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이다. 낮공이 세미막공 특유의 조화로운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면, 밤공에는 막공의 특별함이 있었다. 낮공도 그랬지만 밤공에선 그의 텐션이 참 높았다. 1막은 그야말로 나는 듯했다.

낮공이 모든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정석 그대로의 완벽함이었다면 밤공에선 애드립이 봇물 터지듯 했다. 몸 상태의 좋고 나쁨을 떠나 그것 자체를 뛰어넘은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천잰가 봐~ 어떡행~"이 밤공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남다른 기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떨어진 악보를 내려다보면서는 "또" 떨어졌네.. 하며 시무룩해졌다. 다 떨어졌네라고 한 적은 많아도 '또' 떨어졌네라고 한 적은 없어서 새로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 짧은 한마디로 지욱이 종종 옥상에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곤 했구나 싶기도 하고, 정말로 '또' 떨어진 것이기도 하니까ㅋㅋ 이연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깜짝이얏!" 하고 중얼거렸는데 이렇게, 놀라는 동작뿐만 아니라 육성도 함께 뱉어줄 때 왠히괜지 더 좋다. 이어서 제가 또 이렇게 큰소리로 노래하면 또 올라오시나요? 라면서 기타 치는 시늉을 할 때, 낮공에서 유독 몸 전체를 써서 들썩들썩했다. 이 동작은 날이 갈수록 크게 리듬을 타는데, 낮공에서 유난히 컸다. 보고 있으면 웃을 수밖에 없게 하지, 사람을.

하숙집 아침. 낮공에선 부리청소를 살짝만 한 대신 인중을 슥슥 긁었다. 꼭 다람쥐처럼ㅎㅎ 밤공에선 쭉 내민 입술을 손등으로 가볍게 훑어주었다.

담 넘다가 들킨 후, 여일과의 대화에서도 자잘한 대사가 무척 많았다. 낮밤 모두 담을 넘다 들킨 직후에, 계단을 내려오면서 "애 떨어질 뻔했네" 하고 덧붙였고, 이어 원래는 검지를 입에 대며 쉿쉿쉿쉿~ 했다면 오늘은 "왜왜왜왜" 하고 다급하게 여일에게로 달려갔다. 손주 손녀 모두 미국에 있다고 하자 밤공에선 "미국? 불효자식들.." 이라며 구시렁거려서 좌중을 웃게 했다. 시끄럽게 이 말 저 말 늘어놓는 여일을 향해선 귀를 긁적여 한 번 후 분 후, 낮공에선 "말이 점점 많아져~" 하고 타박을 주었고 밤공에선 "수다맨이야, 뭐야." 라고 했다. 후후.

강의실에서의 그는 언제봐도 참 좋다. 매번 다르기도 하지만, 매번 같아도 매번 좋을 것임을 안다. 청년 지욱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온통 느낄 수 있어서도 그렇고, 일상적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도 좋다.

그런데, 밤공에서. 시아준수. 대체 무슨 표정을 지었던 거예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원래는 두 눈을 반짝였다가, 가늘게도 떴다가 하며 몽롱히 웃는 얼굴로 황홀_황홀한 표정을 주로 지어왔는데 밤공에서, 그가 '앓았다'. 정말로 끙끙거리면서. 예쁜 미간에 자꾸만 올근볼근 파이는 주름이 빗살무늬처럼 그려지며, 말 그대로 내내 앓았어! 으으.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꼭 <이렇게 사랑해본 적 없죠>와 같은 사랑의 찬란함을 노래할 때처럼, 그의 얼굴 위로 돌연 강렬한 감정이 떠올랐다가 물결처럼 부드럽게 스며들어 갔다. 아.. 시름시름 예쁘게도 앓던 그 얼굴. 아...

그렇게 앓는 동시에 몸을 흔들흔들하며 한숨을 내뱉기도 하다가, 커플 장기자랑 문제를 두고 오늘 역시 여일과 옥신각신했다. 그가 제법 정색을 해가며 안 한다고 피력했음에도 여일이 포기하지 않자 귀를 막으며 몸을 홱 틀어버렸는데, 낮공에선 여기에다 여일을 반대쪽으로 스윽 밀치는 것도 한 번 했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저쪽이나 보라는 듯이. 하지만 여일은 완강하고, 그는 조금 더 피곤해지고. 결국 그의 필살기가 시전되었다. 여일의 코앞에서 쌍꺼풀 그려 보이기! 이 필살기는 항상 먹히는데, 황홀함에 여일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홀가분해진 그가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서는, 가방 위로 쓰러져 하품을 했다.

