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완전했다. 개인적으로도, 시아준수적으로도.

오늘 공연의 수훈을 어느 넘버에 주어야 할까. 대단히 어렵다. 무엇 하나 기억에서 희석시키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녹슨 거 보라며 오래된 기타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처음의 그부터, 끝까지.

<그날들>부터 할까.

마지막 소절을 앞두고 선명한 흐느낌이 섞여들었다. 없던 일이다. 항상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어깨로 자조하며 불러온 넘버였다. 폭발하는 순간에서도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식으로 노래해 왔다. 크게는 오늘도 동일한 골조를 유지했지만, 폭발하는 순간에는 절규가 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눌러 담아 온 이연의 기억을, 노래하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선명하게 떠올려가며 감정이 극에 달한 듯한 절규와, 결국에 내뱉어졌던 흐느낌까지. 내리찍는 격정으로 노래했다. 치미는 그리움으로, (굳이 덧붙이자면) 심혈을 기울인 잘생김으로.

<12월>

노래를 시작하기 전부터 감정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그를 계속 만난다. 오늘은 본공연에 앞서 짧은 스피치를 할 때부터 이미 목이 멘 듯, 목소리가 자꾸 끊겼다. 훈의 편지를 펼칠 때 벌써 얼굴 가득 울컥함이 차올라 있기에, 이연의 편지를 펼쳐야 할 그가 염려되었는데.. 오늘 역시 부러 내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그 스스로 치미는 감정을 다스리는 중에 새어나오는 훌쩍임을 들었다. 돌아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등으로 코를 훔치며, 훌쩍훌쩍하는 뒷모습을 한참 보았다.

이윽고 시작된 12월. 골목 사잇길과 하숙집이 나타나고, 그가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이 순간의 연출이 가장 슬프다. 천천히 다가서서 섧게 팔을 뻗는 그도 물론. 노래를 끝마친 후 한달음에 달려가선 정작 꿈에 그리던 그녀를 안는 동작은 너무도 소중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은 항상 생각하지만, 정말 시아지욱답다.

마지막 대사, “우리, 또 봐”는 어제도 오늘도 울음기로 가득했다. 들이키는 울음과, 갈라지는 목소리. 그 언젠가 울음보다 웃음의 빛이 더 강했던 때도 분명 있었는데, 오늘의 그는 반대다. 울음으로 빚은 웃음으로 그가 힘겹게 정면을 본다. 그의 너무도 서럽고, 아픈 얼굴에 이젠 이게 해피엔딩인지도 잘 모르겠을 정도로.. 12월의 그가 애처로웠다.

그리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오늘의 공연과 오늘의 시아준수를 향해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천재야.

5일도, 16일도 1막 엔딩에서 그의 감정이 고여 오르는 시간이 앞당겨져 왔는데, 오늘의 감정 역시 빠르게 차올랐다. 그러나 16일의 그가 마치 격류처럼 흘러, 그저 바라보고 놀라는 것 이외에 달리 지켜보는 방법이 없었다면 오늘은 그가 빠져드는 감정의 수렁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벤치에서 일어나 이연을 보면서부터 일렁일렁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때까지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웃음 짓곤 했다. 애써 웃는 얼굴이 산뜻함을 가장하며 건넨 인사, “안녕?”이나, 겨울이 왔다며 끄덕일 때 아련히 반짝이던 두 눈만 해도.

그러나 정말 짧은 동안만이었다. 이연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이별통보에 곧장 엄마 잃은 얼굴이 되었다. 버림받은 얼굴 속의 두 눈동자가 가득 흔들리다, 어렵사리 꺼낸 마지막 말.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촉촉이 젖은 목소리에도 돌아봐 주지 않는 연인의 뒷모습을 망연히 보다, 벤치 위로 힘없이 쓰러진 그가 울음을 뱉고 소리내어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깨를 늘어뜨려 잔뜩 웅크린 몸이 꼭 어린아이의 것 같았다.

담담히 시작하는 "그대 보내고 멀리~"에 이르러서도, 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현실을 부정해본다. 이끌리듯 일어서서, 발자국을 잔뜩 늘어뜨려 걸으며 멈추어도 섰다가 이내 사람들 속에서 헤매가며 그녀를 찾아본다. 찬 공기를 이리저리 가르며 허우적대는 마른 팔이 가엾다. 반 바퀴를 돌아 끝끝내 혼자되었음을 깨닫고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 나오는 망연자실한 얼굴과, 공허해진 눈동자에는 깊은 좌절이 어려있다. 사그라지는 소리로 힘겹게 내뱉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오늘 역시 울음에 먹혔다.

그렇게, 폭죽을 뒤로하고 그가 혼자되어 남은 어깨로 쓰러져 내린다. 시린 겨울 바닥에 닿는 무릎 위로 그의 주먹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자리에서 울다가, 노래하다, 또 울다가 그가 다시 한 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읊조리면서 두 눈을 질끈 내려감았다.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한 눈꺼풀의 움직임이 무거웠다. 체념. 견디기 힘든 고통을 피해 눈을 감듯, 그렇게 그의 눈이 감겨들었다.

처진 어깨로 가까스로 일어서면 들려오는 이연의 목소리. 고개를 저으며 벤치를 가로질러, 완전히 울부짖는 순간이 되었을 땐.. 세상에 그의 이별만이 유일한 작별이 된다. 여러 가닥으로 이지러진 아픈 얼굴 위로 새하얀 조명이 따갑게 쏟아졌다가, 삽시간에 어둠으로 그를 덮어버린다. 공명으로 치달아 함께 조여왔던 내 마음에도 검은 막이 달려들었다.

그에게는 노래도, 감정도 만져질 수 있도록 펼쳐 보이는 재능이 있다. 보고 듣는 것 이외에도 만지고 느낄 수 있다. 목소리도 마음도 다갈래로 퍼지며, 여러 방면에서 사람을 향해 호소한다. 오늘 그것을 모조리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