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비어마저 보낸 후 검 앞으로 무너지던 아더, 마이크까지 다 꺼진 후였는데.. 전에 없이 커다란 울음소리가 공간을 둔탁하게 두드렸다. 아이처럼 왈칵 토해낸 울음이었다. 고요한 평원을 반으로 쪼개어 놓을 듯한 서러움에 덩달아 울컥했다. 전쟁이 남기고 갔음이 분명한 붉은 생채기 선연한 얼굴로 서럽게 울음 토해내는 그 앞에서 어떻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떤 위로도 닿지 않도록 철저하게 혼자된 그가 아프고, 그런 그를 태연히 기다리는 검이 야속했다. 한 사람의 운명이 그를 얼마나 잔인하게 몰아갈 수 있는지 그 일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끝내는 한 뜻 한 길 한 맘 한 꿈의 의지로 다시 일어서지만 그리하기까지 온통 눈물투성이가 된 발밑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그런 날이었다. 

 

*

 

아, 세상에. “천둥아, 번개야” 찾는 얼굴을 보는 즉시 오늘은 생눈으로 보겠다 한 다짐을 회수했다. 꽃단장하고 나온 아더. 앞머리와 뒷머리의 볼륨이 이 세상 너머의 것이었다. 천둥이를 찾으며 얼굴을 불쑥 드러내는 순간 모든 신경이 일제히 시각으로 쏠려 오늘의 말들에게는 어떤 수식어가 뒤따랐는지도 듣지 못했다. 내린 아더로 이런 멋쁨이라니. 1막 중반, 누워서 치료받느라 뒷머리가 가라앉은 걸 감안하고도 볼륨이 내내 엄청났다.

 

이렇게 멋지게 단장하고 나와 〈찬란한 햇살〉을 부르며 무대를 누비는 시아준수란.. 볼륨 넉넉한 스타일링이 평소의 순박한 아더와는 다르게 세련미가 넘쳐서 오늘따라 프리댄스가(심지어 각기춤이었는데도) 율동처럼 느껴지는 게 못내 아쉬웠다. 더 본격적인 춤을 본격적으로 춰야만 할 것 같은 멋쁨이었는 걸요. 

 

빵실빵실 멋스러운 볼륨은 〈난 나의 것〉과는 기묘하게 어울렸는데, 얼굴도 성격도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점이 일맥상통하여 그랬을까. 오케스트라 박자도 유난히 빨랐던 오늘, 그 질주하는 느낌이 오늘의 멋쁨과 또 썩 어울렸지 뭐람. 

 

검의 바위에서 엑스칼리버에게 으름장 놓는 대사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악물어 발음하는 ‘인상 더럽게’가 빠지고 다시 무섭게 생긴 마법사로. 

 

〈내 앞에 펼쳐진 이 길〉에서 요즘 좋아하는 것. 엑스칼리버를 뽑기 직전의 가사, 맞서 ‘기’ 위해. 곧게 뽑아내는 ‘기’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두세 번 더 부딪혀 오는 느낌이 좋다. 아더의 각오가 두 번 세 번 재차 피어오르는 것도 같고, 메아리로 돌아오는 소리가 예쁘게 아득해서도 좋고요.

 

〈검이 한 사람을〉에서 형에게 안길 때 아주 작정하고 두 팔 왕 벌리는 건 왜 이렇게 봐도 봐도 귀엽죠? 팔 이만큼 벌려 자, 날 안아! 준비를 마치면 강태을 랜슬럿, 그런 아더를 응차 들어 참 높이도 안아 올리는데, 지상으로부터 저만치 둥둥 뜬 다리가 귀여워서 원.

 

색슨족의 습격 후에 오늘은 다시 상처를 짚지 않았다. 상처 입은 내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강하고 엄중하게 경고한 아더. 역시 어제는 얼결에 손이 올라갔던 게 맞나봐요. 