밤공에선 귀를 막은 채로 '아아아아' 하며 들리지 않는 척을 하다 여일이 계속 콕콕 찌르며 건드리자 하품하던 얼굴을 여일 쪽으로 틀어서 쭉 들이밀었다. 3일에 그랬던 것처럼 앙! 물지까지는 않고. 이건 또 다른 의미에서 필살기인데, 지욱선배의 다양한 필살기 릴레이를 응원합니다(☆) 이어서 마무리는 쌍꺼풀+뒷머리 긁적긁적 콤보였다.

이연을 발견한 후 보디랭귀지를 할 때는 또 목소리가 들렸다. 밤공에서 무척 또렷했던 작은 속삭임. '나 기억나, 나? 옥상에서~'. 낮밤 모두 허밍 도중 톤을 높여 강하게 '나!나!나!'하고 어필했다. 보채는 것처럼. 낮공에서 이연 쪽으로 갔을 때 나나나, 나!나! 했다면 밤공에선 두 팔을 벌렸다가 자기자신 쪽으로 모으면서 나! 나! 나! 하고 썽을 냈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나! 할 때는 자기 자신을 콕 한 번 찍어 더 강조했고. 원래대로 노래하는 것도 좋고, 이렇게 끊어서 강조하는 것도 좋다. 버럭!과 앙탈의 경계를 미묘하게 넘나드는 그의 경쾌한 자기 어필ㅎㅎ 귀여워도 너무 귀여워.

그리고 정말 심각하게 귀여웠던 것. 밤공에서, "뭐 상관은 없어요~" 하며 가방끈 고쳐맬 때... 두 주먹이 동시에 가방끈을 위아래로 매만지며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잡았다 놓았다 하는데 입술을 축이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을 때랑 비등한 귀여움이다. 아아. 두 손을 가방끈 위에 나란히 얹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귀여움 허용한계에 도달하는데 그 상태로 걷거나 손을 꼼질거려 움직이면 진짜 죽음..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면서는 올챙이송을 추는 것처럼ㅋㅋ 한발씩 뒷발을 차며 뒤로 갔는데 이건 귀엽기도 귀여웠지만 멋있었다. 엣지를 쓰는 것처럼 몸 중심이 기울어져 있는데도 움직임이 거침없고 사뿐했다. 그러다 이연을 발견하고는 낮공에선 처음으로 "수, 수요예배?"를 읽었고 밤공에서는 "루,루키 밴드동아리? 노래왕 선발대회?"를 읽었는데 뒤이어서 아씽...ㅜ 하며 시무룩해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아아, 밤공에서는 가방 받는 타이밍이 돌아왔다. 낮공에서도 두 번째 파트를 부를 때서야 건네 받았는데 밤공은 처음부터 제때 받았다.

그리고 이연을 데려다 준 후 돌아서서, 훈과 재회할 때 음영진 몸선이 어쩜 그렇죠...? 어둠이 내린 후 돋보이는 그의 몸매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 여기와, 장례식, 그리고 2막에서 성태와 재회할 때 이렇게 세 번인데 오늘은 유독 이때 그의 다리에 시선을 빼앗겼다. 얇고 곧은 다리에 자그맣게 톡 튀어나온 무릎, 옹골진 골반..ㅜ.. 부츠를 신지 않아서 그럴까. 오히려 샤죽음 때보다도 더 그의 다리에 시선이 간다.

4층에서도 낮밤 모두 애드립이 있었다. "어우 느끼하다. 미안해. 나도 토할 뻔했어."가 낮공이었다면 밤공에선 미안해가 빠지고 "느끼하다. 나도 토할 뻔했어." 하며 수습했다. 물을 가지러 가면서 훈의 어깨를 툭 친 후, 씩 웃어 보이는 얼굴은 또 어찌나 호쾌하게 훤칠한지... 훈이라도 될 걸 그랬어.

