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주 산만한 공연이었다. 배우들의 자잘한 실수와 오케스트라, 심지어 관객까지. 개인적으로는 이 산만함에 예술의 전당 특유의 덥고 텁텁한 공기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렇게 적는 이유는 그 공기와 관객들의 매너가 삼연곡의 감상에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아준수가 노래하고 있는데 정신을 낚아채는 관크가 크게 한 번 있은 후로는, 그 순간의 방해를 무시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삼연곡이 통째로 날아가고 말았다. 아아 속상해. 무대도, 객석도 산만했던 오늘이 하필 시아준수가 그렇게 예쁜 트윗을 날려준 바로 다음 공연이라 더 속상했다.


1. Solitary Man

노신사일 때의 걸음걸이가 오늘따라 매우 멋있었다. 한층 더 온몸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었는데 이게 멋있을 수 있다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섹시한 목소리 때문인가.


2. Fresh Blood

젊음을 찾고 나서의 헤드뱅잉은 진소위 절정이다. 종류도 여럿이다. 상체를 써서 몸 전체를 털어내는 버전과 고개만 앞뒤로 흔들어 터는 버전! 빨간 머리에 빨간 상의를 하고 그렇게 맵시 있는 동작을 성큼성큼 하는데 누군들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슬레이브들과 엉켜서 젊음을 음미할 때도 진짜 진짜 멋있다. 젊음을 찾고 나서 그는, 뭐랄까.. 살아 숨 쉬는, 생동감 넘치는, 그래서 그 힘을 주체할 수 없는 것 같은 팔팔 끓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리곤 그 힘을 과시하는데 이건 보는 사람마저 같이 끓어오르게 한다. 슬레이브들 사이에서 군림하며 되찾은 젊음을 음미하는 그는, 난폭한 동시에 파괴적으로 멋있다.

그리고 '내 사랑 미나!' 하며 멀리 있는 조나단을 염력으로 옭아맬 때. 염력의 반동으로 상체가 살짝 젖혀지면서 망토 모자가 뒤로 넘어가고 그의 얼굴이 드러나는 이 장면. 여기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정말 할아버지라도 멋있다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젊음을 되찾고 나서의 노래가 왜 이렇게 짧았던 것 같지..?


4. Lucy & Dracula 1

오늘은 엘리자벳사가 아니라 ‘엘리자벳.’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벳사가 더 좋은 것 같다. 엘리자벳이 되면 뭔가 섞이는 느낌이라..


5. 삼연곡

She는 진실로 시아준수를 위한 곡이다. 가사 하나도, 이야기 하나도 허투루 노래하지 않는 그에게 온갖 드라마와 테마가 한 데 압축되어 있는 She는 맞춤옷과도 같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웠다가도, 공주 앞에 흐느끼면서는 애절하고, 신 앞에 무릎 꿇고서는 처창하며, 격노하는 순간에는 서슬 퍼렇게 날이 섰다. 절망과 슬픔 속에 홀로 남겨지고 나서는 고독하고도 처절하다. 이렇게 다면체 같은 곡이라니.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그를 한 곡에서 볼 수 있다니.

 

게다가 시아준수는 각 테마마다 심혈을 기울여 각각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1) 사랑스러웠다가 (2) 애절했다가 (3) 절절하고 처창했다가 (4) 사납게 분노했다가 (5) 마지막엔 서글프도록 처절하다. 온 힘을 기울여 목소리와 몸짓과 표정으로 드라마를 펼쳐낸다.

 

문장 단위로 변하는 상황과 주제 때문에 흐름이 뚝뚝 끊긴다고 느껴질 법도 하건만, 그가 빚어내는 흡입력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이 일인극만으로 보는 이는 드라큘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의 400년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싶어지고, 미나를 향한 그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이 She가 영상으로 남았어야 했는데....ㅜ

 

무튼. 십자가를 찌르고 내려와 절규한 후에 고개를 들면, 머리가 항상 날 선 것처럼 삐죽삐죽 솟아있다. 매번 일부러 그렇게 하려 해도 어려울 것 같은데 그는 정말 머리칼조차 연기하는가 한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를 부를 때쯤엔 언제나처럼 앞머리가 완전히 제멋대로가 되었다. 그래서 대개 이즈음에 앞머리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정돈해왔는데 오늘은 뒤로 쓸어넘긴 앞머리가 거의 올빽이 되었다가, 그가 고개를 숙여 툴툴 털자 앞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그 후에 고개를 드는데… 헐… 앞머리의 가르마가 사라지고 동그랗게 내린머리의 샤큘이 되었다. 콘셉트 사진 중 완전 동그랗게 내린 앞머리, 딱 그 머리였다. 으으 그렇게 내린 머리로 러빙유라니, 으으 내 심장. 부스스한 앞머리로 이마를 잔뜩 덮고, 솔직하게 울면서 미나에게 애원하는 그는.. 위험해서...

