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잰가 봐~ 하는 장면은 점점 더 소녀 같아진다. 오늘은 말투가 특히나 새침했어. 바람은 어제와 비슷하게 강했고, 따라서 악보가 반쯤 땅으로 떨어졌다. 어제는 이걸 어쩌지.. 하는 듯한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면, 오늘은 땅을 내려다보며 진짜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다 떨어졌네..."

강의실에서는 자꾸만 입술을 촉촉하게 적신다. 어쩜 좋지. 작고 예쁜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훑는데, 그거 너무 많이 하면 힘들어요. 그러면 못 참게 예쁘다는 걸 그가 좀 알아야 할 텐데. 하품은 적당히 두어 번 정도 했고(덜 지루했나 보다ㅎㅎ), 오늘은 유독 앞사람과 대화가 길길래 쌍꺼풀은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막바지에 했다. 통으로! 완전 짙게 그려서, 제법 오래 쌍꺼풀진 눈을 유지했는데 그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라 기뻤다. 어제는 살짝 비켜난 옆모습이었는데. ㅎㅎ

아가 웃음은 나날이 발전한다 ㅜㅜ 귀여우려고 작정을 했죠 ㅜㅜ 세상에 이런 대학생을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연은 어떻게 그 얼굴, 그 미소를 보고 평정을 유지하는 거지. 대단해.

축제가 한창인 학교를 누비며 이연을 찾을 때 달리는 그는 꼭 총알 같다. 말 그대로 시아 볼트! 축구장에서 느꼈던 그의 속도감을 세종의 무대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니ㅋㅋ 이때 다소 과장되게 뒤뚱이는 몸짓도 좋다.

두 번째 허밍에서는 두 팔을 하늘~ 하늘~ 번갈아가며 황진이 춤 같은 걸 또 추었다. 어제의 춤이 각 지고 힘 있는 하늘하늘 나풀나풀이었다면 오늘은 무척 부드러웠다. 허밍에 두 팔을 맡긴 듯한, 노래와 감정에 도취하여 살랑살랑~ 봄바람~ 이런 느낌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애드립은 "노래왕 선발대회? 아 나갈까?"

그리고 오늘의 <다시 돌아온 그대>는 1막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반주부터 아련아련해서.. 이 노래에서 비단결처럼 곱게 퍼트려지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 은하수에 무지개를 입혀놓는다면 이런 모양일까. 설상가상, 지욱과 이연이 이루는 화음마저 눈에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꿈이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때 두 사람이 번갈아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동선도 참 예쁘다. 특히 지욱은 뒤로 걷고, 이연이 그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은 서로에게 자석처럼 이끌리는 두 사람을 여타 부연설명 없이 그 자체로 충분히 전달해준다.

4층에서의 입맞춤은 오늘도 길었다. 그런데도 오늘 훈이에게 "좀만 늦게 오지"라고 말했어ㅜㅜ 대체 왜요ㅜㅜ 그마내... 거기서 뭘 더 어떻게 늦게 와요!! 게다가 첫 번째 입맞춤에서 두 사람이 떨어질 때 뽀쪽 하는 소리도 들렸다고.. 이런 건 굳이 리얼하지 않아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는 발그레했던 얼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눈물, 콧물, 침, 땀까지 그 조그만 얼굴에 가득가득 차있었다. 마치 돌아선 이연을 향해 지금 내 이 감정이 버겁다고, 이런 날 한 번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에 점점 아이 같은 흐느낌이 스며드는데, 그게 꼭 물감 번지는 모양새 같기도 했고. (예뻐.. 다 예뻐..) 그리고 프레스콜의 영향이 있었을까. 넘버 초반부터 그의 얼굴 속으로 고여 드는 울컥함이, 꼭 한 차례 낮공을 마치고 난 후의 감정선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던 대사도 유난히 촉촉했고..

그리고 오늘은 감독님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왜 가만히만 있어도 섹시하시죠? 왜 그림자조차도 섹시하세요?

증권사로 성태를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이 포옹하자마자 암전되어 그때부터 퇴장할 때까지는 그의 실루엣만 보이는데.. 그림자 드리워진 모습이 말 못하게 섹시하다. 초반 공연에서는 여기서 왜 이렇게 빨리 암전하지, 예쁜 얼굴이 안 보이잖아 하고 투덜댔는데 요즘은 이 그림자 보는 즐거움에도 푹 빠졌다. <그날들>을 부르고 사거리 대포를 지나 쓸쓸히 퇴장할 때도 그렇다. 동그랗게 솟은 어깨, 작은 무릎, 어둠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부드러운 턱의 곡선, 적당히 힘주어 올린 머리까지 어디 하나 그림 아닌 곳이 없어 사람이. 대체 어떻게 하면 어둠 속에 잠긴 형체만으로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거지..

사거리 대포는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다. 여러 번 봐도 여일의 호들갑은 유쾌하다. 감독님의 볼과 목덜미를 두 손으로 턱 턱 부여잡고 요리조리 흔들어 보는 거침없음은 아직도 조금 놀랍지만. 오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설렌다고 하더니, 여일의 호들갑을 웃으며 받아주던 지욱이 여일의 양 볼을 두 손으로 잡고 톡톡톡 두드려주었다. 마치 어유 그래그래, 알겠어, 알겠어. 귀여운 막내 여동생을 얼러주는 듯이.

