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밝은 하늘 아래에서 돌아오는 기분이 산뜻했다. 살짝만 노을진 하늘이 예뻤다.

 
1. 등장
별무리를 헤아리는 얼굴을 그간 중 가장 정면에 가깝게 보았다. 아, 말로는 다 못해. 그 사랑스러움을 담아낼 수 있는 표현 같은 건 없어. ㅜ
오늘의 표정은 액자까지 다가와 멈추어 섰을 때의 얼굴. 액자 속의 초상화처럼 곧게 서서 자세를 잡은 얼굴이 숭고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3. 당신은 누구일까
초반의 대화에서 헨리 워튼이 반응을 내어줄 때마다 기뻐하는 얼굴에 많은 생각이 든다. 저렇게 거리낌 없이 따를 사람이 아닌데.. 이런 생각..

이어지는 대화는 점점 애드립 대결이 되어간다.
예쁘구나? 에 '오브 콜스!'
오늘 청혼할 생각이에요에 대한 헨리 워튼의 '서프라이즈~'
그리고 나쁜 영향인가? 변태!
 
4. 최악의 줄리엣
조는 앨런 때문에 속상해진 얼굴이 오늘은 코트 자락을 두 번이나 펄럭이며 여미었다. 여기, 토라져서 뭉쳐있던 얼굴이 시빌 베인에게로 되돌아가면 금세 사르르르 풀리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사랑스러워. 영락없는 소년이다.
 
시빌 베인의 꿈결 속 이야기를 듣는 얼굴이 차갑디차가운 화를 담은 얼굴이었다가, 별안간에 무표정이 되었다. 한순간에 모든 표정이 사라진 채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린 그 무정한 얼굴이 소름 끼쳤다.
한편 '내가 사랑했던 시빌 베인은, 지성으로 빛나는 눈동자-'에서는 오랜만에 살풋 말려 올라간 입꼬리의 미소를 보았다. 기억 속 사랑에 어렴풋이 웃는 얼굴. 현실의 시빌 베인을 보던 무정한 눈동자와의 온도 차에 또 한 번 소름이 돋았어.
 
5.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시빌 베인은! 여배우로서의 품위 있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거야.
바로 이 순간. 혼망한 얼굴이 눈물을 그렁그렁단 채로 귀 기울이며 이끌려가는 눈은 정말이지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좋다. 온갖 표정이 범벅되어 있으면서도 헨리 워튼의 말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쫑긋이는 얼굴이 안타까운 만큼 아름다워.
 
신선한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싶어요. 돌아서는 뒷모습은 오늘도 손안의 달걀을 쥐었다 풀었다 하기를 반복했다. 마음을 다잡는 것 같은 부산한 주먹이 계속 시선을 끌었다.
 
6. 패션쇼에서의 얼굴이 점점 날카로워진다. 오늘은 헨리 워튼과 마주 보고도 생글 웃어 보이지 않았다. 살짝 패인 미간이 예술품들을 훑느라 분주하고, 입술로는 끊임없이 소리 없는 평가를 읊조렸다. 옅은 붓선으로 그려 넣은 듯이 살짝만 찡그린 미간 아래로 엄격하고도 도도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얼마나 아름답고 왕자님 같았는지 몰라.
 
7. Against Nature
가장 좋아하는 가사ㅡ죄악의 황홀한 절정ㅡ의 기분 좋은 타격감을 만났다. 기뻐라.
그리고 오늘은 참지 못하고 얼굴을 보았어. 아, 얼굴로도 춤을 연기하는 그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도도하고도 차가운 얼굴이, 다물렸다가 악 물었다가 변화무쌍한 입술이 얼마나 공들여 빚은 아름다움인지.
 
꿈틀대는 푸른 핏줄ㅡ의 소절을 전부 마무리한 후에는 여태까지 중 가장 광기에 찬 웃음을 보여주었다. 씩씩이듯 스며든 웃음을 힘겹게 토해내는 얼굴을 만났다.
 
8. 넌 누구
오늘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사라진 향기'에서.
 
9. 무엇이 기다릴까
오늘은 배질을 향하여 연기를 흘려보낸 후, 허공으로 재차 연기를 흩뿌리며 한숨을 섞어 넣었다. '후우'.
 
가만있자, 가만있자. 또르르 구르는 눈동자에서 오늘처럼 분명하게 생각을 굴리는 눈빛은 처음. 모색의 끝에 이르러 튕겨 오르는 몸과 동시에 그가 외쳤다. 아! 뭔가를 보기는 했어요.
 
당신이 만든 나ㅡ는 오랜만에 좋아하는 강한 소리로 발현되었다. 심지어 오늘은 순간적으로 욱하는 얼굴로 덤비듯이 달려들기까지. 배질의 코앞에서야 멎은 기세가 상대의 얼굴을 상처 낼 것처럼 강한 기운으로 손을 뻗었다. 도리어 자신의 손목이 잡혀버리고 말았지만, 그조차도 그가 묵인했기에 가능한 저지였다.
 
