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이자, 종일반. 낮공은 마지막 E, 밤공은 마음의 고향 B. 각자의 구역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을 충분히 기억해두자 다짐했다.

낮공에선 천잰가 봐~ 밤공에는 어떡행~을 붙여 차별화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감사하게도 낮공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이 맘~'을 부르는 그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이 장면을 가슴 떨리게 좋아하는데, 이 순간 그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반짝임 가득하던 그 검은 눈동자가 나의 시선 안으로 가득 스며드는 순간의 마음은 나야말로 설명할 수 없어져요.

요즘은 기타 치는 그의 손을 홀린 듯 본다. 한 음 한 음 코드 짚으며 소리에 맞추어 기타 줄 튕기는 손가락이 너무도 예쁘다. 게다가, 기타를 그렇게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기 있기 없기?

아침 식사. 하숙집주인 아저씨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깨웠다. 그 덕에 낮도 밤도 여일이 불러 깨우기 전에 부리청소로 생각을 갈무리하고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밥을 한술 떴다! 브라보! 이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려는 순간 성태가 화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 바람에 그가 코를 틀어막으며 젓가락을 떨구었다. 비록 밥 한술뿐이었지만, 지난번에 먹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오늘 두 번 다 제대로 보아 기뻤다.

등굣길, 옆집 담을 기웃거리기 전에 마주치는 동네바1보에게 요 근래 꾸벅 맞인사를 해주곤 했는데 밤공에선 인사말도 건넸다. 얼떨결에, 작게, "안녕하세요~"

낮공의 강의실 앓이는 촉촉한 혀의 활약이 컸다. 입술 틈새를 자꾸만 비집고 나와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결국 그의 아랫입술이 온통 반질반질해졌다.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E에서도 훤히 보이도록 반짝반짝.

커플 댄스 연습 문제로는 초장에 여일의 손을 홱 뿌리치고는, 성태에게 바로 떠넘겼다. 두 사람을 엮어주면서 손뼉을 세 번이나 짝짝 치고, 뒤이어 빵야~ 총알까지 산뜻하게 날려주었다. 여일이 말려봐도 막무가내로 손을 털어내곤 개운한 듯 기지개를 켰다. 하품과 함께. 혼자 하면 아쉬우니 그대로 하품 공격~ 여일이 좋아라~하자 그래 옛다 2탄, 느낌으로 쌍꺼풀을 그려주었다. ㅎㅎ

밤공의 강의실은 더 잔망잔망했다. 끼이잉, 꼭 새끼동물이나 낼 법한 앓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일과 성태를 엮어주면서는 손을 핑글핑글 돌리다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다. 연아가 그리는 하트를, 두 번이나. 아아, 나는 사랑에 빠졌어. 손가락 하트 중에서 이 하트를 가장 좋아하는데, 시아준수의 손가락이 그리는 하트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두 사람을 하트로 맺어주자 성태는 좋아하고, 여일은 정색하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뼉을 한번 짝 치더니 어김없이 총알을 빵~ 날려주었다.

그후 일단 한숨 돌렸다는 듯이 몸을 틀어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데, 여일이 참지 못하고 그를 쿡쿡 쑤시자 돌아보며 하품하는 얼굴로 으아아앙 달려들었다. 쌍꺼풀도 곧장 여일의 코앞에서 그려주었는데 금세 흥미를 잃곤 정면을 향해 홀로 눈싸움했다. 그러다, 마치 조는 것처럼 눈을 스르륵 감았다. 으아 너무 귀여워. 여일이 쿡 찌르자 푸르르 두 눈을 떠서 손을 뿌리치곤, 뒤이어서... 찡찡... 몸을 마구 뒤틀며, 발을 동동거리고, 어깨를 앞뒤좌우로 써가며, 격렬하게 찡찡거렸다. 아.. 내가 찡찡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ㅜ 여일도 그런 그가 귀여웠는지 엄마 미소로 투정을 모두 받아주었다. 가방 위로 엎어지면서도 여일이 다시 조르며 잡아오는 손을 가차 없이 쳐내던 단호함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다시 돌아온 이연.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주먹으로 부리를 쿡쿡 찌르며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밤공에선 매무시만 가다듬고 바로 토론에 돌입했다가, 말이 잘 풀리지 않자 머리를 주먹으로 콩콩 쥐어박으며 '멍청이' 하고 중얼거렸다. 예쁜 웃음을 애써 지어가며 인사를 건넸는데도 그녀가 영, 반응이 없자 오기가 생겼는지 흡사 우씽~ 하는 표정으로 열정적으로 기타 치는 시늉을 했다. 노래를 시작하고서는 더욱 거침없어진다. 이연 쪽으로 다가가서, 늘 그래 왔듯 스타카토로 끊어가며 자신을 어필헸다. 나나나! 나나! 나! 밤공에선 팔을 부드럽게 펴내어 가로로 펼치면서 그림 같은 자세를 취했다. 아아.

