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넘버가 너무 좋다.

어제 첫공을 보고 나오며 초연 때는 어떻게 이 극을 계속 보았던 걸까, 했었지. 오늘 두 번째 공연을 보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처음의 충격이 가시고 나니 그가 그려내고자 한 그림이 보였다. 당신이, 당신의 엘에게 허락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래서일까. 신경이 온통 마지막 넘버에 가 있다. 마지막 넘버의 목소리와 마지막의 눈, 총을 억세게 쥔 손, 떨림이 느껴지던 팔, 선 채로 죽은 눈빛, 라이토에게 밀쳐져 쓰러지던 순간 빙그르르 굴러 탁! 하고 떨어지던 눈동자.

2막이 좋고, 죽음의 게임 인트로가 정말 좋고, 미사미사를 맞닥뜨린 위기에 대처하는 그(에이틴 3월호에 나왔었죠?)가 좋은데ㅡ이 부분은 정말 따로 써야지,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아. 다이코쿠 부두 창고에서 퍼트려내는 '처음부터 다 보였어'가 좋다. 마지막 순간에 사로잡힌 신경이 자꾸 그 부분만을 되새긴다.
그 모든 긴장감을 자아내는 그의 연기가 감탄스러워. 공연을 보면서는 우수수 전율이 일었다. 놀랍고도 확실한 것은 이 전율은, 재연이 선사하였다는 사실.

재연의 엘은, 초연에서보다 더 거침이 없다. 더 냉소적이고, 초연 이상으로 삶의 모든 것을 '게임' 대하듯 임한다.

취조신의 변화에서 그 차이는 정말 명백하지. 미사를 취조하며 장난감을 굴리듯 자신의 발목을 달랑이는 엘은 초연에는 없었다. 목표물을 겨냥하며 가늠하는 듯한 모종의 미소를 자꾸만 그려 넣는 것도, 초연에서는 이렇게 섬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난간 위에서 소이치로와 대치한 후 보여주는 비웃음은, 재연에는 올곧은 비웃음이다. 초연 때 같은 장면에서 보여주었던 자조적인 쓸쓸함이 재연에는 없다. 소이치로의 눈먼 부성을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내리사랑을 이해하지 못해 쓸쓸함이 감돌곤 했던 초연의 얼굴은 없다. 이기고 지는 것, 맞다 틀리다가 아닌 여타의 감정은 불필요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의 엘이 있을 뿐.

그런 그가 게임의 끝에서 마치 두 손을 탁 털듯 종장을 인정하고 마감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그다운 것이었다. 간단하다. 승패가 결정되었으니, 끝이 온 것일 뿐이야.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는 단계까지도 비인간적으로 그답다 여겼다. 마지막 순간, 죽음을 맞닥뜨린 와중에 '난 틀리지 않았어'라는 확신을 되짚어내는 것까지.

다만 마지막의 대사는 늘 해석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틀리지 않았다'는 희열에 찬 확신인지, 최면의 자조인지는. 엘의 삶을 사는 동안 매일이 다르리란 예감이 든다.

어제는 전자인 하루였고, 그것이 좋았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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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7.01.05

(+) 레몬, 딸기.

에이틴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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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7.01.05

오늘의 인정할! 수! 없는! 께임~을 듣고 생각났다.
"부럽네요, 라이토." 당신이 이겼어요.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