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여움 주의

청년 지욱에 대해서부터 적어본다. 두 번째 등장부터가 청년 지욱의 무대다. 내린 머리에, 가지런한 앞머리. 흰 티에 검은색 가로 스트라이프, 옅은 갈색 바지, 검정 운동화 차림이다. 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있다. 옥상으로 올라서는 몸짓이 가뿐하고 날렵하다. 그 몸짓만큼이나 지욱은 유쾌하고 맑은 청년이다. 사랑을 향해 순수하게 돌진할 줄 알고, 사랑 앞에 진실된 눈을 하고, 그 빛을 담은 두 눈동자를 한껏 반짝일 줄 아는 청년. 이연이 첫눈에 그를 보고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된 것을 이해한다. 지욱은 맑고, 밝고, 순수하고, 따뜻하다.

게다가 그는 잘생겼다.

차분하게 내린 흑발도 무척 예쁜데 앞머리 다듬은 모양새마저도 어쩜 그렇게 순하고 단정한지. 시아준수의 말마따나 제법 있는 집 아들로 사랑받고 자라 온 티가 철철 나는, 구김살 없이 밝고, 근심 걱정 없는 순수한 영혼의 내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외형을 하고 있다.

옥상 달빛 아래 기타를 들고, 곡을 흥얼거리는 지욱의 반짝이는 눈망울에 따라 웃었다. 오랜 상상이자 바람의 실현이다. 그의 기타 소리와 그의 노랫소리만 존재하는 순간이 이렇게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상상 속에서나 보았던 귀하디 귀한 모습. 그렇게 예쁜 얼굴을 하고 흥얼거리는 그를 마냥 보았다. 1막 내내 곧잘 반짝이던 두 눈망울, 곧은 콧대, 예쁜 곡선을 그리는 사랑스러운 입꼬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연을 이해한다. 그녀의 걸음을 자꾸만 멎게 하는 그의 소리, 그의 눈. 그녀가 차마 스쳐 지나치지 못한 청년 지욱 안의 반짝거림. 그 모습을 어떻게 뒤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그 자리에 남아서 그의 노랫소리에 화답하고, 그런 그녀를 지욱이 발견하게 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마땅한 순서다. 지욱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지.

아니, 시아준수는 왜 얼굴도 노래만큼 잘생겼어요? 아니아니, 노래가 얼굴만큼 잘 생긴 건가?

선후가 무엇이든 청년 지욱은 정말이지 반짝반짝하다. 찬란하다. 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1막의 디셈버는 곧 청년 지욱이다. 비극으로 끝날지언정 그 전개만큼은 무엇보다 아름답고 반짝반짝한 청년의 사랑 이야기, 그 사랑 속에서 더욱 화사하고 수려하게 피어나는 청년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사랑의 전개가 충분히 길지 않아 아쉽다. 소나기보다도 더 짧은 호우로 그쳐버리니, 아쉽기 그지 없다.)

지욱은 사랑 앞에 거침없고, 정직하다. 첫 만남에서도, 강의실에서의 두 번째 만남에서도, 동아리방 (?) 에서도, 추운 겨울 두 사람의 이별에서조차도.

지욱의 이런 면모는 첫 만남에서부터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씩 물러나는 이연을 한 마디, 한 마디로 불러 세우며 떠나지 못하게 자꾸만 말을 건네던 모습. 이때 지욱 특유의 대사 톤이 아주 아주 귀엽다. 아니 이때뿐만 아니라 1막에서의 지욱은 대체로 항상 귀엽다. 아주 아주 귀엽다. 말 못하게 귀엽다. 아아, 이건 꼭 보고 느껴야만 하는 귀여움이다. 대사나 행동거지 자체가 훈훈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이걸 귀여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시아준수의 연기다. 그라서 귀엽고, 그이기에 귀엽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귀여운 동시에 시아준수의 실제 말투 냄새를 곳곳에서 맡을 수 있어 설렘까지 가미된다. 이게 바로 일타이피!!

