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의 공연은 오랜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완성형의 공연이었다. 또 여러모로 첫날의 공연과 많이 닮아 있었다. 낮공에서 종을 칠 때 다소 허우적거렸지만 밤공에서는 그새 중심을 잘 짚어낸 것에서부터 시작해 연기 면에서도 밤공에서 확연하게 정비된 느낌을 주었던 것까지. 낮공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밤공 위주로 적는다. 시간이 없어서 일단은 선 메모, 후 수정(언젠가).

먼저 마지막 춤. 묵직해졌다. 그간의 마지막 춤이 샤프펜슬의 날카로운 감촉을 연상케 했다면 18일에는 일필로 적어내려가는 브러쉬의 느낌이었다. 거칠거나 투박하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이탈하거나 갈라지는 선이 갈기처럼 간혹 삐져나오기도 하는, 까끌한 느낌의.

침대씬에서 온 얼굴의 근육이 표정을 만들며 유혹을 하는 것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이전에는 눈썹과 턱을 치켜올리고 눈동자는 엘리자벳을 내립떠 본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18일에는 그야말로 안면의 모든 근육을 이용하여. 얼굴로 노래를 하듯이.

잘생긴 이마를 드러내니 이마에 주름을 세워 연기를 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어 좋았다. 깐토드의 잘생김을 찬양해야 마땅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머리를 세운 탓에 생긴 귀여운 포인트로는 전염병에서 뒤돌아서서 모자를 벗을 때. 솟아있는 머리카락이 뿅아리를 연상케 하는 바람에 미소가 지어졌던 것 정도. 사실 전염병에서의 의사 분장은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너무나 귀엽다. 모자의 그림자진 부분 바로 밑으로 드러난 동그랗디 동그란 코와 볼록볼록 솟아나는 광대, 삐죽히죽일 때 부리모양이 되는 입술까지.

공연 자체도 오랜만이었지만 중앙좌석(밤공)에서 보는 것도 오랜만이어서 그랬는지, 처음 보거나 새롭게 보이는 장면들도 많았다. 엘리자벳 연출가의 인터뷰에서 죽음이 등장할 때는 초록색 조명을 사용하여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분위기가 감돌도록 했다는 것을 읽고 죽음의 등장할 때의 조명을 유심히 보았는데, 18일에 보니 토드가 등장할 때뿐만이 아니라 죽음의 이미지가 필요한 장면에서도 초록색 조명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침몰씬에서 엘리자벳과 관련된 일등석 손님들이 죽어갈 때, 어지럽게 여러 색의 조명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는 꼭 초록색 조명으로 마무리하는 섬세함을 그날 보았다. 마이얼링에서도 마찬가지. 루돌프의 죽음 이후에 무대의 빛이 퇴색하면서 초록색 조명만이 은은하게 남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어린 루돌프 앞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침대 위에서 솟아나는 죽음의 뒤로 검은 날개가 그려지는 것도 처음 보았다. 죽음이 완전히 몸을 일으킨 순간 그 뒤 3D 화면에 일렁이던 검은 안개가 서서히 날개 모양을 갖추며 펼쳐졌다가 이내 초현실적인 배경으로 흩어지고 마는데, 신선한 발견이었다. 그 이후로 3D 화면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눈여겨 보았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장면들이 영상으로 나와 보는 재미가 있었다(결혼식 피로연에서나, 엘리자벳이 여행을 할 때나).

엔딩에서는 김선영 엘리자벳이 너무 격하게 파고드는 바람에 시아준수의 자켓 안으로 폭삭 안겨 버렸다. 자켓 안에서 시아준수의 등 위로 팔을 올려놓을 곳을 찾는가 싶더니, 자켓 밖으로 팔을 꺼내 다시 안는 바람에 다른 때보다 포옹이 조금 더 길었다.

또 류정한 토드를 보고 나서 보는 샤토드였던지라 어느 부분이 시아준수만의 고유한 동작이고 개성인지 알 수 있어 좋았다. 루돌프를 꼬여낼 때 나비처럼 뒷걸음질 치는 그 우아하고 날렵한 샤토드만의 동작. 침몰씬에서 요제프와의 격렬한 주고 받기 등.

이정화 조피는 목 상태가 좋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즌 2의 새로운 조피로 연기변신을 훌륭하게 하셨다. 1막에서는 굵고 남성적인 목소리로 대공비의 권한을 과시하다가 2막에서 저물어 가는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니 조피의 캐릭터가 이전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김수용 루케니의 경우에는 루케니 중 가장 늦게 첫공을 시작한 탓인지, 이전의 공연들에서는 다소 극에 끌려간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18일에는 화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밀크에서의 4단 고음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분노를 보! 여! 줘! 하며 스타카토로 뚝뚝 끊어 외쳤던 부분. 김선영 엘리자벳은 낮공에서는 씩씩하게 자유를 개척해간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밤공에서는 다시 파르르, 하고 연약해졌다. 내유외강의 강철여인과 연약한 새장 속의 새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느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듯 치우치지 않는 위태로움이 그녀의 엘리자벳의 고유함으로 자리잡은 것 같았다. 가장 와닿았던 가사는 강한 척 하지만 사실은 아니라던 부분.

사실 엘리자벳이나 루케니나 한 캐스트를 보고 있으면 다른 캐스트가 생각나는 아쉬움이 항상 있었는데 18일에는 모두가 각자의 배역을 꼭 맞게 보여준 느낌이라 만족했다. 전반적으로 시아준수는 물론이고 다른 배우들 역시 모두 자기 배역에 끊임없이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고 몰입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 낮공 내가 춤추고 싶을 때
+ 낮공 전염병
+ 밤공에서의 표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