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샤큘
At Last 이외의 넘버들에서 간략하게만.


1.

Fresh Blood

초반, 침대 위의 조나단이 휘청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쓰러진 상체를 잡아채 일으키던 노백작님의 박력. 눈물 나게 멋있었다.

무대를 횡단하면서 오늘은 또 특별히 날개처럼 두 팔을 활짝 펼쳐 한껏 으르렁대기도 했다!

'다시 찾은 내 힘!’의 순간은 조명까지도 다 너무 좋다. 무대가 약간의 어둠에 잠긴 뒤, 오로지 그를 향하여만 검푸른 실선이 좌우에서 뻗어나오기 시작하면 두근거림이 최고치를 찍는다. 그 조명 위에 버티고 서서 장갑을 한 짝씩 벗겨내는 그를 보는 카타르시스란.

그 매끄럽고 보드라운 젊은 손으로 투둑 망토를 뜯어낼 차례. 오늘은 망토의 끝자락이 그의 종아리를 휘감고 있었다. 그가 장갑을 벗으면서 코트 자락도 어떻게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되지 않았고, 망토의 운명은 슬레이브들의 손에 맡겨졌다. 약간이지만 걱정했다. 혹시 벗겨내다 엉켜서 다치면 어쩌나 해서.. 하지만 별일은 없었당.

또 오랜만에 마이크를 고정해둔 테이프가 떨어졌다. 머리 위에서 달랑달랑. 그 탓에 A블록 쪽에서 헤드뱅잉 할 때 ‘함께 <해>’의 소리가 살짝 먹혔다.


2.

Lucy & Dracula 1

아직도 기억을 못 하겠어 엘리자벳사?! 혼내는 것처럼 다그치는 음성이 언젠가부터 진심으로 버럭한다. 원래는 반쯤은 속삭임 같은 소리였는데, 요 근래는 복부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소리 같다. 기억하기에는 아마 20일부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도 오늘 안개가 짙었네.. 안개 자제를..


3. 삼연곡

She

흑화, '널 저주 <해>'하는 순간의 얼굴. 울음으로 이지러진 그 얼굴. 헐.. 완전한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놀라는 울음 섞인 분노의 얼굴. 더불어 봐도 봐도 좋은 '이 고통의 삶 (고개 탁) 끝내주소서.'


At Last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
눈물이 한계까지 차올라, 흐르기 직전의 눈동자. 마지막 C블록이었으므로 그 얼굴을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도 이상할 것이 없던 눈물 가득 고인 눈. 소리 없이 반작반작이던 그 촉촉한 눈.


러빙유

'당신의 진심을 외/면/하지 말고'

유난히 울었는데, 초반, 그의 노래가 울먹임에 먹히는 순간 왜 그리 가슴이 뛰었는지. 우는 모습은 마음이 아린데 그의 감정이 노래를 비집고 나와 흐르는 순간의 목격자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흥분하게 된다.

'다시 내게 돌아와/이제 내게 돌아와’에서 애처롭게 들썩이는 어깨를 볼 때도 마찬가지.

털썩, 주저앉아 웅크렸을 때도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렀다. 똑똑, 바닥에 투명한 반점을 만들어가며. 그의 뒷모습만 보이는 C블록에서도 그 눈물방울이 다 보일 정도였다.


부케를 받을 차례. 상체를 일으킴과 동시에 머리를 넘기는 동작은 진짜 멋있다. 분노를 꾹꾹 눌러 담는 것 같은 순간의 그다. 요즘은 허리를 앞으로 살짝 접으며 씨익 웃는 얼굴로 뒷걸음질해 들어가는데(여기에 머리를 한 번 더 쓸어넘기는 동작도 추가), 진짜 악마 같다. 이 극에서 유일하게 그가 악마 같은 순간이다.

(+) 기차역. 오랜만에 이쪽으로 오는 기차들~ 이었다.


5.

Life After Life

금보다 귀한~ (고개 탁) 영원한 삶
파멸~ (고개 탁) 영원한 삶

고개 탁! 진짜 흑흑 너무 좋아. 마지막 파워워킹까지 절도 넘치고, 파괴적으로 멋있다. 영상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dvd가 정말이지 필요해..

‘나의 첫 창조물’ 때는 그의 손이 루시의 턱을 스치듯이 지나갔는데 처음엔 목덜미를 쥐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갈고리처럼 무언가를 움켜쥐고 싶어하는 그런 손동작으로 턱을 스쳐서..

27일엔 소리를 듣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가장 달콤한 ‘피’>는 이가 아닌 ‘아'를 발음하는 모양새로 부른다. 그래서 그 파동이 더욱 넓고도 큰 거였어. 모양과 발음에 따라 더 넓고 풍부해지며 다채로워진 소리. Beautiful Thing의 하소소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6.

Mina’s Seduction

오늘 처음 본 것.

정선아 미나는 흡혈 전, 그의 상의를 뜯어낸 이후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각오하는 얼굴을 해 보인다. 그리곤 힘껏 달려들어. 그는 가장 고귀한 것을 내어준 채로 기다린다. 털썩, 서서히 힘이 빠지는 그의 상체가 뒤로 넘어가고 팔이 부르르 떨리다 떨구어진다.

27일 공연부터, 여기서 흡혈 당할 때 그의 동작이 조금 더 확연하게 눈에 띄는 것이 되었다. 이전에도 존재하는 디테일이었지만 은은한 느낌이었다면 27일부터는 격렬하진 않아도 강렬은 했던 느낌. 특히 한숨처럼 내뱉는 소리나, 덜덜 떨리는 손에서 전해지는 버거움, 고통 같은 것들이.


7.

It’s Over

‘포기해.’ 특히 ‘해’에 깃드는 소리는 상황에 따라 요목조목 달라진다. 내리박는 소리, 끝음을 끌어올리는 소리, 말끔히 맺는 소리.

그리고 싸우면서 눈알 반짝반짝하는 거 정말 ㅎㅎ 아 너무 좋아. 몸짓도 봐야 하지만 그의 눈동자 때문에 망원경을 놓을 수가 없다. 분노로 형형이 빛나는 그 눈동자. 극 내내 계속 반짝이지만, 여기서의 반짝임은 희번덕인다 할 정도로 생생한 날 것의 느낌이다.

미나에게 가로막혀 자리를 뜰 때는 헛웃음을 쳤다. 비명이나 외침이라기보다는 연약한 소리였다. 가냘프다 싶을 정도로, 핳, 하핳, 하.. 어쩌면 한숨과도 같았던.


8.

Train Sequence

살풋살풋 웃는다. 정작 눈을 뜬 후엔 그녀를 찾아 두리번두리번. 상처받아 떠난 것이면서, 그녀를 찾아 움직이는 그 모습이 새삼 가여웠다. 이유도, 시작점도 기억엔 없고 다만 그에게 사랑과 삶의 동의어가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 본능적인 찾음. 그가 그녀를 향하는 것이 이토록 순리와도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나 하나 되기는 어려운 걸까.


9.

The Longer I Live

‘내 사랑의 선택 그대 위했나’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나 고민하며 곱씹는 순간의 그, 이때 표정 연기는 거의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섬세한 절망과 먹먹함, 넋두리에 잠긴 것 같은 얼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그의 맑은 눈으로 탁하게 잠겨든 공허함이 쉴 새 없이 명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