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는 지욱이 마무리할 수 없다. 마지막 두 소절ㅡ그대 모습이 시간 속에 잊혀져 가요ㅡ를 개사하지 않는 이상은. 연출이 이연과 지욱의 끝나지 않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보다 명확하게 접근해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녀를 추억 속에 묻고 사라져가는 기억을 허락하는 것이 지욱의 몫일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지욱이 마지막 소절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퇴장하는 전개는, 어떻게 보면 노래를 끝까지 부르며 울부짖는 것보다도 절절한 연출일 수 있다. 훈은 이 노래를 통해 이연을 추억으로 묻지만 지욱은 끝끝내, 자신의 무너진 세상 속에서도, 술기운 속에서도 그녀를 놓지 못하니까.
연출이 만약 이 마지막 부분의 가사를 고려하여 지욱에게 주지 않은 것이라면 섬세한 파트 배분이다. 만약 이 부분을 지욱이 부르게 된다면 이연을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부연해줄 수 있는 추가 장면이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 추가된 장면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잊지 못했다거나, 또는 그 노력을 통해 마침내 이연을 보내주었다고 말할 수 있고 그걸 관객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12월>과 엔딩으로의 연결이 부자연스럽다. 그러니 현 상태 그대로 <거리에서>만을 지욱이 마무리하는 건 어렵다.
(아니면 지욱이 마지막 소절까지 맡아 부르되, 잊혀져 가요... 를 온전히 부르지 못하고 흐느낌으로 대신한다든가 하는 방식이면 괜찮겠다. 쓰고 보니 이것도 괜찮은데?)
<거리에서>가 바뀔 수 없다면, 더더욱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바뀌어야 한다.
2막에서 지욱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그 흐름을 한 번에 잃게 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무엇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지욱의 감정선에 불친절한 극이었지만, 여기에서는 지욱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 명이서 노래를 자잘하게 끊어 부르니 그 누구의 감정도 오롯하게 따라갈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노래에서의 '자잘한' 소절 배분이 가장 큰 문제다. 파트를 너무도 잘게 잘라놓아, 노래를 통해서는 그 어떤 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받을 수 없다.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집중하려 하면 금세 그 주체가 바뀌어 버리니 원...
그리고 바로 여기, 이 장면이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보면 이건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지욱의 마음이 가장 추락하는 순간 그의 부서지는 마음을 관객이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어야만 하는 부분인데... 마음의 추락이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옥상 충돌, 두 차례에 걸쳐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관객이 남주의 혼란과 절망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지 않다. 그러니 자꾸 무언가 생략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전, 훈과의 대사가 보다 세밀하게 수정되며 감정을 한껏 고조해놓았기 때문에도 아쉽다.
"그래,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아들 딸 낳고 남편한테 사랑 받으며, 내가 이렇게 한순간도 못 잊고 산다는 거 알지 못한 채!
잘 살고 있겠지.
그러다가, 혹시 마주치기라도 하면 누구시더라! 하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
그게 뭐. 나 그냥, 그렇게 병신같이 살았어 그래."
(낮공에선 병신같이 살았다가 없어졌었다가 밤공에서 부활했다. 만세!)
마주칠 수 없다고, 누구시더라 물어볼 수도 없다는 훈에게 되묻는 목소리("훈아 너 지금 무슨 말을..")는 제발 그다음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애원처럼도 들렸다. 부인해왔을 뿐 정말로 아예 몰랐던 사실은 아니니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가로막아 보는 그 힘없이 떨리던 목소리..
이렇게 정확한 순서를 밟아 지욱의 견고한 허구에 접근해가며 그것을 훈을 통해 깨트려놓는 건 차근차근 잘해놓고, 정작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은 제대로 다루어주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감정선이 끊어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월> 직전 이연의 영상만큼이나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고, 주인공의 감정선에 더 친절해져야 한다. 친절해지는 것에 인색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불필요한 장면들이 꾸준히 압축되어가고, 대사를 수정하는 등 극은 노력하고 있다. 극 중 인물의 감정선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들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은 아직이지만 시간이 걸리겠지. 조금씩 맞물려 가고 있는 2막에 더 알맞은 수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