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샤큘. 평소보다 앞머리의 웨이브 결이 살아있어 경쾌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청순하기까지 했던 외모와는 달리, 한없이 침잠하였던 오늘의 얼굴.

피곤해 보였다. 목 상태가 좋지 않음이 확연히 느껴지기도 했고. Fresh Blood와 Loving You Keeps Me Alive, Life After Life 등의 넘버 마지막 고음을 평소와는 다르게 생목소리로 내질렀을 때 알았다. 그런데도 잔혹할 정도의 고음의 연속인 It's Over는 대단했다. 벼랑 끝에 선 서슬 퍼럼이 그 쉰소리를 새로운 목소리로 탄생시켰다. 

그래서 오늘 가장 좋았던 넘버는 It’s Over. 그리고 The Longer I Live와 She.


1. 

Solitary Man. 저음이 대단히 풍부했다. 깊고도 넓은 진폭. 
조나단의 면도칼은, 매우 오랜만에, 달짝지근한 무언가를 핥는 듯한 느낌으로 깔짝댔다.

(+) 조나단과의 대화에서 드물게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미스터 하커.’의 대사가 살짝 엉켰어ㅎㅎㅎ


2.

Fresh Blood. 아, 모자를 써서 멋지게 귀여운 모습에서 모자를 짜잔 벗고 멋지게 늙은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을 항상 기다리는데 오늘, 평소처럼 침대 위에 멋있게 군림하듯 서려다가 휘청했다. 아 정말 깜짝 놀랐어. 허릿심으로 용케 버티고 선 것 같았는데 다칠까 봐 정말 놀랐다. 조심해요 시아준수ㅜ

검은 파도 같기도 하고, 랩 같기도 한 이 노래에서 그가 구절 말미마다 강한 악센트를 주는 것이 참 좋다.

허기진 고통 속의 ‘세월!’
날 위한 고귀한 ‘선물!’
강인한 젊음을 ‘채워!’ 

귀를 할퀴는 음성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준다. 흡혈귀의 공격성을 청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실로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음산하고 위협적이면서,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소리.

더욱이 막 그의 <더 뮤지컬> 8월호 인터뷰를 읽고 난 이후라, 미나를 만난 후에 급작스러운 살인과 흡혈의 충동의 시달리는 그를 새로운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더 이해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동시에 더 응원.. 하게 되는 것도 같았던..


3.

윗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오늘의 잘생김은 빚어놓은 듯했다. 뒷짐 진 모습은 너무도 근사하여 그대로 눈 안에 박아두고 싶었다. 미나와의 오랜만의 재회에 대한 부푼 마음과 자신만만한 표정까지 겹쳐서 더 멋있었어. 흑흑.

루시 흡혈 1차 시도에는 혀 + 입꼬리 + 기대감에 빛나는 얼굴의 풀코스가 전부 나왔다. 뒤이어 미나를 보고 당황하던 얼굴까지. 오직 미나에 의해서만 그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진다. 그의 심중에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오로지 그녀 하나이기에.

더불어 오늘 새로운 표정을 보았는데, 기차역에서 미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때. 간절한 눈동자의 떨림이 그녀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애끓어 하고 있었다. 꾸중 들은 강아지 같기도 했던 그 눈망울. 미나의 ‘좋아요.’ 한 마디에 안심하며 곧바로 좀 더 말을 붙여보던 그. 사랑 앞에 단순할 정도로 순수하고 순정적인 존재.


4. 

삼연곡.

She는 어제 공연이 최고였다고 장담한 것이 무색하게;; 오늘 아하하;; 흑화할 때 진심 소름이 돋았다. 

엘리자벳사가 칼을 맞았을 때 아이처럼 주저앉으며, 그녀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갈 때도 소름 돋았어. She 자체를 처음 보고 듣는 것 같았다.

‘끝내주소서’까지 마친 후 허무한 눈으로 정면의 허공을 응시하는 촉촉한 눈은 또 너무너무너무 예뻐서 그대로 화폭에 담고 싶었다. 이 순간의 그는 아폴론이거나, 디오니소스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만 같다.


