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번거리는 시선이 돌아왔다. 혼자 남겨진 뒷모습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텅 빈 공간을 훑었다. 상하좌우를 쓰는 그 눈길이 끝내 똑 떨구어졌을 즈음에는 흐린 동공이 물기로 가득했다. 그러니 오늘의 도리안 그레이는 처음부터 울음 범벅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ㅡ에서 범람을 시작한 10월 8일의 고조는, 복받치는 감정을 좇아 조금 이르게 도약했다. '도대누군가'의 파열음을 딛고, '예뻤겠지'의 절규로. 날카롭게 긁는 소리의 '도대 누군가'가 쏟아내는 서러움이 귀를 타격한 데 이어 '예뻤겠지'의 한 맺힌 절규가 심장을 때렸다. 바락바락 기를 쓰고 우는 얼굴이 서럽디서럽게 '모두가 사랑했던 도리안'이라 노래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따가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스윽-
또다시 귀를 쫑긋 일으켜 세우는 낯선 소리를 들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칼날이 지상으로 처박히는 소리도, 생명의 끈이 토독하고 끊어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건 칼날이 목을 그어내는 바로 그 순간의 소리였다. 울음하느라 핏줄이 잔뜩 도드라진 목을 스으윽 긁어낸 죽음의 소리였다. 그의 생명을 짓이기며 하얀 목에 투명한 상흔으로 가로 그어지는 죽음 그 자체였다.
 
죽음에 덮쳐진 육신이 휘청이다 무너졌다. 털썩. 상체가 먼저 끌어내려 지고, 허공을 헤매던 두 팔이 그다음, 젖은 얼굴이 뒤이어 고꾸라졌다. 저문 꽃잎처럼 말린 등이 떨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소년이
웃는 눈동자가 투명했다. 동그랗게 모여 울음의 웃음을 빚는 입술이 예뻤다.
나를
저 멀리로 뻗어진 손끝으로, 잠시 그의 시선이 닿았다. 만질 수도 움켜쥘 수도 없는 텅 빈 손을 확인한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옅어져 갔다.
모든 표정이 희미해진 얼굴에서 두 눈이 글썽였다.
깜빡임도 잊은 채 고요한 눈이 아는 것 같았다. 제 눈앞의 것이, '허황의' 낙원임을.
그러니 오늘도, 어미는 끝끝내 울음이 되었다.
 
*
 
 
1. 배질의 화실
생기 넘치는 얼굴이었다. 올망졸망한 눈망울이 선의를 머금고 빛을 냈다. 반짝반짝. 대사와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도리안이라 불러주세요. 반 톤 높은 음성이 맑고 밝았다. '자 다시 앉아볼까' 배질의 주문에 의자에 앉아 자세 잡는 얼굴도 잔뜩 생글생글. 무대 위의 모습만 보면, 기분이 좋아 보이는 산뜻한 도리안이었다. 그 모습이 젖은 내 눈에 일파만파의 파동을 불러왔다.
 
2.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요즘 계속 아름다운,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오늘의 소리는 '찬란한 햇살 뒤 검은 어둠'의 반전된 한숨결, 그리고 '도리안 네가 나라면'의 그윽하였던 결들에.
피ㅡ할거야의 파동 또한 계속 진화한다. '피'의 첫음절부터 매우 거셌다. 피해내겠다는,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모두 담아낼 요량인 양 결연한 음성이 좋았다.
 
3. 당신은 누구일까
유명하진 않지만,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그의 설명이 더욱 친절해졌다. 대사가 바뀐 걸까? 구태여 '연기'적 재능을 짚어내는 발음이 야무지고 귀여워 또 듣고도 싶은데.
그리고 '죽어도 좋아'에서 깜짝 작곡이 있었다♡
 
4.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찬란한 아름다움을 다시 만난 얼굴에서 흐르는 경이는, 오늘은 거의 경악에 가까웠다. 다물릴 줄 모르는 촉촉한 입술과 잔뜩 커진 동공이 의구심에 가까운 빛을 내며 끌려 들어갔다. 그 살짝만 벌려진 입술에서 흐르는 밭은 숨이 좋았다.
 
