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그가 "또 봐"를 말하는 순간의 얼굴이 정확히 정면이었다. A열은 처음이었는데 그의 이 얼굴을 볼 수 있었구나. 아이컨택이라고 말할 만한 순간이 그동안은 많지 않아서(있어도 짧았고) 당황스러울 만큼 두근거렸다. 두 눈썹을 살짝 들고 잔잔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내 앞의 정면을 향해 그가 분명하게 말했다. "또 봐." 그가 이쪽을 바라보고 말하고 있음을 인지하고도 남아, 그 눈빛 속에서 황홀해 할만큼의 충분한 시간 동안. 마법에 빠졌다.

그래서인가. 밤공은 무척이나 감정을 건드리는 공연이었다. 일단 <스치다>. 유난히 달달했다. 그가 힘 빼고 부르는 소리는 워낙 황홀하지만, 밤공에선 특히나 부드러워, 녹는 듯했다.

홀린 듯이 보았던 건 <거리에서> 앞 부분, 그가 술을 마실 때. 훈이 노래하는 동안 술 마시는 감독님 표정 연기가 어찌나 황홀하던지. 감정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섬세함이 정말 정말 좋았다. 얼굴만 가득 클로즈업해서 잡는 브라운관 연기라고 해도 어색함이나 과장됨 전혀 없이 감정이 너무도 알맞게 배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날들>에서는 정말, 강조해도 부족함 없을 정도로 잘생겼는데 오늘은 심히 아프기까지 했다. <다시 돌아온 그대>의 가사가 아름다워서 눈물 난다면, <그날들>에선 환상 속에 사는 지욱이 애처로워 아프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하며 커플춤 추는 사람들 사이를 혼자 되어 거니는 모습이나, 이연이 죽은 게 아니라 꼭 이연과 살아서 이별한 것처럼 들리는 가사나.. 가사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듣다 보면 지욱이 멈추어 놓은 세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녀를 환상으로라도 되살려 온 지욱의 세계에서, 만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서는 아들딸 낳고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살고 있을 그녀를 그리는 지욱이 아팠다. 이렇게까지 견고한 허구 속에서 살아왔구나 싶어서.. 아 쓰면서 또 슬퍼ㅜ

이어지는 오디션이 그래서 슬펐다. 그렇게나 직전의 <그날들>에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부르며 그리워했는데, 자신의 오디션장에 나타난 화이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이력서 사진을 보며 두 눈이 휘둥그레져 웃는 마음이 이해되었다. 믿기지 않아 거듭거듭 보는 얼굴 때문에, 웃음 포인트가 있는 장면인데도 막막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전, 훈과 나누는 대사도 수정된 것이 훨씬 아프다. "아들딸 낳고 남편한테 사랑받으며 잘살고 있겠지"라고 말하는데 이 현실적인 대사가 왜 그렇게 박히던지. 진짜로 그렇게 믿고 살고 있는 거야 지욱아..? 그를 붙잡고 되묻고 싶었다. 이연이 죽었다는 사실을 구태여 알려주는 훈이 못내 미웠다. 지욱의 세계가 환상일지언정, 그게 왜 깨져야 하는 거지. 허구라도 그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면 그런 삶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아픈 곳에 연이어 망치질하는 화이도 야속했다. 서류철을 넘기다 구겨지는 감독님의 미간이 딱 내 마음이었다. (이때 진짜 열 받은 듯한 표정에 나 설렌 건 비밀) 2막에는 다 지욱을 못 살게 하는 사람들만 있다. 그 혼자 남겨져 울 때, 두 손을 모은 채 움츠린 어깨, 그대로 떨구어지는 고개가 긴 잔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런 지욱도 현재를 마주 볼 용기를 내긴 한다. <거리에서>를 통해 이연의 죽음을 인정하였으니, 이제 다음 걸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그가 하는 말. 간직해온 사랑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듯. 읊조린 다음 이어지는 자기 자신에게로의 질문은 낮공에서는 "가능할까?", 밤공에서는 "할 수 있을까?"였다. 어감은 후자가 더 좋지만, 어느 쪽으로 고정되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밤공에서, 화이에게 건네는 말이 약간 바뀌었다. "니가 어떤 사람이라서 널 만난 게 아니듯"을 '너에게서 다른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 앞에 덧붙였다. 실수였을까, 대사가 바뀐 걸까? 처음에 시아준수가 '니가 어떤 사람이라서' 까지 말하고 멈칫하는 듯하길래 실수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무난히 넘기는 모습에 브라보~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대사가 수정된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다음 공연을 봐야 확실히 알 것 같다.