 

이어서 〈오래전 먼 곳에서〉의 얼굴 이야기. 각도상 예복을 입을 때, 팔을 입혀주는 친구(브루노라고 한다)의 시야였는데 와. 시선 맞추고 생긋 눈인사하는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눈도장 찍듯 산뜻하고 다정한 눈인사, 이게 찰나의 눈짓이라니. 어떻게 찰나에 이렇게 시선을 예쁘게 쓸 수가 있죠? 저는 죽었어요.  

 

그런데 〈눈에는 눈〉 “검은 영혼 길을 잃었네” 부르며 원래도 아더가 객석을 향해 검을 겨누었던가? 재연의 눈에는 눈은 너무나 확신의 얼굴 넘버라 얼굴 바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선뜻 단언할 수가 없다. 아무튼 오늘 엑스칼리버로 정면의 객석을 겨누는 샤아더가 대단히 근사했어요. 

(한편 1막의 볼륨은 2막에서 살짝 숨을 죽여 왔다..☆)

 

〈혼자서 가〉 오늘은 강태을 랜슬럿에게 어깨를 허락했다. 22일에는 아예 닿지도 못하게 벽을 세워 쳐내더니, 오늘은 랜슬럿에게 어깨를 짚인 후에 차게 식은 얼굴로 그를 떨쳐낸 아더. 뿌리치는 기세도 눈빛도 매몰차서 바늘 하나 들어갈 구멍도 없어 보였다.

칼싸움하는 동안의 강태을 랜슬럿은 시종일관 여유로우며 절대로 아더에게 전력을 다하지 않는데, 그래서 두 눈 부릅뜨고 이를 가는 아더의 태도와 몹시 대비된다. 오늘도 혼자 세상의 끝까지 이를 갈던 아더, 그러면서도 계속 형의 방어에 밀리던 아더.. 얼마나 분했을까..

 

〈이게 바로 끝〉 이야아아 달려들기 전, 두 사람의 배신을 목격하며 무너지는 얼굴로 살짝 미간을 짚으려다 마는 손. 오랜만에 본다. 이 동작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인 건 미간 앞에 머물다 마는 손등의 핏줄마저 연기하는 샤아더.

분노의 노래는 소리가 대단히 청청했다. ‘세상이 무너져~ 내려’의 섬세한 서늘함을 딛고 치솟아 오른 ‘다 달라졌어’가 깔끔하다 못해 예뻤다. 분노를 서슬 퍼렇게 쏟아내면서 이토록 탄탄한 푸르름이라니. 어째서 검푸른 분노마저도 이렇게 잘생겼단 말인가요.

 

〈왕이 된다는 것〉 마지막 어미 ‘라’에는 어제오늘 계속 약소한 샤우팅이 깃들고 있다. 어제는 노래가 질주하였기에 샤우팅까지의 연결도 자연스러웠다면, 오늘은 거의 정석에 가까운 왕이 된다는 것의 말미에 샤우팅만 얹어진 셈이라 꽤 새로웠다는 게 다른 점. 청명하여 소년 같은 ‘라’를 물들이는 (약소한) 샤우팅, 남은 공연 동안에도 계속 듣게 될지 귀추가 궁금한 부분.

 

벌써 두 차례의 공연을 마치고도 아직 세 번의 공연이 남은 10월의 마지막 주. 샤아더 팟팅, 시아준수 팟팅!


댓글 '3'

LovelyJS

21.10.28

'그런데 〈눈에는 눈〉 “검은 영혼 길을 잃었네” 부르며 원래도 아더가 객석을 향해 검을 겨누었던가? ' 저도 어제 이 부분이 생경했는데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니 원래 했었더라고요! 2막에 등장하는 샤아더의 얼굴에 넋을 잃어 서울막공이 1주일 조금 더 남은 시점에서야 인지하게되다니...! 얼빠는 답이 없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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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10.28

세상에 원래 했었다니! 시아준수 얼굴.. 정말 대단하네요.. 아무리 얼빠라지만 이 정도로 눈멀게 하다니요. 말씀 주시지 않았다면 계속 갸웃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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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10.28

아, 첫 번째 "네 그러겠습니다"의 톤이 다소 낮고 묵직했던 것. 느낌표보다는 온점에 가까웠던 문장. 그걸 깜빡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