5. Against Nature
오늘의 크러쉬는 셋. 포복하여서의 비릿한 웃음과 고개 돌릴 적의 웃음. 그리고 꿈틀대는 푸른 핏줄에서의 웃음. 이 웃음의 향연!
 
그런데 오늘의 스모그, 난 정말 화났다. 초반의 그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타락한 순결' 즈음부터는 다행히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전혀. 실루엣조차 볼 수 없었다. 이건.. 아니잖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치고 나오는 죄-악-의 황홀한 절!정! 이 아니었으면 속상한 마음을 가누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역시 모든 것을 내다보는 그는 소리로 반전을 이루어냈다. 스모그가 불러일으킨 대참사를 단 한 소절로 정상화시킨 오늘의 죄-악-에 모든 찬사를.
 
6. 넌 누구
오늘도 액자의 런웨이 끝에서 발끝으로 도약하여 돌진했다. 날아오르는 발끝이 멋있어 정말. 게다가 오늘의 넘어짐까지 너무도 그림 같아서 심쿵.
문닫힘의 소리도 삼일 연속 깔끔하게 아름다웠다.
 
7. 무엇이 기다릴까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죠~ 두 팔을 나른히 벌린 채로 좌우로 갸우뚱하던 고개가 싱그럽게 웃었다. 배질을 향하여 연기를 내뿜으며 섞어낸 '후우' 소리에도 옅은 웃음기가 있었다. 정점은 정면을 보고 다시 연기를 뿜어낸 후, 흘러나간 연기를 음미하듯 아랫입술을 사르르 핥는 혀에 있었다. 세상에.
 
날 사랑했던ㅡ은 다시 정면의 얼굴을 허락했다. 배질이 아닌 약간 위의 정면을 올려다보는 고개가 웃음을 머금고 반짝반짝.
후회 없으라ㅡ에서는 배질의 왼 볼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지나칠 정도로 농밀했다. 한 손이 아예 배질의 뺨에 머물며, 볼 안에서 원을 그려냈으니까.
끝없는 욕망ㅡ에서는 여유를 그리던 눈이 살풋 웃음을 보였다. 뜻대로 되어가고 있음에 흡족한 웃음이었다. 찡그려진 찰나의 미간에 스며든 회심의 미소가 얄궂게도 아름다웠다.
 
대미는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배질ㅡ배질의 뒷머리를 감싼 손이 평소보다 조금 더 기세 있었고, 그 바람에 배질의 고개가 살짝 좌로 꺾이며 흔들렸다. 헉. 그의 농밀하였던 손끝과 은밀하게 옆으로 무너지고 마는 배질의 고개의 합이, 정말이지.. 하략..
 
8. Life of Joy
삶의 두 얼굴 직후 팽개쳐진 그가 무섭도록 화를 내는 건 배질의 태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헨리 워튼과의 조우를 방해받았기 때문일까. 오늘 유독 그런 느낌을 받았다. 타락의 밀회로부터 튕겨져 나온 몸이 바득바득 경련하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동굴 같았던 음향 탓이었을까. 오랜만에 엉망진창 어그러진 소리가 빚어졌다. 제각각의 소리가 충돌할 듯하다가도 뭉개졌고, 뭉개졌다가도 날카롭게 일어나 대립했다. 갈피 없는 그들의 주장만큼이나 멋대로의 조화가 막무가내였다. 마구잡이로 뒤섞이는 소리가 프리뷰날 느꼈던 대혼돈에 가까운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기뻤다. 이 소리가 정말 다시 듣고 싶었거든. 대혼돈의 시대. 격침의 나날. 오늘의 life of joy에는 이같은 부제를 달아주고 싶다.
 
