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공. 청년 지욱의 앞머리가 유난히 가지런했다. 자로 대고 반듯이 빗어놓은 것처럼. 그래서 더 어려 보였어. 그리고 무섭게 귀여웠다. 그 얼굴로 아침 식탁에서 입가에 예쁘게 곡선을 심어가며 몽롱해하는데.. 이런 말 다소 바수니 같지만 감동했다. 너무 예쁜 거야. 세상의 선함을 모두 그러모은 듯한 얼굴. 동그라미 가득한 이목구비는 신비로울 지경이라, 감탄 또 감탄하고 말았네. 심지어 그렇게 예쁘게 웃는 얼굴로 작정한 듯이 자꾸만 입술 사이로 혀를 빼꼼히 내밀어서.. 으앙 쓰러짐.. 밤공에서는 여기에 부리청소까지 돌아와서, 두 번 쓰러짐.

게다가 눈동자는 왜 그렇게 항상 빛이 나지? <스치다>에서는 사랑의 생기를 머금고 초롱초롱 빛나고, 하숙집 아침에서는 간밤의 꿈을 좇아 빛나고, <다시 돌아온 그대>에서는 더없이 행복한 빛으로 반짝반짝이고.. 기쁠 때뿐인가. 슬플 때, 아플 때는 또 그에 맞는 처연함과 애처로움으로 사람 마음을 옭아매며 빛을 낸다. 처연하고 나른한 <그날들>에서도, 공허하고 텅 빈 <거리에서>에서도.

*

<스치다>의 허밍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신년 첫공에서만 특별했던 걸까.

악보는 낮공도 밤공도 참 많이 날아갔다. 시무룩한 얼굴로 풀이 죽어서는, 특히 밤공에서는 다소 울상을 지어가며 "다 떨어졌네..ㅜ" 하고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2일 공연에서 종이가 거의 날아가지 않아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변화하는 그의 사소한 디테일이 못 견디게 좋다. 그의 순간적인 기지나 임기응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이런 순간들에서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살아있는 '진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탓에.

담 넘는 장면에서 여일에게 주었던 타박은 "말이 정~말 많네~". 낮밤 모두 귀를 후벼서 후~ 분 후 그렇게 덧붙였다. 억양이 너무 귀엽고 튀어서 계속 이거여도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여일아 넌 안 힘들어?" 할 때 무진장 성가셔하는 표정이 항상 설렌다. 으으.

강의실에서는 커플 장기자랑에 같이 나가자는 여일의 어깨를 톡 쳐서,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해 보였다. 낮밤 모두 그랬고 2일 공연에서도 그랬으니 앞으로도 계속 하려나. 입술은 뾰족하게 내밀고 두 눈은 힘주어 뜬 채로 강하게 나가는 그는 왜 짜증을 내는 얼굴마저도 귀엽지. 한 차례 한다 안 한다로 여일과 실랑이를 벌인 후, 낮공에서는 여일을 들여다보며 하품했고, 쌍꺼풀도 여일의 정면을 향해 그려보여서 여일이 빵 터졌다. 여기서 두 사람, 갈수록 꽁냥꽁냥함이 늘어간다ㅋㅋ 아, 지욱이 장기자랑에 안 나가겠다니까 여일이 "그럼 누구랑 나가는데?!" 하고 빽 소리 지르는 바람에 교수님에게 꾸중 들을 때. 꼰 다리를 바로 펴서, 양다리를 모으고 두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는 그의 정자세는 위험신호를 부른다.

밤공의 강의실은 더 활기찼다. 처음부터 발목은 물론 손목까지 까닥까닥 돌려가며 혼자 잔뜩 취해있었다. 커플 장기자랑 이야기에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얘 뭐야? 하는 표정을 짓더니, 여일의 어깨를 탁 쳐서 안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여일이 승복하지 않고 말을 잇자 몸을 홱 틀어서 두 손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하지만 여일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그의 한 손을 모아쥐곤 애원하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길게 하품을 하고 있던 그가 고개를 여일 쪽으로 돌려서 여일의 코앞에서 앙! 깨무는 시늉을 했다. 어림도 없어, 하는 느낌으로 앙! 헉.

