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의 샤토드는 비쥬얼적으로 완벽하게, 가장 내 취향으로 잘쌩잘쌩했다. 깐토드였으므로 머리를 올린 날로만 비교하자면 4월 1일의 느낌도 났고, 눈썹을 앞은 강하게 뒤는 연하게 끝까지 그려넣어서 진짜 진짜 잘쌩잘쌩. 넘긴 머리는 슈크림램을 똑 닮았는데, 새로운 스타일링이었다기보단 앞머리가 많이 긴 탓에 뒤로 넘긴 부분이 슬며시 접혀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 얼굴로 프롤로그에서 내밀었던 혀의 습격이란. 사실 이제는 한두 번 내비는 혀도 아닌데, 이상하게 매번 볼 때마다 이것만은 매번 쓰고 싶다.

낮공의 <마지막 춤>에서는 등장할 때부터 굉장히 뾰로통했다. '깨어날 거야'의 '깨어날'에서는 22일 밤공과 같이, 그러나 조금은 약하게 손을 한 번 꼬아낸 후 웨이브를 타서 풀어냈다. 전반적으로 웃음기가 서린 마지막 춤이었는데, 평상시처럼 씨이익 웃음을 그려넣었다기보다는 중간 중간에 피식 피식 하는 느낌으로 자주 웃었다.

밤공에서는 첫 후렴에서 '결국엔'의 박자가 살짝 뒤로 밀렸다. 처음에는 박자가 밀린 게 아니라 가사를 바꿔부른 줄 알았는데, 뒤에 제대로 맞춰 부르는 것을 보고 나서 박자가 달랐다는 것을 알았다. 맞아, 첫 후렴 후 엘리자벳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설 때 유난히 몸이 가벼워서 두 번째 걸음이 거의 폴짝 뛰어오르다시피 했는데. 그것도 그렇고, 함께에~ 하면서 고개를 흔들거렸을 때도 그렇고, 밤공의 마지막 춤은 특히나 경쾌한 느낌이 강했다.
 
1막의 <그림자는 길어지고>는 참 아름다웠다. 옆모습이 보일 때의 그 아름다운 눈두덩이. 앞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폭발하는 순간 광기에 사로잡혀 반짝이던 눈동자. 온 얼굴에 핏줄을 세워가며, 음을 심어내던. 손을 펼치며 절정에 오를 때도 절대자답게, 유일무이하게 아름다웠던 그 모습. 모든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순간적으로 샤토드가 아닌 시아준수 본인이 그곳에 실재한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시아준수에게 시아준수의 얼굴과 시아준수의 목소리를 선사한 그 어떤 존재에게-그것이 신이든, 시아준수 본인이든- 그저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29일은 유난히 이미지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장면이 많았다. 밤공에서 엘리자벳과 죽음의 첫 만남의 순간. 엘리자벳으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그녀를 흥미롭게 관찰하는 죽음의 귀걸이가 때마침 드리워진 조명에 반사되어 초록빛으로 반짝였는데, 아아 절묘하기도 하지. 단지 귀걸이에 빛이 드리워졌을 뿐인데, 기가 막히게 어울리고 또 아름다워서. 기억하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고 되뇌었다.

낮공의 밀크는 스타카토 없이도 충분히 좋았는데, 박은태 루케니의 밀크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마지막 스퍼트 직전의 민중의 자유, 민중의 해방! 하며 일갈할 때다. 세 루케니 중 가장 또렷하게 귀에 박힐 뿐만 아니라 앙상블의 소리를 뚫고 날카로운 화살처럼 짤막 짤막하게 박히는 네 어절이 굉장히 짜릿하다. 마치 절정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그런 느낌.

1막은 전체적으로 매우 좋았다. 공연의 밀도가 촘촘하게 맞물려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고 여러모로 완성형의 냄새가 났다. 다만 옥주현 배우가 아쉬웠다. 2월의 공연에서는 1막은 밝게, 2막은 진중하면서도 고통스럽게, 옥주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호불호나 취향 차이를 떠나 엘리자벳을 연기하는 배우로서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확고한 해석을 가지고 공연에 임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4월 들어서는 전혀. 1막에서 황후는 빛나야 해나 나는 나만의 것을 포함하여 모든 넘버를 너무 곱게만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옥주현 엘리자벳의 연기는 물론 노래에서조차 강약과 감정이 사그라져 버렸다.

