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공은 천잰가 봐~ 밤공에선 천잰가 봐 어떡행~ >_< 이 차이가 오늘 낮과 밤의 다른 점을 다 말해준다. 낮공은 정교했고, 밤공은 감성적이었다.

17일 공연을 보면서 감정소모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마음 시린 결말의 여운 때문에 오늘은 추락할 때보다도 찬란할 때의 그가 더 아팠다. <스치다>의 허밍이 시작되고부터 그의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서 당황했네. 봐도 봐도 감탄하게 되는 옥상 위의 그가 흩뿌리는 아름다움의 폭격, 기쁘게 맞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그의 파트가 추가됨으로써 위상을 완전히 달리하게 됐다. 두 손을 모아 "그대 생각해~" 하는 그를 보고 듣게 되어 정말 기쁜 마음 뿐야. 봄바람처럼 산들거리는 노래 후엔 의자에 폭 기대어 짧게나마 황홀_황홀해하는 그인데, 17일부터 오늘 낮밤까지 일관성 있게 무릎은 모으고 발목은 벌려, 다리 모양이 A자가 되도록 앉는다. 소녀처럼. 그 위로 두 손을 포개고, 어깨도 동그랗게 말아놓는다. 정말 귀엽게. 굉장하리만치 소년스럽게. 특유의 사랑스러운 입꼬리를 한껏 뽐내느라 보이는 가지런한 치아 틈으로는 촉촉한 혀가 몇 번이고 빼꼼빼꼼한다. 여일이 불러 깨울 때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부리청소까지. 싱그럽고, 생기발랄하고, 순수한 지욱. 시아준수가 표현하는 첫사랑의 환희와 찬란함은 소년스러움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하숙집 앞에서 여일과 대화할 때는 평소보다 훨씬 방방 뛰는 느낌이었다. 대사 하나마다 몸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바쁘게 썼다. 팔을 마구 휘저어서 바람에 휙~ 날아가는 시늉을 크게 시연해 보이기도 하고. 애드립도 늘었다. 손주 손녀 모두 미국에 있다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불효자식들!" 또 나긋나긋한 조연진 여일의 말투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지그시 보다가 귀여운 척하지 말라는 촌철살인을 날려주었다(낮공에서 "귀여운 척하지 말고" 했는데도 달라지지 않자 밤공에선 '또 귀여운 척하네?'로 콕 찍어주었다). 평소 보여주던 얘 뭐야? 식의 표정에서 한 단계 나아가 니가 그러면 귀여울 것 같니? 이런 얼굴로.

강의실에선 또 앓았다. 강도는 다소 약했다. 일전에 언젠가, 처음으로 앓았을 때 '앓이'를 몸소 보여주는 듯이 끙끙 앓았다면, 오늘은 어린 짐승처럼 살짝만 낑낑.

커플 댄스 대회에 함께 나가자는 여일에겐 두 마디로 타박을 준다. "내가 왜 너랑 거길 나가?" 이어서 "내가 왜 너랑 춤을 추냐고!" 이따가 이야기하자는 여일을 향해 그가 먼저 쿡 찌름으로써 시작되는 실랑이도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해진다. 안 한다며 손을 홱홱 저어보다가 안 되겠다 싶자 여일 건너편의 성태를 콕 찍어 둘을 엮어주고는, 여일이 반항하자 됐어 끝! 이상 끝! 하는 느낌으로 두 팔을 크로스해가며 종료 선언까지 산뜻하게 마친 후에 몸을 틀어 다리를 꼬고 턱을 괸다. 더는 안 듣겠다는 듯이. 귀엽기도 귀여운데, 이때 손사래 치거나 팔을 크로스하고, 또 박수를 짝 칠 때 손끝의 각이 참 예쁘게도 살아있다.

