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가 옥상으로 오르기 위해 등장할 때 조명이 늦었다. 무대가 밝아졌을 때는 그가 이미 계단을 모두 오른 후였어. 가만 보면 조명팀은 날마다 다르다. 2막에서 감독님이 앙상블 배를 콩! 밟아야 할 시점인데 그보다 일찍 암전해버리는 것도 그렇고. 조금 더 무대 위의 배우가 무얼 하는지 신경 써주었으면.

옥상에서의 "천잰가 봐~"에 오늘은 "어떡행~"이 돌아왔다. 악보를 내려다보면서는 "다 떨어졌네 씽.." 하고 자그맣게 투덜거렸고. 이연을 발견하고는 어제보다도 화들짝! 하는 몸짓이었는데, 이 움직임이 괜히 좋다.

아침 식탁에서 오늘은 손등으로 부리 청소를 했고, 담 넘는 장면에서 시끄럽게 구는 여일을 향해선 25일 밤공과 마찬가지로 귀를 후비고 나서 후~ 불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웃음소리가 더 컸다는 것? 오늘 객석은 거의 모든 웃음 포인트에서 반응했고, 웃음소리도 컸다. 인톡시에선 특히나. 무튼 여일에게 넌 안 힘드냐는 물음을 빙자한 핀잔 이후에, 오늘은 "말 진짜 많아~" 라며 재차 무안을 주었다. 가만 보면 여기서 시아준수, 꽤 진지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무안을 주는데 여일의 마음이 그런 거겠지. 그가 그렇게 벽을 쳐도 얼굴을 보면 마냥 좋은걸..☆

강의실에서는 커플 장기자랑 대회와 관련해서 이따가 이야기하자는 여일에게 계속 싫다고~ 안한다고~ 손사래를 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여일의 팔을 스윽 밀었는데, 여일이 막 황홀해하면서 지욱의 손이 닿은 자기 팔뚝을 잡고 웃었다ㅋㅋ 한 차례 그렇게 여일과 수다 아닌 수다를 한 후엔 잠깐 수업으로 돌아왔..지만 수업의 갈피를 찾자마자 얼굴을 가득 구기면서 입 모양으로 '지루해~' 하고 말했다. 그런 그를 놓치지 않고 여일이 지루하냐고 되묻자 지욱이 친절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지루해~ 하고 다시 대꾸해주었어. 이때의 고갯짓, 지루하다고 할 때의 입 모양, 시무룩한 얼굴의 삼 박자가 너무 귀여웠다. 게다가 오늘은 여일을 보면서! 쌍꺼풀을 그렸다. 여일이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동안 계속해서 여일의 정면을 향해 쌍꺼풀을 그려주는 그가 오늘따라 지나치게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 얼굴을 마주 보는 기분은 어떨까. 오늘은 사거리 대포에서보다도 강의실에서의 여일이 더 부러웠네. 아아, 쌍꺼풀을 그리는 동안 한 손은 뒷머리를 긁적긁적 대기도 했다. 그에게서 이런 사람 냄새 나는 잔 동작들을 보게 될 때마다 참 좋다.

이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반대의견을 피력하면서는 25일 밤공과 마찬가지로 내내 박자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들썩했다. ~믿고 있으니까요!의 어미는 점점 더 우렁차게 마무리되어 간다.

허밍에 들어가기 전, 나를 모르겠어요? 몸짓으로 대화할 때 여전히 기타 줄은 끊어질 것만 같다ㅋㅋ 오늘은 허밍을 하며 계단 끝으로 갔을 때 나나나나~에 맞추어 손가락으로 자기를 콕콕 찔렀다. 노래하느라 입술은 동그랗게 벌어져 있고, 두 눈도 둥그레져서 무척 열심히 자신을 어필하는 그는 볼 때마다 귀엽고, 유쾌하고, 설렌다..

