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서 사무치는 대목이 어디 어디인지 공연을 보며 짚어보았다.

부두 창고로 향하는 걸음이 그의 것이 아님에 1차로 타격.
'처음부터 다 보였다'는 목소리 결이 2차 타격.
째깍째깍 초침 흐르는 소리와 함께 라이토를 겨누는 총구가 타의ㅡ노트의 의지임이 여실하기에 3차 타격.
'총 이리 내, 이젠 내가 쏠 거야.' 란 라이토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겨누는 것은 자의ㅡ그 자신의 의지. 그러나 노트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 발포하지 못하고 그대로 멎어버린 인형 같던 옆모습이 4차 타격.
레퀴엠에서조차 그를 위해 울어줄 사람 한 명 없어, 쓰러진 몸 위로 쓸쓸히 드리워지는 노을빛이 마지막 타격.

그리고 오늘 확신한 것. '처음부터 다 보였어.' 모래처럼 흩어지는 이 순간의 소리가, 적어도 내게는 이 극의 5할은 되는 것 같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사무치는 소리. 세상에 어떻게 이런 소릿결이 존재할 수 있을까.


*

낮공에서 가장 좋았던 넘버는 죽음의 게임과 마지막 순간.
밤공에서 가장 좋았던 넘버는 변함없는 진실. 밤공의 노래는 최고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레퀴엠은 변함없이 슬펐다.


*

낮공. 귀여웠다. 뭐가 달라진 거지? 하룻밤 사이에 엄청엄청 귀여워졌어. 진짜 귀여웠다. 얼굴 자체가 그냥 귀여웠어. 보들보들 맨드라운 느낌 물씬. 상의의 오른쪽 어깨에 파운데이션 자국이 옅게 묻어있었던 것도, 왼쪽 가슴 부근께가 볼록하게 늘어나 있었던 것도 귀여웠당. 그런데 밤공에선 그새 새 옷처럼 말끔해져서 온 것도 귀여웠어.

The Game Begins. 종일반임을 의식해서인지 가장 정석적인 형태였다. 노래에 보다 집중하는 느낌. 목금에 보여주었던 가슴을 치는 동작과 과격한 몸짓이 소거된 대신 노래가 그 자리를 메웠다. 낮공도, 밤공도.

고등학생이라면서는 여전히 은은하게만 웃는다. 반전은 노래를 모두 마치고 나서도 이전처럼 씨익 웃지 않았다는 것(낮공). 동공에는 분명 웃음기가 맺혀 있었는데 입술은 앙다문 채로 두고 보자 키라, 하며 벼르는 얼굴이었다. 반면 밤공에서는 다시 씨이익 깊은 웃음.

비밀과 거짓. 낮공. 사신의 눈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류크에게 손을 뻗었다. 보이기라도 하는 듯이! 늘 빤-히 보아만 왔었는데 이렇게 손을 뻗은 것은 처음.

비밀과 거짓은 늘 좋다. 일반적인 상상의 범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키라의 비밀 앞에서 벽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이 좋아. 범인의 발상으로는 이 사건을 해결해낼 수 없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상상의 갈피를 어느 방향으로 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난항을 겪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캠퍼스. 미사의 등장. '미사'의 이름을 들을 때 미세하게 확장되었다 일그러지는 동공을 보았다. 곧이어 왼손 엄지를 물고 퍼즐을 맞추기 시작하는 얼굴이 진지하다. 

여기서 늘 생각해왔던 건데 미사와 미사부대가 그의 둘레를 빙그레 돌며 술래잡기할 때 서서히 등을 일으켜 세우는 자태가 멋있다. 섹시하고 멋있어. 어느 때는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모습 같다는 생각도 해.

그리고 오늘의 백미라 느꼈던 미사의 신문. 박진감이 넘쳤다고 할까. 승부에 집착하기 시작한 그의 눈빛이 섬뜩했다. 손에 쥔 단서들로 미사를 조여가며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려는 시도에 자비가 없었다. 인정사정없는 표정. 마치, '다 알고 있으니 너는 그대로 말하기만 하면 돼.' 하는 듯이.