처음 보는 얼굴은 '영원한 젊음'에도 있었다. 영원한 젊음 선사한 나ㅡ에서 두 손을 기도하듯 곱게 모으며 꿈결에 잠긴 웃음을 보았네.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은밀했고, 위험했고, 성스럽게 퇴폐적이었다.
내 영혼의 비밀ㅡ은 직전의 그 사랑스러웠던 웃음에 대비될 만큼의 현격한 격차를 실어 넣은 소리였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으르렁거리는 음성으로 강렬하게. 낮게. 거칠게.
 
찬란한 아름다움의 아지랑이는 급기야 웨이브가 되었다. 두 팔을 상하로 뭉게뭉게 펼쳐내는 손끝이 웨이브를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렸어. 배질에게로 살랑살랑 나는 듯이 몸을 움직이며 아지랑이와 웨이브 어딘가의 몸짓을 보여주는 그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늘의 소리. 배질과 함께 부르는 소절에서 그의 모든 끝음들. 유달리 강하고 낮으며 길게 늘어뜨린 음절들. 빠져나가려는 배질을 옭아매는 그물망 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외면코자 하는 배질의 덜미를 틀어쥐는 악력을 그 거센 끝음들에서 '보았어'.
아, 오늘의 무엇이 기다릴까 정말 사랑이었네. 소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유혹의 대사 마무리의 스킨십도 조금 더 농밀했다. 배질의 머리에서부터 허리까지 은밀하게 쓸어내리는 손길이 나폴나폴.
그리고 오늘 가운이 성급했다. 그가 아직 정면을 향한 상태인데 맨몸이 보이기에 깜짝. ㅎㅎ
 
10. 넌 어디로
데빌은 오늘 그에게 손등 키스를 보냈다. 소파 뒤에서 그의 양어깨를 쓸어내린 후, 그 손길의 끝에 놓인 그의 오른손등에 살며시. 닿지 않아서 더욱 상징적인 의미, '타락한 순결의' 입맞춤이었다.
 
11. 또 다른 나
인트로. 습격당한 얼굴의 표정 변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 단계 단계를 흘려보내지 않고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표정 연기. 놀랐다가, 의심했다가, 떨었다가, 이-십-년-전을 짚고 사르륵 빠져나갈 도모를 마친 얼굴이 결백을 가장하며 웃는 얼굴까지. 좋아하는 섬세함.
 
내 속죄는 진실로 내 뜻인 걸↗까의 음 밀기는 오늘도 이어졌다♡ 나날이 진화하고 있어. 끝없이 밀었다 되돌아오는 박자는 언제 들어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숨겨진 '나'의 끝음. 30일의 것을 살짝 닮은 음성. 30일이 의도하지 않은 음성을 되살려낸 것이었다면 오늘은 처음부터 의도된 음성이었다. 이 음절에 싣는 소리에 변화를 주기로 한 걸까?
 
12. Life of Joy
이 미묘한 느낌은 뭘까. 묘하게 헨리 워튼의 강세가 떨어졌다. 찬란한 아름다움의 이중창이 치솟는 소리의 만남이 아니라 하강의 조화가 되었다. 평소와 다른 기세를 기민하게 읽어낸 그 역시 평소와는 다른 강세로 화응했기 때문. 음. 알 수 없다. 미묘했어.
 
오늘의 대사는 '저 그림이 날 망쳤어'의 비명 같았던 어미.
마지막에는 의외의 눈맞춤이 있었다. 오래도록 보았네, 그 사로잡힌 눈을.
 
13. 너를 보낸다 reprise
난 그녀를 용서해주었어요. 한껏 밀착한 채로 꽤 오래 배질을 올려다보는 등이 침묵했다. 상대의 공허한 눈동자를 응시하며 반응을 탐색했어. 끝내 원하는 그 어떤 긍정도 얻어내지 못한 얼굴이 마른 헛웃음을 토해냈다. 그래, 오늘은 쥐어 짜낸 헛웃음이었다. 끊길 듯 공허한 웃음소리가 깔깔깔 흘렀다. 이로써 진-정-한 선행을 베푼 거예요. 그 목소리를 품은 방 안의 침묵이 더없이 공허하고 착잡했다.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 의 순간. 배질을 향하여 한껏 기울인 등의 곡선이 오늘처럼 유려한 적이 없었다. 아름답게 굴곡진 등으로도 그가 물었다. 날 떠난다고? 부드러워 녹녹한 음성은 27일의 변화를 여전히 이어갔다.
 
난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ㅡ의 울컥하는 감정 역시. 오늘의 감정은 어제보다 더 빨랐다. 문장 말미가 아닌 첫머리에서 감정이 왈칵 쏟아지며 발음을 악물었다.
그리스 신화의 이상적 인간, 은 또박또박한 발음이 무색하게 울음의 빛을 머금고 있었다.
 
