 기억을 거슬러와 한 사람을 끝끝내 매몰시키고야 마는 그런 사랑.. 같은.. 그러니까 이 부분 연출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 지욱 스스로의 선택으로 화이가 아닌 이연임을, 그래서 아프고,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마무리를 말끔하게 지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아니면.. 설마 지욱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연을 놓지 못하고, 어떻게 해도 자신은 이연을 놓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절망감조차도 이 극의 주제인 건가?


이어서 청년 지욱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시아준수가 '상상'했다던 대학생활은 어떤 것일까. 강의실에서 수업에 임하는 지욱을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강단 위의 교수가 강의를 하든 말든 자기 상상 속에 빠져 넋 놓아도 보고, 축제 이야기로 옥신각신도 하고, 앞자리 동기에게 무언으로 대답하기도 하고. 또 강의가 지루하면 턱을 괸 채로 미간과 눈썹을 이용하여 얼굴을 찌그러트려 보기도 하고, 새어나오는 하품을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그러다가도 옆에다 멀쩡히 두었던 가방을 괜스레 들어 뒤적여보기도 하고. 이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이었겠지.

집중하기 싫은지, 지루한지 미간과 눈썹을 전부 써서 따분함을 표현하는 지욱은 정말 귀여웠다. 미간 사이가 쫑긋 솟으면서, 나 지금 심심해~ 심심하다고~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예쁜 투정을 부린다.

이연의 주의를 끌기 위해 반대의견을 내면서는, 어떻게든 말을 떠듬떠듬 이어가면서 자꾸만 천장을 향해 깜빡이던 눈동자가 말 못하게 귀여웠다. 숨기지 못한 부리는 또 어떻고. 오리처럼 뻐끔뻐끔 벌어지고 닫히던 입술을 할 수만 있다면 콕 잡아보고도 싶었다. 또 한 번 있는 그대로의 부리 모양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순간은 이연이 그들을 '우리'라고 칭했을 때. 기분 좋은 지욱이 천천히 '우-리?' 하며 이연이 남긴 단어를 곱씹는데, 아 헉 입 모양도 표정도 너무너무 귀엽잖아요?!

아아, 또 하나의 귀여움 포인트. 홀연히 사라져버린 이연을 찾아 교정을 누비느라, 게시판 앞에서 다시 이연과 마주쳤을 때는 정갈하게 내렸던 앞머리가 왼쪽으로 빗겨 있었다. 꼭 누나나 엄마가 예쁘다고 손으로 어루만지며 넘겨준 것 같은 모양새라, 앞머리가 가지런할 때와는 다른 의미에서 무척 아이 같았다.

그 얼굴로 이연을 부르는데, 대답하는 사람이 이연이 아닌 것을 알고 다소 골나고 시무룩하던 표정이란! 금방이라도 툴툴댈 것 같은 낯빛을 향해 결국 이연이 대답하자 또 금세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던 얼굴이란! 이렇게, 즉각적이라서 투명한 지욱의 반응이 좋다. "한잔할래?!"의 돌연한 어감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건지. 다급한 와중에 솔직한 그가, 그 억양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앓게 된다.

이연의 두 손이 지욱을 기억하는 순간, 잠자코 그녀의 손길에 얼굴을 맡기는 지욱은 두 번 봐도 멋있고 설렌다. 두 눈동자 가득 의문스러움을 품고도 얌전히 그녀가 하는 대로 받아준다. 의문스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그 순간 여러 갈래의 표정이 분명할 정도로 얼굴에 마구 얽혀 있어, 섹시하기도 하다.

그리고 1막에서 정말 순하다고 느꼈던, 좋은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뭐였지. 내일 보면 기억 날까.

음악감독으로서의 지욱은 사실 40대 같지는 않지만, 청년 지욱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성숙미를 물씬 풍긴다. 큰 기복 없이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말투나 어른의 차림새 같은 것들이. 2막 초반에 성태 형과 함께 간 술집에서 코트를 벗으면 드러나는 탄탄한 몸은 또 무척이나 위험하게 섹시하다. 검은색의 얇은 티가 어깨와 등에 착 달라붙어 상반신의 몸선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오른 구역에서 보면 그 등을 꼬옥 안아주고만 싶기도 하다. 섹시하면서 애틋함을 자극하는 모성본능의 공존이라니. 하하.

그 차림새로 술잔을 들이키고는 에이, 못 마실 걸 마셨다는 듯이 잔뜩 인상 쓰는 것도 좋다. 두 번에 걸쳐 에이, 에비에비, 이런 표정을 짓는데 문득 그의 이런 일상 연기를 많이 볼 수 있는 극이라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 친구끼리 술을 마시면서 두 손으로 술을 따르죠? 형이라 그런 건가?

