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일본행이 결정되었을 때였다. 무너지는 마음을 잡고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바라만 보는 것'도 결심을 필요로 했다. 오빠의 목소리가 그 언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 싫었던 치기 탓이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마음에서부터 벽을 친 언어. 그러나 뜻 모를 소리라도 귀 기울이게 되고야 마는 오빠의 목소리 앞에선 나의 치기도, 어린 마음에서 돋아난 미움도 무상해졌다. 오히려 의미불상의 소리에서조차 전해지는 마음과 감성에 말을 잃고 말았다. 


때문에 이제는 안다. 언어를 막론하는, 인간의 단위를 넘나드는 오빠 목소리의 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오빠의 마음. 언어라는 포장을 해체하고, 가사의 의미를 곱씹기 전에 청각이라는 일차적인 차원에서부터 전해지는 감성이 있다는 걸, 그것이 시아준수의 노래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꼭 그때와 같이, 단순히 그 언어로써가 아니라 노래의 껍질을 입은 마음으로 오늘의 그가 말해왔다.

지금, 우리는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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