떠나려는 이연을 향해 속사포처럼 말을 꺼내 발을 묶어 두고는, 정작 이연이 마주 보자 버벅이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당황스러움에 두 톤이나 높아지고 커지는 목소리, 고함에 가깝던 대화. 문장의 마지막 단어마다 전부 높은 악센트가 심어졌던 것까지. 어리숙한 듯하면서 진솔하고 티없이 순수하게 마음을 드러내보이는 청년이 시아준수의 지욱이다. 그러니 버틸 수 있나. 참다 못한 이연이 웃음을 터트렸을 때 더없이 신 난 얼굴로 환하게 웃던 얼굴에 내가 더 기뻤다. 한없이 귀엽고, 반짝반짝하고, 벌써부터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그다.

첫 만남의 그녀를 잊지 못해 그녀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집의 담을 넘으면서도 지욱은 사랑스럽다. 그의 솔직함이, 사랑 앞에서의 용기가 예쁘다. 옥상에서의 차림새 그대로인 모습에 청재킷을 걸쳐 입고 가방을 멘 것으로 보아 분명 등교하는 길일 텐데도, 차마 학교로 곧장 향하지 못하고 그녀가 사라진 담 너머를 보는 얼굴이 미련스럽기는커녕 멋있다. 그 집엔 노부부만 산다는 여일의 말에 "그럼 (내가 본 건) 할머니?!"하고 경악하는 건 또 완전 귀엽고!

지욱과 이연이 말 그대로 '스쳐갔던' 첫 만남 이후, 또다시 불현듯 찾아온 강의실에서의 두 번째 만남에서 지욱은 저돌적일 정도로 이연을 향해 돌진해간다. 지욱으로서는 찾고 찾았던 만남이었으니까, 기회 앞에 망설임은 없다.

이 강의실 장면에서 온몸으로 온 얼굴로 모든 소리로 이연의 주의를 끄는 그를 두고두고 보자. 옥상달빛 아래서와는 또다른 귀여움이 여기 있다.

반대의견으로 그녀의 말을 끊어가며 주의도 끌어보고, 그러다 말이 헛나와서 머리짚고 후회하고, 말 꼬여서 버벅이고, 청중이 있든 말든 교수님이 뭐라 하든 말든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녀의 기억을 이끌어도 보고, 이연과 자신을 손가락으로 마구 번갈아 가리키는 등 신체언어로 대화를 시도해도 보고, 강의실에서 빠져나가는 그녀를 따라 허겁지겁 가방을 머리에다 메면서도(ㅋㅋ 아 너무 귀여웠다!!!) 놓칠세라 있는 힘껏 쫓아가고... 아.. 이게 이렇게 한 문단 안에 쓰지만 실제로 보면 일주일은 밥 먹지 않아도 배부를 그런 예쁨이다. 진정으로. 정말이지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귀여워서 주금.. 나 진짜 주금...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상에. 1막의 지욱은 모든 장면에서 완전체마냥 반짝반짝하다. 사랑스럽고, 시선이 간다. 학생들로 우글거리는 강의실에서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몽롱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그만을 보게 된다.

아ㅜㅜ 이 씬, 여기 이 장면에서 그녀를 발견하기 전, 강의실 맨 왼쪽 구석에 앉아 그녀 생각에 잠겨 있던 지욱의 눈동자는 그대로 삼켜 버리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또 다른 황금별을 발견한 듯한 반짝거림이 그 안에 있었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몽롱하게 생각에 젖어, 아련한 미소를 지은 채로 반짝반짝하던 눈망울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등교하기 전, 하숙집에서 아침 식탁 앞에 앉아 이연을 떠올리던 얼굴도 그랬다. 먼 곳의 별무리를 바라보며 황홀해하던 눈, 다소 달뜬 채로 솟은 볼, 아련하게 처진 눈썹..

이러니 누군들 그를 외면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1막 내내 지욱은 대사나 행동거지나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그리고 귀엽다. 온몸이 막 간지러울 정도로 귀엽다. (자꾸 말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청년 지욱에 대해 주체도 안 되고 자제도 안 된다..)

두 사람의 첫 만남 <스치다>에서도 아름다웠던 화음은 사랑을 확인하고 무르익는 순간, 가장 화사하게 피어난다. <다시 돌아온 그대>. 디셈버 버전 <이렇게 사랑해본 적 없죠>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사랑의 노래였다. 이 사랑의 화음이, 개인적으로는 디셈버 첫공의 가장 아름답고 벅찬 순간이었다. 지욱과 이연의 목소리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웠고, 사랑의 환희를 노래하던 그가 아릴 정도로 예뻤다. (이 노래, 이 화음에 대해 좀 더 길게 쓰고 싶은데 여력이 없다.)