이연의 후배를 향하여는 낮밤 모두 "후 아 유?" 사단변화는 갈수록 귀엽다. 봐도 봐도 귀엽다. 아아.. 아무리 이연이라도 웃을 수밖에 없지. 낮공에선 심지어 말을 살짝 더듬어가며 "해, 해주세요.." 새무룩해지는데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앙 깨물어주고 싶었다. 또 격양된 말투로 평소 웃었다, 또 웃었다! 하던 것과는 달리 "웃었다! 지금 웃고 있다!"고 외쳐서 나 그만 웃어버렸네.

밤공에서도, 낮공에서도 오징어춤과 인도춤을 차례로 합한 흐물흐물 춤을 추었다. 접시 서빙하는 모양새로 양 손바닥을 활짝 펼쳐두고, 고개를 수평으로 까딱까딱하는 인도춤ㅎㅎ 정말 좋아요ㅎㅎ

밤공에서는 오랜만에 무릎 꿇은 로미오를 만났다. 그것도 길게, 황홀하게. 아아, 마침 B에서 정면으로 만난 덕에 기쁨도 두 배. 그런데다 그가 신 나서 짝 소리 나도록 두 손을 손뼉 치며 기도하는 자세로 모아서 마음이 더 끓어올랐다. 뒷발차기도 낮공보다 밤공이 더 길고 열정적이었는데, 이때 그의 움직임을 나노 프레임 단위로 좀 보고 싶다. 이때의 움직임, 몸의 각도, 표정.. 너무 빨라서 항상 어느 한 부분밖에 쫓지 못하게 돼.. 오늘은 그의 다리가 어떻게 어느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노니는지만 느꼈다.

민망함을 수습하면서 낮공에선 "책 팔아요오오오~" 하며 아주 길게 어미를 늘어뜨려 귀여움이 치솟았다. 덧붙여 이솝우화 판다는 말까지. 이솝우화라니 으앙. 대자보를 열심히 관찰하지 않아 이솝우화 판다는 문구도 걸려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에게 어울리는 애드립인 건 확실하다. 밤공의 "노래왕 선발대회" 역시 그에게 어울리기는 마찬가지. 그러고도 남는 민망함을 떨쳐내기 위해 오늘 역시 "아 쪽팔려ㅜ" 하고 덧붙였다.

<다시 돌아온 그대>. 이연이 노래하는 첫 소절에서, 이연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온통 말랑말랑해진다. 이연의 가방을 쥐고 기쁨과 황홀함에 환희로 가득 찬, 달뜬 얼굴에 덩달아 행복해지곤 해. 게다가 밤공에선, 아주 오랜만에 주먹으로 눈을 씻었다. 으앙. 항상 기쁨의 노래 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다시 돌아온 그대>를 부르는 내내 얼굴이 촉촉해지는데, 오늘따라 범벅된 얼굴이다 싶더니 주먹으로 눈을 ㅜㅜ 씻어서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네. 귀여움에 죽는 줄 알았어..

내 마음이 황홀감으로 가득 차서 그랬을까, 밤공의 <다시 돌아온 그대>는 부들부들하고, 대단히 유연했다. 아아, 아름다운 화음. 그의 강약조절. 그가 만들어내는 조화와 그가 통제하는 어우러짐.