그리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요즘은 재회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 맥을 못 추겠다. 어쩜 이러지. 나는 오빠가 대화, 그러니까 대사에서도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를 훌륭하게 그려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그대>에서의 그가 그다운 방식으로, 예의 찬란함으로 사람을 울린다면 여기서는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슬픔을 쓴다. 대사로, 떨리는 말투로, 연기로. 노래 없이도. 적극적으로 이연을 붙잡지도 못하고, 대화하는 내내 조심스럽기만 한 그가 참 아프다.

낮공에서는 노래가 평소보다 담백한 편이었다. 흐느낌보다 노래로 삼켜지는 울음이 더 많았다. 독백 같고 넋두리 같았던 그의 노래... 낮공이 고요히 흐르는 호수 같았다면 밤공은 폭포수였다. 거의 정반대의 노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노래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랬다. "아니, 이제 우리 안 헤어져"하고 이연의 말을 되받을 때, "아니"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에 귀가 쫑긋 섰다. 애원하고 매달리던 그 두 음절. 제발, 하고 말하는 것처럼.

그뿐이 아니었다. <너무 아픈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르면서는 노래를 멈추고 흐느끼는 순간을 제외하면, 노래와 흐느낌이 한데 섞여든 적은 없었는데, 사람들 틈을 헤매고 나와 흐느끼며 노래할 때 처음으로 그의 노랫말이 울음에 먹히다시피 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노래가 울음으로 스러지는 것도, 노래가 흐느낌에 먹혀들도록 그가 내버려둔 것도 샤지욱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삶의 첫 이별인 양 그가 울었다. 눈물로 반짝반짝한 얼굴. 이연이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자 할 때는 아이처럼 고개를 가로저으며 완강히 버티던 모습. 최후의 고음에서 새하얀 조명을 받으며 처절하게 흩뿌려지던 절규. 생생하게 와 닿는 그의 고통이 깊고도 처염했다.

*

2막, 평소 끝을 올려 물음이 되었던 "이연아..?"가 밤공에서는 끝을 내려 나지막한 부름인 "이연아.."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도 좋아하는 터라 반가웠다. (앞으로도 반반씩 나눠서 하루는 올리고 하루는 내려주면 좋겠다ㅎㅎ) 혼란스러움에 머리를 틀어쥐면서는 낮공, 밤공 모두 "아니야.. 아니야.." 중얼댔는데 밤공에서 더 확연히 들렸다.

성태와 재회하면서 그를 부르는 호칭은 낮밤 모두 "김성태 차장님!"이었다. 다만 낮공에서는 처음 부름에 성태가 응답하지 못한 덕에 “김성태 차장님~” 하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암전이 다소 늦어서 그의 실루엣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다는 기쁜 기억. 밤공에선 칼같이 암전 타이밍이 돌아왔지만..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사거리 대포에선 언제나처럼 여일의 활약이 컸다. 낮공에서 여일이 격한 반가움을 표출하며 그를 팡팡 때리자 팔자 눈썹으로 웃으며 맞은 부분을 슥슥 문지르는 그는 참 순하다. 뺨과 목덜미를 감싸 쥐는 손길도 피하지 않는다. 얼굴을 바싹 붙여 눈썹이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더 잘생겨졌네? 라거나, 눈썹 다듬었어? 눈이 참 예쁘네 등등의 이야기를 해도 시선을 피하거나 몸을 빼지 않는다. 때때론 웃으며 여일의 뺨을 마주 감싸주기도 하는데, 낮공이 그랬다. 흑흑.

그리고 밤공도. 낮공이 여일의 두 볼을 슬며시 터치하며, 그 자신의 뺨을 감싸 쥔 여일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느낌이었다면 밤공에서는 극도로 흥분한 여일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가볍게 톡 친다는 느낌으로 감싸 쥐었다. 병나발을 부는 여일을 보면서는 못 말려~ 하는 얼굴이 되어 웃다가, 으이그! 하는 듯이 등을 콩 때리기도 했고. 아, 그리고 병나발 부는 여일 옆에서 자신의 잔을 원샷하는데, 허리를 꺾어가며 술 털어 넣는 동작 설레요...

