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장
별무리를 헤아리며 웃는 얼굴은 매일 매일 쓸 거야. 아름다우니까. 아름다운 이상으로 사랑스러우니까.
 
2. 찬란한 아름다움
월요일의 시아준수는 대체 무슨 마법일까. 월요일마다 너무나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등장과 함께여서만은 아닐 거야. 새삼 놀랄 정도로 월요일마다 잘생김의 신기원을 보여준다. 찬란한 아름다움 내내 그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놀라고, 또 놀라고..
얼굴이 너무 예쁜데 표정이 또 너무 반짝반짝해. 생기 머금어 촉촉한 라일락의 순수가 영롱하기 그지없어. 그 아름다운 눈과 사랑스러이 다물린 입술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 아름다운 청년이 자기의 말에 거듭 경탄하며 귀를 기울이는데, 내가 헨리 워튼이라도 신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찬란한 아름다움 마지막 절정부ㅡ기이한 황홀한 고통ㅡ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헨리 워튼의 목소리에 감응하여 이지러지는 얼굴을 보면서는, '도리안'에게서 저런 얼굴을 이끌어낸 사람은 헨리 워튼이 처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도리안에게도 헨리 워튼에게도 짜릿한 경험이었을 것 같았다. 삼라만상의 이치, 쾌락의 섭리를 목격하고 경탄하는 얼굴. 그런 얼굴을 이끌어내는 희열이란 거, 어쩐지 알 것만 같아졌어. 마무리에 그의 턱을 쓰다듬는 순간이 되면 홀린 것은 도리안뿐만 아니라 헨리 워튼도 마찬가지이리란 생각 역시 들었다.
 
3. 세상이 바뀐 시간
브랜든 부인. ㅋㅋ 오늘은 쿠션을 든 무법자였다. 헨리 워튼의 꿈을 응원한다며 마구 휘두르는 통에 사람들이 모두 피할 정도였어. 점점 날아다니시는데, 어디까지 신바람을 부릴지 자못 기대된다.
 
4. 당신은 누구일까
청혼할 생각이에요ㅡ에서 오늘처럼 두근거림이 시각적으로 만발한 적이 있었나. 두 눈동자가 살짝 헨리 워튼을 곁눈질하고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콩콩 다가섰다. 그 첫걸음에는 목을 축이듯 윗입술을 쓰는 혀도 보았지.
그렇지만 영혼 없는 반응ㅡ축하해ㅡ에 한껏 시무룩해진 눈꼬리. 아, 여기 정말 이렇게 사랑스러워서 어떡해?
 
시빌 베인과의 만남 후, 계단에서 무대로 돌아오며 '날아오는' 그를 중앙에서 만나는 건 정말이지 가슴 벅찬 일이다. 양 날개 함뿍 사랑을 팔랑이며 날아오는 모습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솔로 파트가 되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 만개하는 노래 역시 나날이 사랑스럽다. 사랑이 준 격랑에 온통 젖은 얼굴이 되어서는, 혼자서 오케스트라가 되는 목소리가 화려해졌다가 사랑스러워졌다가 잦아들었다가 또 만개하는 변화무쌍함을 보여준다.
 
참, 늘 계단에서의 뒷걸음질이 신통방통하다 생각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계단'을 향해 내리꽂히는 시선을 목격했다. 평소와 달리 걸음이 시빌 베인의 드레스 자락과 살짝 엉킨 탓에 발 디딜 곳을 찾기 위한 순간적인 시선이었지만.
 
애드립은 조금 더 다듬어져서: 아, 이게 그 배질이 말한 나쁜 영향이구나?
헨리 워튼은 오늘도 아무 대꾸 하지 못했다.
 
5. 최악의 줄리엣
예쁘죠? 예쁘죠? 재차 묻는 귀여운 입술. 조는 앨런 탓에 뾰로통해진 귀여운 입술. 시빌 베인에게로 되돌아와서는 금세 설렘 가득한 미소를 자신도 모르게 머금는 예쁜 입술. 발연기에 사르르 굳어버리고 마는 말잃은 예쁜 입술. 초조해져 혀로 쓸고, 변명을 꺼내는 바쁜 입술.
그리고 끝내 팽, 뒤돌아서서 의자에 파묻힌 가련한 등. (근데 귀여워. 슬프고 충격적인데 귀엽다 하여 미안해요.)
 