시끄러운 재회가 끝나고 자리에서 세 사람이 일어서면서는 마지막 남은 술잔을 여일이 지욱에게 건넸는데, 지욱이 아주 호쾌하게 몸을 뒤로 꺾어가며 그대로 원샷했다. 사거리 대포 세트가 이미 회전하기 시작한 후의 모습이라 대포집 문 너머로 그런 제스처를 취하는 그의 실루엣만 보였는데(A열 쪽에서는 보였다고도 한다), 무대 장치가 회전하는 순간에도 연기를 이어가는 이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사거리 대포가 빙그르르 180도를 회전하여 간판을 드러내는 동안 그 세트 너머에서는 관객이 볼 수 있든, 없든 지욱은 계속해서 지욱이다. 술기운에 다소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머플러를 두르고 코트를 챙겨 입고, 성태와 여일에게 기대어 휘청휘청 걸어 나오는 지욱이 있다. 이 순간이 괜스레 감동적이었다고 하면 주책일까.

개인 레슨에서는 참 아쉽게도.. 가장 좋아하는 얼굴의 감독님ㅡ그러니까 피아노 앞에 앉아 화이를 지도할 때의 감독님 표정을 전혀 보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화이가 감독님을 정면으로, 그렇게까지 완전히 가려버릴 줄은 몰랐다... 가끔 끝이 올라가는 눈썹만 보였어.. 약간 패닉이 왔지만 곧이어 "헐크야?" 하며 어미를 튀게 올려주신 감독님을 보며 진정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어제까지만 해도 "이연이 죽었어!" 하는 훈의 대사 이후에 잠시 암전이 되었다가 조명이 다시 켜짐과 함께 무대 앞쪽으로 나온 지욱과 훈이 노래를 시작하는 연출이었는데, 오늘은 중간의 암전이 없었다. 앞으로는 지욱과 훈이 세트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온전히 보이고, 뒤로는 막이 내리며 무대 위의 모든 장치가 사라진다. 마침내 온통 까만 세상에 두 사람만이 남아 노래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이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음.. 오늘은 선택집중을 통해서도, 지욱의 감정선을 따라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훈으로 인해 방해받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에서 특히. 지욱의 마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할 때마다 소절은 곧 훈에게로 넘어가 버리는 탓에, 지욱이 어떤 심정으로 독백하는지, 그 독백이 어떻게 마음의 추락을 표현하는지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다. 지욱이 이연을 보고 노래하는 순간이 되면 그 뒷모습을 보게 되는 D구역에서는 더...

<거리에서>에서는 훈을 배제하기가 정 어렵다면, 분량 조절이라도 이루어지면 좋겠다... <거리에서> 이후에도 지욱의 마음 상태를 풀어주는 장치가 하나 정도 삽입된다면 더 좋겠고.

옥상에서의 대사 중에는 화이에게 내뱉는 "그-만-해"의 서늘한 느낌이 좋다. 툭 툭 내려앉는 말투는 그에게서 잘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고. 이어지는 울음에 섞여 있는 기침 소리 같은 거친 흐느낌은 신기할 정도로 1막에서의 청년 지욱의 울음과 구분된다. 호흡을 텁텁하게 뱉어가며 우는 것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노래가 섞이지 않아서 그런가..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 사실 이 장면에서 울고 있는 지욱은 40대의 음악감독 지욱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자라지 못한 청년 지욱이기도 한데 이 두 사람의 울음이 합쳐진다면 이런 소리가 될까.. 싶었다.

공연 전 화이와 나누는 대사는 여전하다. 뽀뽀를 받고는 오늘, 꽤 크게 웃었다. 기쁜 듯이.. 라기보다는 어린 화이의 당돌함을 귀여워한다는 느낌으로. 화이를 보내고 거울 앞에 앉아 중얼거리는 어조에는 얼마간의 바람도 깃들어 있다.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듯이.

하지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였던 걸까. 엔딩 자체에 보다 세밀한 보완이 있었다. 어제, 이연과 지욱이 포옹 후에 객석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오늘은 포옹 후 서로에게 오래 기다려온 말을 건넨다. 이연이 먼저 "또 봐" 하면, 울음 속에서 아플 정도로 예쁘게 웃는 지욱이 "우리.. 또 봐." 하는 것으로 말을 맺는다. 마침내 완전한 재회가 이루어진 순간 두 사람이 나란히 정면을 바라보고, 극이 끝난다.

그리고 이것으로 5일간의 공연이 모두 끝났다. 여섯 번의 공연 동안 많다면 무척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속에서도 시아준수의 지욱은 한결같이 훌륭했다. 남은 공연 동안에도 다만, 그가 건강하길 바라며 토요일에는 푹 쉴 수 있기를.. ^.^


극이 수정된 부분
1. <사랑이라는 이유로> 시작 부분에 암전되지 않는 것으로 수정.
2. <12월>이 끝나고 엔딩에서 대사 추가. 이연의 "또 봐", 지욱의 "우리 또 봐"
3. 커튼콜에 <먼지가 되어> 추가

 

4. 이상기온 대사가 또 바뀌었다. 내가 도적이라니 이 부분도 끝이 좀 바뀌었어. 야금야금 알게 모르게 대사들이 압축되고는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