게다가 오늘은 마침 염색까지 새로 한 날. 얼굴을 동그랗게 덮은 머리로부터 비 오듯 흐르는 땀이 굉장히 붉었다. 눈가로 흐르는 땀은 꼭 피눈물처럼 보였다. 무릎 꿇은 채로 허리를 굽혀 땅을 짚은 옆얼굴에서, 눈가를 지나 볼로 하염없이 하염없이 소나기 같은 붉은 눈물이 흐르는 모습이란.. 서너 줄기가 한꺼번에 얼굴을 타고 흘렀던 마지막 순간의 절묘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심지어 그 머리카락에 직접 닿는 블라우스의 뒷목 부분은 아예 새빨갛게 물들어 있기까지.


(+) 오늘도 존댓말이었다.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요! 존댓말이 되면 더욱 처량한 느낌이 들고 반말이면 그의 허탈함과 공허함이 크게 닿아온다. 어느 쪽이든 좋다.

 


6. Lucy & Dracula 2

삼연곡 후에 항상 땀과 눈물로 흠뻑 젖기 때문에 보송보송한 얼굴로 산뜻해져 돌아온 그를 보면 뭔가 극이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다. 오늘도 역시나 마구 헝클어졌던 앞머리를 곧게 펴고 나왔다. 예쁘게~ㅎ    


7. Life After Life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나를 닮은 너는 나의 첫 창조물!’ 하며 속살거리는 듯이 음산하고, 빠르게 다다다 내뱉을 때. 그리고 ‘영원한 삶’을 풍부한 성량으로 압도적으로 내지를 때. 탁 트이는 음이 굉장한 희열을 준다.

또 루시가 폭 안겼을 때 마주 얼러주는 느낌이 진짜로 그녀를 귀여워하는 것 같을 때. 또또 신 난 루시와 손잡고 나란히 서서 그 또한 잠깐이나마 씨이익 웃을 때. 두 뱀파이어의 모습이 보기가 좋아, 가끔 상상도 한다. 이대로 2막에서 두 사람이 런던을 시작으로 세상을 파괴해나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하이라이트에서 이지혜 루시가 유달리 약했다.
(+) 끝날 때 천둥소리와 함께 플래시 라이트 같은 흰 조명이 빠르게 깜빡이는 건 여기서랑 Fresh Blood 였다.


8. The Master’s Song (Reprise)

소매가 그의 생각대로 걷어지지 않았다. 노래하는 동안 두 서너 번 잡아당겼는데도 소매가 그의 손목을 딱 물고 올라가질 않았어ㅋㅋ 그래서 약간밖에 걷지 못해 정말 조금만 드러난 손목에 핏줄기를 그려야 했다. 그는 곤란했겠지만 보는 나는 귀여워서ㅜㅋㅋ


9. Mina’s Seduction

단연코 오늘의 수훈감.

미나를 사로잡는 그의 3단계 방식을 모두 보았다. 

1단계. 시작은 달콤한 쇳소리로 부드럽게 뒤에서부터 그녀를 끌어안는다. 넘어올 듯하던 미나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어라? 부족해? 잠시 찡긋하던 눈썹이 2단계. 한결 더 센소리와 다그치는 노랫소리로 그녀를 몰아세운다. 망설이던 미나는 그에게 홀린 듯 중간부터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러다가도 또! 또! 망설이면, 3단계. 맨 처음의 부드러움이 다소 사라진 손길로 그가 그녀의 돌아서는 손목을 확 낚아챈다. 끌어안는 손으로, 목소리로 그가 최면을 거는 것처럼 그녀를 유혹(내지는 설득)한다. 그녀는 더는 거부하지 못하고 그를 침실로 인도한다.

여기서 그를 침실로 이끄는 정선아 미나는 그에 대한 사랑을 깨우쳤다기보다는 그에게 홀려있다는 느낌이 훨씬 지배적이다. 조정은 미나가 홀린 것과 동시에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끝내 부정하지 못하는 것과는 반대로.

어쨌거나 마침내 입맞춤을 나눈 후에, 여유만만해진 가진 자의 표정이 되는 그(는 조금 귀여웠다ㅋㅋ). 차가운 열정이 느껴지는 얼굴(은 멋있었고).

의식을 치르며 미나에게 피를 나누어줄 때는 정말 세게 긋는가보다. 오늘 손톱자국이 매우 매우 선명했다. 유독!         

 

아니 그런데 정선아 미나는 그에게 홀려들 때마다 왜 자꾸 그의 멱살을...



10. It’s Over

노래도, 동선도 역동적인 이 넘버에서 그에게 감탄하는 부분은 셀 수 없다.

 

우선 장풍을 사용할 때의 맵시부터, 총격의 타이밍에 맞추어 쓰러지는 연기. 마늘과 십자가에 화들짝 놀라며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고, 경기를 일으키며 그것들을 피할 때의 몸짓들. 놀라면서, 화나서, 악에 받쳐서 이 악물고 피하는 건 데도 절도있고 우아하다.

