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신년부터 레전드를 경신했다.
아주 오랜만에 이연이 이별을 말하는 순간의 그의 표정을 보았다. B나 C구역에서는 이때 뒷얼굴이나 측면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라 상상을 덧대어야 했는데, 아.. 오랜만에 보니 이런 표정이었었나.. 이렇게 풍부한 아픔과 상처로 범벅이 되어가는 얼굴이었나. 낯설었다.
보온병을 열지 못한 그가 얼굴을 들었을 땐 양 볼 가운데를 관통한 눈물 줄기가 선명했다. 반짝반짝. 보통은 노래하는 동안 그 눈물 줄기가 마르는데, 오늘은 그 위로 자꾸만 덧흘러서 그럴 틈이 없었다.
사람들 틈을 헤매다 앞으로 나와 주저앉을 때 옆얼굴을 보게 되는 D구역에서는 그의 차오르는 눈물이 보였다. 왈칵왈칵. 참 많이 울었는데 반대로 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고 담담했다. 울음에 먹혀 흔들리는 것도 없었다. 이 점이 준과 가장 다르다. 철창 들리나요에서 그는 언제나 흐느낌이 새어나오는 대로, 울음이 노래를 잠식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지욱으로서의 그는 노래 속의 절규로 운다. 노래를 멈추고 흐느끼는 순간을 제외하면, 노래 자체로 울음을 표현한다.
오늘의 노래는 엎드린 울음이었고, 독백이었다. 폭발하는 동시에 가라앉아 침몰하는 그를 보았다.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아픔. 아이처럼 얼굴은 엉엉 우는데, 그 소리는 천만 갈래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질 정도니, 그건 또 아이처럼 우는 얼굴과도 꼭 어울린다.
화려한 폭죽을 뒤로 하고 벤치 앞을 가로지르는 그와는 눈이 맞았다. 그의 눈동자를 보면 황홀함에 노래를 잊게 되는데, 오늘만큼은 그의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무던히 애를 썼다. 독백 같은 울음도, 그의 시선도 모두 담아 잊지 않고 싶어서.
*
일주일 만에 보는 공연은 1막도, 2막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1막에서는 군대 장면 직후 교수님의 연설이 지욱과 이연의 편지 내레이션으로 대체되었다.
자잘한 변화도 적지 않았다. 일단 <스치다>에서 그의 허밍이 살짝 달라졌다. 조금 더 낮고, 짧은 단위의 '우우우-'로. 시아준수가 임의로 달리한 건지, 극 자체적인 수정이었던 건지는 한 번 더 봐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숙집 아침 식사 장면에서는 어째서 깨워주지 않았느냐는 하숙생과 주인 할아버지의 대사가 사라졌다. 대신 지욱인 왜 멍하냐? 하는 대사로 수정되어 하숙집 전체의 주목이 일시에 지욱에게로 쏠렸다가, 흩어진다. 수정 전의 대사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한 번쯤 지욱이 무얼 하고 있는지를 콕 찍어주고 넘어가는 게 좋았다.
강의실에서 여일과의 대화도 다소 수정되었다. "지욱오빠 요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하는 물음이 커플 장기자랑에 같이 나가자는 대사 전에 삽입되었다. 하숙집 아침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의실에서도 멍한 지욱에 집중함으로써 지욱이 이연에게 얼마나 몰두해있는지를 더욱 명확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여일과는 갈수록 친밀해진다. 퉁명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꾸해주고, 반응해주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축제 이야기는 '이따가 하자'는 여일의 어깨를 굳이 손으로 두드려서는 안 한다고~ 안 해~ 이렇게 못 박았던 건 물론이고, 여일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대어 쌍꺼풀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바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긴 했지만 이미 여일은 잔뜩 황홀해진 후고, 나는 한껏 부러워진 후고. 하품도 무척 성의 있었다. 몸을 거의 눕힐 듯이 뒤로 젖혀서 크게 하품 한 번,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는 자잘한 하품을 두세 번 정도 했다.
허밍할 때 이연 쪽 계단으로 나아가서는 기타 치는 시늉을 하고, 제 자리로 돌아와 서서는 손으로 콕콕콕 자신을 찍었다. 나나나~ 에 맞추어서. 허밍에 이어 <다시 또 스치다> 이후 앙상블과 함께하는 나긋한 허밍까지 모두 끝났을 때 그는 늘상 아스라이 웃어왔던 얼굴과는 달리, 오늘은 이연에게 인사를 건넬 때처럼 함빡 아가 웃음을 지었다. 으앙.