입맞춤이 방어 당하는 순간, 최근에는 사라졌던 이연의 손장난이 부활했다. 그의 얼굴을 구기며 장난치는데, 그 탓인가. 의아함에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녀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평소의 표정에서 그가 다소나마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낮밤, 모두. 

4층 아지트. E구역에서 잠깐이나마 그가 대사를 시작하기 전에 볼 수 있는 정면의 얼굴에 숨이 멎었다. 정말, 잘생겼다. 어느 방향으로 봐도 미인이지만, 이 순간 그의 눈 안의 반짝임까지 여과 없이 스며들어와 숨이 탁 막혔다. 오늘 이렇게 그의 얼굴에 넋을 놓고 흐름을 놓쳐버릴 뻔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이별.

정말 많이 울었다. 낮공도, 밤공도.

울음이 모이던 얼굴이 기억난다. 입술이 세모꼴로 처지며, 입 주변의 주름도 세모나게 변했다. 왈칵 울음이 차오르는 순간 아랫입술이 비죽이 나오며 윗입술을 덮었다. "우리 헤어지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 서부터는 엉엉 울음을 쏟을 것만 같은 표정이 되더니 보온병을 집어들기 전엔 이미 울고 있었다. 커피 가지고 왔어, 하고 말해야 하는데 울음 삼키는 소리가 비집고 나와버렸다. 덜덜, 그의 손이 떨리는 만큼 목소리도 떨렸다.

"한 번만 안아보자.." 할 때의 얼굴은 거의 극 초반에만 정면으로 봤기에 낮공에서 다시 찬찬히 봐도 낯설었다. 울음이 모이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세모였다가, 울음이 터지면서는 네모가 되는 입술. 눈도, 눈썹도 잔뜩 처지고 입술은 네모나게 벌어져서.. 땅으로, 땅으로 한없이 꺼지던 얼굴. 울음이 모여 만든 세모도, 울음이 터트려낸 네모도 아이의 것처럼 천진하여 더욱 애틋했다. 기억하자, 기억해두자. 두 눈으로 주문을 외웠다.

낮공에서 그가 대사할 때의 얼굴을 못 박고자 했다면 밤공에선 우는 그를 보았다. 보온병을 품고 울던 얼굴. 두 눈 중앙으로 눈물 줄기가 그렇게 줄이어 왈칵왈칵 쏟아지는 건, 오랜만의 B에서 오랜만에 보았다. 자선냄비 앞에서 줄줄 흐르던 눈물도. 무릎 꿇은 채로 울던 그가, 결국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울음을 삼키려 했다. 그럼에도 삼켜지지 않는 울음, 슬픔.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로, 아이처럼 울던 그. 그대 미워진다는 그는 흡사 떼쓰는 것 같았다. 사랑이 아니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어깃장을 놓아보는 듯했다.

그렇게 울다가 그가 힘없이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하고 읊조리는 순간이 오면 마음이 참 아프다. 안아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손등 잡고 도닥여줄 수 있음 좋을 텐데... 매번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이별인 것처럼 부딪히는 그의 마음이 투명하다 못해 시리다.

이연의 목소리. 고개를 가로젓는 오른 눈가로 다시 눈물이 흘렀다. 땀과 눈물로 엮어 만든 얼굴. 낮에도 많이 울었지만, 밤엔.. 이 모습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놀라웠다. 너무 우는 것 같아 염려도 되었다.

마지막, 한음이 비명처럼 빗나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절규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주먹을 쥐었다, 두 손을 힘주어 가득 펼쳤다 반복하며 버텨냈다. 발그레한 그 얼굴에 고통과 아픔과 원망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며 엉켜있었다. 화산처럼.

*

화이와의 첫 만남. 홀린 듯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낮공도, 밤공도. 두어 걸음 물러날 정신도 없다는 듯, 망연히 그저 일어나기만 했다.

