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엘리자벳은 연약해졌다. 나는 나만의 것에서 초반의 억눌린, 파르르 떠는 연약한 모습이 21일따라 로딩이 덜 된듯하면서도 계산된 연약함 같아서 굉장히 낯설고 신선했다. 정신병원에서는 훌륭했다. 전반적으로 연약한 감정선, 가냘픈 모습.


이정화 배우는 더 힘이 들어갔다. 2막에서 요제프와 대립할 때는 훨씬 더 슬프게, 훨씬 더 애처롭게. 아픈 연기가 리얼하셨다.


또 그간에 윤제프에 적응이 되었던 건지, 오랜만의 민제프가 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아, 민배우님의 요제프는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깨달은.. 민배우님의 요제프는 참 멋있다. 듬직하고 늠름하고 의지가 되는 황제고, 남편이다. 민제프를 보고 있으면 조피 대공비가 내 아들과 엘리자벳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게 이해도 간다. 이렇게 멋있고 잘난 아들인데! 내 아들을 네가! 그렇지만, 그렇기에 엘리자벳에는 몰입이 방해를 받는다. 엘리자벳이 도대체 저런 남편을 두고 왜 바깥으로 돌아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린 토드! 구레나룻을 좀 친 것 같았고 앞머리가 무척이나 가지런해서.. 진짜 너무 귀여웠다. 외모로만 보면 역대 가장 순둥순둥했던 토드. 이전의 공연에서 굳이 비슷한 느낌을 찾자면 2월 29일이 있는데, 그때는 풍기는 분위기가 순둥하고 차분했다면 3월 21일에는 앞머리 때문에 순둥한 얼굴이 부각되었다. 표정도 여느 때처럼 사악함에 장난기를 양념으로 가미한 느낌보다는 무언가에 심술이 나 있는 어린아이 같을 때가 많았다. 뾰로통한 얼굴.


마지막 춤에서는 프레스콜 때와 같은 웃음소리가 섞였다. 웃음기로 마무리한 후 또 이어서 비열하게 웃었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내 취향. 노래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 웃는 것도 좋지만 노래 말미에 웃음소리가 섞여드니까 훨씬 사악해 보이고 좋았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석상에서 내려올 때 취하는 자세가 참 좋다. 얼마나 섹시한지. 어떤 자세였는지 정확하게 적어두고 싶지만...


마이얼링에서는 입 맞춘 고개가 살포시 옆으로 돌아갔다.

 

전염병에서는 성병을 다른 날보다 두드러지게 "성뿅"이라고 했고, "아마도 남편에게서"라고 할 때 말투에서 묻어나는 비웃음도 다른 때보다 컸다. 웃음기 섞인 사악한 목소리 내가 좋아하는 거 알잖아.. 목걸이는 놓쳤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목걸이를 따라 시아준수의 시선이 꽂히는 것을 보았다. 머리 위로 에잇! 하는 느낌표가 떠오르는 것도(머리 위로 느낌표가 파바밧 떠올랐다는 건 사실 같이 본 친구의 소감).


효준 루돌프와의 침대씬에선 다른 때와 같이 부드럽게 웃어주지 않았다. 입꼬리만 올려 웃는 명목상의 미소. 미묘하게 경직된 표정. 어린 루돌프의 예정된 미래에 동정을 느낀걸까. 그 안쓰러움에 굳은 표정이었을까. 루돌프의 장례식에서 보여준 표정은 매우 상처받은 것도 같고, 안타까웠다. 바로 아래에서 높이 올려다봐야하는 위치라서 시아준수의 뺨에 드리워진 극적인 명암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던 건지도.


마지막 장면의 눈빛은 굉장히 더디고 느렸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싶은데, 음. 형태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분명하지만 아주 느리게 일렁이고 있었다. 고개도 다른 날에 비해 천천히 정면으로 향했고. 왼쪽 눈동자가 마지막까지 반짝였다. 느낌으로만 표현하자면 2월 15일의 공연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미묘하게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점점 메모 수준이 되어가고 있구나. 뼈대만 적어두고 나중에 보충을 하고 싶지만 아마 다시 건드리지 못하겠지. 이렇게 또 급조되어 완성도 기약할 수 없는, 혼자만 보는 후기가 늘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