29일 낮공의 나는 나만의 것이 특히 그랬다. 사실 22일 밤공에서도, 그 이전의 공연에서도 전반부는 너무 곱게만 불러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술적인 노래로만 일관하다가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몇 소절에만 힘을 실어 부르는 전개가 다소 뜬금없었는데 29일 낮공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했다. 도입과 절정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감정선이 너무 뜬금없었으며, 도입은 목소리를 예쁘게 내는 것에만 주력하니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후의 인형극이나 비밀의 방에서는 감정을 곁들인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나는 나만의 것의 충격은 지워지지 않았다. 2월 공연에서의 나는 나만의 것은 곡 해석이나 감정 표현에 있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22일 밤공에서 아쉬움을 느꼈으면서도 29일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마음을 한 켠으로는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방식이 고착화된 것 같아서 여러모로 아쉽다.

다시 시아준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낮공 2막에서 두 번 정도 아이처럼 얼굴을 무너뜨려가며 웃었다. 한 번은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석상에 앞에 서있을 때, 또 한 번은 <엄마 어디 있어요>에서 퇴장하면서 객석을 향해 시선을 두었을 때. 그렇게 웃고 나서 몸을 홱 돌려 퇴장하는데, 처음으로 기척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어깨를 틀었다. 홱, 홱 몸 트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게.

아아, 맞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두 번째 키스 시도를 하며 엘리자벳의 턱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그 손이 거부하는 옥주현 엘리자벳의 동작과 맞물리면서 턱에서부터 가슴까지 묘하게 쓸어내리는 동작으로 이어졌다. 밤공에서는 초반에 나지막한 한숨이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는 처음으로 곁들여졌다. 정확히 어느 가사에서였는지는 들어봐야 알 것 같다.

전염병에서는 낮밤 모두 근래 들어 가장 엘리자벳에게 밀착해 진단을 내렸고, 본색을 드러내고 난 후 백허그를 할 때도 밤공에서 특히 박력 있게! 또 밤공에서 브릿지를 타고 오르며 퇴장할 때 핳하하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4월 공연을 관통하는 샤토드의 키워드는 무엇보다 깐토드와 웃음이었는데, 29일 밤공에서는 그 정점을 찍는 것처럼 곳곳에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마이얼링에서도 낮밤 모두 퇴장하며 짤막하게 웃었는데, 29일에는 아예 그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나왔다. 또 낮밤 모두 침몰씬의 '구원하겠다'를 버럭 성질을 내며 소리쳤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에서는 뒷걸음질하며 우아하게 루돌프를 유인하는 순간에 손 끝으로도 연기를 한다. 리드미컬하게 차례로 접혔다 펴지는 손가락은 그가 노래하지 않는 순간에도 음 위에서 노닐고 있다.

엔딩의 키스신에서는 22일 밤공에 이어 또 고개가 돌아갔는데!!!! 밤공에서는 고개를 꺾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옥주현 엘리자벳과의 한정 연기인지? 그게 아니면 그 순간의 즉흥적인 연기였던 걸 텐데 아직 두 번밖에 보지 못해 어느 쪽으로도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꺾기가 섹시하기는 하지만.. 두 번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_ㅠ 키스신까지는 괜찮은데..

낮공도 그랬지만 특히 밤공의 <베일은 떨어지고>는 두 사람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엔딩이었다. 엘리자벳의 턱 부근을 향해 손을 뻗는 죽음의 손이 파르르했던 것, 두 사람이 울먹거리는 것과는 별개로? 또는 그에 의하여? 내게로 밀려온 감정들 때문에 어쩐지 울컥한 기분이 되었다. 에피소드로는 오랜만에 김선영 엘리자벳이 샤토드의 자켓 안으로 파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파고 든 손을 그대로 둔 채로 포옹-키스까지 이어가서 부러웠던 것 정도.


(+) 황후 때문에 주식시장이 위태로워요.
바로 이 세상을 증오하게 될 거야.
세상 따윈 버려 이 세상을 가라앉게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