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넘쳤다. 두 눈이 내내 반짝반짝. 오늘의 그는 흡사 놀이하는 듯했다. 위험하나 흥미로운 자극 앞에서 흥분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처럼 굴었다. 목숨을 건 싸움을 '두뇌게임'이라 부르는, 이 비범하고도 괴이한 천재가 비로소 맞수라 부를 만한 적을 만나 한껏 고양된 모습은 이열한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지켜보는 내가 아슬아슬 위태롭게 마음 졸일 정도로, 위험한 자극을 향해 자석처럼 이끌리는 본능을 조금도 자제하지 않았다.

<비밀과 거짓>에서 라이토와 류크의 대화를 '듣는' 순간, 혼란이 섞여든 얼굴로 주저앉던 평소와는 달리 회가 한껏 동한 얼굴로 웃음 지었다. 흥미로운 발견을 눈앞에 둔 듯한 얼굴이 되어.
<키라는 당신의 아들>에서 "이미 충-분히 놀라고 있어요, 야가미 국장님."에서도 그랬어.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웃음을 대사에 섞어가며 소이치로를 조롱했다(이 대사에서 이렇게까지 명확한 비소를 섞어 넣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죽음의 게임>에서도. 모종의 계획을 품은 눈빛이 형형했다. 이름을 말하기 직전, 웃음이 소거되며 싸악 변하는 얼굴에서도 읽어낼 수 있었다.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어 죽겠다는 표정을.
<변함없는 진실>. 사신의 존재 앞에 그 기세가 한풀 꺾이기는 하였으나, 키라의 도발에 더욱 불타오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기다려, 조만간 되갚아줄게.' 철퍼덕 주저앉아있던 몸을 기민하게 일으켜 세우는 동작은 마치 잠시 콩, 넘어졌던 아이가 금세 솟아오르는 모습 같았다. 자극받아 활활 타오르는 투지가 내내 그의 둘레에서 회오리쳤다.
<생명의 가치>에서 도저히 일반 상식에 의한 수사라고는 볼 수 없는 방식을 강행하며 태연자약이 사탕 문 모습은 그 자체가 이질적이고 비상식적이었다(심지어 오늘 대단히 열성적으로 사탕을 먹었는데, 혀를 잔뜩 내밀어 그 위로 사탕을 굴리는 장난도 여러 번...). 대립각을 세우던 소이치로를 거침없이 비웃고, 손을 으쓱하듯 휘저어내며 웃음을 털어내는 모습도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잊지 않고 눈가를 언뜻 스쳐 가는 공허함도 오늘은 그저 천재의 숙명과도 같은 그늘처럼 비추어졌다.

이쯤 되니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괴롭다는 말, 첫 친구라는 말.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는 존댓말로 표현한 마음의 어느 임계까지를 진의로 볼 수 있을까.

그 누구와도 섞여들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고, 그 누구에게서도 따뜻한 환대를 받지 못하는 존재. 무대 위의 그가 웃으며 노닐수록 그 둘레를 장벽처럼 감싼 고독감이 팽창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랬던 그가, 무엇에도 구속됨 없이 이끌리는 대로 자유롭던 그가,  <변함없는 진실 reprise>에서의 터덜터덜 박히는 걸음과 희미한 눈빛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대비는, 그렇기에 극명할 수밖에 없었다.

키라에 관한 모든 진실을 알고, 끝이 왔음을 알고, 노트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까지 전부 납득하였을 때.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던 혼란이 깨달음과 함께 사라지고, 동요를 멈추며 한없이 고요해지던 눈동자가 마음 아팠다. 내내 격랑을 품은 바다처럼 일렁이던 눈빛이 호수처럼 잔잔하게 잦아들던 찰나가 말도 못하게 아팠어. 오늘 특히나 생기를 머금고 반짝이던 동공의 초점이 흐려지며 연기처럼 뿌옇게 사그라지기에.

그래서 오늘 울었당. '처음부터 다 보였어.' 여기서 (내가).


*

오늘의 노래는 하나를 고를 수 없다. 변함없는 진실은 물론 The Game Begins 역시 오늘이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노래도, 아우라도 독보적으로. 살아있는 이성이 그라는 생명을 삼킨 듯한 노래였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의 형상으로 뭉친 지적 욕망 그 자체였던 느낌. 퇴장하며 추리에 사로잡힌 듯한 얼굴 위로 드리워진 광기까지 전부.


*

비밀과 거짓. 오늘의 딸기는 굉장히 작았다. 그 작은 알맹이를 똑같이 세입에 나누어 먹는데, 마지막 한 입은 도저히 먹을 것이 없어 보였을 정도라 드디어 딸기 하나를 다 먹는 날인가 싶었는데, 아니 이런. 앞니로 아주 조금만 섬세하게 갉아먹듯 베어 물어 기어코 빨간색 부분을 남겼다. 그리고 내 심장은 아파졌지. 너무 귀여워서..

대사로서는 최초의 애드립이 등장했다. "치사빤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브라우니를 쌓을 때, 위태로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재빠르게 브라우니 탑을 거머쥐던 엄지와 검지도 비밀과 거짓. 엘답게 자연스러우나, 본능적으로는 시아준수였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설렜다.

사탕은 첫 번째는 오렌지와 하양의 1/2. 두 번째는 핫핑크. 아무래도 그는 콜라맛에게는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듯하다. 

스트레칭의 시간이 되면 개그 욕심을 내시는 듯ㅎㅎ 오른 다리를 직각으로 올려 한동안 그 자세로 균형을 유지하다, 갑자기 빠르게 여러 번 쳐내며 회장을 빵 터트렸다. 신발은 신을 때 다소 낑낑. 오른발은 결국 뒤꿈치를 꺾어 신었고, 왼발은 발코를 콩 찍고 발목을 빙빙 돌려 끝까지 구겨 넣었다.

그리고, 다크서클이 확실히 짙어졌다.



시아준수 외의 이야기:
류크가 사과를 떨어트린 건 처음이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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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01

그리고 이건 궁예 아닌 궁예로, 시아준수를 겪어왔던 시간으로 가늠하건대 오늘 테니스 시합의 그는 진심이었다. 어제의 사고 아닌 사고를 만회하려는 열정이 최선을 다해 시합 내내 팽배했다. 예고 없던 서브 후, 피프틴-러브와 함께 전신을 쏟아 넣는 것처럼 라켓을 휘두르는 자세부터가 그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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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01

그리고 나는 설렜다. 내가 좋아하는 시아준수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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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01

고마웠고, 행복했고. 무대 위의 그 어떤 순간에서도 늘 최선을 다해 자신인 사람이라, 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리만치 일관된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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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01

아, 유난히 즐거워 보였던 순간이 또 있었는데.

"경기에 집중을 해야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에서 (오랜만에) 두 팔을 펼쳐내며, 눈썹을 이케 올려가며, 내 잘못 없음. 니 탓임. 제대로 약올리기 신공을 발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