이어지는 <그날들>. 사랑하는, 어김없이 그림과 같던 <그날들>.

시아준수 갈수록 얼굴도 분위기도 그 둘레의 아우라마저도 더더 잘생겨지는 거 알아요? 왜죠... 시간을 멈추어 놓은 지욱으로서 무르익어간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그의 공허함과 텅 빈 마음,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그로 인해 벽을 치는 태도가 까슬까슬한 2막의 얼굴과 참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사실 그는 결코 사십 대로는 보이지 않지만, 1막과 2막 사이에 그가 형성해놓은 간극만큼은 또렷하게 전달된다.

비틀리는 걸음걸이도, 터덜터덜 늘어지는 어깨도 그가 만들고, 그가 갇혀버린 시간 속의 그를 형상화한다. 가장 아프고도 아름다운 모습은 목적지를 잃어 어느 한 곳에 고정된다는 것이 무의미한 시선이다. 그 예쁜 눈동자로 담는 세상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공허감, 상실, 그리고 단절. 또 겨울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이 겨울의 것이기보다는 시간을 잃어버린 그 해의 것이다. 어쩌면 그 해에 닿고자 하나 닿지 못한 채 시간의 미아가 되어버린 목소리일지도 모르고. 분명한 것은 그의 현재는 타인의 현재와 분리되어 있단 사실이다. 굳어버린 그리움은 성태나 여일, 행인들의 시간과 그의 시간을 단절해버렸다. 그가 간직한 아픔과 너무도 동떨어지는 밝은 분위기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는 그래서 더 쓰리다. 끝끝내 <그날들>로 추락하고 마는 순간의 그는 그래서 더 아리고.

화이를 발견하고, 그녀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눈 속에 번져가는 감정-놀라움, 기쁨, 당혹, 혼란스러움은 성태나 여일을 향한 것과는 다르다. 과거의 그물을 걷어내지 못해 흐려져 있다 해도, 그것은 진짜다. 유일하게.

그의 얼굴로 스며들기 시작한 '진짜' 표정. 그것은 생기. 그러나 오디션에서 화이를 보고 놀라고 믿기지 않아 하는 얼굴에 감도는 생기는 강의실에서 이연을 보고 놀라고 믿을 수 없어 했던 얼굴의 것과는 다르다. 더는 그때와 같이 새뜻하지도, 활달하지도 않고, 투명할 정도로 즉각적이지도 않다. 대신, 이연의 부재가 남긴 응어리만큼의 처연함과 간절함이 그 자리에 있다. 1막이었다면 곧장 다가서서 말을 건넸을 그가, 2막에서는 조용히 몸을 기울여 관찰하는 조심성과 소극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 화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스탭들의 보는 눈이 있는 공간에서 서슴없이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모습은 강의실에서 노래하던 그때와 꼭 같다. 그의 본모습이 여전히 그 안에 남아, 이연과 닮은 화이를 향해 발현되는 것을 보는 일이 언제부턴가 참 먹먹하다.

개인 레슨에서의 까슬한 말투도 사람을 앓게 한다. 아려서도 앓고, 좋아서도 앓는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벽을 치는 그는 일단 섹시하다. 냉랭하기도 하고, 쿨하기도 한 말투나 무심한 시선까지 전부다. 겉으로 보면 화이보다 훨씬 어른이고, 감독님이고, 선생님인데 묘하게 화이보다도 훨씬 방어적인 그를 보면 기분이 말랑말랑해진다. 연기적인 면에서는 화이를 지도할 때, 점점 더 능숙하고 편안하게 구사하는 까슬함 때문에 멋있음이 배가 되어간다. 리드하는 윤 감독님 정말 머시스시세요ㅜ