오늘 귀에 꽂힌 발음은 사랑 때문에 연기를 못-했-다-고? 어쩐지 고통스러워 보이는 비통한 목소리가 그가 퇴장한 후에도 귓가에 감돌았다.
 
6.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헨리, 를 부르는 촉촉한 음성.
더불어 '그렇지만 그녀는 다시 살아날 수가 없어요!' 의 절규 같은 흐느낌은 오늘 무척 구심점이 있는 소리였다. 후회와 고통. 온갖 감정이 범벅되어 애처롭기도.
 
7. Against Nature
오늘의 눈은 잔뜩 확장된 동공.
그리고 마지막의 beautiful world 직전의 희미하게 미끄러져 스며든 입꼬리의 곡선.
(+) 찰나의 음향사고.
 
8. 넌 누구
라일락 향기의 그는 언제나 아름답다. 사로잡힌 눈동자로 추어올린 고개까지 너무나 그림이야.
 
다급한 구두 굽이 지상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데, 마이얼링과의 대비를 생각하면 애틋해진다. 공기처럼 발자국 소리도 없었던 죽음과는 달리 발소리를 허락하는 도리안인 그는 너무나도 인간적이라서.
그리고 오늘 참 그림같이 넘어졌다고 생각했어. 의도에 따라 칼같이 정제된 동작이 아름다운 건 물론이고, 이렇게 순간적으로 그날의 연기에 따라 몸이 반응하여 빚어지는 움직임까지 전부 그림이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
 
타이 고쳐매기는 아무래도 고정 디테일이 될 듯하다. 오늘은 난간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며 곧장ㅡ즉 얼굴이 보이는 정면의 각도에서ㅡ고쳐매어서 그 순간의 눈이 보였어. 살짝 치켜올린 고개, 내리깐 눈, 평온을 가장한 묘한 숨결. 아름다운 위화감이었다.
 
9. 무엇이 기다릴까
깔깔 웃어대다가 흘린 그 미묘한 그을린 듯한 소리는 뭐였지? 목구멍에서 잠겨 나는 듯한 미묘한 웃음이었는데. 세상에. 너를 보낸다 reprise에서 들었던 기묘한 신음성과 비슷한 충격을 선사했다. 또 들을 수 있었으면.
 
그리고 오랜만에 본, 연기를 뿜어낸 후 입맞춤을 보내는 입술은 여전히 얄궂게 아름다웠다.
 
가만있자, 가만있자아. 다급하게 배회하는 목소리가 아아! 하는 탄성과 함께 튀어 오르는 순간. 모종의 여유가 깃든 눈동자가 반짝 빛을 냈다. 아마 그때 결심한 것이겠지. 직면한 위기를 모면할 초강수의 선택을.
 
나를 사랑했던↗ 당신의 마음을 들-킬-까-봐↗?
'던'의 동그랗게 끌어올리는 발음에 이어 '봐'에서도 마찬가지로. 살포시 말려 올라가 하이톤으로 맺은 음성은 확연하게 배질을 떠보고 있었다. 여기 이 대사, 어디까지 변화할지 기대돼.
 
당신이 만든 '나'는 강할수록 좋다. 그만큼 배질의 원죄의식을 자극하고 옭아매는 소리가 되니까. 오늘은 촉촉하게 감싸는 음성에서 출발하여 그물망처럼 잔뜩 뒤덮는 소리가 되었지. 나ㅡ에 느껴지는 그 강하게 탓하는 소리가 좋았다.
 
찬란한 아름다움은 격일제일까? 13일의 정적인 격정이었다. 포복하는 음성이 차츰차츰 배질에게로 포위망을 좁혀가는 시청각적 감각을 경험했다.
 