찾고 또 찾았던 그녀와의 대화다운 대화 이후, 좋아서 여기저기 방방 뛰는 지욱은 귀엽고 또 무척 웃겼다. 어찌나 천연덕스럽던지. 그 순간 지욱의 벅참을 온몸으로 전하려는 듯, 능청스럽게 무대를 누비는 그의 연기가 익살스럽고 경쾌했다. 사랑에 행복의 날개를 단 청년이 되어 무대 안을 거의 활주하다시피 하면서, 그의 지욱이 행복한 웃음을 마구 뱉어낸다. 너무 좋은 나머지 다른 학생의 마이크를 빼앗아가면서 노래도 한다. (이 마이크 빼앗아 노래할 땐, 시아준수 본연의 태가 나서 좀 설렜다. 웃긴 신에서도 멋있잖아요 나참.) 막무가내로 교정을 누비며 노래하는 그덕에 실컷 웃었다. 장면 자체도 재밌었고, 그의 연기도 더없이 유쾌했다.

제일 천연스럽고 귀엽고 했던 건, 할래? -> 해요.. -> 하실래요? -> 해주세요... 의 4단 말투 변화. 뒤로 갈수록 시무룩함과 눈치 보기까지 더해져서 아,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이연이 자신과 지욱을 묶어 우리라고 칭하자, '우리'에 의미를 두며 방방 뛰던 얼굴은 또 어떻고.

그런데 이연이는 왜 자연스럽게 자기 가방을 지욱에게 주는 거죠? 그 상황에서는 손을 잡을 줄 알았는데 대뜸 가방을 주고, 지욱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 어깨에 메길래..ㅋㅋ 아, 나랑 핀트가 살짝 다른 건가 싶었다. 아니 지욱이 무슨 짐꾼이에요?..

잊히지 않는 또 하나의 장면은, 이연을 바래다준 후 헤어지기 전 입맞춤 시도가 방어 당했을 때. 왜 혀를 날름하며 입맛을 다시는 거예요, 시아준수. 패인 볼에 남는 아쉬움을 나는 보았어요.

이 장면이 기억에 깊이 박힌 이유는 귀여웠던 지욱 덕도 있지만 연출과 연기 모두 좋았던 탓도 크다. 입맞춤을 시도하는 지욱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막고는, 그의 두 볼을 감싸 쥐었다가 턱 끝과 머리 끝에 손을 얹어보던 이연. 지욱의 얼굴을 송두리째 각인하듯 한참동안 그 자세 그대로 그를 보는데, 그런 이연의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며 얼굴을 맡기고 있던 지욱. 어리둥절하여 또르르 구르던 눈동자와 의문을 품은 채 다소 벌어진 입이 귀여웠던 건 물론이고, 이연의 키를 배려하여 다리를 굽혀주었던 섬세함까지 완전하게 설렜다. 이윽고 이연이 사라지면,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넋 놓고 보다 홀린 듯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며 좋아라 하던 지욱. 그 아이 같던 행동, 그 순수함. 짧지만 깊은 여운과 오랜 잔상을 남기는 연출이자 연기였다.

세 번째 만남은 두 사람이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하고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아리방, 빨간 라운드 티를 입고 있는 지욱에게서 시간의 변화를 엿본다. 상단은 회색 바탕 위로 빨간 라운드가 포인트에, 하단은 빨간 바탕 위로 하얀 가로줄 무늬가 있는 티. 바지와 신은 처음과 같다. 디셈버에서 지욱의 의상은 하나같이 전부 예쁜데, 이 의상도 참 잘 어울리고 예뻤다.

바로 이곳에서 두 사람은 한결 편안하고 스스럼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자기는 기타를 언제부터 배웠어? 라는 이연의 대사라든지, 네가 어떤 사람이라서 좋아한 게 아니라는 지욱의 말이라든지. 이 장면의 포인트는 혼자 멋있는 대사를 해놓고, '아 느끼해'라며 시무룩해하는 지욱이다. 또 입맞춤하는(뽀뽀 한 번, 입맞춤 한 번. 후자가 길다..) 남자다운 옆모습도 있고.

