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이젠 의미 없어. 내 몸 저주받아 아파하고 아파해도 그녀에게 갈 수 없죠.
 
마지막 절규에 이를 즈음이었다. 물기 가득하던 얼굴이 결국 눈물을 떨구었다. 절뚝이듯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디며 신에게 애원하는 볼로 흘러내린 그것은, 눈가에 닿은 머리칼과 같은 색으로 물든 핏빛이었다.
 
오른쪽 볼이었다. 정확히 오른 눈매 끝에서 괴어난 딱 한 방울이 흰 뺨의 정 중앙을 관통하여 흘렀다. 마치 붓으로 그려 넣는다면 반드시 그 자리에, 필연적으로 딱 그렇게 그려 넣었을 것만 같은 위치선정이었다.
 
혈관처럼 가느다랗게 미끄러지는 눈물줄기는 멈춤을 몰랐다. 한 방울이 눈가와 광대, 볼을 타고 턱에 이르기까지 그의 얼굴을 마치 대양을 횡단하듯 세로지어 흐르는 모습이 말문을 막히게 했다. 흘러 흘러 끝내 턱 끝에 닿았을 땐, 창백한 뺨에 수직으로 길게 새겨넣은 듯한 피눈물이라는 그림이 나의 눈앞에 놓인 후였다.
 
그림이 된 그가 노래했다.
 
차라리 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눈부신 조명이 쏟아졌던가. 그것을 인지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하얗디하얀 얼굴에 아로새겨진 핏빛 상처와 그보다도 더 아프게 울음하는 얼굴만 보였다.
 
빨간 눈물을 보는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새로 내린 눈길에 찍힌 첫 발자국처럼 선연한 자욱으로 오른뺨에 아로새겨진 그것. 하이얗게 빛나는 얼굴에 가로맺힌 핏줄기가 눈물인지, 아니면 그의 가슴에 새겨진 사백 년의 상흔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름답지. 심장이 미어지도록 아름답다는 건 이런 것일까. 당신이 사실은 그림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라 해도 선뜻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숨 쉬는 것이 버거웠다. 심장 안쪽이 저릿했다.
아주 오랜 사랑의 노래를 마친 그의 몸이 가쁘지만 소리죽인 숨을 몰아쉬는 동안 말을 잃은 얼굴에 남은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사백 년 전 과거에서, 기나긴 시간 전부를 함축해버린 오늘의 얼굴이 된 그에게 남은 것. 사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워지지 못한 채 그의 얼굴에 남아 그의 고통을 지킨 것. 오른볼에 맺혀 변함없이 빨갛게 빛나는 눈물. 사백 년의 피눈물. 그 오랜 시간 내내 마를 수조차 없었던 피의 눈물.
 
그에게 구원은 없었나요? 그의 구원이 그에게 물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죠? 그의 사랑이 다시 그에게 물었다.
 
울음을 삭이는 하얀 왼볼 너머, 오른볼의 피눈물을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가 물었다. 비극의 장난일까. 피눈물이 새겨진 얼굴면이 그녀가 바라보는 각도로는 보이지 않는 오른볼이라는 사실이 심장을 재차 조였다. 그녀가 왼볼밖에 바라볼 수 없는 현실이 얄궂었다. 그를 보면서도 그가 품어온 피눈물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운명이 정해둔 그녀의 자리가 비극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일까.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잔인했다. 그렇게밖에 바라볼 수 없는 그녀의 시야가 진실을 알고서도 그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는 그녀를 닮았다 여기면서도, 너무나 잔인했다.
 
이것이 오늘의 She였다. 아름답도록 처창한 비극. 이보다 아름다운 피눈물이 어느 천 년에나 다시 있을까. 있다한들 그 이상은 인간의 몫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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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2.07

앳 라스트에 마음을 흔들렸지만, 다시 태어나도 나에게는 she일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