그의 역공 후엔 여일의 애원이 이어진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하지만 그는 필살기 콤보로 대응할 뿐이다. 낮공에선 하품하던 얼굴을 여일의 코앞으로 쭉 들이밀었고, 다시 쌍꺼풀을 그리면서 팔로는 기지개를 무척 크게 켰다. 밤에는 순서가 약간 바뀌어, 하품+기지개가 하나의 콤보가 되고, 이어 쌍꺼풀 필살기를 보여주었다. 트리플 콤보를 맞은 여일이 두 손을 모아 황홀해한 건 익숙한 수순.

그런 후엔 그가 피곤하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가 몸을 엎었다가 인상을 마구 써가며 찡찡댔다. 이 수업은 언제 끝나니, 피곤해ㅠ 몸짓에 투정을 잔뜩 담아서. 여일이 누나의 얼굴로 피곤하냐며 응수해주자 그렇다며 재빨리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그가 못견디게 귀여운 게, 정상이겠죠?

아아, 그리고 낮공에서 피곤하다면서 내내 뒷머리를 긁적긁적하다가 갑자기 귓등으로 손을 옮겨 긁었다. 작고 동그란 귓등을 무척 열심히, 섬세하게 긁적이는데 엄청 다람쥐 같아서ㅋㅋ 눈에 콕 박혔다.

밤공에선 피곤해 찡찡 이후에 둥그런 꽃받침을 한 채로 하품을 했다. 하품하고도 꽃받침 자세를 꽤 오래 유지했는데 와, 시아준수 가능하다면 이건 앞으로 고정이면 좋겠어요! 원해요!

이연과의 재회. 이연을 보고 무작정 "저기요!" 불러놓고 할 말을 찾는 그는 순박하게 전투적이다. 옷매무시를 기합 주어 매만진 후, 목을 가다듬고 기껏 꺼낸 첫 말이 아니다 싶자 돌아서서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 서투른 모습이 특히나. 마무리는 역시 카랑카랑하게 어절 단위로 끊어가며 아니라고!! 믿고 있으니까엿!!

보디랭귀지에서의 말소리는 이제 항상 들린다. 나 기억 나냐며 기타 치는 시늉을 할 때, 기타줄은 이미 골백번 끊어졌을 것이 틀림 없고ㅋㅋ 이연 쪽으로 다가가서, 허밍을 끊고 나! 나! 나! 적극적으로 성을 내듯이 들이댈 때도 나날이 전투력 이 높아진다. 어떻게든 시선을 자신에게 붙여놓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연의 후배에게는 누구세요도, 후 아 유도 아닌 "누구시죠?"라고 대꾸했다.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해명하면서는 밤공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사가 돌아왔다. 앞뒤 사족도 꽤 많이 붙어서 완전히 새로운 대사가 되었는데, 정확히는 "그리고! 아까 그 강의실에서 한 얘기는, 저 아무것도 몰라요 저, 그런 쪽에 대해선 정말 모르거든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다다다다 빠른 속도로 이어 말했는데, 손을 마구 휘저어가며 이연을 안심시키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귀여워도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건가.

밤공에서 "할래? 해요? 하실래요? 해주세요" 사단 변화가 특히나 섬세했다. 무심결에 한잔할래?! 뱉어놓고 이연이 역정 내자 '해요..?' 하며 되물을 때, 이연을 살짝 돌아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떠보는 그가 너무 너무 너무 귀여웠다. 그것도 아니다 싶자 등을 보이며 의기소침하게 하실래요..? 안 해주면 당장에라도 울먹일 것처럼 해주세요... 까지 전부다. 싹다. 보통 할래-해요-하실래요-해주세요가 긴 틈 없이 연달아 이어져온 편인데 오늘은 각 물음마다 분명한 시간 차를 두어서도 더 섬세하고 분명한 웃음으로 다가왔다.

이연과 말을 튼 후 기쁨의 허밍을 하면서는 오늘도 선수들을 대상으로 기쁨의 춤을 선보였다. 어깨를 이케이케 털면서, 밤공에선 팔까지 흐늘흐늘 좌우로 뻗어 가며. 로미오 자세와 뒷발 차기도 어김없이 있었는데 낮공에선 선 채로 두 손만 기도하는 자세로 모았고, 밤공에선 꽤 긴 시간 무릎을 꿇은 채 성의 있는 로미오 자세를 취했다♥ 뒷발 차기 할 때는 낮에도 밤에도 발이 도통 땅에 붙질 않았다.