이렇게 소소한 사랑의 속삭임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두 사람의 만남은 실제로도 짧고 극 중에서도 짧다. 왜 항상 사랑의 찬란한 순간은 짧고, 사랑을 추억하는 슬픔은 길까? 지욱과 이연이 만난 지는 갓 한 달이고, 극에서는 겨우 네 번이다. 그러나 이별은 기어코 온다. 가슴 시려 잊지 못할 사랑의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여기서 창문 밖으로 이연이 떨어진 순간 이미 이별이었던 걸까? 그것이 곧 그녀의 죽음이었나? 그렇다면 1막 마지막 넘버에서 지욱과 마주한 이연은 영혼인가? 이연이 언제 죽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연이 이별을 고하고, 남겨진 지욱은 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지욱은 사랑이 아니었다며 운다. 사랑이 아닐 수 없는데도, 그는 분명 사랑이 아니었다고 노래한다. 짙은 회색 코트를 걸쳤는데도 하얗디하얀 겨울의 추위가 그에게 버거워 보인다. 애써 준비해온 커피를 건네지도 못하고 울음에 먹혀 떨리는 목소리와 두 손이 안타깝다.

이별의 노래. 좌절의 노래. 예쁘게 클리어하는 느낌보다는 감정에 노래를 맡길 것이라던 인터뷰와 꼭 같았다. 특히 마디의 첫 음을 터트려낼 때 그랬다. 슬픔을 토해내듯, 목구멍까지 깊이 잠긴 비통함을 뱉어내듯. 노래가 아닌 감정의 덩어리 같기도 했다. 내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던 1막의 엔딩의 절정은 지욱의 절규다. 흡사 울부짖음과도 같은 마지막 고음에서 남겨진 지욱의 모든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사랑이 남긴 그리움과 아픔에 처연히 눈물 짓는 것이 준이 감당하고 표현했던 슬픔이라면, 지욱은 소리내어 부르짖는다.

1막의 엔딩을 시작으로 2막에서 지욱은 거의 내내 운다. 그리움에 울고 아픔에 울고 잊지 못해 울고.. 우는 얼굴, 특히 네모낳게 처지는 입꼬리에서 그 특유의 아이같은 울음이 보였다. 준이기도 하고, 볼프강이기도 한 그 우는 입꼬리.

'지욱'으로서의 그의 연기는 준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도 있었고, 놀랄 만큼 달라진 부분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대단히 일취월장한 모습이었다.

일단 생활연기라고 해야 할까? 극 중 인물로서 말하고 몸을 쓰는 부분에서 완벽하게 지욱이었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이고, 평범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지욱의 말투와 행동거지가 좋았다. 이건 배역 자체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소화한 배우의 역량에 좌우되는 부분이기도 한 만큼, 또 한 번 새로운 캐릭터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인물로 완성해낸 김준수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 그의 몸 연기. 무대 위의 뮤지컬 배우는 몸 전체로 연기해야 한다던 그의 말대로였다. 그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가 지욱이었다. 쑥스러울 때면 꼼질 거리는 손, 머뭇머뭇 주저하는 발, 그러다가도 이연이 떠날세라 다급하게 높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뻗어지는 팔, 그 팔의 다부진 손끝, 잔뜩 커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며 바빴던 눈.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그 자리에서 있는대로 말하는 성격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

아아, 이것도 꼭 말해야 한다. 어쩜 그렇게 감정을 담아 소리치는 연기를 잘하죠? "가!!!!!" 하고 화이에게 화내는 장면이나, 훈과 언성을 높이면서 "병신처럼 살았다"며, "누구시더라? 하겠지!!" 하며 자조하던 외침.. 깜짝 놀랐다. 또 듣고 또 보고 싶다. 감정이 응축된 분노가 묘하게 섹시하기까지 하니까 1막의 청년 지욱에게 온통 홀렸다가도 음악감독 지욱에게 새롭게 반하고 만다.