이어서 쌍꺼풀도 그려보고, 하품도 해보다가 마침내 말하는 사람이 이연임을 알아본 그. 흥분해서 일단 "저기요!" 불러세워 놓고 할 말을 찾느라 또르르 굴러가던 눈동자는 어찌나 크고 예쁘던지. 좌우로 또르르~ 구르다가 말을 더듬으면서는 천장을 힐끔힐끔 보는데, 분명 연극적 색채도 있고 풋풋함을 의도한 과장스러움도 있는데, 그럼에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 모습이 신기했다.

이연이 못 본체하자 보디랭귀지를 하는 동안 밤공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나 기억나?' 이런 말소리가 들렸다. 손을 머리께로 올려 빠르게 그으며 '옥상'을 표현했다가, 큰 동작으로 기타 치는 시늉을 하는 동시에. 작지만 분명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우왕. 처음이었어. 허밍을 하면서 이연 쪽 계단으로 가서는 나나나~에 맞추어 자기를 콕콕 찍었다. 낮공에서는 제 자리로 돌아왔을 때 기타 치는 시늉을 했는데 두 손을 휘르르 한 바퀴 돌려낸 후에 기타 잡은 모양새를 취했다. 무척 멋들어지게. 이때 기타 장단에 맞춘 나나나는 다른 때보다 높은 톤이어서 웃음을 유발했다.

축제 이곳저곳을 누비며 총알탄처럼 달릴 때는 잔뜩 나온 부리를 보았다. 꼭 '우쒸' 하는 입 모양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고 달리고 있었어. 아, 너무 귀여워!

게시판 앞에서 이연의 후배에게 낮공에서는 오랜만에 "누구세요?"였다가 밤공에선 다시 "후 아 유?"로 돌아왔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해명하는데 원래는 저 사실 잘 몰라요... 를 밤공에선 "저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 쪽에 대해선"하고 말해서 심각하게 귀여웠다ㅜ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밤공에서 계속 정말 잔망잔망했다... 후... 이연의 '우리'라는 말에는 두 손을 꼭 붙잡고 황홀해하며 '우리..?'하고 되뇌였는데 너무 귀여워서 객석에서도 막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들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다가는 교수님과 살짝 부딪히는 바람에 객석이 다시 빵 터졌고, 마무리는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노래를 마저 불렀다. 아주 흥겹게. 뒤에서 이연이 보고 있는데도 한참이나. 나는 이 자세가 그렇게 좋더라. 꼭 로미오 같아.

그리고 대망의, 승리의 밤공! <다시 돌아온 그대>를 부를 때. 팔자로 아장아장 이연 따라 걸으면서 주먹으로 눈을 씻던 시아준수.. 느닷없는 귀여움 어택에 내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헐.. 주먹으로 눈 씻기를 두 번이나 했는데, 아 이거 정말 곤란하게 귀여웠다. 너무 귀여웠어. 아직도 생각나.. 눈가로 흐른 땀을 닦아내는 것 같았는데, 굳이 주먹을 쥐어 손등께로 눈을 비비면 으.. 아.. 후..

한 달 후, 4층. 멋진 멘트를 하고 나서는 항상 "느끼하다 (응) 미안해 (응)"으로 수습해왔는데 낮공에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토나올 뻔 했어.."ㅋㅋ 그리고 여기서, 훈이 들어왔을 때 가장 어색해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지욱인 것 같다. 기타를 붙잡은 손이 가만있질 않고 자꾸 막 위를 잡았다가, 아래를 잡았다가, 기타를 돌려 잡았다가 엄청 부산스럽다. 그게 또 귀엽지만.