아, 축제 때 학교를 누비며 이연을 찾다가는 그만 넘어져서 뒤로 굴렀다. 깜짝 놀랐어. 근데 이게 앗 넘어졌어! 이런 느낌이 아니라 정말 뒤구르기를 하는 것처럼 너무 매끈한 연결동작 같아서 보면서 일부러 넣은 애드립인가? 싶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빠 몸조심 해요! 다치면 안 돼요.
이연의 후배에게는 오늘도 "후 아 유?"라고 말했는데, 바로 대꾸하지 않고 약간의 텀을 두었던 것이 누구세요? 라고 할지, 후 아 유? 라고 할지 순간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귀여웠어.
사라지려는 이연을 붙잡기 위해 "한잔할래?!"라고 말해야 할 타이밍에서, 오늘은 "잠깐만요!"라고 외쳐 버렸다. 그래서 뒤에 자그맣게 "한잔할래요?" 하고 덧붙였는데, 이연은 원래의 대사 대로 "할-래?!" 하고 정색해서 대사가 다소 엉킨 셈이 되었다. ㅎㅎ
<다시 돌아온 그대>가 시작하면서 가방을 주고받는 타이밍도 살짝 뒤로 밀렸다. 지욱이 다가서서 먼저 손을 내밀기 전에 이연이 걸어나가는 바람에. 사실 썩 좋아하는 연출은 아니었는데, 가방을 주고받으며 걷는 모습이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주고도 있었다는 걸, 이 타이밍이 밀림으로써 비로소 느꼈다. 그냥 나란히 걷는 것보다야 가방이라는 매개체를 주고받음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친밀함이 표현되어왔던 셈이니. 이 타이밍을 놓쳐서 어떻게 하려나 싶었는데 역시 순발력 능력자. 너무 자연스럽게 다음 소절인 '우리 헤어지지 마요~'를 부르며 팔을 뻗어 가방을 받아들었다. 시아준수는 정말 당황 같은 걸 하지 않아..
그렇게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이연 집 앞에서 마주 보며 노래 부를 때. 오늘 처음으로 동네바보에게 아는 척해주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노래하는 두 사람 틈으로 동네바보가 기웃거리자 이연과 나란히 동네바보를 향해 고개를 틀어서 봐주었어. 그리고 이때, 뒤편 담 위에서 훈이와 훈이 부모가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보았다. 여태까진 전혀 보지 못했던 장면이라 약간 충격이었다ㅋㅋ 정말로 시아준수만 봐왔구나 나..
입맞춤이 방어 당한 후, 이연의 손이 그의 얼굴을 기억할 때 그의 얼굴과 표정을 샅샅이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입맞춤이 방어 당한 것으로 인한 약간의 경직, 잠자코 대어주는 얼굴 가득 떠오르는 물음표, 얼떨떨한 듯하면서도 얼마간은 설레기도 하는 두 눈. B나 C에서는 뒷얼굴이나 옆면의 얼굴로만 보게 되니까, 오늘 다시금 제대로 보는데 새로운 기분이었다. 극 자체도 많이 수정되었지만 시야가 바뀐 것도 오늘 공연이 새롭다고 느낀 요인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이연의 사고 후 망연자실해할 때는 앞머리가 오늘따라 유독 헝클어진 탓에 완전히 강아지 같았다. 안돼, 안돼 하고 우는데 아 너무 처연하게 귀여워서ㅜ
이어서 2막의 변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일단 꼭 해야 할 말은, 오늘 왜 그렇게 아름다웠어요? 오늘의 윤 감독님은.. 음.. 뭐랄까, 처연한 보랏빛 향기가 느껴지는 남성미를 보았다. <그날들>에서 특히. 진심을 다해 아름답더군요. 새벽 마실 나온 요정이 여린 이슬로 엮어 만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부서지기 쉬운 단단한 아픔. 공허함을 연기처럼 겹겹이 쌓아둔 눈빛. 술기운에 흐늘거리는 팔다리까지.
게다가 <그날들>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가 교차할 때, 걸어오는 얼굴을 D구역에서는 정면으로 볼 수 있으니까 더 황홀해서..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혀 공허하고 나른하게 명멸하는 그 눈빛. 아아, D구역이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에 몰랐을까?
