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감회를 특히 많이 담은 이야기입니다만, 이 또한 오빠가 준 심상이자 사랑의 여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적고 싶었습니다. 2026년의 2월을 오래오래 사랑으로 반추하고 싶어서요. 감안하여 읽어주세요.
이 글은 두드려 보겠다 하였던 약속의 해, 2018년의 카나데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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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아홉 시의 공지였다.
⎡김준수 엠카운트다운 출연 안내⎦
반쯤 누워 비틀쥬스 프로그램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자세를 단숨에 바로 했다.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면서도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잡은 손은 흔들지 않고자 했다. 화면 안에 떠 있는 글자가 그대로 흩어져 버릴까 조심스러웠다.
한 손으로 들었던 것을 두 손으로 옮겨 쥐었다. 손을 모아 화면을 안정적으로 받치고 나서 천천히 다시 보았다. 낯설고 이상한 문장들. 문장이 띄엄띄엄 읽혔다. 와중에 몇몇 글자가 도드라지며 눈을 사로잡았다. 엠넷, 사전녹화, 상암, 방청, 공개방송 … 글씨는 읽히는데 이해가 뒤늦게 따라왔다. 눈으로 글자를 더듬고 나서도 한참 만에야 뇌에서 반응이 왔다. 신경 세포에 시차가 생긴 듯했다. 이상하고 낯선 기분. 공지가 잘 읽히지 않았고, 생각도 잘 이어지지 않으니 일단 가장 중요한 것, 월요일 밤 10시만 기억해두자 싶었다. 그렇게 첫 번째 불면의 밤을 지냈다.
날이 밝은 후에 다시 보았다. 간밤의 어둠 사이로 삼켜지면 어쩌나 한 우려가 무색했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고 제 자리에 있었다. 어제의 기억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처음 봤던 그대로 차분하고 빽빽한 문장들이 지난밤과는 다르게 아침에는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
꿈이 아니구나.
사라지지 않았다는 확신이 비로소 현실감을 허락했다. 현실감이 동반한 눈물은 지연되었던 딱 그만큼을 앞다투어 밀려왔다. 번져가는 사고회로 속에서 또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언질을 주던 그가 떠올랐다. 오빠가 말한 ‘좋은 서프라이즈’가 이것이었구나. 덧붙이는 말 전혀 없이 단지 좋은 서프라이즈라고만 말하며 표연히 안녕하던 사람. 오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 오빠라면 분명 그려보았을 테지. 그렇다면 오빠 자신의 기쁨은 어땠을까. 기쁨의 형체나 크기를 쉬이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의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시동을 걸기만 해도 먹먹해져 버려서.
어떤 정신으로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르게 날이 저물고, 기억해 두었던 월요일 밤 10시가 되었다. 보고 또 보았기에 외워버린 안내를 따라 신청을 준비했다. 엠카운트다운 사전녹화 참여 신청. 기다린 시간에 비해 절차는 간단했다. 클릭 몇 번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30초나 걸렸을까. 18년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녹화가 목요일 오후 3시였으니, 그 밤으로부터의 모든 순간이 녹화를 향해가는 시간이었다.
녹화를 앞두고 만난 화요일의 비틀쥬스에서는 눈물맛이 났다. 웃으라고 만든 극의 구간구간에서 만발한 웃음은 침잠하여 눈물이 되었다. 더는 투명하지 않다는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공연장 안에서 감정을 다스려낸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틀쥬스’와 아무 상관 없는 대사와 가사에서도 비틀쥰스 곧 시아준수가 비추어졌다.
눈 딱 감으면 뵈는 게 없어서 괜찮다는 오tho의 말에서는 눈 딱 감고 두드리고 또 두드려봤을 그가 떠올랐고, 레벨 업을 외치는 바바라와 아담을 보면서도 그를 생각하게 되었다. 오빠는, 우리의 김준수는 몇 번의 레벨 업을 거쳤을까. 긴긴 시간을 지나온 오늘의 김준수는 대체 몇.0 일까. 그가 끌어모아야 했을 용기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숫자로 가늠할 수는 있을까.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의 관념에 불과한 숫자로 가늠이 되는 영역이기는 할까.
…감히, 그럴 수는 없겠지.
