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은 온통 물음표 투성이다. 김광석과의 듀엣부터, 이어짐 없는 끝나지 않은 노래, 유기적이지 못한 훈의 에피소드, 그리고 엔딩.

홀로그램과 함께 하는 <먼지가 되어>는 어떤 의미일까? 2막에서 깐준수의 등장 때만 해도 1막의 시작이 음악감독 지욱이듯, 2막의 시작도 그런 연결점에서부터 출발한 걸까 싶었다. 보면서는 혹여 이것이 음악감독 지욱이 극중에서 연출하는 공연의 일부인 걸까? 싶기도 했다. <먼지가 되어>가 마무리되면서 자연스럽게 극중 지욱이 연출하는 뮤지컬이나 공연인 것처럼 연출되는 건 아닐까 했다. 그래서 지욱이 어떤 감독으로 성장했는지를 대사로만 보여주지 않고, 직접 보여주는 무대연출일 거라고 생각했다.

<먼지가 되어>의 듀엣 무대가 만약 지욱이 아닌 김준수 배우로서 김광석의 홀로그램과의 특별 무대로, 극 외의 것이라면 설명이 부족했다. 시아준수가 극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말해주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극중 지욱의 연기톤으로 대사했기 때문에 그를 배우 김준수로서 지욱과 분리해서 볼 수 없었고, 1막 엔딩의 감정을 베이스로 한 2막이 이어지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황스러움은 김광석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난 후 두 번째 넘버인 <끝나지 않은 노래>가 시작되고도 이어졌다. 쇼케이스 때와 달라지지 않은 모습. 여전히 1막과 동떨어진 노래, 무대 연출. 온갖 의문 속에 1막이 남긴 감정의 여운이 옅어져 갔다. 마침내 극이 여의도역으로 궤도를 바꾸며, 지욱과 화이를 만나게 했을 때도 나는 방향를 잃고 둥둥 떠다니며 극의 갈피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차라리 여의도역에서부터 2막을 시작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그랬더라면 1막의 감정을 간직한 채로 2막, 현재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1막의 엔딩이 남긴 감정의 여운이 워낙 짙고, 좋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최훈 역과 관련한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극중 훈이 제3의 인물이자 하숙집 노부부와 지욱, 이연, 화이와의 모든 연결고리 위에 존재하는 인물인 것은 맞다. 훈과 관련한 에피소드-군대, 아버지의 양로원 방문, 봉안당 등에 각각의 의미가 있는 것도 알겠다. 목적한 감동이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잦고, 길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욱과 이연의 이야기 속에 산발적으로 삽입되는 훈의 이야기로(여타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일단 훈의 비중이 지욱 못지 않게 많으므로) 인해 2막은 매우 어수선하고 산만했다. 


게다가 지욱의 솔로 넘버가 있긴 했나...? 12월 말고, 그날들 외에. 지욱의 비중 자체는 과연 죽음의 세 배 정도 되고, 2막에서는 한 번 등장할 때마다 무대 위에 오래 있는 편이지만 지욱의 넘버 자체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제대로 된 넘버 수는 훈의 것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중에서 훈이 맡은 역 자체도 그 역할이 분명하지 않다.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봉안당에서 스크린 연출이나 <거리에서>, <12월>..은... 그래서 결말은? 하고 되묻게 된다. 생각해보아도 물음표만 남는다. 12월, 그리고 엔딩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갑자기 나타난 거울 속 이연의 모습(이때 연출 좀 무서웠다ㅜ), 괴로워 하는 지욱. 이연이 나타났는데 왜 괴로워하지? '보낸 사랑'에 대한 죄책감일까? 이연과의 포옹은 이별의 포옹? 아니면 보낸 사랑이라 무심결에 말했지만 사실은 결코 보낼 수 없음을 재차 확인한 그런 포옹? 설마 죽은 이연과의 포옹이 지욱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겠지?

시아준수가 커튼콜에서 깐준수, 그러니까 음악감독인 지욱으로서 등장하는 것과 엔딩과도 관계가 있을까. 마치 천국의 눈물에서 준이 린과의 사랑이 실재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간 청년의 모습으로 커튼콜에 나타난 것과는 달리 지욱은 음악감독으로서의 수트를 입은 모습 그대로라는 것은, 그가 읊조린 것처럼 지난 사랑을 보내주었다는 의미일까. 그렇기에 괴로워하고, 그래서 포옹으로서 이연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던 걸까?

대체 지욱의 선택은 무엇이고 지욱의 현재는 무엇일까? 화이인가, 이연인가? 화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보고 싶지 않다던 마음은 사랑인가? 죽음을 외면하면서까지 그리워했던 사람을 지욱은 화이를 통해 보내준 걸까? 그게 가능했던 걸까? 이연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커튼콜에서의 지욱은 왜 이연과 찬란했던 시절의 지욱이 아닌 혼자 남은 지욱인 걸까? 커튼콜에서 이연은 화이가 아니라 이연으로 돌아왔는데 어째서 지욱만 20년 후의 '현재'일까.

 

오늘 보면 조금 더 분명히 알 수 있을까.


1. 2막 연출과는 별개로 창작곡들은 다 좋다.
2. 술집과 뉴스를 한 무대 위에서 교차하여 연출한 것은 좋았다. 그 직전의 이상기온 뉴스는 뜬금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