아아, 여기서 한 번 시아준수 본인의 말투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2막에서는 내내 감독님 말투지만 여기서 딱 한 번. 이응 받침을 떨구어 내지 못한 순간이 있다. "형이 증권사에서 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라써엉~"ㅋㅋ 아 넘 귀여워서.

내내 사람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감독님 말투에서 제일 좋은 건 "~니"로 끝나는 대사들. 왔니? 에서처럼 어미를 올려 말할 때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울림이 정말 좋다. 자상해ㅜ 또또, 무심을 가장하며 툭 던지듯 뱉는 대사들도 좋다. 주연 캐스팅된 화이에게 꼭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축하해~" 같이.

술집에서 나와 거리를 걸으면서부터의 감정 연기는 주목해서 봐야 한다. 취기가 살짝 오른 듯이 간신히 뜬 눈으로 전방의 안개를 헤치는 것 같은 얼굴이 된 지욱이 이연의 기억을 좇는다. "겨울이네~", "이연일 봤어." 하며 늘어지기도 하고, 톡톡 끊어지기도 하는 대사에서 술기운에 의지해 기억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그가 안쓰럽다. 별빛을 보는지, 달빛을 보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옆모습이 처진 눈썹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어서 그가 말로써, 노래로써 풀어놓는 마음 역시 먹먹하고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장면처럼 조금 더 지욱이 이연과 화이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이야기가 있어도 좋을 뻔했다. 후반부에 대뜸 나타나 넘어진 화이를 일으켜 주고, 화이로부터 뽀뽀를 받는 마무리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없다. 두 사람 사이를 징검다리 놓아 줄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연과 똑같이 생긴 화이를 데려다 개인적으로 레슨 시키는 지욱은, 시아지욱이 아닌 인물로 보면 사심을 품은 40대 감독님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비록 이 개인 레슨에서 윤 감독님이 엄청 멋있고 섹시해서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무튼 여기, 이때 화이와 개인 레슨을 하면서는 화이의 노랫소리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얼굴은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눈썹. 미간. 시아준수는 찡그리는 얼굴도 예뻐요 왜.

 

주연 확정 후 화이와 충돌하면서 눈물짓기 시작하는 그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아이처럼 입꼬리를 내려뜨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아랫입술도 보았다. 내도록 울다가 노래를 시작할 때가 되면 크게 한 숨 들이켜는 것으로 목을 갈무리하던 모습도.

<12월>의 기억이 강렬하긴 했지만 사실 2막을 보면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의 노래가 고팠다. 그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노래가 적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노래도 비중도 준이나 죽음보다 많지만, 끊어 부르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아예 없는 때보다도 더한 갈증이 인다.

 

그리고 주요한 감정 연기가 있는 넘버-1막 2막의 엔딩-에서는 지욱이 바라보는 방향이 한 곳으로 지나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좋겠다. <12월> 후반에 내내 오른 구역에서는 뒤통수만 봐야했어서 덧붙이는 말.

 

극은 자꾸 수정해야 할 점이 보이고, 오빠의 공연은 이번 주 내도록 있고. 모쪼록 건강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우는 것은 극 안에서로 충분하다.


1. 끝나니 11:15
2. 안내노래를 보면서는 그가 살포시 웃어버렸는데, 더 귀여웠던 건 더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앙다물고 표정 관리하던 모습이었다.


그외 삭제되거나 수정된 장면
1. 여일-성태의 로봇 선물 삭제
2. 노모 장례식에서 첫공보다 앞쪽에서(여전히 오른쪽) 등장한 지욱과 훈 등.
3. 1막 이별에서 이연의 차림새가 하얀 니트에서 평소 차림새로.
4. 먼지가 되어 삭제

5. 끝나지 않은 노래는 인터미션으로 편입. 공연장 조명은 그대로 켜져 있고, 앙상블은 나와서 노래 부르고, 관객은 계속 입장하고.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노래가 시작되어 혼자서 혼란의 연속이었다. 인터미션 심심하지 말라는 배려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싶기도.. 하여튼 의중을 알 수 없다.

6. 후원회 삭제
7. 양로원 삭제
8. 12월 전 대사 추가. '할 수 있을까?'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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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3.12.18

아, 오늘 삼중창 좋았다. 훈이 삼중창에 있어야만 하는 인물인지를 논외로 한다면. 그가 요제프와 같다고는 할 수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