대망의 <12월>에서는, 옥상에서 지욱을 내려다보는 이연도 울먹이고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마침내 포옹하며 두 사람이 아프게 웃는 건 다시 봐도 통속이지만, 어김없이 명중한다. 연기하는 두 사람이 참 예뻐서. 잘해서. 더군다나 밤공에서는 1절 끝나고 "이연아..." 흐느낌 같은 한 마디가 추가되었다. 곧이어 그녀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으며 울음에 잠기는데, 시아준수는 항상 이렇게 반칙을 한다. 제 아무리 슬픈 노래도, 한두 번 이상 들어 귀에 익으면 감정이 마구 일렁일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데 12월은 들을 때마다 울컥한다. 그의 흐느낌은 언제나 공명을 부른다.

엔딩의 "우리, 또 봐"가 밤공에서 무척 희망적인 어조였고, 커튼콜에 추가된 <다시 돌아온 그대>의 훈훈한 마무리 덕에 막이 전부 내린 후에는 먹먹하기만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욱의 삶이 참 안쓰럽다. 그리고 지욱이 안쓰러운 만큼 시아준수가 좋아진다. 종일반일 때는 더 주체할 수 없게.

낮공에서 이미 한 차례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였다. 낮공과 한 시간 반 정도 텀밖에 없었는데도! 기분도 그랬는지, 잔망의 끝을 보여주는 1막에서 완전히 물 만난 듯했다. 낮공에서부터 "천잰가 봐, 어떡행"하고 어떡행을 덧붙였는데 밤공의 이응 발음이 훨씬 강해서 귀여움 지수가 치솟았다. 떨어진 종이를 보면서는 낮공에서는 "아 진짜..", 밤공에서는 "다 떨어졌네.." 하고 빠르게 중얼거리는데 시아준수가 이렇게 현실 말투 냄새를 풍기면서 추임새를 넣으면 나 설레... 


몽롱하게 젖어 있을 때 그의 입 모양 때문에 귀엽게 도드라지는 앞니는 이제 못 보면 서운하다. 하숙집 아침 식탁에서도, 강의실에서도.

여일이 그를 불러 깨우자 시작된 본격적 강의 지루해하기 시간에는 오른손으로 왼손 손등을 벅벅 긁다가 쌍꺼풀을 그렸고, 부리 청소를 하기도 했다. 낮공에서는 비행기 타는 것처럼 두 팔을 뒤로 쭈욱 뻗어 흔들기도 했고, 가방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는 시늉을 하다가 고개를 막 여일 뒤쪽으로 빼서 기웃거리기도 했고, 자꾸 말을 거는 여일에게 완전히 등을 돌려 앉기도 했다.

허밍 시의 몸짓도 밤공에서 더 격했다. 기타 치는 시늉을 하는데, 글쎄 그렇게 하다간 기타 줄 다 끊어지고 말겠어요 선배ㅋㅋㅋ 이 시늉은 원래 허밍 시작하기 전에, 보디랭귀지를 하면서 한 번만 해왔는데 밤공에서는 허밍이 끝나갈 때 즈음에도 기타 치는 동작을 추가로 곁들여가며 이연의 주의를 끌었다. 여기서는 또 나긋나긋 부드럽게, 예쁘게. 아아 그는 어째서 이렇게 귀엽지.

<다시 돌아온 그대>는 들을수록 음원으로 갖고 싶다. 아니면 연말 콘서트에서라도 온전히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노래를 부를 때 하얀 눈발이 흩날리는 것 같은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좋다. 그의 목소리 결이 섬세할 정도로 느껴져서도 좋고. 들을수록 향긋하고 따사로운 곡이다. 게다가 가사도 정말 좋아서... 1막이 늘어나도 좋으니 이 곡이 더 길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4층의 입맞춤은 낮밤 둘 다 떨어질 때 쪽 소리가 났는데 밤공에서 진짜 컸다. 흐앙. 하지만 이때 시아준수가 기타를 들어 올리는 가뿐한 몸짓에 또 금세 마음이 녹았다. 그 큰 기타를 눈송이 집듯 사뿐히 들어 올리는데, 부러 멋있으려고 재는 동작도 아니고 어떤 체를 하거나 허세 같은 것을 전연 찾아볼 수 없게끔 예쁘기만 해서 신기할 정도다. 여기서도, 1막 오프닝에서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밤공이 좀 더 울컥했는데, 보온병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치켜드는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았기 때문일까. 가장 사무쳤던 순간은 군중 속을 정처 없이 헤맬 때. 유독 여기서 슬펐다. 마구 처지는 입꼬리도, 갈팡질팡하는 걸음걸이도.

아,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와 집으로 돌아온 훈이와 포옹할 때의 얼굴도 A구역에서 보니 그럭저럭 보였다. 국회의원 훈과 대화할 때 등으로 앉은 얼굴도 옆선이 간혹 보일 듯 말 듯했고. 사소하긴 하지만, 의도치 않게 몇몇 장면에서 주연 배우의 얼굴이 어느 각도에서도 잘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겨진다는 건 아쉽다. 특히 편지 쓸 때는 왜 굳이 객석을 등지고 앉게 한 건지 의문이다.