그리고 이별. 낮공도 밤공도 이연과의 대화에서 묻어나는 감정이 참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이연이기에 차오르는 반가움을 눌러 조심스러운 인사말로 대신하는 그를 보며 그가 얼마나 조심조심 소중하게 이연을 대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근사근하고 조심스러운 말투가 당장에라도 신기루가 되어 사라질지 모르는 이연을 붙잡아두기 위해 전력으로 애쓰는 것 같았다. 특히 "우리 헤어지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 하고 물을 때 '거야?' 끝에 따라붙는 이응 발음은 너무 순하고 애처로워 마음이 아리다. 이연이 떠난 후 동그랗게 처져서 우는 어깨와, 사람들 틈을 헤매고 나와 주저앉을 때 땅을 짚었다가 놓았다가, 결국엔 어쩔 줄 모른 채 오므라드는 두 손도.

2막, 낮공에서는 오랜만에 김성태 차장님! 밤공에서는 다시 성태 형! 이었다. 특별한 게 있었다면 낮공에서 퇴장하면서 성태와 손을 맞잡고 흔들흔들했다는 것ㅎㅎ 암전이 빨라 그의 기막힌 실루엣을 얼마 보지 못하는 건 여전히 불만스럽다.

사랑하는 <그날들>. 그가 '부질없는 아픔'을 노래하는 부분이 되면 항상 가슴이 저민다. 타박타박 힘없이 나른한 걸음걸이와 많은 것을 내려놓은 듯 처진 어깨로 그는 참 많은 것을 표현한다. 무대 위에선 보이지 않지만 겨울바람 사이로 흩뿌려지는 그의 공허한 입김도 선명하게 그려지고..

2막과 윤 감독님, 그리고 오소연 화이가 만났을 때 못견디게 좋아지는 장면은 둘이다. 하나는 오디션에서 감독님이 몸을 기울여가며 화이를 들여다보면, "궁금해져요~" 부르며 검지를 머리께에 대곤 나란히 갸웃하는 화이. 다른 하나는 개인 레슨에서의 시선 교환. 이 두 장면이 발하는 소탈한 사랑스러움에 마음이 마구 간지러워진다.

개인레슨의 애드립 포인트에서는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밤공의 "후레쉬맨이야?" 첫 등장이다. 반가워요ㅎㅎ 이상한 소리로 웃는 화이에게도 밤낮 모두 한 마디 씩 해주었다. 낮에는 돼지 소리를 내고 있어, 밤에는 영구야 뭐야. ㅋㅋ 개인적으로는 밤공의 "영구야 뭐야"의 애 뭐야? 같은 시니컬한 말투가 조금 더 설렜다. 아, 그리고 낮공에서는 화이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마녀가 아닌, "사..탄?"이라고 읽었다. 히어로 말고 악당도 퍼레이드로 들을 수 있게 되려나ㅎㅎ

이연의 죽음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폭발하는 대사처리는 첫공 때도 깜짝 놀랐는데 (누구시더라!!) 갈수록 좋아진다. 초반에는 누구시더라!!에 가장 강조점을 두어 폭발했다면 오늘은 남편한테 사랑받으면서!! 잘 살고 있겠지!! 에서부터 강하게 폭발하면서도 억누름이 묻어나는 감정 표출을 보여주었다. 꾹꾹 눌러 담으며 힘겹게 뱉어내는 최면. 이때의 대사는 다 아리지만, 그가 '남편한테 사랑받으면서' 라는 부분을 힘겹게 토해낼 때 가장 먹먹하다. 정말로 이연과의 마지막 만남을 '이별'로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기가 아니어도 좋으니, 다른 사람의 아내로서 행복해도 좋으니 살아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서. 그렇게까지 해서 20년을 시간도 기억도 슬픔도 외면하고 억눌러 온 그가 너무 슬펐다.

옥상 충돌에서는, 밤공에서 "그래.. 아주 약간의 운도 따랐나 보다 됐나?"하고 '그래'하며 찍는 쉼표가 돌아왔다. 냉소적이면서도 화이에게 수동적으로 벽을 치는 그의 면면이 돋보이는 쉼표라서 돌아와 기뻤다. 낮공에선 그게 지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대사가 살짝 엉키며 "그게무슨지금(빠르게 연이어서) 뚱,뚱딴지같은 소리니."가 되었는데 바수니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얼마간의 변수가 생기면 이게 이렇게나 좋은 거지. 하하.

