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준수를 따라 걷다 보면 참 많은 종류의 감정과 조우하게 된다. 그중에는 시작점에서는 미처 예감하지 못한 것도 있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시아준수에서 기인하여, 다시 시아준수로 수렴하는 현상도 그 수만 가지 중의 하나다. 바로 어제처럼.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3시간 만에 보게 된 장문의 트위터에서 첫눈에 뜨문뜨문 눈에 들어오는 글자(녹음, 배우, 실황, 앨범…)를 보고 달막이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내려간 시아준수의 마음은 너무 따뜻하고, 상냥하고, 예뻤다. 행복이 고여오르는 와중에 눈물이 마구 났다. 그가 적어 내려간 예쁜 글자에 소금투성이였던 마음이 눈물로 녹아내렸던 것인지, 기쁨과 서러움이 한데 얽혀 낯선 감정이 자꾸만 토해졌다.
 
눈은 따갑고 심장은 버겁고. 그 와중에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그의 고운 말씨가 좋아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또 보았다.
시아준수답다.
당연한 일인데도, 나는 언제나 시아준수의 그다움에 놀라고야 만다. 시아준수는 내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시아준수 덕분에 행복하고, 시아준수로 인해 아팠는데(정확히는 시아준수와 관련된 무엇들.) 그런 그가 또 이렇게 나의 행복으로 분하려 하니까. 두려울 정도로 기쁘고 지나치리만치 행복한 탓에 심장 한구석이 저몄다. 이것은 아픔인가, 행복인가. 시아준수는 어째서 내게 이런 존재인가.
 
감사했다. 고마웠다. 그 말밖엔 생각나지 않았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도 모르고 그저 그런 마음이었다. 시아준수가 남겨놓은 글자 안에서 같은 말과 같은 생각을 되풀이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OST 소식에 대한 반가움이라는 표면적인 의미를 떠나 시아준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였던 것 같다. 그의 그다움에, 그 한결같음에.
 
요즘의 나는 불안정하다. 생활도, 마음도 예전과 다름없이 견고하려고는 하지만 어딘가 한구석이 내내 시린 채다. 그래서인지 시아준수에게만 감응하는 울림이 자꾸만 형상을 갖춰 쏟아진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울음으로. 오빠는 내게 너무 많은 의미다. 그 어떤 의미도, 깊이도 부여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일차원적으로 좋아만 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쌓이고 쌓여 요즘은 자꾸만 흘러넘친다. 오빠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그런다. 그렇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