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첫공이었다.
‘드라큘라’와 ‘미나’의 관계성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가 아니고서는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2막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정은 미나의 공이다.
Fresh Blood, She, Loving You Keeps Me Alive, Life After Life 등의 넘버가 대거 포진한 1막과는 달리 2막은 It’s Over와 The Longer I Live 를 제외하면 그를 기다리는 장면의 연속이라 생각했다. 프리뷰를 보고서 그렇게 느꼈다.
2막이 어떻게, 어느 정도로까지 달라질 수 있는가. 드라큘라와 미나의 관계에 그 답이 있었다.
한결같이 그녀를 원하고, 그녀를 옭아매기까지 하는 집착 같은 사랑 앞에 조정은 미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극단을 오가는 미나의 거듭되는 혼란과 다양한 심리상태는 강렬했다가, 애절했다가, 파괴적이 되기도 하는(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그녀를 자신과 같은 뱀파이어로 만들고자 했던 그이므로) 드라큘라의 사랑을 한 차원 더 격정적으로 만든다.
단순히 그만이 그녀를 원하고 집착하는 것만으로는 2막의 긴장이 살아날 수 없다. 핑퐁게임처럼 그의 유혹에 홀리고, 본능적으로 이끌렸다가도 소스라치고, 혼란스러워하고, 갈등하는 그녀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그녀를 붙들기 위해 더욱 간절하고 강렬해지는 그의 연기가 탄력을 얻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 두 사람의 관계는 2막의 거의 전부를 이룬다.
뱀파이어 루시의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나의 혼란은 크지 않았다. 적어도 억누르고 외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시를 그렇게 만든 그를 원망하면 할수록 도리어 그런 그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다(Please Don’t Make Me Love You).
본능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이끌림에 그녀는 결국 굴복한다. ‘그를 원한다’는 분명한 자각이 창문 너머의 그를 그녀의 침실로 초대한다. 해후를 나누는 듯한 깊은 포옹, 마주닿은 얼굴. 그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그에게 ‘끌리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렬한 영역에 있음을 그녀는 인정한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정신없이 홀려있다. 홀린 눈빛은 그것이 그녀의 자의인지 그의 최면에 의한 것인지 분간하기 모호할 정도로 본능적이다. 흡사 그의 열망이 그녀에게로 전이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원하는 그녀의 갈망이 증폭을 거듭한다.
갈망이 커질수록 혼란의 부피도 배가 된다. 그에게 피를 주고, 그의 피를 받기까지 그를 원한다는 강렬한 감각 사이사이에서도 문득문득 소스라치는 이성으로 갈등한다.
밀고 당기는 그녀와는 달리 그는 하염없이 그녀를 움켜쥔다. 혼란이나 망설임은 없다. 그는 집요하게 그녀를 몰아세운다. 동시에 그녀가 그에게 홀려드는 만큼 그 역시 그녀에게 새롭게, 동시에 송두리째 빠져든다. 서로가 서로를 홀리는 것처럼 두 사람은 노래한다. 노래는 뇌우처럼 격정적인 것이 되었다가도, 속삭이는 유혹처럼 부드럽게 잦아들기를 반복하며 두 사람의 치열한, 사투와도 같은 열망을 보여준다.
마침내 갈망의 순간. 침대 위의 연인. 영원을 위한 의식(If I Had Wings - Mina’s Seduction).
It’s Over. 그녀는 사랑하는 이의 살인을 만류한다. 더 이상의 희생을 원하지 않을 뿐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의 충격은 적지 않다. 자신의 피를 마시고서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역성을 드는 그녀에게 절망하여 성으로 돌아가는 관 위에 몸을 싣는다.
그녀는 남겨졌다. 사랑하는 이의 처치를 모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지막 이성의 끝자락으로 겨우 버티고 섰다. 의사표시가 분명했던 표정이나 총기가 반짝이는 눈동자는 더 이상 없다. 대답은 모두 안간힘으로 내뱉는 단답형이다. 겨우 한다는 말은 때가 되면 죽음을 달라는 말이다. ‘악마 처치’를 위해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거절의 말도, 적극적인 동조의 움직임도 없이 그에게 홀린 심장과 최후의 양심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한다.
반 헬싱의 최면을 그녀는 뿌리치지 못한다. 수동적이나마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그녀의 최선이다. 간신히라도 이성을 붙들고자 하지만 최면 속에서 그녀는 그와 교감한다. 그의 생각과 상황을 읽으며 또 한 번 그에게 잠식되어 간다. 루시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하는 두 사람의 Life After Life가 그 정점이다. 두 정신이 만난다. 그녀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높아지고 높낮이가 널을 뛴다. 그녀가 그의 생각에 깊이 다가갈수록 최면을 건 자 역시 흥분한다. 반 헬싱이 그녀를 다그치는 소리는 교감 너머 그에게까지 전해진다(Train Sequence).
그녀의 혼란과 반 헬싱의 목소리를 감지한 그. 안식의 관 속에서 들리는 낯선 소리에 별안간 귓가에 손을 대며 자신을 향한 음모와, 그녀의 갈등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400년 만에서야 혼란에 휘감긴다.
어쩌면 그의 혼란은 예정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의 앞을 막아선 후부터, 그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어둠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임을 직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를 떠나 성으로 향하는 관 위에 몸을 누인 것일 지도. 그렇다면 최면 상태에서 그녀가 듣는 그의 음성은, 내심으로는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서도 완전히 놓지 못한 400년 염원의 마지막 발현일 것이다. 격정의 Life After Life는 그에게는 그녀가 자신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면서도, 그녀의 빛이 자신의 어둠에 동화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의 혼란은.
고결하며, 헌신적이고, 인간적인 그녀. 사랑하는 그녀에게서 빛을 앗아가야 하는가, 그녀를 이루는 그 모든 사랑스러움을 스스로 파괴해야 하는가. 그래야만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그녀를 위한 사랑인가. 그것이 그가 하고자 했던 사랑인가. 그녀와 함께하는 영원만을 기리며 400년의 허무를 견뎠는데, 그것이 그녀를 위한 사랑도, 자신이 원하는 사랑도 아니라면 이제 스스로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녀를 위한, 그 자신을 위한,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한 구원은 무엇인가(The Longer I Live).
폐허 된 성, 그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을 때 그녀의 사랑이 눈을 뜬다. 그 무엇에도 가로막히지 않는 사랑을 확신한다. 유혹이나 이끌림에 의해 그를 원한다는 차원을 넘어선, 거부할 수도 없고 망설이지도 않는 ‘능동적인 사랑’.
그녀가 그에게, 그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그가 청한다. 그녀의 손으로 영원한 안식을 주기를.
다급하게 매달리며, 만류하며, 사랑한다 속삭이는 그녀를 향해 그도 사랑의 노래로 화답한다.
부탁해요 제발.
밤을 허락해요.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사랑해요 그대.
그대 사랑해요.
사랑해서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단검을 쥐여준 그녀의 손 위에 그의 손이 포개어진다.
짧은 입맞춤. 마주 잡은 손.
함께 하는 구원. 그러함으로써 맺는 사랑의 결실.
죽음으로써 완성한 사랑이다(At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