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깐 토드. 
옆머리를 완전히 내려붙여 도련님미가 매우 매우 돋보이는 얼굴이었다. 반은 내린 머리였음에도 예쁜 이마가 완전히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그간의 반반 헤어스타일링이 반내린 토드였다면, 오늘은 반‘깐’ 토드의 느낌이 강했다.

 

*

 

고작 열흘 전이다.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첫 공연이. 이제 겨우 두 번째의 합이었다. 그런데 열흘 후의 오늘 모든 것이 달라졌다.

 

19일에 목격한 신영숙 엘리자벳은 난공불략의 성이었다. 삶에의 의지가 충만하여, 죽음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도대체 어떤 시도여야 어울림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죽음과의 서사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는데..

 

〈내가 춤추고 싶을 때〉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여전히 강하고, 대단히 생명력 가득한 엘리자벳이었다. 한껏 도취되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그녀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빗발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죽음은 대단히 고압적이었다. 어절마다 힘이 실리는 강세로, 죽음의 천사를 부리는 손끝으로 그녀를 가차 없이 몰아갔다.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의 상냥한 회유를 역정으로 되받은 그녀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한 번 각인시켜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가 없이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네가 쟁취하였다고 여기는 자유조차도 실은 내가 주었다는 사실을.

 

이때만 해도 그는 그녀를 찍어 눌러서라도 곁에 두려 했던 것 같다. 강에는 더한 강으로 내리누른다. 죽음이 새로운 엘리자벳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까지 강강강인 죽음이 언제 있었던가. 전염병, 그림자는 길어지고, 마이얼링의 어디에도 자비는 없었다. 불행을 차곡차곡 그녀 곁에 쌓아두는 얼굴이 정색하며 웃었다. 파멸을 목도한 인간이 죽음을 갈망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 그녀는 머지않아 삶을 사랑했던 그 열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리라.

 

하지만 계획은 실패했다. 죽음이 선사한 파멸은 그녀의 모든 생명을 꺼트렸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한 새로운 엘리자벳이었기에 꺼진 생명의 빛이 더욱 명료하게 부각되었다. 껍데기만 남은 그녀에게 죽음은 도피처일 뿐이었다. 갈망의 대상도, 선망의 안식처도 아니었다.
다시 한번 죽음은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동시에 〈추도곡〉의 눈물은 그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만다.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생을 저버린 그녀의 절망이, 절망에 닿은 그녀의 슬픔이 그와 공명하고 있었기에. 죽음은 끝내 결심한다.

 

그녀를 구원하리라.

 

구원. 그녀에게는 자유의 다른 이름. 곧, 죽음 너머의 영역.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죽음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자유를 일평생 갈망한 그녀를 위해 그는 기꺼이 수단이 되기로 한다.

 

자유를 목전에 둔 그녀의 얼굴에 환희가 감도는 모습을 깜빡임도 없이 눈에 담는 그는 오늘의 눈물 버튼이었다. 찰나의 만남을 대가로 한 영원한 이별을 감내할 준비가 된 얼굴. 죽음을 떨치고 자유를 향하여 나아가는 그녀를 받아들일 각오를 마친 얼굴. 결국 혼자 남게 될 결말을 전부 아는 얼굴..

 

만남, 그리고 이별.

 

품 안의 꺼진 생명을 보는 눈은 덤덤했다. 영원의 고독을 애써 견뎌내는 눈동자가 천천히 정면을 향하였을 때는, 놀랄 만큼 의연한 빛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보았다. 냉혹한 죽음의 마음을 백 년이 지나도 뜨겁게 하는, 아주 위대한 사랑을.

 

기묘한 조화, 완벽한 서사를 완성해낸 다시 없을 〈베일은 떨어지고〉였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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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8.12.30

한줄요약: 강에는 더한 강으로 대하는 냉혹함. 하지만 정작 바스러진 그녀를 목도하게 되자, 사랑을 위하여 기꺼이 스스로가 수단이 되어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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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8.12.30

그녀의 수단이 되기를 각오한 베일의 얼굴이 떠나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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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05

이날 밤공, 삼중창에서 처음으로 웃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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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05

또한 이날 낮공, 마지막! 춤!의 새로운 강세가 시작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