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연은 참 많이 슬펐다. 찬란하던 때부터, 추락하는 순간까지. 많이 울었다. 그도, 나도.

1막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또 한 번 레전드를 경신했다. 앞으로도 그럴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연이 이별을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울컥했다. 아직 이 장면으로의 전환이 선뜻 납득되는 건 아니지만,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슬픔의 골자는 볼 수 있었다. 이연의 죽음을 부정하는 지욱의 마음이, 그녀를 환영으로라도 불러내어 스스로 고통스러운 이별을 자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녀가 살아는 있는 거니까. 지욱의 말처럼 살면서 한 번쯤은 스쳐 갈 수도 있는 존재로 남게 되니까. 그가 잊지 않는 한은..

1절을 모두 부르고 폭죽이 터지는 순간 주저앉는 지욱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도, 폭죽도 내가 바라보는 시선 안에 모두 있었기에 그 명암의 대비가 더욱 또렷했다. 모두가 웃을 때 지욱은 운다.

그의 등 뒤에 선 이연이 노래를 이어 부르면, 지욱은 애처롭게 떨리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이연은 잊으라 하는데, 지욱은 그럴 수 없다.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 아이처럼 무너진 얼굴. 고통을 숨기지 않는 마지막 고음.

그녀를 어떻게 잊을까. 죽음을 부정하는 마음이 환영으로라도 되살려 온 연인. 만날 수 없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는 듯한 이 모든 상황이 어처구니없게 슬프다. 통속적일 정도로 슬픈데, 시아준수가 그리는 이별의 슬픔에는 설득력이 있다. 모든 의미를 다 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고, 그래서 '슬픈' 겨울청년이 '운다'. 그뿐이다. 그 어디에도 그녀가 죽었다는 단서는 없다. 적어도, 지욱이 보는 환상 속에서만큼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변화였던 2막.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선택집중하게 되어서일까. 오로지 지욱에 몰두했던 탓일까. 온연히 지욱의 감정선만을 느끼고, 따라갈 수 있었다. 어떤 방해도 없었다.

공연에 앞서 그가 '마음이 가장 추락할 때 독백하듯이 부른다'고 했던 <사랑이라는 이유로>.

훈의 외침, "이연이 죽었어!"로부터 이어지는 이 넘버에는 그 어떤 무대장치도 없다. 막이 내리고, 무대 앞으로 다가온 지욱이 어둠 속에서 조명 하나만을 받으며 외로이 서 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어둠. 가득한 공허함. 조명 속에 오로지 그 한 사람(물론 훈도 있다).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순간이다.

지욱의 마음이 추락한다 했던 건, 그가 비로소 이연의 죽음을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이별을 하면서까지 기억 속에서 살려 놓았던 이연이다. 그런 그녀의 죽음을 더는 거부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지욱은 자신이 이미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음을 깨우친다. 더 이상 우연으로라도 스쳐 지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억지로 떠안게 된 마음이 절망한다. 독백하고, 자조한다. 체념한 듯한 그의 멍한 얼굴이 슬펐다.

이별의 순간 이연이 건넸던, '잊으면 다시 돌아오겠다'던 말은 지욱이 어떻게든 지푸라기처럼 붙잡아야 했던 위로와도 같다. 이연을 절대 잊을 수 없으리라 직감한 그의 마음이, 차라리 다시는 만날 수 없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는 희망을 품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다. 그렇게 믿으면 언젠가는 스쳐 지나갈 수도 있을 테니까. 누구시더라 하고 물어도 어쨌든 볼 수나 있으니까. 그 희망으로라도 살기 위해.

지욱은 그렇게 스스로 시간을 멈추어 왔다. 그렇게, 자라는 것을 거부하고 그 안에 머물면, 그 세계 안에는 만날 수는 없어도 만날 희망은 품을 수 있는 이연이 있다.

있었다.
이연의 죽음을 인지함으로써 그 세계가 부서지기 전까지는.

옥상에서 화이와의 충돌은 지욱이 간직해온 허구를 향한 최후의 못질이다. 자신은 이연이 아니라는 화이의 분노는, 이연이 더는 세상에 없다는 확인사살이다. 화이를 통해 이연을 보던 지욱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산산이 조각나고 만다. 그 잔인한 사실 앞에서 이연과 함께 했던 20대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렸던 지욱은 운다. 그제야. 연인 간의 이별로 인한 울음이 아니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건널 수 없는 거리감에 운다. 그녀의 죽음에, 비로소 절망한다. (그리고 시아준수는 퇴장하면서 암전되어 그의 형체가 잘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슬픔에 잠긴 걸음걸이를 연기해... 나 더 슬프게..)

<거리에서>는 지욱이 마침내 이연의 죽음을 완연하게 인정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무너져 내리는 스크린 영상은 이연을 환상으로라도 간직해온 지욱의 20년이 부서지는 것과 같다. 지욱이 애써 잠가놓은 세계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화이에게서 다른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연을 그 어디에서라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지욱의 체념이다. 그리고 지욱은 넌지시 생각해본다. 그녀가 없는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된 이상 그는 선택해야 한다. 그녀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그녀를 간직해온 사랑으로 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이연이 없는 세상의 시간에 지욱이 녹아들 수 있을지.

되묻는 "할 수 있을까?"에는 확신이 없다. 체념, 한숨, 의문 같은 것들이 섞여 뱉어진다. 그리고 멎는 그의 움직임. 머리를 강타하는 무언가로 인해 지욱은 퍼뜩 고개를 들어 커진 눈으로 거울을 돌아본다. 그곳에 이연이 있다.


이제부터의 해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연과의 이별이다. 그녀의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간직해온 사랑을 그만 묻는 것. 그렇다면 <12월>은 이연과의 작별인사다. 1막에서, 이연이 건넸던 이별의 말 그대로 지욱이 그녀를 잊었기에-적어도 잊기로 선택하였기에 가능했던 재회이자 영원한 이별.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닿지 못한 내 노래 하며 울부짖는 그이고, 끝이 아니라며 울먹이는 그다. 아직 그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2공부터 지금까지 보아 온 바에 의하면 내가 이해한 지욱은 후자다.

'하얗게 지워져 간 시간'은 그녀의 환영을 붙잡고 있었던, 이제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지욱의 20년.
너를 지웠다는 건 너의 죽음을 인정한다는 것.
그럼에도 너에게 닿지 못한 노래가 하늘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그럼에도 결국 그녀를 놓지 못한 자신의 마음.

옥상으로 뛰어 올라간 지욱이 오랜 그리움을 안는다. 울음 범벅의 얼굴로 서글픈 포옹을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지욱의 사랑은 화석이 된다. 놓지 못한 것이다. 지욱이 끝난 사랑에 갇혔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죽음으로써 그 사랑을 간직해냈다고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욱은 계속 사랑을 이어갈 뿐이다. 어떤 형태로든. 간직해온 사랑은 죽음의 형태로 그에게 되돌아왔지만,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고 그녀를 보내줌으로써 그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결국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이연을 향한 살아있는 시간을 사는 지욱의, 현재의 지욱으로서의 사랑이.

 

커튼콜에서의 모습이 반짝거리던 20대의 지욱이 아닌, 현재의 지욱인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한다. (갈아입을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하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지욱으로서, 죽음마저 승화시킨 끝나지 않을 사랑을 이어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