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 공연에 대하여는 쓸 말이 많지 않다. 어떤 말을 쓰든 쓰지 않든 오늘 공연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므로.
2막의 At Last는 공연을 본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이 울어서 떠올려보면 무얼 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되새기고자 해도 장면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각 사진의 나열 같다.
그러니까.. 그가 처진 입꼬리로 등장하여 울음을 참고 미나를 보았고, 그녀에게 마지막 확인 차 나와 함께 가겠느냐 물었다. 그 후엔 단검을 꼬옥 쥐여주었고, 어느 순간 무릎을 꿇듯이 주저앉아 울음으로 노래했다. 그러다가도 그 우는 얼굴로 그녀를 향해서는 애써 웃어 보였다.
원래대로였다면 At Last에서 마음껏 울 수 있는 부분은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다. 시아준수가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부터는 그를 봐야 하니까 늘 억지로라도 눈물을 삼키곤 했는데, 오늘은 그게 되지 않았다. ‘정말 나와 함께 가겠어요?’는 오디오로만 들렸다. 그가 단검을 건네줄 때는 그래도 꽤 감정을 추슬렀다 생각했는데 복병이 있었다.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
그가 주저앉았다. 무릎이 꿇리며 그의 몸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세상을 잃은 얼굴로 털썩. 육신과 함께 영혼까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바닥을 짚은 두 손은 이제 다시는 그 어떤 희망도 잡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버린 채였다. 삶도, 사랑도.
그렇게 작고 가녀린 그는 처음이었다. 죽음을 굳힌 순간에서도 늘 결연하고, 그녀를 위해 의연하던 그였다. 이렇게 마음 깊은 저변의 외로움과 고통을 날 것 그대로 꺼내놓은 적은 없었다.
수백 년의 외로움으로 응어리진 아주 작은 생명. 그 기나긴 세월 내내 날숨과 들숨조차 떳떳하게 내뱉을 수 없었던 어둠 속의 영혼. 그의 서러움, 그의 고독.
안개가 걷혔다. 그 모든 것들이 만져졌다. 뼛속까지 공허하여 눈으로 더듬기도 쉽지 않은 그것들이 손끝에 닿아왔다. 그 순간의 그가 머리를 떠나, 가슴을 타고, 두 손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늘 그의 마지막 선택에 반발해왔다. 그가 왜 그녀를 위해 모든 십자가를 짊어지고 떠나야 하는지 마냥 안타까웠다. 머리로는 그 사랑의 고결함을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선뜻 기꺼울 수가 없었다. 그가 조금만 더 이기적이라서 그녀를 자신과 같은 존재로 두고 1막에서처럼 영원한 삶 속에서 군림하기를 차라리 바랐다.
그러나 오늘은 그의 모든 고통이 멎을 수 있다면, 그것이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기를 바랐다.
사랑의 맺어짐보다도 그의 자유에 갈급했다. 그의 사랑은 이미 400년 전 엘리자벳사가 눈앞에서 주검이 되었을 때, 그가 신을 저주하여 버림받았을 때 다시는 채색될 수 없는 흑빛이 되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가 향할 곳은 구원이다. 두 사람의 행복한 사랑의 결말보다도, 사랑을 통하여 그가 얻게 될 영혼의 안식이 종착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가 내 안의 구세주가 되었다. 그녀는 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에게 빛이었다.
처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그녀의 손에 그의 마지막이 맡겨질 수 있는 축복이 그에게 허락될 수 있어서, 그 마지막 작은 소망마저 외면당한 것은 아니라서.
그의 지친 영혼을 감싸주는 사랑의 빛은 짧지만 눈부셨다. 마지막 포옹과 입맞춤으로 그의 모든 아픔이 씻겨졌으리라, 처음으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울면서 우는 그의 얼굴은 쓰라리기보다 반가웠다. 그녀를 위해 애써 웃는 얼굴 반, 마음으로부터 가벼워진 영혼의 웃음 반. 이렇게 보여서.
마지막 순간. 칼끝이 그의 복부를 스쳐 그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고통으로 떨리는 눈매와 다물리지 못하는 입술, 그리고 처연히 그녀를 향한 마지막 손이 서서히 떨구어지며 관이 닫혔다.
최후에 그가 거머쥔 것이 스스로의 구원이었기에 다행이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그래, 사랑에 갈음하여 구원을 얻었으니.
슬프도록 아름다운 해피엔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