목요일 당일에는 기분을 종잡을 수 없었다. 우주 꼭대기에 있는 것 같다가도 한 순간에 저 밑바닥을 유영했다. 하염없이 기쁘다가도 울컥 치밀어오르는 게 있었다. 역시 이상했다. 기쁜 날인데, 걸음이 왜 이렇게 녹진한지. 축하만 건네도 모자라건만, 심장에서 자꾸만 울컥하며 들끓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지. 스스로가 낯설었다.
낯설고 이상한 마음의 실체는 녹화를 맞이하고서야 규명되었다. 신문지 너머로 함성 속에 파묻힌 그를 보는 순간, 무대 곳곳에 도사린 카메라를 가차 없이 찾아내어 시선을 명중시키는 그를 목도하는 순간에.
그가 카메라의 렌즈를 찾아내어 적중시킬 때마다 내 안에서 산산이 부수어져 가는 것이 있었다. 평소에는 꾹꾹 눌러 담아 기쁨과 사랑 사이에서 숨도 못 쉬도록 억눌러놓았던 응어리. 우리가 서로를 꼭 붙들고 행복해 왔던 것과는 별개로 이 사람의 행동에 원치 않는 제약이 가해지고, 운신의 폭을 강제하며, 바깥에서는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무수한 불발을 야기하고 좌절을 안겨주었던 그 모든 것들을 향한 분노. 낯설고 이상한 게 아니라 실은 너무도 오래 눌러 담아 이따금은 행복의 숨결에도 섞여 나오곤 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시대가 변하여 방송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고, 김준수의 무대를 한갓 네모난 상자 따위로 담아낼 수 없음은 자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이란 매체는, 우리 사이에서는 지난 시간ㅡ아니, 현재까지도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불공정과 억압의 표상 그 자체이기에 우리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든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연연할 것은 없으나, 행복을 위해 매듭지을 필요는 있는 것…
그 방송을 위한 무대에서 그가 쩌렁쩌렁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눈물은 노,
웃기면 웃어,
마지막 남은 칼자루라 칭하였던 자신의 음악으로. 스스로 선택한 무대를 통해. 활로로 선택한 길의 정상에 보란 듯이 우뚝 서서. 딛고 나갈 길이 없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내면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면서.
김준수가 선택하고, 가꾸어, 지켜낸 무대 위에서 그가 노래했다.
카르페디엠 지금 해라,
진정한 해방인데,
보여줄 테니 잘 봐…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항상 해왔던 대로의 그가 무대 위에 있었다.
아, 기가 막혔다.
이 사람의 인생은 뭐가 이렇지.
김준수, 비틀쥰스, 김준수.. 마음이 정처없이 그를 좇았다. 언제나 자신의 청중을 향하여 올곧던 시선이 카메라를 찾아가는 순간마다 마음이 저릿했다. 그러면서도 발밑의 토양은 팬들의 응원 사이에 굳건하게 뿌리내려둔 그가 눈물 나도록 사랑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있었다’ 하였던가.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보아왔다.
난 그냥 나요! 인간의 가치는 지위로 평가할 수 없다던 어린 날의 그를, 결국 승리는 강자의 것이 아닌 다시 일어나는 자의 것으로 만들어 보였던 그를, 또한 오늘의 아픔도 내일이면 과거에 불과하도록 늘 새로운 행복으로 우리를 지켜주었던 그를, 변하지 않는 그와 그의 무대를 십수 년 동안이나 보아왔다.
그 시간을 함께 겪어왔기에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이 무대의 특별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이 무대가 갖는 각별함은 18년 만의 음방이라는 의미에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스무 해 가까이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무대 위를 지켜온 김준수 본인에게 있다는 걸.
녹화가 끝난 자리를 마음이 오도카니 맴돌았다. 발치에는 다 부수어진 과거의 응어리가 있었다. 사랑하기에 한이 되어버렸던 것들. 사랑한다는 이유로 키웠던 분노와 눈물들. 우리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빛의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 이제는 텅 비어, 새로운 사랑으로 2배 3배 채우고 덧입히면 될 흔적에 불과해졌다. 덧칠할수록 하루하루 투명해질 것이 분명한 자국들이었다.
걸음이 가벼웠다. 한결 가뜬해진 마음은 이미 내달리고 있었다. 등 뒤에 툭툭 털어두었으니, 이제는 마곡나루를 향하여 갈 시간이었다. 경탄스러울 만큼 열정적이며 헌신적일 정도로 관객의 웃음을 사랑하는 공연자, 김준수의 다음 무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면 다가올 것이 분명한 행복처럼. 늘 항상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