이연의 후배에게는 오늘도 누구시죠? 대신 "후 아 유?" 하고 물었다. 기쁨의 노래가 절정에 달했을 땐 상체를 뒤로 젖히며 한 발로 막 발차기 같은 걸 했는데, 여기서 그의 동작이 격해질수록 좋다. 어떻게 격해져도 다 태가 나는 몸짓뿐이라. 이어지는 애드립은 "노래왕 선발대회? 1등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거.." 였는데, 오늘 여기서 마음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대>에서 시아준수 걸음걸이..... 양손으로 가방끈 꼭 잡고, 팔자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요 왜.... 시선은 이연에게 콕 고정해서, 한 손으로는 자기 가방끈과 이연의 가방을 동시에 움켜쥐고는 좋아라~ 하는 걸음걸이가 귀여워 죽겠잖아요. 마냥 웃느라 정신없어서 입 모양은 내내 예쁜 곡선을 그린 채로 고정인 것도 사람 힘들게 하고ㅜ

"느끼하다 미안해"는 오늘도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연의 추임새가 매번 들어간다. 느끼하다 (응) 미안해 (응). 개인적으로는 이 대사 느끼하지만은 않은데 ㅎㅎ

그리고 입맞춤이 근래 들어 가장 짧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가면서 훈에게 "좀만 늦게 오지"하고 덧붙였다. 이전에는 지나가는 말투로 가볍게 던진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어깨를 탁 잡고 쉼표를 분명히 찍으며 은근하게 말했다는 게 다른 점.

아, 그런데 전경들이 들이닥친 위급의 상황에서 이연이가 훈이형! 훈이형! 하고도 부르는구나. 지욱아! 만 신경 써서 들어서 몰랐다. 그런데 왜 훈이는 형이고 지욱이는 지욱인가요. 무튼 그렇게 이연을 보내고, 꼭대기 층에서 망연자실한 후에 오늘은 평소보다 빨리 일어나서 계단으로 내려갔다. 세트가 퇴장하기 전에 1층까지 다 내려간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이었던 듯.

눈 내린 겨울, 벤치를 향하여는 오늘도 가볍게 걷다가 총총총 뛰어와 앉았다. 여기서 이연과 대화할 때 층층 계단처럼 차츰차츰 잦아드는 그의 말투가 좋다. 대미는 "우리 헤어지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 우리 헤어지는 거냐는 문장이 만드는 동그라미 같은 발음도 좋고, 시무룩해서 순하디순한 말투도 좋고, 울먹울먹해서도 좋다. 2막에서 윤 감독님일 때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어느새 이렇게 평범한 대사로 진지한 감정 연기를 하는 것에도 자연스러운 솜씨를 보이는 그가 놀랍다.

무대 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그의 노래가 끝났을 때 들린 휘파람 소리.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안 그래도 오늘 객석이 웃음이 잦고, 컸는데 무척 신선한 반응의 연속. 시아준수도 들었을까.

2막에서 그가 "성태형!"을 찾아갔을 때, 두 사람이 포옹하는 순간의 암전이 조금만 늦어지면 좋겠다. 원래는 이렇게 빠르지 않았는데, 한 번 빨라지더니 암전 타이밍이 돌아올 생각이 없다. 암전이 너무 빠르면 감독님 실루엣도 보이지 않지만, 이어지는 화이의 오디션과도 마가 뜬다니까요!

사거리대포에서는 대화 흐름 상 술을 한 잔만 들이켰고, 호들갑 떠는 여일의 어깨 언저리를 가볍게 토닥토닥 해주는 것에 그쳤다.

아아, 그리고 사랑하는 <그날들>. 여기서 그의 잘생김은 아무리 말해도 모자라지 않다. 알딸딸한 기운에 살짝 풀어진 걸음걸이도, 낮고 깊어 섹시한 저음도, 눈물 맺혀 반짝반짝한 눈동자가 되어 겨울바람 속에서 헤어진 연인의 자취를 찾으며 아스라이 일렁이는 그 눈빛도.

오디션에서 화이 발견했을 때의 미묘한 표정 연기 역시 감탄스럽다. 놀라움과 벅참, 신기함, 믿을 수 없음 모두 한데 뒤섞인 오묘한 표정을 어떻게 그렇게 잘 소화하지? 이 모든 표정을 읽어낼 수 있게 하는 그가 놀라워.

개인 레슨 시간에는 오늘도 시선 교환이 이루어졌다. 오늘은 눈을 감고 턱을 살짝 내밀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쫓아와 봐"부터 '여기'가 잘 안 되는 화이를 위해 연주를 멈추고 일어설 때까지, 정말 치명적이에요.