At Last.

눈물 머금은 얼굴이 ‘당신과 함께’를 힘겹게 내뱉으며 결국 눈물방울을 후두두 떨구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미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순간엔 나 정말 울컥했어. 자기도 울면서.. 그렇게 울면서, 고작 하는 것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 볼의 눈물을 훔쳐주는 것이라니ㅜㅜ

내 마음을 무너뜨리는 절규는 오늘도 반말이었다.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 


러빙유.

오늘과 같은 도입부의 애절함이 또 있었나. 두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그러쥐듯 얼굴을 가렸다가 힘겹게 든 표정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울먹임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노래를 시작하기 위해 울음을 갈무리하는 모습은 샤큘이기도 하고 시아준수이기도 하여 더욱 애틋했고.

요즘 러빙유에서 복받치게 슬픈 장면은, 그가 그녀를 향해 끊임없이 애원하고 사랑의 노래를 속삭이는 데도 미나가 ‘사랑을 만났는데’ 하면서 조나단을 보면, 내내 미나만을 보고 있던 그가 미나의 시선을 따라서 조나단을 한 번 볼 때. 오늘은 그 순간부터 조금 진정되었던 얼굴에 다시 울음이 마구마구 번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말도 못하게 슬프고 미나가 원망스러웠다. 꼭 그의 앞에서, 그를 상처 주며, 도망치듯 떠나야 하는 거야.. 오늘따라 조나단에게 당장 결혼하자던 조정은 미나의 말투도 꼭 나 지금 흔들리고 있으니 빨리 우리 결혼해요, 나를 잡아줘요 하는 것처럼 들려서 울컥했다(이건 화나서). 아 지금 다시 써도 똑같이 슬프네..


5.

대단히 차갑고 대단히 냉소적이었던 오늘의 Life After Life. 루시를 쳐내는 손길은, 오늘 정말 냉정했다. 방해하면 진심으로 가만두지 않을 듯했어;;

아, 묘지 문 닫을 때 고개로 미약한 반달을 나른~하게 그렸는데 마지막 춤에서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그런데 오늘 이 멋있는 넘버에서 약소하게 웃음 나는 상황이 있었다.

30일 밤공에서 ‘나를 닮은 너는 나의 첫 창조물. 함께 런던을 삼킨 뒤 굴복시킬 거야.’ 하면서 루시 귓가에 주문을 걸듯 속삭이다가 머리장식에 살짝 방해받았었는데, 오늘 그걸 의식했던 걸까? 같은 장면에서 루시의 머리장식 부피만큼 고개를 갑자기 옆으로 쭉 빼서 얼굴을 평소보다 훨씬 앞까지 내밀었다. 지그재그로 이케이케 슝. 평소에는 안 하던 동작이라 눈이 번쩍 뜨이면서 갑자기 웃겼어 ㅋㅋ 귀여웠고 ㅋㅋ

(+) 그리고 개인적으로 오늘 아이컨택이.. 많았어.. 좋았어.. 차가운 눈빛이라도 그 눈동자를 정면으로 보는 순간은 참 좋다.


6.

조정은 미나와의 Seduction은 언제부터인가 대단히 격정적이다. 유혹적이고, 은밀하면서도 본능적인 격정이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운명적으로 이끌리는 동시에 그 이끌림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리란 암시를 주는 점에서, 짜릿함도 있고.

조정은 미나의 디테일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자켓을 벗기며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 오늘도 허벅지에 잠시 얼굴을 묻었다. 약간의 한숨도 곁들이면서. 무릎 꿇는 건 참 좋아하는 데, 얼굴을 묻는 건 볼 때마다 살짝씩 놀란다.

침대 위, 의식을 치를 때는 그의 손연기가 인상 깊었다. 흡혈 당하면서 힘이 빠진 얼굴과 상체가 뒤로 풀썩 쓰러질 때까지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손이 끝까지 부들부들 떨다가, 마지막에서야 톡, 침대로 떨어졌다. 아아 이 섬세한 연기. 