아 그런데, 낮공에서 이연이 먼저 그에게 가방을 건네준 게 맞나? 정확히 보진 못하고 느낌상 이연이 먼저 손을 내민 것 같아서, 놀랐어. 그리고 낮공에서 그가 '입술이 씰룩거리네요~' 하는데 입술을 이쁜이라고 들어서 깜짝 놀랐다ㅋㅋㅋ 내 귀 바1보..

멋진 대사를 해놓고 수습할 때, 미안해는 완전히 빠졌다. 대신 "느끼하다. 나도 토할 뻔했어, 알아." 워워 어르는 듯한 '알아'가 추가되었다. 그런데 낮공에서 박호산 훈은 일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들이닥치는 타이밍이 참 느리다. 덕분에 오랜만에 입맞춤이 다소 길었네.

박호산 훈과는 무척 오랜만의 호흡이라 그렇잖아도 새로웠는데, 다른 훈들과는 다르게 대사나 제스처를 자유롭게 달리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2막도, 1막도. 4층에서 지욱이 훈과 이연을 서로 소개해줄 때, "여기는~" 하면 바로 훈이 이연을 아는 체하며 말을 가로채야 하는데 박호산 훈의 가로채는 타이밍이 다른 훈들과는 달라서 좀 뜨는 시간에 지욱이 마구 버벅댔다. "여기는~ 그.. 그.. 그.." ㅎㅎㅎ

사고사 후 울음소리 역시 어김없이 들렸다. 밤공에선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울음소리 들리는 거 좋아요. 크게 다른 부분이 없어 적을 말이 없어도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언제나 완벽하다. 노래도, 연기도.

노래하면서도 많이 울지만, 대사하면서도 많이 운다. 울음이 반 이상이었던 "우리 헤어지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나 울음에 먹혀든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밤공에서는 보온병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들 때 뺨이 완전히 흥건했다. 낮에는 그래도 근래 들어 덤덤한 편이었는데, 낮공만큼의 눈물까지 모두 밤공에서 쏟아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는데 그냥 가버린 이연을 보며 주저앉는 동작이 신호탄이었다. 훌쩍임이 흐느낌이 되고, 흐느낌이 엉엉으로 번져가더니 급기야 시작하는 소절에서도 흐느낌이 가득했다. 결국 노래하면서 검지로 코를 훔쳐야 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

우느라, 노래하느라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잔뜩 힘이 들어가서 아프게 솟은 광대가 발그레했다.

모든 것을 터트려내는 마지막.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으을~"을 부르는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폭 패인 뺨도, 힘이 잔뜩 실린 턱도. 나뭇가지처럼 퍼석하게 일어난 얼굴의 힘줄이 부신 조명을 받아 도드라졌다.

*

이연인가, 아닌가. 화이를 처음 마주하게 된 그의 혼란을 짐작해본다. 그는 그녀를 알아봤는데, 그녀는 그를 생경한 호칭으로 부른다. 꿈에도 그리던 사람이 자신을 모르는 걸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그의 혼란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그날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밤공에선 화이를 보고 두어 걸음 물러나는 대신, 망연히 일어서기만 했다. 화이를 향해 나지막이 이연아, 하고 부를 때 끝을 물음으로 올리는 것도 좋고 부름처럼 내리는 것도 좋은 것처럼 여기서 물러나도 좋고, 일어서기만 해도 좋다. 둘 다 지욱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때 그의 연기가 그렇다.

"김성태 차장님!"은 낮밤 모두 타이밍을 기다려서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밤공에선 특별히 목소리 톤을 확 낮추어서 어르신 흉내를 내는 것처럼 말했다.