또 A열에서 보다 명확히 본 얼굴은 개인 레슨에서 "턱도, 머리도" 할 때. 이런 거까지 다 말해줘야 해, 꼭 이런 표정이었다. 그 언제지, 빨간 후드를 입었던 NIIxJYJ 영상에선가, "제 FC MEN 멤버들.." 하며 얼굴에 엄청 섹시하게 음영 잡혔을 때, 그때 같았다. 두 뺨이 쏙 패이고, 이마에도 주름이 파이며 얼굴로 한숨을 쉬던 감독님. 섹시해ㅜ 이 장면에서 이어졌던 애드립은 밤공에선 드디어 "니가 아이언 맨이야?" 였는데, 난 또 괜히 반가웠네 ㅋㅋ

사거리 대포에서 감독님은 절대 원샷하는 법이 없다. 성태에게 술을 따라줄 때도 언제나 곧은 자세인 한결같은 사람이다. 꼭 처음 잔만 따라주고 두 번째 잔은 뉴스 속 훈에게 시선을 빼앗기며 성태가 자작하게 했었는데, 밤공에서는 금세 깨어나 잔을 채워주어 덕분에 성태는 자작을 면할 수 있었다. 여일의 호들갑도 나날이 발전하는데, 요란한 등장 덕에 감독님의 술잔이 넘실대다 결국엔 코트 위로 후루룩 쏟아져버렸다. 낮에도, 밤에도. 내내 하이톤의 여일에게 진정하라는 듯, "여일아 오랜만이다"하고 반갑게 인사해준 감독님은 밤공에서는 다시 여일의 양 볼을 두 손으로 톡톡톡 쳐주기까지 했다. 여일이 병나발을 불 때는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면서 마구 귀여워도 해줬고.

극은 분명히 점점 압축되어 가고 있다(특히 2막). 남녀 오디션 대사가 줄어들었고, 연습실에서 주연으로 발탁된 화이의 역성을 드는 남자 앙상블의 대사도 삭제되었다. 결정적으로 봉안당에서 관리인과 훈의 대화가, 관리인의 독백으로 변경되었다.

매일매일 공연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텀을 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어제와 오늘 공연에서는 약간일 차이가, 시간을 가지고 보면 전체적으로 어떻게 새롭게 다가올지도 궁금해서.

볼수록 묘한 극이다. 이야깃거리도 많고, 식상할 법한 설정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주인공들의 연기에서 흡입력을 얻는다. 무엇보다도 노래가 다 좋다. 대부분의 노래가 잘게 쪼개져 있어 한 곡 한 곡을 충분히 감상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하지만, 가사도, 편곡도 되뇌며 흥얼거리게 된다. 잘 알지 못했던 원곡에까지 관심을 두게 하니, 이런 걸 보면 마법에 빠지긴 한 것 같다. 어김없는 시아준수의 마법.


1. 그런데 왜 이연이는 지욱을 지욱아! 라고 부르지? 훈이 친구면 오빠인데...
2. 낮공에선 오랜만에 "김성태 차장님!", 밤공에선 "성태 형!"


극이 수정된 부분
1. <스치다>에서 지욱이 지상에서 등장하여,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도록 변경
2. 이연 사고사 이후 뉴스 멘트가 나올 동안에도 영상이 추가. 뉴스 멘트 후에는 캐롤이 흐름과 함께 바로 조명이 들어와서 이 부분에서는 더 이상 마가 뜨지 않게 수정되었다.
3. 남녀 오디션 대사 압축 (조선의 숙모다 등 삭제)
4. 연습실에서 화이 역성 드는 앙상블 대사 삭제
5. 국회의원 훈과의 대화 변경. "그래,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아들 딸 낳고 남편한테 사랑 받으며, 내가 이렇게 한순간도 못 잊고 산다는 거 알지 못한 채! 잘 살고 있겠지. 그러다가, 혹시 마주치기라도 하면 누구시더라! 하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 그게 뭐. 나 그냥, 그렇게 병신같이 살았어 그래." (낮공에서는 '병신같이 살았다'를 하지 않았다)
6. 훈과 관리인의 대화를 없애고 다만 훈이 매주 봉안당에 오는 걸 관리인의 혼잣말로 알 수 있도록 변경. 그런데 이 사실을 관객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가? 이걸 혼잣말로 남겨두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실이야? 그럼 그랬던 훈이는 왜 <거리에서>를 통해 이연을 정리하지?
7. <거리에서>에서 지욱의 등장 타이밍 살짝 밀림
8. 간직해온 사랑을 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듯. "가능할까" → 밤공에선 "할 수 있을까"
9. 밤공에서 12월 중간에 "이연아.."
10. 커튼콜 <다시 돌아온 그대> 추가.. 근데 이 때 무대에 불 좀 더 켜줘.. 어두워..


댓글 '1'
profile

연꽃

13.12.25

22일의 이연은 1막 엔딩에서 평상시 차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