사거리 대포. 목과 턱을 잡힐 때 여일에게 힘없이 휘둘려주는 그가 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힘주는 대로 끌려가 주는 그는 터무니없이 자상하다. 어째서죠. 엄청나게 업된 여일을 얼떨떨한 얼굴로 보다 엉겁결에 웃음을 터트리곤, 팔자 눈썹을 하는 그가 또 아름다움의 단도를 내 심장에 꽂기에 힘들었다. 오늘 좀 그랬어, 시아준수..

밤공. 그가 막 술을 삼키는 찰나 여일이 들이닥쳤다. 술 때문에 빵빵해진 볼을 해선, 놀란 와중에 들이킨 건 삼켜야겠고, 그런데 여일의 말은 폭풍처럼 몰아쳐서 정신이 없고. 그의 눈이 커지면서 꿀꺽. 술을 삼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말이 왜 더 많아졌어~ 하며 다정하게 투덕거려도 주고, 내 생각 많이 했느냐는 여일의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했어, 했어 하고도 말해주었다. 여일이 한가득 따라놓은 술잔을 받아들곤 원샷을 하기도 했고 후후.

오디션에 나타난 화이를 보고 믿을 수 없어 하는 얼굴은 강의실에서 돌아온 이연을 보고 눈 씻으며 기뻐하던 얼굴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동그랗게 확장된 동공과 웃음이 비집고 나올 듯 말 듯한. 그럼에도 살짝 올라간 것을 숨길 수 없는 입꼬리. 자신을 몰라보자 인상을 쓰며 반주를 멈추고, 화이를 보던 얼굴.

반대로 밤공에선 오디션에서 화이를 발견하고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꾸 무럭무럭 피는 웃음에서 그의 반가움을 읽었다. 동시에 잘생김도. 왜 이렇게 잘생겼죠? 거침없이 "나 모르겠어요?" 하고 묻는 얼굴의 잘생김에 홀려 든다. 자신을 전혀 몰라보는 화이를 보곤, 얘 봐라? 는 식으로 허, 헛웃더니 베토멘 머리를 하는데. 밤공따라 객석의 웃음이 컸다. 그도 느꼈는지 평소에 하던대로 머리를 들쑤시고 주먹으로 말아쥔 후에, 한 번 더 쓱쓱 헝클어트렸다. 돌아섰을 땐, 정말로 엉망이 된 머리. 하지만 그 머리도 멋있지... 게다가 미간에 새겨진 내천 자 때문에 섹시하기까지.

섹시함으로 따지면 개인 레슨이 빠질 수 없다. 시선 교환할 때의 그 자상하면서도 섹시한 미간. 낮공도 밤공도 화이가 성의껏 노래를 망가뜨려가며 부른 덕에 그의 미간도 바쁘게 움직였다. 아아, 밤공에선 미간을 모으다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인상을 쓰거나 시선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이외의 행동을 한 건 밤공이 처음이었다.

화이의 자세를 교정해주며 한숨 짓는 얼굴은 낮공도, 밤공도 분명하여 설렜다. 미세하게 모은 미간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곤 후.. 얘를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나, 답답함이 다분한 얼굴로 어깨부터 손, 다리, 턱과 머리까지 하나하나 짚어주는 그에게선 낯설고도 멋있는 냄새가 난다. 

훈과 충돌할 때 대사의 강도는 다소 누그러졌다. 특히 밤공. "누구시더라!"는 중간약 정도. 병신같이 살았다며 되는대로 말을 뱉는 순간엔 욱한 나머지 감정이 통째로 들이부어 졌다. 원 대사대로라면 "그래, 나 그렇게 병신같이 살았어"가 되겠지만 밤공에선 "그래.. 그래.. 나 병신같이 살았어. 그래." 가 되었다. 밤공의 대사톤은 대체적으로 감정적이면서도 도피적이고, 나약하기도 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힘없이 정색할 때의 대사처리도 정말 좋았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낮공. 마지막 "사랑이라는~"에서 '라'의 음이 높고 독특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밤공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희귀할 정도로 깊었다. 앞으로 걸어 나올 때 이미 두 눈 번갈아가며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했다. 흐르진 않았지만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겨워했다. 공기를 눅신하게 감싼 그의 감정에 나 역시 아무런 방해 없이 지욱의 좌절에 몰입할 수 있었다.