사거리 대포에서는 오늘따라 몰아치는 여일 덕에 그가 뭐라고 한마디 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말이 여전히 많네~" 그 한마디를 하려는데 여일이 자꾸 이 말, 저 말로 그의 정신을 쏙 빼놓고, 웃기고 해서ㅋㅋ 그가 가장 빵 터진 부분은 여일이 성태를 우쭈쭈~ 해줄 때. 말을 하려다 여일의 우쭈쭈~에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웃음을 토해버렸다ㅋㅋ 또 여일이 호들갑을 떨며 그의 가슴을 때릴 때는 아팠는지 놀람과 억울함과 웃음이 섞인 표정으로 울상 짓는 얼굴이 무척 귀여웠다.

<그날들>은 모든 것이 사랑이다. 그도, 그의 얼굴도, 그의 목소리도, 그를 향해 쏟아지는 조명도, 차가움이 느껴지는 무대 위의 공기도, 그를 둘러싼 채 철저히 혼자 버려두는 앙상블도. 빚어놓은 아름다움, 심혈을 기울인 잘생김. 그날들은 완벽하다, 그날들은 최고야.

오디션에서의 잘생김도 말해야 한다. 제2의 이연을 발견하여 벅찬 얼굴, 믿기 힘든 우연, 설명할 수 없는 운명. 비릿한 감격으로 잔뜩 동그래진 눈코입이 정말 정말 잘생겼다. 이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면 계속 B구역이어도 좋겠어요.

개인 레슨에선 이제 김예원 화이도 감독님과 시선 교환을 잊지 않는다. 화이의 노래에 미간을 모으다가도, 돌아보는 시선에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떡여주는 세심함은 언제 봐도 설렌다.

두 팔을 어떻게 할 줄 모르는 화이를 향한 오늘의 타박은 "오징어야?"였다. 밤공에선 화이의 뒤로 돌아가며 "왜 이렇게 흐물거려." 하고도 덧붙였다. 여기서 화이의 자세를 고쳐줄 때 그의 대사가 다소 자유롭다. 낮공에선 오른쪽으로 건너가서 화이의 자세를 한 번 보곤, 한숨을 푹 내쉬며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리라고 지적했다. 밤공에서는 화이의 왼쪽에서 팔 자세를 교정해줄 때 "계란 쥐듯이"라고 부연해주었고.

밤공의 "자네도, 조심하게"는 그 언젠가 어르신 흉내를 냈었던 때와 같이 목소리 톤을 낮추어 말했다. 기타 좀 쳤다는 훈에게도 특별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검지를 펴서, "너 기타칠 수 있었지~ 맞아~"

아아, 낮밤 모두 붙잡힌 화이에게 이만 나가라며 손으로 신호를 보냈는데 이때의 동작에서 묻어나는 피곤함과 다급함이 참 좋았다. 시아준수 진짜 연기 잘해. 못 하는 게 없어.

연습실. 정확히 윤 감독 나와! 하는 타이밍에 들어와 ㅡ"ㅡ 표정으로 조복래 배우를 보는 감독님 표정이 정말 설렌다. 상황 파악하는 무표정ㅜ 1막의 지욱은 온데간데없고 연출가로서의 윤 감독과, 불필요한 순간에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수세적인 태도의 지욱만이 있다. 대체 시아준수는 1막의 지욱과 2막의 윤 감독에 대해 어디까지 생각하고, 어디까지 연구한 걸까. 두 지욱에 대한 그의 연구에 대해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12월>.

12월은 자꾸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나를 터트린다. 오늘은 '다시 마주치지 못해도 이게 끝이 아님을'을 노래하는 순간이 기점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면요? 끝이 아니면 이후에는 뭐가 있는 걸까요? 밤공, 옥상 위에서도 울음이 잦아들지 않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오히려 그 위에서 울음이 더 복받치는 듯,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우리, 또 봐.. 애처로운 얼굴의 그가 힘겹게 웃었다.


극이 수정된 부분
1. 2막의 요양원 스크린 배경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