그리고 요즘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 입꼬리를 끌어올린 입술로는 여유를 가장하면서, 번득이는 눈은 배질의 반응을 샅샅이 탐색한다. 목소리가, 몸짓이 배질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상 배질의 일거일동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고자 혼신을 다하는 쪽은 그다. 웃음을 흘리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눈에서 엿보이는 비통하고도 검은 유혹의 그림자가 마음을 까슬까슬하게 한다. 그렇게까지 필사적일 거라면, 차라리 털어놓고 위로받고 용서받는 용기에 필사적이 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유혹의 대사는 토요일에도 그랬듯, 이제는 배질의 두 눈을 찾아 똑바로 응시하며 한다. 뒷머리에서 뒷목, 귀에서 옆얼굴을 천천히 훑어내린 빛나는 눈이 마침내 배질의 두 눈을 찾으면, '그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배질.'의 완성.
마지막 쐐기를 박아넣은 얼굴에 미묘한 정복감이 서리더니, 핑그르르 오늘은 유난히 탄력적으로 몸을 틀어 돌아섰다. 문득 토요일 밤공에서 가운을 투둑 뜯어내던 옆모습이 기억났다.
 
10. 또 다른 나
이-십-년-전? 오늘의 뜸은 살짝 길었다. 좌우로 번득이던 눈동자가 정면으로 고요해지며 문득 웃었다. 이 위기를 모면할 방도가 훤히 보였다는 듯이. 결백을 가장하며 짓는 웃음은 오늘은 뻔뻔했다.
 
또 다른 나ㅡ마지막 몰아치는 박자의 쉼표가 유난히 좋았다. 박자를 쪼개어 가사를 박아넣는 강약이 강하고 정확할수록 듣는 희열이 증폭되는데 오늘 딱 그랬다.
걸어 잠그는 끝음은 언제나와 같이 아름다웠지. 음을 맺는 격한 숨소리까지도 아름다운 사람은 정말 또 없을 거야.
 
11. Life of Joy
오늘은 자켓을 입은 채로 등장했당.
 
비틀비틀, 거의 난간에 몸을 의지하다시피 하여 내려오는 걸음걸이가 항상 눈에 밟힌다. 또 다른 나 직후의 넘버이므로 더욱 변해버린 초상화의 얼굴을 보았겠지. 그 고통에 짓눌린 걸음이 질질 끌리는 것이 마음 아프다. 그러면서도 정작 '행복해요' 이를 악문 발음은 더욱 마음 아리고.
그가 어떤 고통과 충격에 직면해 있는지 알 바 없는 배질이 그를 혹독하게 몰아가는 것이 하필 이 타이밍인 것도 서글프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투성이인데 그 와중에 진실을 마주하라 하면 누구인들 그 용기를 낼 수 있을까. Life of Joy의 그가 끝없이 어긋나기만 하는 건 타이밍을 잘못 짚은 배질의 탓이다.
 
왜 그렇게 그 초상화에 집착하시는 거죠? 오늘은 검지와 중지의 손등을 배질의 어깨에 톡, 얹으며 물었다. 좀 그만하라는 듯이.
 
인간을 매혹하는 건 불확실성이에요. 깔깔깔 튀어 오르는 웃음소리는 점점 실성한 사람의 것을 닮아간다. 무엇을 감추기 위해 저렇게 웃나, 혹은 정말로 웃고 싶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게끔.
이때 배질을 등진 채 어둠 속의 헨리 워튼과 마주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갈구? 의지? 원망?
 
기도하고 사랑하라 짜릿하게. 한숨과 회개조차 즐겨라. 삶의 두 얼굴ㅡ이 배반적인 가사가 선사하는 가슴 쓰림에는 언제쯤 면역이 될까. 사랑과 환희에 뒤이어 오는 한숨과 회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혼의 두 얼굴. 쾌락만을 위한 쾌락의 삶은 궁극적으로 불가하였음을 말해주는 이 가사가 늘 쓰라리다.
 
배질에 의하여 내동댕이쳐진 몸이 곧장 튕겨져 오르며 씩씩대는 얼굴은 다소 새로웠다. 이렇게까지 이를 악물고 대드는 얼굴인 적이 있었나 싶게.
 
12. 악의 꽃
토요일 밤공에서 잘못 본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피에로에게 잠시 시선을 툭 주었을 뿐이지만, 오늘도 분명히 그 존재를 의식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주의가 샬롯 베인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에게로 옮겨간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신기해서 오늘도 보면서 어라? 했어.
 