화이와의 충돌. 밤공에서, 어째서 자신이 주인공이냐 따져 묻는 화이를 보다 그가 허,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분과 그렇게 닮았느냐는 말에 내뱉는 빡친 한숨은 참 멋있다. 이어지는 그의 울음. 소리가 다시 옅어졌다. 숨을 몰아쉬며 흐느낌을 뱉어내는 듯하다가, 호흡을 정돈하며 도로 삼킨다. 쌕쌕, 울음소리가 숨소리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잦아들 즈음 무대가 어두워졌다.

<거리에서> 2절. 낮공.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에서 '아름'다운을 높여 불렀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 귀가 쫑긋했다.

낮공도, 밤공도 이때 무척 힘들어하는 그를 만났다. 지욱의 감정이 그를 몰아세우는 것처럼. 특히 밤공의 거리에서는.. 뭐랄까.. 평상시의 <거리에서>가 잘게 부수어져 잔뜩 날 선 칼날 같았다면 오늘은 감정의 독에 빠져 무뎌진 송곳 같았다. 슬픔이 선사한 좌절에 벼랑 끝으로 몰려 그 어떤 디딤돌도 소용없어진 그에게, 역설적으로 슬픔만이 그 순간 그를 지탱해주는 마지막 동아줄인 듯한 모습이었다.

<12월>.

낮공.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눈물로 흥건한 얼굴은 처음 보았다. 두 눈 가운데로 선명한 눈물 줄기가 흘러있고, 눈 안쪽으로도 노래를 시작하고도 계속 흐르기에 다소 놀랐다. 편지 내레이션이 삽입된 이후로 항상 울컥해왔지만 그의 감정이 이토록 여과 없이 흘러내린 것은 처음.

밤공도 마찬가지. 편지 읽는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주먹으로 훔쳐도 계속 흐르기에, 뒤돌아서서 손으로 눈 밑을 닦아냈다. 하지만 역부족. 반주를 시작하자마자 왼쪽 눈에서 또르르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턱 끝에 닿은 눈물이 어둠 속에 아롱짐과 함께 12월이 시작되었다. 울음을 삭이며 덤덤하게, '골목 사잇길'.

아픈 기억으로 남았어도 사랑했던 추억. 그것들을 노래로 찬찬히 되살려내며, 그가 살짝씩 미소 지었다. 속울음을 간직한 미소가 녹녹했다.

노래는 마치 수증기처럼 공기에 스며들었다. 하얗고 투명한 물의 결정이 빠르게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졌다. 노래의 물기는 그의 주변으로도 얇은 막을 쳤다. 그의 둘레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감정들이 물결쳤다. 그를 감싼 얼푸름한 파동이,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이연을 향해 다가설 때마다 진동했다.

"이..연아, 이연아.." 노래로도 다 삼키지 못한 속울음이 그의 말에서 함께 뱉어졌다. 그가 그녀를 향해 한 손을 뻗는 순간, 그의 둘레를 따라 경련하던 감정의 물결이 깨지며 땅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이어지는 것은 우짖는 마무리.

마침내 이연을 품에 안고서도 완전히 진정하지 못한 그가 서러운 울음을 다 삼키지 못하고 말했다. 울면서, 웃으면서 하는 약속. 또 봐.


극이 수정된 부분
1. 편지 내레이션-지욱의 마지막 파트 삭제 (훈아, 빨리 휴가라도 나와라.)
2. 낮공부터 장례식에서 지욱과 훈, 여일, 성태가 선 곳의 조명이 밝아졌다.
3. 캐스팅 발표 전 앙상블이 모여있을 때 도둑 역 앙상블 대사 압축, 디테일도 자잘하게 수정.
4. 요양원 스크린영상이 또 바뀌었다. 아래에 담이 비추어지고, 위쪽으로는 꽃잎이 흩날리는 것으로.
5. 이연의 편지가 밤공에서 산뜻한 연분홍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