1막에서의 지욱이 미치게 귀여웠다면 2막에서의 지욱은 내내 섹시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두근두근했던 부분은 화이와의 개인 레슨 때. 노래가 어려워서 잘 못 부르겠다는 화이에게 "쫓아와봐" 하며 연주하던 감독님.. 피아노 앞에 앉아 화이의 레슨을 지도한다. 피아노 앞에 앉은 모습도, 연주하기 전에 어디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 하는 투로 던졌던 대사도 무척 설렜다. 시아와 지욱 두 사람을 오가며 사람을 설레게 하는 시아지욱 말투. 아, 1막에서 같이 축제 커플댄스에 나가자는 여일에게 '내가 왜 거길 너랑 나가야 하는데' 하며 무심하게 대꾸하던 대사도 그 비슷한 느낌으로 좋았다.

2막은 1막보다도 훨씬 대사 위주였고, 그가 대사를 하는 부분마다 섹시하고 멋있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벌써 가물가물하다. 순서 상관없이 단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짚어보자면 연습 중 넘어진 화이에게 다가가 무릎꿇고 일으켜주는 모습,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하며 건네지던 손. 캐스팅 이유를 따지러 온 화이에게 왔니? 축하해, 연습해 등등 짐짓 태연하고 무심하게 대꾸하던 모습. 그러다 화이가 진짜 이유를 추궁하며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자 버럭 화를 내던 얼굴! (명장면dddd) 머리를 베토벤처럼 헝클어트릴 때의 사뭇 진지함, 거리에서를 부를 때 술집 테이블 위에 엎어진 채로 등장할 때 어둠 속에서 도드라지던 그 어깨라인, 몸선, 연습실에서 중앙에서 연습하는 걸 지켜보던 모습..

그리고 1,2막을 통틀어 딱 맞던 바지. 그 다리의 라인.... 자꾸만 그의 다리가 시선에 들어왔다. 예쁜 몸선을 가리는 옷일 수도 있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는데 그런 우려를 말끔히 날려주었다. 의상, 전부 다 정말 좋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지욱의 노래가 적었지만 그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컸다. 지욱은 거의 노래 반, 연기 반이다. 음악감독으로서의 지욱이 나오면 뮤지컬보다는 연극 같다. 대사 끝에 울고, 다시 대사하고, 그러다 잠시 노래하는 식이기 때문에. 그간 송스루 뮤지컬을 통해 노래에 기반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지욱으로서의 연기는 많은 부분 노래와 분리되어 진행된다. 놀라운 점은 그 연기 진행이 엄청나게 자연스러웠다는 것. 대사도 무척 많고 각 대사마다 전달해야 하는 감정이나 응축된 것이 제각각인데 훌륭하게 소화한다. 4년 전 이곳, 누나를 외치던 소년이 이렇게나 성장한 모습으로 새로운 막을 열었다.

천국의 눈물도 디셈버도 모두 그가 포문을 열었다. 그 무게와 중압감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겠지. 그러나 그의 긴장과 부담을 관객이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묵묵하고 흔들림 없이 그 몫의 지욱을 온전하게 완성해냈다. 극으로서의 디셈버는 분명 더 다듬어져야 하고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뮤지컬 배우로서 그가 연기하는 지욱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아름다운 완성형이다.

유난히 길었던 초연 첫공. 처음과 끝을 같은 모습으로 무사히, 멋지게 해낸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1. 끝나니 11:41
2. 훈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의 수트핏 때문에 극에 집중이 안 됐다.
3. '음악감독 지욱'의 공연 개막을 앞두고 깨알 같은 인톡시 ㅎㅎ 그리고는 수줍어서 살짝 웃어 보인 건 시아준수 본인의 웃음이었다.
4. 공연과는 별개로 만약 이연과 지욱의 역할이 바뀌었더라면 춤추고 무용하는 시아준수도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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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3.12.18

기억에만 의지해 적었더니 틀린 부분이 역시 많다.

1. 하숙집이 아니라 대학교 동아리방 정도 되나? 윗층에 사물함이 있는 걸로 봐선.
2. 할래? -> 해요 -> 하실래요 -> 해주세요..의 4단 변화다.
3. '자기' 대사는 '자기는 언제부터 기타를 배웠어?'에 들어간다.
4. 화이에게 개인 레슨을 시켜주며 하는 대사는 따라와봐가 아닌 "쫓아와봐."
5. 훈과의 대화에서 자조 섞인 분노의 대사는 누구시냐고가 아닌 "누구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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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3.12.20

넘어진 화이에게 무릎을 꿇고 손 내밀어 주었던 건 아직까진 첫공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