또 기를 모아서 십자가에 불을 붙여낼 때. 이 기를 모으는 동작! 불붙이기 위해 염력을 쓰는 동작! 진짜 초능력을 쓰는 것처럼 그럴듯하여 볼 때마다 감탄에 감탄.

감탄의 쐐기를 박는 장면은 반 헬싱의 말뚝을 빼앗아 들곤, 한 발을 쾅 구르면서 덤벼들려고 자세 잡을 때다. 찰나에 일어나는 일인 데다 격렬한 곡 말미의 하이라이트 동작인데도 동작이나 각에 흐트러짐이 없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 오늘 확실히 안 것은 그를 만류하는 미나 때문에 깊이 좌절하며, 뛰쳐나가는 동시에 크게 '으아아아악' 소리 지르는 건 정선아 미나와의 호흡에서만 한다.


11. Train Sequence

오늘의 수훈감 2

시작의 ‘어둡다’에서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으로 돌아가는 그의 고독이 느껴진다. 어둡다는 건 밤의 어둠을 포함하여 외롭고 지친 그의 마음 전부를 이른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지쳐 있기에 내 마음이 다 아팠다. 감은 얼굴에서 씻겨내지 못한 마음의 피로가 보였다.

미나가 자신의 소리를 듣고 있고, 그 역시 미나의 소리를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상심한 마음으로도 놓지 못한 사랑을 속삭인다. ‘이제라도 내게 와요.’ 미나와 함께 부르는 Life After Life가 되면 플라잉관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의 육신은 성으로 가는 배에 있지만 영혼은 언제나 그녀 곁에 머물고 싶어함을 말해주는 듯이.

‘영원한 삶’을 노래하는 바로 그 대목. 그는 그녀 가장 가까이에 있다. 절묘하기도 하지… 그렇게, 그가 자신의 소망을 담아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에 끼어드는 반 헬싱은 참 눈치도 없다.

상심한 그가 눈을 감고 다시 올라가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 미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기 전에, 눈 감은 얼굴의 그는 정말 정말 정말 예쁘다. 빚어놓은 인형 같아. 눈꺼풀의 붉은 음영이 정말 곱디곱다. 예술이야. 하얗고, 빨갛고, 하얗고. 검붉은 것이 아니라, 희붉은 지배자다. 

 

(+) 정선아 미나는 시아준수와 함께 할 땐 괜찮은데 혼자만의 연기 노선을 펼쳐야 할 때가 되면 (솔로 넘버, 반 헬싱 등과 함께 있을 때) 매우 헷갈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여기서, 최면 끝나고 나서 반 헬싱에게 기다렸다는 듯 '제가 도움이 되었나요?' 하고 물었던 건 정말로 도움이 되기를 원한 것처럼 보였다.


11. The Longer I Live

다갈래로 퍼지는 그의 풍부한 음성. 높고, 넓고, 아득한 목소리. 음 하나하나마다, 가사 하나하나마다 새겨지는 그의 고독함. 이 노래의 그는 참 뼛속 깊이 외롭다. 마침내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내 손에 넣었다 믿었는데, 그래서 이제 손에 꽉 쥐고 놓지 않는 일만 남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손가락 틈새로 모든 것이 빠져나가 버렸다.

 

마음의 답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피 없이 흔들리는 마음.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의 노래. 400년의 허무가 묻어나는 노랫소리. 표정으로도, 타박타박 곤드라지는 걸음걸이로도 혼란스러움을 연기하는 그가 참 많이 안쓰러웠다.

 

특히 마지막 가성. ’그대 없다면 내 심장 멈추네.’는 정말 모든 힘이, 의지가, 영혼마저 사그라진 것처럼 가냘파서 처연함을 한껏 고양시켰다. 내 눈물샘도...


12. At Last

무대 오른쪽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사랑을 깨달았다 말하는 미나에게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그. 아래로 처진 입꼬리는 꼭 울음을 참는 것 같았다.

마지막. 단검을 내미는 그에게 매달리며 ‘안돼, 싫어. 사랑해요 그대’ 하자 시아준수 진짜 이거면 됐다는 듯이 웃었다. 이 기억 안고 가겠다는 듯이,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마지막 가는 사람의 행복한 얼굴로 기쁘면서도 아프게 웃었어ㅜㅜ 그렇게 웃는 건 반칙 아닌가요ㅜㅜ 이 표정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마지막이 너무도 아려서 마음이 얼얼했어..



1. 삼연곡 도중에 시아준수의 오른손에 짙고 길게 붉은 것이 묻어있었다. 설마 피? 다친 건가? 싶었는데 잘 구분할 수 없었어. 작은 십자가를 부술 때 긁히면서 피가 난 것 같다는 말들이 있는데.. 상처라면 너무 크거나 깊이 다친 것은 아니었으면..
2. 믹키유천을 소향 오피 때의 거리감으로 보았다. 우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