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알라딘과 마찬가지로 가을날에 마침내 라이브로 태어난 곡, 요즘과 함께합니다.
뮤지컬 알라딘. 가을날 웃음을 타고 와 겨울을 나고 봄과 여름을 피워냈으며 다시 돌아온 가을에 마침내 이별을 맞이하는 우리 뮤지컬 인생의 첫 해피엔딩 극. 긴 시간의 추억이 깊고도 큰 만큼 이별에도 오래도록 모자람 없이 공들이고 싶었다. 반짝거릴 만큼 즐겁고 목 놓아 웃을 만큼 행복했던 기억 모두 소중하게 그러모아 페어막과 세막을 눈물로 먼저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눈물로 흘려보내야 할 것을 전부 미리 보내두면, 막공에서는 우리 늘 그래왔던 것처럼 웃으며 안녕할 수 있을 테니까.
정원영 지니와의 콤비도, 민경아 자스민과의 수평선도, 임별 자파와의 주거니 받거니도 하나하나 떠나보낼 때마다 이로써 안녕, 안녕, 그렇게나 마음으로 인사를 전하며 대비했건만. 그러니까 준비는 분명 단단했는데.
왜 막공의 시작에서부터 눈물이 나고야 말았을까. 양주인 감독님의 익숙한 뒷모습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범람하는 것의 기세가 심상하지 않았다. 아라비안 나이트ㅡ나의 주인공은 아직 얼굴을 비추기도 전인데, 지니가 푸른 빛의 두 팔을 가득히 벌려 아그라바의 광경을 처음과같이 마지막으로 눈앞에다 펼쳐내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카랑카랑하게 치솟는 것들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뭐지, 뭘까. 내 고향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익숙하면서도 아득한 기분이 드는 걸까. 왜 저곳에서 나고 자라 이제는 독립을 앞둔 사람처럼 무거운 발걸음 억지로 떼어야 하는 기분이 드는 거지. 뭉텅뭉텅 흘러넘치는 것은 전부 눈물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낱낱은 저마다 달랐다. 우리가 함께 웃고, 울고, 떠들썩하게 환호하고, 서로의 존재가 위안이자 기쁨이 되었던 지난 모든 순간의 조각들. 하나씩 하나씩 너무나 애틋하게 반짝이는 마음 알갱이들. 사계절 동안의 갖가지 희비애락. 자그마치 일 년 가까이 쌓이고 쌓인 그 모든 것들이 페어막과 세막을 눈물 속에 보내고도 새어 나오기를 멈추지 않았다.
신기하지. 사랑해서 눈물이 된다는 게.
소매치기, 밑장 빼기, 이집트 다단계 피라미드까지 연마한 아그라바 최고의 기술자가 실상은 양친 다 여의고 이제야말로 똑바로 살겠다는 저 소년이라는데 어떻게 애틋하지 않고 버틸까. 자랑스러운 주머니에는 빵 한 조각 슬쩍해둔 채로 한없이 해맑은 얼굴이 어떻게 안 대견하지. 해사한 저 얼굴이 이 순간 이대로 마지막이라는데.
마지막.
안녕.
좋아하는 마음이 이별 앞에서 낸 눈물길이었다. 불가항력이었다.
무엇보다 순간순간 이게 진짜 아그라바에서의 삶인 것과 동시에 무대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마치 알라딘의 외연을 그대로 입어버린 것만 같은 나의 배우는.. 왜 이렇게까지 아그라바의 햇살이자 태양 그 자체가 되어 있는지.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 앞에서 이렇게 이별을 고하는 게 맞나? 이토록 빛 발하는 순간을 붙들고 더 머물러달라 청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나란히 웃는 이 순간에 우리가 왜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제동을 걸기 어려운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피어났다.