밤공의 신문은 여기에 다소의 묘함을 더했다. 소이치로와의 서슬 퍼런 대치 후 어깨를 털어가며 웃었다. 늘 피식하는 정도로야 웃곤 했지만, 밤공에서처럼 온 어깨를 사용하여 너털웃음 터트리듯 '제대로 비웃어' 준 것은 처음이다. 사탕 든 손(왼손)을 가볍게 으쓱하는 동작도 소이치로를 분명하게 비웃고 있었다. 불현듯 안타까워졌다. 엘과 라이토는 역시 종이 한 장의 차이와 같구나. 서로가 서로를 쫓으며 닮아간다. 미사에게로 시선을 떨구며 '생각대로 되고 있음'에 흡족한 듯한 얼굴로 또 한 번 미소를 머금는 모습까지 전부 비인간적이었다. 그와 라이토가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퇴장하는 옆얼굴에서 눈가를 언뜻 스쳐 가는 공허함이 있었다는 것.


스트레칭의 시간. 낮공의 스트레칭은 오른 다리를 직각으로 폈다 구부렸다 다섯 번. 그 후 다리를 직각으로 굽힌 상태에서 손대지 않고 앞뒤로 빙글빙글 왔다 갔다 했다. 밤에는 직각 펴기를 빠르게 여러 번, 느리게 두어 번. 그 후 직각 자세에서 다리를 부드럽게 뒤로 돌리며 엔딩.
참, 밤공. 왼쪽 신발이 벗겨지며 한 바퀴 휙 돌아가 버렸다. 그것 외에는 벗는 것도 신는 것도 무리 없었던 하루.

시합에 열중하느라 말려 올라가는 상의는 낮공에선 취조 사탕을 물기 전 훌쩍 빼냈고, 밤공에서는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1차로 훌렁, 라이토와 마주 서면서 다시 2차로 마무리했다.

참 오늘 낮공부터 변함없는 진실에서 그가 등장할 때 막이 처져 있었다. 그래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는 모습을 가린당ㅜ

낮공의 사탕은 첫 번째는 연분홍 1/2 하양 1/2. 두 번째는 핑크.
밤공의 사탕은 첫 번째는 오렌지 3/4 하양 1/4. 두 번째는 핑크 1/2 하양 1/2.


*

그리고 마무리.

죽음의 게임에 나의 영혼을 묻고 왔다. 무릎 꿇었어요. 멋있음. 아름다움. 섹시함. 이 극에는 죽음의 신뿐 아니라 미의 신도 등장한다면서요? 솔직히 샤엘 정말 아름답다. 단벌도 비할 데 없이 순결하고 수수하지만, 겉옷만 걸치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근사함을 장착한다.

멋있어. 시아준수 멋있어. 샤엘이 멋있어.

죽음의 게임에서 그가 돌출로 걸어 나오는 내내 아이컨택하여 황홀함이 증폭된 거 맞음. 사탕신에서도 아이컨택해서 행복한 거 맞음ㅎㅎ

댓글 '6'
profile

연꽃

15.06.28

아, 쓰고 나서 왜 생각나는지.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눈 얼굴은 (밤공) 그 어느 때보다 무력함으로 범벅된 얼굴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지 않았더라면 소리로도, 표정으로도 흐느낌에 가까웠던.

profile

연꽃

15.06.28

그리고 이 죽음의 여운을 항상 커튼콜에서 가지고 있다. 손뽀뽀 전까지.

profile

연꽃

15.06.28

또 캠퍼스에서 착한 척하는 라이토 말투(내가 정말 살인마로 보여? 너 날 정말 키라라고 생각하는구나?)와 표정이 싫었다. 진짜 착한 척하는 말투야.

profile

연꽃

15.06.28

후기 쓰는 시간이 단축되고 있다. 기쁨.

profile

연꽃

15.06.28

그리고 시작된 것 같군.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바로 적어버리는 후기. ㅋㅋ

profile

연꽃

15.06.28

스트레칭을 보며 한 생각인데, 오빠는 유나카멜도 하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