9. 너를 보낸다 reprise
베/푼/거/예/요가 나날이 강해진다. 강해질수록 서글퍼서 어쩌지. 오늘은 깔깔깔 정신없는 웃음을 연거푸 흘려보낸 후, 쌕쌕이는 남은 호흡에서까지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게나 필사적이었다.
배질, 제발 내 선행을 폄하하지 말아줘요. 나지막한 정색에서 오늘은 어쩐지 상처받은 그가 느껴졌다. 당신은 그러지 말아줘요. 마른 음성이 소리 없이 그렇게 말했다. 이런 그는 처음.
 
배질을 찌른 직후. 엉겨 붙은 두 육신이 한 몸처럼 흔들렸다. 평소보다 훨씬, 길게, 크게. 바람 앞의 풀잎처럼 갈피 잡지 못하는 두 육신이 심장을 타격했다. 눈앞에 비추어지는 둘 중 하나는 죽어가는 자의 육신이고, 다른 하나는 파탄 난 자의 정신이었으므로. 그 잔상이 어둠이 내린 후에도 눈에서 떠나지 않고 아른거렸다.
 
그나저나 배질의 여전히 아름다워! 이 부분의 절규. 어제부터 유연하게 변화하고 있다. 대사도, 감정도 조금씩 변주가 가미되는 것일까.
 
10. 사라진 아름다움
햄릿의 대사가 정제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은 어제의 정제된 호흡에 조금의 울음이 깃들었다. 울먹울먹하여 가녀린 목소리가 쉼표를 분명하게 박아가며 호소했다. 역시 좋다. 실낱처럼 가늘고 여린 호소 끝의 폭주ㅡ심장이 없는 얼굴ㅡ까지 전부 좋아. 
 
헨리, 만약에 내가 배질을 죽였다면요? 에서도 현격한 변화. 이리저리 안절부절, 평정을 잃은 고개가 좌우를 쓸다 발음했다. '헨리..'
곧이어 가까스로 진정을 되찾은 목소리가 떨림을 짓누르고 다음 어절을 꺼냈다. '만약에..'
소리 죽인 호흡으로 고요히 뱉어낸 남은 문장ㅡ내가 배질을 죽였다면요?ㅡ끝에서는 있는 대로 확장된 동공을 보았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에 초조한 결연함이 가득했다.
너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결코 살인을 하지 않아.
난, 실패했어.
존재를 부정당한 그가, 울기 시작했다.
 
사라진 아름다움은 여렸던 햄릿의 반전이었다. 어느 때보다 강한 서러움이 빗발쳤다. 깊은 고통의 낮은 할큄음.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그을린 저음. 멱살을 움켜쥔 채 바들바들 떨던 팔까지.
 
마지막은 어제, 그리고 그제와 같았다. 버려짐을 직감한 몸이 퍼뜩 고개를 들더니,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울음을 훌쩍 삼키고 손등으로도 서둘러 훔쳐냈다.
헨리.. 헨리, 헨리!
떠나는 이를 통, 통, 쫓아가 보던 뒷모습이 덩그러니 멈추어 선 후, 끝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11. 레퀴엠
시빌 베인과 다시 만난 그의 턱 끝에 매달렸다가, 우수수 쏟아져 내리던 보석방울에 오늘의 나의 눈물을.
 
 
 
(+)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울먹울먹) 노코멘트! 이렇게 새침하면 어쩌지.
넌 어디로에서 오늘 너무 귀여웠던 그. 모서리로 몰린 무게중심을 양쪽 골반으로 분산시키며 의자 중앙으로 살그머니 옮겨 안는 그를 보았다. 귀여워. 완전 큐티섹시양.
배질. 도리안 그레이와 헨리 워튼.
세상이 바뀐 시간. 브랜든 부인은 오늘도 앨런에게 약을 먹여주었다.
 
♡배질이 살해당했을 거라는 생각, 해본 적 있어요?♡에서 눈맞춤이 있었다.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