13. 너를 보낸다 reprise
난 완벽한 인간의 되고 싶었어ㅡ의 멀리 던진 시선에 묻고 싶다. 저 멀리 어디를 보고 있는지. 그 시선의 끝에 그가 그리던 인간상이 있는지. 멀고도 먼 소실점이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보여주는 것 같기에 쓰렸다.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 는 오늘도 더없이 비극적인 애원과 원망조.
뛰쳐나가며, 오늘은 심지어 의자에 부딪혀 크게 휘청거렸다. 조각조각나기 시작한 그의 마음처럼 휘청이는 찰나의 그 육신이 아팠다.
 
배질은 오늘 웃지 않았다. 계속 들을 수 있었으면 했는데. 그 웃음이 그를 끌어내리는 나락을 또 볼 수 있으면 했는데.
현실을 직시한 후 손에 쥔 칼을 내려다보면서는 오늘 꽤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멎은 것처럼 그대로 굳은 육신이 어느 순간 무장해제되듯 무너져내렸다.
 
14. 앨런의 죽음
한쪽 어깨가 드러난 흐트러진 옷차림은 그대로 유지되려나 보다. 음성은 여전히 나긋나긋하지만 여미지 못한 옷차림에서 그의 정신적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초반의 공연과는 달리 좀처럼 어느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못하고 자꾸만 방향을 달리하는 시선에서도 또한.
심지어 비밀은 꼭 지켜주세요ㅡ당부하며 퇴장할 때 무엇이 괴로운지 한 손으로 얼핏 얼굴을 감싸기도 했어.
이렇게 요즈음의 그는 배질의 죽음이 드리운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인간적이야. 그런 만큼 이어지는 사라진 아름다움에서 가까스로 유지해내고 있는 거짓된 평화가 살얼음처럼 다가온다.
 
15. 사라진 아름다움
가늘게 접어떴다가, 확장되었다가, 명멸하는 눈동자와 함께 이죽이는 웃음 스민 얼굴이 물었다.
배질이 살해당했을 거라는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생각'의 음성은 그 어느 때보다 1막의 '헨리가 가지 못하게 해주세요'의 살그러운 순수를 닮았다. 아무래도 이 '생각'의 음절이 계속하여 나를 꼼짝 못하게 할 듯해.
평온을 가장한 웃음. 순수로 꾸미는 음성. 그것이 가장된 것이라는 걸, 살얼음에 불과하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이 순간의 미묘한 위화감이 너무도 좋다. 정신적으로 얼마나 분열된 상태인지 느껴지게 하는 그의 섬세함이 좋아.
 
햄릿일 거예요ㅡ하면서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떠올리기조차 괴롭다는 듯이.
 
회한의 멜로디에 이르러는 끝을 직감한 오른눈에서 지친 눈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더디게 흐르는 눈물줄기가 꼭 끝없는 나락으로 멈춤 없이 떨구어지는 그의 심장을 닮았다 생각했다.
 
16. 도리안 그레이
한때는 예'뻤겠'지의 가성으로 수렴하는 도리안 그레이였다. 이 소절을 가성으로 떠올릴 때면 오늘의 도리안 그레이가 생각나게 될 것 같은, 그런. 희미하고 아스라한 음성들. 촉촉하고 회한 어렸으며 지친, 실낱같이 여린.
 
초상화를 매만지는 손끝에 어린 건 나의 눈물이었을까. 기억나지 않는 순수에 울음하며 스러지는 얼굴은 그의 눈물이었겠지.
 
마지막, 무너진 상태에서 일순간 부릅떴다 싶을 정도로 확장된 동공은 처음 보는 것. 마지막 생에의 의지처럼 한순간에 그치고만 그 또렷한 눈동자가, 금세 가늘게 접히며 흐려진 눈동자보다도 더 마음이 아팠다.
 
바들바들 떨다가 끝내 스러지고 만 육신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울음도 고통도 없이 그저 멎어버린 얼굴과 감긴 눈은 어둠이 내릴 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