애드립은 "헐크야?"로 되돌아왔고, 대신 왜 군인 말투로 이야기하느냐는 그의 물음에 어설프게 웃는 화이를 향하여는 "영구 소리를 내고 있어" 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화이의 말에 용기를 얻어 본격적인 가르침에 돌입해서는, 오늘따라 화이가 계란 쥐는 손 모양을 잘 따라 하지 못해서 감독님이 한 번 더 차근차근 "계란 쥐듯이" 하고 짚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벼르고 별러서 보았다. "턱도, 머리도" 하는 감독님 표정. 이 표정은 A열이나 그에 가까운 B열에서만 정면에서 볼 수 있어 그동안은 보지 못했는데 오늘 다시 보니 역시. 이런 것도 짚어줘야 해, 하는 투로 미간을 모은 얼굴이 섹시하기 그지없다. 화이의 턱과 머리를 짚고 굳어지는 자세도 멋있다.. 섹시하고.. 턱을 살짝 추어올리고 화이를 내려다보는 그 모습, 그 각도는 쭉 유지되면 좋겠다.

훈과의 대화에서는 약간의 수정이 있었다. 훈에게 화이를 소개하며, "이번에 나랑 일하게 된 친구야, 오디션으로 들어온." 하고 덧붙인 것.

대사의 수정인지, 오늘만의 연기 변화였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분명한 변화였던 건 화이와의 옥상 충돌에서. 어째서 자기가 주인공이냐는 화이의 물음에 "실력도~ 가능성도~ 그리고, '그래'. 아주 약간의 운도 따랐나 보다. 됐나?" 하고 '그래'에 쉼표를 찍음으로써 훨씬 섬세해졌다. '그래'에서 느껴지는 흔쾌한 어투는 꼭 마치 모종의 무언가가 있기는 했음을 아주 쿨하게 인정하는 것 같기도 했어.

아, 그에 앞서서 훈이 화이를 멈춰 세우니까 돌아선 뒷모습으로 초조하게 손가락을 책상에 딱딱 두드리는 건 오늘 처음 봤다.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이창용 배우와 화음이 잘 어우러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욱의 단독 넘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지욱이 가장 무너지는 순간에 온전히 그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싶다.

<거리에서>에서의 애드립은 그 아쉬움을 날려주는 강력한 한 방이었다. 25일 밤공에서의 애드립을 단번에 예열로 만들어버렸던 오늘의 거리에서.. 베이스를 부르는 훈과 복받치는 감정적인 애드립의 지욱. 극적인 대비를 통해 비로소 두 사람이 간직한 감정의 색채가 명료하게 구분되었다. 모든 음을 꾹꾹 눌러, 넘치는 감정을 절제하는 동시에 터트려내는 그가 신비로웠다. 용광로처럼 뜨겁고, 겨울바람처럼 한없이 시린. 온갖 세파 속에서 꿋꿋하게 정지시켜 왔던 지난 20년을 송두리째 무너뜨려야만 하는 지욱의 심정이, 그 노래 안에 전부 있었다.

그리고 엔딩. 오늘의 <12월>은 작별인사였다. 어제와 같이, 어제보다 더.

"가능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은 그가 문득 짓기 시작하는 미소는 쓰고도 달았다. 그는 점차 그 웃음을 통해 확연하게 말하고 있다. 아, 내가 그녀를 보내줄 수도 있게 되었구나.. 그렇게 된 거구나.. 그 아픈 기억도 이제는.. 신기하게도, 웃음에, 울음에 들썩이는 뒷모습으로도 이 말을 정확하게 하고 있다.

많은 말들과 감정들이 스쳐 간 후, 시작되는 <12월>은 그가 간직해온 사랑을 되새기는 순간이자 마침내 정리하는 순간이다. 사랑했던 기억, 잊어야 했던 기억, 그러나 끝내 잊지 못해온 세월 전부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래서 그는 <12월>을 부르며 울컥하기도 하고, 미어지는 가슴으로 울음을 터트려내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문득 문득 가슴이 벅찬 듯 아프게 미소 지어도 본다. 종내에는 울음에서 웃음으로 번지는 찬란한 사랑을 향한 그의 작별인사가 오늘의 <12월>이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올해의 지욱은 안녕이구나. 10주년도 훌쩍 지나갔네.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오늘에야말로 마음이나마 그에게 한가득 주고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애드립 덕분에 또 내가 선물 받은 기분이 되어 돌아왔지만.

축하해요, 그리고 또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