그렁그렁 위태로운 눈꼬리에 기어이 사달을 낸 건 시장이었다. 별이 내린 우리의 댄스가수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춤추는 시작점이 되는 밥오알카. 순하지만 새침하게 올린 입꼬리로 그가 생긋이 미소 지으며 넘버를 여는 순간, 마지막이라는 남다름이 자비 없이 휘두르는 감회 앞에 끝내 항복하고야 말았다. 세 친구와 함께 운율 타고 박자 맞추며 뮤지컬 무대 위에서 그가 진짜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본다는 건… 첫공 날의 눈물 바람을 한차례 겪었다 하여 막공에 이르러 의연해질 수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자유, 웃음, 낭만, 왁자지껄한 우정. 온갖 종류의 시끄러운 행복이 허락된 공간 속의 김준수를 만나는 기쁨에 어떻게 목메지 않을 수 있지… 항명할 도리 같은 게 있을 리가. 김준수를 사랑하며 이 곡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과연 누굴까. 웃으며 안녕도 좋지만, 흐르는 바를 막을 수 없다면 흐르게 둘 수밖에 없는 날도 있는 것이겠지...
사랑하고 좋아한 모든 장면에서 눈물을 캘 수 있었다. 공주님의 첫 나들이, 시장의 소란함 위로 수평선의 부드러운 음률이 내려앉으며 우리 아그라바 소년이 발끝으로 악보의 선율을 타기 시작할 때. 사뿐한 발끝이 좋아 얼굴을 포기하고 시선을 떨굴 만큼이나 좋아했던 여기. 얼빠가 얼굴을 포기할 만큼 좋아했던 찰나이므로 당연히 눈물밭.
목소리의 청청함. 뮤지컬 무대에서는 칠석날에 내리는 비만큼이나 귀한 청아하고 고운 결의 노래들ㅡ사막 별빛 아래의 수평선과 프옵보는 물론. 흙 속 다이아몬드의 변화무쌍한 표정 하나하나, 노래의 박자를 귀신같이 타고 삐죽대는 입술과 눈썹 또한 모조리 달고 짠 눈물밭.
나열하고 보면 더욱 선명해지는 소중한 순간들뿐. 신비의 동굴이 무너져 내릴 때의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발동동거림이나, 동굴에서 지니와 나누는 백스텝의 사뿐사뿐함까지도.
모든 장면에 좋아하는 이유를 붙일 수 있었다.
모든 순간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눈물이 되었다.
최후의 Friend Like Me를 끝마치고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야 비로소 길게 호흡하며 생각했다. 이 박수가 모두의 눈물만큼만 영원히 이어진다면, 끝은 어디에 있을까.
끝나지 않는 박수 안에 담긴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찬탄, 기쁨, 즐거움, 믿음, 응원, 고마움, 사랑. 손뼉 하나에 사랑이, 환호성 하나에 담긴 응원이 정확하게 그 수신인을 찾아가는 광경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지그시 감은 눈꺼풀 위로 열렬하게 쏟아지는 박수갈채가 아름다웠다. 갈채 안에 담긴 가지각색 마음의 발원지가 결국에는 하나의 행복이라는 것까지가 딱 김준수의 알라딘이 완성한 ‘동화’였다.
사랑과 기쁨을 오랜 시간을 들여 빚으면 이토록 강한 감회가 된다는 걸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알았더라면 한 달도 전부터 이별을 준비했을 텐데. 아니, 아예 부그라산의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이별을 준비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사계절이 깃든 추억과의 적정하게 이별하기란 대체 어떤 건지 그럼에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건 오빠에게도 숙제였던 모양이다.
동화의 끝에서 촉촉하게 젖어든 대미의 소원ㅡ지니는 이제 자유다ㅡ와 물기 어린 포옹까지는 모두가 예상한 바였으나, 연신 구레나룻을 만지작대던 그가 점차 어룽어룽해지는 얼굴로 토해놓은 끝내의 말.
“오늘의 이 헤어짐은.. 조금 슬프긴 하네요.”
이건 예상 밖의 것이었으니.