배질을 찌르기 직전의 표정 연기도 섬세했지. 혼탁하던 두 눈이 삽시간에 분노를 머금더니 부릅떠졌다. 빛 받아 거세게 빛나는 눈동자에서 절망과 증오가 회오리치며 일어섰다. 꼭 배질을 향한 감정이었다기보다는, 진실을 마주한 절망감과도 같았던 그 얼굴이 배질에게로 달려들었다.
 
14. 앨런의 죽음
혼망한 얼굴, 여미지 못한 옷차림. 게다가 오늘의 미묘한 대사 톤. 지금 내 다락방에 남자 시체가 있어요. 찡그렸다가 퍼뜩 부릅뜬 두 눈이 그의 상태가 온전치 않음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비밀은 꼭 지켜주세요ㅡ의 은밀하게 쫓기는 지친 기색 역시.
 
이 대목에서 비로소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늘 안도한다. 태연하고자 하지만 양심에 짓눌린 쫓기는 얼굴과 목소리에 감사해. 이를 통해 사라진 아름다움과 도리안 그레이에 이르는 그를 나부터가 용서할 수 있으므로. 그것으로 그의 구원에 여지를 가지지 않을 수 있기에.
 
15. 사라진 아름다움
햄릿의 물기는 여전하다. 이제는 그 물기가 이어지는 대사 전반에 이를 정도야. 아이 같이 가냘프고, 의지할 곳 잃은 목소리라 생각했다.
 
허상이라 했어도 존재 않다 믿어도 조여오던 내 심장ㅡ이 오늘의 아픈 지점.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였던 인생. 타락의 against nature에서조차 구원을 외쳤던 삶. 한순간이라도 그가 진정 쾌락을 위한 쾌락을 추구하였다면 이 소절이 이렇게까지 사무치지는 않았을 텐데. 심장의 양심에 옥죄인 채 고통받아온 그의 삶 전부를 생각나게 하는 가사였고, 그런 얼굴이었어서 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초상화 어디 있어. 헨리 워튼에 의해 돌려지는 얼굴에서 지친 기색을 넘어 체념한 빛을 확인하고 나면, 나조차도 그를 닮은 마음이 된다. 모든 것의 끝을 그저 기다리는 마음이.
 
16. 도리안 그레이
나 싱그러웠던, 나 밝게 빛나던.
웃으면서 울음하는 얼굴로 천천히 걸어오는 그를 마주하는 일은 끝까지 적응되지 않으려나 보다. 예쁜 얼굴, 소년의 것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 이 순간의 그를 보는 순간 심장이 탁 멎어. 눈앞에서 일렁이는 그 얼굴을 믿을 수가 없는 심정이 된다. 한없이 여리고 버려진 아이 같은 그 얼굴을, 그 얼굴 가득한 물기를 가만히 쓸어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이 비극을 바라보는 내가 세상 가장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감각을 가눌 수 없다.
 
생을 그어낸 후 오늘은 쓰러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끌어내려진 듯한 빛을 잃은 육신에서는 파들파들 떨림조차 희미했다. 심지어 오늘은 무릎 걸음조차 하지 못했어. 못 박힌 그 모습이 꼭 이미 생의 막바지에 한껏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릎으로 기어보지조차 못하는 오늘의 그 모습이 서러울 정도로 눈을 따갑게 했다.
 
더욱이 오늘의 마지막 문장. 아름다운 소년이 나를 부른다ㅡ는 오랜만에 문장 전체가 울음이었다. 웃음으로 빚어 끝내 울음이 맺혀버렸던 9월 마지막 주와는 판이하게 다른 온통, 울음. 전부가 울음..
 
사무치는 회한으로 가득한 얼굴이 끝내 자신이 바라는 구원을 목도하지 못한 것만 같아서.. 그래도 늘 마지막에는 마중 나온 아름다운 옛 소년과 재회하는 눈이었는데, 오늘은 그조차도 없는 것만 같아서, 어둠에 잠겨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무거웠다.
레퀴엠이 죽음 이후의 현실이 아니라 끝내의 꿈처럼 다가오는 오늘 같은 날엔, 남겨진 마음의 쓸쓸함이 하릴없이 크다. 도리안이 아니라 시아준수가 더욱 사무치는 밤이다.


 
(+)
배질의 애드립은 점점 농담 같은 진담이 되어간다. 오늘은 '둘이 그러면 나 속상해.'
세상이 바뀐 시간. 오늘도 도리안 그레이를 응원한 브랜든 부인. 오늘은 어째서인지 실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추가된 대사여도 좋을 것 같아. ㅎ 그리고 오늘은 쿠션을 두 개나 휘두르셨다. 막공 즈음엔 무엇을 휘두르실지 기대된다.
 
사라진 아름다움. 오늘의 헨리 워튼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나는 더욱 헨리 워튼을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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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10.04

10월 3일의 '난 도리안 그레이를 응원할 거야!'는 과연 의도된 변화였을지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