빠밤~ 하는 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그날들>, 그 순간에 맞추어 정면으로 몸을 트는 그는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홀로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거니는 모습은 언제나 슬프도록 아름답고.
<그날들> 못지 않게 설레는 건 개인 레슨 시의 감독님. 김예원 화이는 오소연 화이와는 달리 노래를 아주 망쳐서 부르지는 않는데, 그 덕에 감독님이 얼굴을 찡그리는 횟수가 줄어든다(아쉬움ㅎㅎ). "턱도 머리도" 직전, 엉거주춤한 화이의 자세를 보면서는 오늘 유독 한숨을 크게 '하아..'하고 내쉬며 자세를 고쳐주었는데, 피곤해 보이는 만큼 섹시했다. 감독님의 고충이랄지, 그런 게 느껴지는 순간이라 설레기도 했고.
애드립 포인트에서 오늘은 "세일러문이야?" 라고 했고, 왕년에 기타 좀 쳤다는 훈에게는 "기타 쳤었지~" 하며 맞장구 쳐주었다. 화이의 스마트폰을 집어들고는 어김없이 "마..녀?" 하고, 대체 이 뚱딴지같은 건 어디서 나온 걸까 하는 투로 읽었다.
또 기억에 남는 건 "누구시더라!" 하며 포효할 때 번뜩이는 눈동자. 옥상에서 화이가 "제가 그분과 그렇게 닮았나요?" 할 때 돌아서 있는 그의 잔뜩 열받은 표정. 꽉 다문 입술을 일순 으르렁 대면서 소리없이 화를 표출하는데, 그래 그랬었지. 이때 표정이 이랬었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D구역 만세ㅜ
그리고 2막에서의 가장 큰 변화. "간직해온 사랑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듯." 읊조린 후 "할 수 있을까?" 자문하는 대신 그는 훈의 편지를 펼쳐 든다. 훈의 내레이션이 이어지고, 이연이 훈의 부대로 보냈던 편지가 이어서 읽혀진다. 이연의 목소리와 함께 아련한 연결음이 흐르며 지욱은 서서히 이연의 기억을 되찾아 간다. 하나씩, 조금씩 떠오르는 그녀와의 시간들을 나타내는 것처럼 이연의 모습이 거울 속에 차례차례 나타나고(영상은 아직 그대로다), 시작된다. 지욱의 <12월>.
결말의 골자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지만 이 흐름을 세부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는 아직 혼란스럽다. 의문인 건, 지욱과 이연의 끝나지 않을 사랑이 주제인 거라면 화이는 왜 감독님의 1순위가 되고 싶다고 굳이 말하는 걸까. 첫공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생뚱맞다. 아직은 지욱과 이연에 대한 설명에 피드백이 치중되어 있지만 감독님과 화이와의 관계에서도 부연이 있었으면 한다.
1. 그날들 만세!
2. 거리에서 만세!
3. 안내노래에서 자꾸 웃음이 나와서 혼났다. 이걸 부르는 오빠가 겹쳐져서ㅋㅋ
4. 그리고 오늘은 "성태형!" 하며 오른쪽이 아닌, 무대 왼쪽에서 등장했다.
극이 수정된 부분
1. <스치다> 허밍 바뀐 걸까
2. 하숙집 아침에서 깨워달라는 학생과 동태찌개 대사가 사라지고 지욱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대사로 대체.
3. 군대 장면 이후 편지 내레이션 추가. 교수님 연설은 삭제.
4. 강의실에서 여일과의 대화 수정: "오빠 요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등.
5. 연습실 캐스팅 발표 장면 대폭 수정: 처음에 연습하는 부분이 대폭 축소 수정되고, 캐스팅 발표 이후 김노인, 도둑의 절규가 있은 후 화이의 캐스팅에 대한 반발하는 앙상블의 대사, 그리고 감독님 어딨느냐고 묻지 않고 화이가 문을 열고 뛰쳐 나가면 암전.
6. <거리에서> 지욱과 훈이 함께 마무리하는 것으로 수정.
7. 윤 감독의 공연 전, 화이와의 대화 전에 훈의 편지 도착
8. "할 수 있을까" 삭제
9. "간직해온 사랑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듯" 읊조린 후 지욱이 훈의 편지를 펼치면 훈의 편지 내레이션-이연의 편지 내레이션-<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