더불어 애드립의 온상지라는 즐거움도 있는 레슨 시간ㅎㅎ 그쪽 어깨도 펴보라니까 돌리는 화이에게 잠깐 침묵했다가 대체 얜 뭐냐는 식으로 "돌리지 말고."라고 덧붙였고, 두 팔을 감정에 맞는 모양으로 편하게 하랬는데 오히려 더 힘이 들어가는 화이의 자세를 보면서는 "아이언맨이야?" 하고 말했다. 이어서 편하게 가르치셔도 된다는 화이의 말에는 "무슨 말이야?”하고 되묻는 말투가 낮공에서 조금 달랐다. 평상시에 어미를 올려,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있는 그대로의 물음이었다면 오늘은 어절부터 어미까지 동일한 높이로, 얘 뭐래니 이런 뉘앙스였다. 뭐라고 하나 두고 보자 이런 느낌으로. 한편 밤공에선 "웨딩 피치야?"가 돌아왔고, 군인 말투를 하는 화이에게 "남자야, 뭐야."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밤공에서 훈과 대화하다가, "자네도, 조심하게.” 할 때의 말투가 살짝 달랐다. 보통은 좀 더 느리게, 약간만 더 어른스러운 투인데 오늘은 목소리 톤 자체를 낮추어서 어르신 흉내를 내는 것처럼 말했다. 기타 좀 쳤다는 훈에게는 웃으며 "너 기타 쳤었지~" 하고 맞장구 쳐주기도 했고.

화이의 핸드폰을 집어 들면서는 낮밤 모두 "마녀..?" 하고 읽고,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이건 대체 어디서 나온 물건이지, 이런 뉘앙스로 "마녀???" 하고.

옥상에서의 울음은 확실히 옅다. 그리고 요즘은, '이를 악 물고' 운다. 흐느낌이 새어나가는 걸 용납치 못하겠다는 듯. 여기서 울면 이연의 죽음을 인정하는 거라는 듯. 뭔가 부여잡는 느낌으로 감정을 밀어내는 것처럼 운다.

그리고 <12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12월> 모두 오늘은 그보다 내가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전자는 그의 대사 연기 때문에, 후자는 편지 내레이션과 그의 표정 때문에… 아무리 봐도 이연의 편지를 읽으며 울컥하는 시아준수는 진짜 울음을 참는 얼굴이다. 훈의 편지를 읽으면서 애틋하게, 또 슬며시 피식피식 웃는 것과 달리 이연의 편지를 집어들 때부터는 슬픈 표정을 연기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마구잡이로 얽혀드는 감정 탓에 표정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으로 코를 훔치는 행동도 여기서가 유일하다. (물론 요즘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후반부에서도 콧등을 훔치긴 하지만.)

그 얼굴 위로 아련한 연결음과, 이연의 모습이 나타나고, 12월의 도입부가 흐른 후 흩뿌려지는 그의 첫 소절부터는 울컥함에 막 눈물이 났다. 힘을 빼고 부르는 12월 앞부분에서 그의 공허함, 쓰라림과 같은 덩어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밤공에서는 특히 그가 가성과 진성을 조화롭게 배치해 쓰는 방식이 확연하게 들린 탓에 더욱 섬세한 느낌을 주었다. 한 음 한 음 공들여 노래하는 그는.. 정말로.. 하얗게 스러져 가는 느낌을 주어서.. 부서질 것처럼,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처럼 노래하는 그가 온몸으로 마지막임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3일 후기에서도 썼지만 <12월>을 부르며 시아준수가 윤 감독님에서 청년 지욱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언제봐도 감탄스럽다. 그가 말한 것과 같이 2막의 지욱은 사십 대의 윤 감독이라기보다는 이연을 잊지 못하는 윤 지욱이지만, 그래도 이십 년의 간극을 간직한 또 다른 지욱인데, <12월>을 부르면서는 그 모습에서 이십 년 전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고 만다. <12월> 중간의 "이연아..” 하는 외마디 흐느낌은 두 지욱이 교차하는 순간이자, 절정이다. 밤공에선 특히나 두 번 "이연아.. 이연아.." 하고 불렀는데.. ㅎㅎ..ㅜ..

사실상 디셈버 시즌 1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본 것만 같은 날이었다. 마지막다웠다. 휴연한 지금 16일을 기다리는 기분은 꼭 파트 투의 첫공을 기다리는 느낌이다. 남은 이레, 그에게 건강하고 편안한 시간이기를.


극이 수정된 부분
1. 편지 내레이션 영상이 애니메이션으로 대체. 그런데 실루엣이 시아준수를 전혀 닮지 않은 탓에 몰입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