일 년이라는 시간은 남다르긴 하다며 참다 참다 결국 참아내지 못해 그가 울었다.
눈물 지우지 못한 얼굴로 그 마음을 슬프다 표현했다.
한 움큼의 눈물이 그의 미간과 코끝으로부터 객석으로 점점이 흩뿌려졌다. 동료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소감이 그의 눈물로 적립될 때마다 주변의 훌쩍임이 선명해졌다.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군더더기 없이 ‘조금 슬프다’는 그의 말에 사로잡혀 사고의 흐름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시원섭섭하다’가 아니라 ’슬프다.’
달랑 단어 하나가 어떻게 이런 무게를 지녔을까. 아무런 꾸밈이나 부연도 없이 슬픔 그 자체를 전하는 목소리가 내가 캔 눈물 위로 소금이 되어 내려앉았다. 눈물로 흥건한 심장 부근에 새하얀 소금의 결정들이 섞여 들었다. 마음이 뿌예지는 것 같았다.
이런 오빠를 언제 또 보았더라.
울컥, 잠시간 치솟는 감정이 아니라 눌러도 눌리지 않는 이런 눈물은..
지나간 막공들의 그가 눈앞으로 천천히 스쳐 갔다. 홀가분하게 웃는 기억 속 얼굴들과 조우했다. 토니, 아더, 엘… 슬픔이나 눈물을 비추는 대신 기쁨과 감사를 전하며 안녕하던 아이들. 내 눈물에 화답하는 그의 미소. 그래, 그편이 차라리 익숙했다.
나는 울고, 오빠는 웃고.
가지 마요 왕자님, 안녕 조심히 가.
그동안 고마웠어요, 훠이훠이 또 만나자.
그게 우리였다.
그 자신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드라큘라조차도 마지막 빨간 머리를 십 주년과 함께 봉인하며 훌훌 털어냈었는걸. 죽거나 비극으로 끝맺는 극이 많아 ‘마지막은 행복하게’를 늘 말하며, 관객의 해피엔딩을 위해 갖은 최선 마다치 않던 이가 바로 그였으니까.
그렇기에 유일하게 ‘마지막도 행복하게’일 수 있는 이 해피엔딩 극에서 눈물이 그를 앞서버린 초유의 사태가 조금은 믿기지 않았다. 얼얼한 것도 같았다. 감회가 깊겠노라 생각하였으면서도, 마음 주고 마음 받았음에 그가 이토록 눈물지으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하여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울컥하는 그가 나의 시야 안에서 깜빡거렸다. 사랑이 눈물짓는 모습에 심장 한구석이 필연적으로 따끔하였으나, 이상하게도 나의 눈물은 더는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빙 돌려 이 계절의 시작에서 띄운 소원을 떠올리고 있었다.
딱 하나 바라기를, 부디 이 극이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 행복이 되었으면 했지. 생애 첫 해피엔딩을 만나 처음 겪는 행복을 소화하는 사람처럼 벅차게 충만하기를, 온전히 행복하기를 바랐다.
“알라딘은.. 남다르긴 한 것 같습니다.”
대장정의 끝에서 나의 지니가 이처럼 화답했다. 눈물 꽃 피운 발그레한 얼굴로, 내려앉은 눈썹과 떨리는 입술로. 행복이 뭉쳐있지 않다면 흐를 수 없는 눈물을 그가 보였다. 어떤 상상보다도 애틋한 형태로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무칠 만큼의 행복을 눈물로 떨구는 그가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슬프다 말했지만, 나는 그의 눈물이 애틋할지언정 아프지 않았다. 그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따라 내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우는 대신 그의 몫을 대신해 웃어주었다.
내 소원의 요정 덕분에 이루어야 할 바를 모두 이룬 나는 비로소 홀가분함을 느꼈다.
나의 11개월, 오빠의 일 년.
이 동화의 끝에서 나의 지니는, 행복하다.
그것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