감탄과 동시에 분노가 차올랐다. 아니 이렇게까지 그녀를 위해 자신의 피를 내어주었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에게 상처를 주다니. 오죽하면 오늘 그가 자신을 막아서는 미나 때문에 ‘하!’ 하는 다소 높은 톤의 헛웃음까지 내뱉었을까.

그 헛웃음이 자꾸 기억난다.


7.

Train Sequence. 이 넘버는 그와 조정은 미나의 호흡을 더 선호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와 부름에 감응하여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는 두 사람의 정신적 교감이 너무도 짜릿해.

최면 상태의 조정은 미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인간과 흡혈귀의 정신적 교감이 아직은 버거운 듯이 괴로운 얼굴로 부르르 떤다. 내내 떨면서 그의 소리를 듣고, 그를 따라 노래한다. 그러다 ‘영원한 삶’을 부를 차례가 되면 각성한 것처럼 번쩍 눈을 뜨곤 고개를 들어 그가 누운 관을 정확히 응시한다. 동시에 그를 향해 본능적으로 다가가. 손을 한껏 뻗어서, 홀린 듯한 걸음걸이로. 그런 그녀를 향해 그도 손을 내민다. ‘영원한 삶’을 함께 부르며 점차 가까워지는 두 사람. 마침내 코앞.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정신의 이어짐, 운명의 맺어짐.

바로 이 상황에서 파고드는 반 헬싱의 목소리는 내게조차 배신감을 준다. 퍼뜩 교감에서 깨어난 그의 공허하고도 아픈 눈동자. 오늘은 휴식으로 돌아가기 위해 두 손을 모으고, 다시 눈을 감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8.

The Longer I Live.

항상 이 넘버에서의 그의 목소리와 터덜터덜 곤드라지는 발걸음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그는 걸음걸이로도 연기한다. 뿐 아니라 힘없는 어깨와 옷깃으로도.

삼라만상이 다 깃든 이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요즘은 생눈으로 보곤 하는데, 오늘은 두 눈을 감고 소리만 듣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진땀을 뺐다. 아무리 그래도 눈앞의 얼굴을 놓칠 순 없지ㅜ 하지만 그 정도로 귀 기울여 듣게 되는 노랫소리다. 만 갈래로 퍼지는 소릿결에 숨조차 쉴 수 없어.


9.

At Last.

그녀는 깨달았다고 말하는데 그는 항상 고개를 젓는다. 그토록 원해왔고 기다렸던 순간인데, 왜 그런 얼굴이죠. 안 된다는 듯이, 돌아가라는 듯이. 아래로 한껏 처진 입꼬리는 울음을 참고 있다. 이것도 항상.

마지막 포옹. ‘사랑해요 그대’ 하며 또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신의 눈물은 흐르도록 그대로 두면서, 소중한 사람의 눈에서 나는 눈물은 아프다는 듯이.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작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인데, 그녀를 달래고 위로하는 듯이 청했다. ‘내게 밤을 허락해요. 사랑해서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그인데 그는 끝까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지막에 그렇게 웃지 말아요. 고통 속에서도 힘겹게, 오로지 그녀를 위해 웃어 보이지 말아요.

차라리 그의 마지막 얼굴이 고통스럽기만 했다면 모를까.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위해 옅게 웃음 짓는 모습 때문에 그녀가 너무나 밉다. 남겨진 그녀의 삶에서, 행복이란 짧고도 허망한 것이면 좋겠다. 그 없이는 그녀의 행복도 쓸쓸한 것이었으면.



10.

연속 4회 공연 정말 수고 많았어요. 잘 자요, 내 천사.


(+) 마스터송. 오늘 ‘핏빛!에 물들어’에서 핏빛의 강세가 확연하여 좋았다.
(+) 반 헬싱 솔로. 오늘은 나무 십자가를 만드는 대신 십자 목걸이를 공격적으로 내미는 것으로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