그리고 사소하지만 사소할 수 없는 변화. 옥상에서 혼자 남아 울 때, 울음이 옅어졌다. 초반 공연에선 기침 소리가 섞인 듯한, 때때로 격정적일 정도로 토하는 울음이었는데 어제오늘은 옅은 흐느낌이었다. 시달린 마음으로는 울 기력조차 없는 걸까.. 사그라지는 울음소리가 격정적일 때보다 더 처량하게 느껴졌다.

<거리에서>는 26일과도 달랐고, 2일과도 달랐다. 애드립이 처음 추가되었던 25일 밤공 이후로 매번 달라지고 있는데, 오늘은 '머나먼' 부분을 바꾸어 불렀다. 원래 부르던 방식이 머↑나먼↑이었다면, 오늘은 머↓나↑먼↑으로. 그대 모습이 잊혀져 간다는 소절에 이르면 꼭 페이드아웃 버튼을 누른 것처럼 폭발하던 성량이 잦아들고,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은 그가 된다. 높고 옅은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시간의 붕괴. 표현기법 중에 비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소리를 소거하고 영상에만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거리에서> 전반에서 터트려지던 절망감이 마지막 소절에 와서 잦아들며 처연히 흩어지는 목소리는, 아, 세 번째 들어도 감탄스럽다.

엔딩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 말할 수 없다. <12월>로의 연결이 더 자연스러워졌다는 느낌은 들지만, 글쎄. 알쏭달쏭하다. 이연의 편지 중 '죽어서도 잊지 못할 감정'이라는 말이 극에서 주는 암시 같기는 하나 뭔가가 분명하지 않다. 그 뭔가가 뭔지를 모르겠다.

다만 밤공의 <12월>. 훈의 편지를 보면서 하나씩 기억을 떠올려 가며 살짝 살짝 웃던 얼굴이, 이연의 편지를 집어들고서부터는 아련하고 애틋한 웃음으로 변해가는데. 우정에서 사랑의 카테고리로 넘어가며 색채를 달리하는 얼굴이 눈에 띄게 섬세하고 감성적이었다. 내게까지 직격으로 전해지는 그 안의 변화에 마음이 다소 울렁거릴 정도로. 무대 앞쪽으로 걸어 나와 고개를 올려드는 얼굴에는 눈물기가 촉촉했다. 눈물방울이 박힌 두 눈이 출렁였지만 흘러내리진 않았고, 대신 그가 소리죽여 훌쩍이기 시작했다. 뱉어내는 흐느낌이 아닌 잔잔한 훌쩍임은 처음이었다. 조용히, 그리고 소리 없이 울음기를 삼키는 모습이 깊이 박혔다.

의연하게, 그리고 어른스럽게 이연을 향한 20년 세월 속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그는 처음이라 멍하니 보는데, <12월>이 시작되고 노래를 부르며 점차 20년 전 청년 지욱의 모습이 그 위에 덧칠되어갔다. 또렷해지는 흐느낌, "이연아.."라는 짧은 한 마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면서 네모나게 처진 입꼬리, 잔뜩 구겨진 미간.. 반짝반짝 글썽이는 얼굴.. 겉모습은 윤 감독님이나 알맹이는 이십 대와 사십 대를 부유하는 애달픈 영혼이 되어 그가 이연을 안았다. 이연의 환상과 이별하던 때처럼 떨리는 두 팔을 조심스럽게 뻗어, 이연의 뒷목과 머리칼을 부드럽게 그러쥐며 꼬옥.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어 다행인 한 가지는, 최후의 순간 정면을 향해 천천히 몸을 트는 그의 얼굴에 울음과 함께 옅은 웃음이 자리하고 있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