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괴롭다'고 했다.

무엇이 괴롭다는 거지? 수사팀 모두 치를 떠는 수사방식을 관철시키는 자신이? 급기야는 미사를 체포하게 된 것이? 그래서 시작하는 두 연인을 억지로 갈라놓게 한 것이? 그런 것치고는 미사를 수사하는 얼굴이 굉장히 태연하다. 미사의 허점을 파고 들어가며 웃는 얼굴은 무섭기까지. 더 이상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선을 긋는 야가미 국장과의 대화에서도 동요가 없다. 대꾸는 해주지만, 야가미 국장이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하지만 괴롭다는 저 한 마디가 전부라, 그가 보여주는 간극이 메워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짐작할 수밖에 없고, 그가 감당하는 고독의 무게와 외로움의 깊이는 상상해보는 수밖에는 없다. 곱씹을수록 저 한 마디가 전부라는 것이 안타깝다. 동료라 해야 할 수사팀은 그를 탓하는데, 극마저도 엘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래선지 오늘의 <마지막 순간>은 사무치는 장면이 되었다. '처음부터 다 보였다'는 가사가 어제부터 마음에 밟혔는데, 역시 가사도 슬프고 멜로디도 슬프다. 이 부분을 부를 때 샤엘의 표정 때문에도 슬프다. 처음부터 다 보였다고.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눈에는 처음부터 보였고, 처음부터 옳은 답을 향하여 갔는데 못난 수사팀은 사사건건 그를 믿지 못하고, 라이토는 얄밉고. 그 와중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보고 믿은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렇게 싸워서 게임의 끝이 되리라 확신하고 결행한 만남은 도리어 노트에 적힌 시나리오라 밝혀지고.

라이토는 이제 시작이라는 데 엘은 '모두 다 끝났다'고 하는 마무리까지 모조리 다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죽이려고 겨눈 총구에서 총알이 나가지 못하는 것도, 오늘 유난히 바들바들 떨던 팔도, 총성에 뚝 끊긴 웃음도, 생명을 잃고 부푼 눈동자도 슬펐다. 밀쳐지며 쓰러질 때 어떤 균형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생기 잃은 몸이 거듭 생각난다. 종잇장처럼 푸스스 무너지고 말던 육신. 시아준수 왜 그렇게 쓰러지는 연기도 진짜 같이 잘해요? 왜 그렇게 풀썩, 아프게 쓰러지는 거야..

볼수록 엔딩이 엘에게 너무한 것 같아. 극이 너무하고,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엘에게 너무해.


*


오늘은 유난히 발등을 세워 가볍고도 민첩하게 걸었는데, 신기한 건 콩콩콩 발자국 찍는 소리는 난다는 것. 샤엘은 걸음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비밀과 거짓을 부르고 돌출에서부터 퇴장하면서는 부러 크게 낸다 싶을 정도로 쿵쿵 걷기도.

비밀과 거짓이 좋다. 온전한 완곡이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좋다. 특히 라이토 상위의 순간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질 때. 사고의 방식은 놀라우리만치 닮은 두 사람이 정의라 여기는 것은 왜 양 극단에 서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준다. 그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아, 키라가 아니었다면 만날 일도 없었을까.
엘과 라이토가 돌출로 나왔을 때 본무대에 선 류크의 움직임이 자못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의 딱 중간지점에서 양팔을 뻗어 휘젓는데, 마치 류크가 조종하는 느낌이라.


테니스신. 상의가 어깨의 움직임을 따라 주름 잡히는 모습이 토가자락 같았다. 어느 때는 대리석상의 순결하고도 부드러운 굴곡을 옮겨놓은 것 같기도 했다. 한 마디로 옷자락까지 그림 같았다는 이야기.

매번 생각하지만 테니스신 이후, 땀에 젖은 후부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쁘다. 흠뻑 이슬샤워한 얼굴이 반짝여. 특히 눈꺼풀. 반짝반짝. 막 빛을 낸다. 그 얼굴로 다리 위에서 미사를 '내려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도 소리쳐 알려주고 싶다.

참 시합 종료 후 라켓은 그의 유일한 팬이 가져갔다. 부럽.

무대 오른쪽에 쪼그리고 앉아 사탕을 먹을 때 언제 등장하는지는 오늘 처음 보았네. 그렇게 일찌감치 등장하여 미리 자리잡고 있는 줄은.

*


그리고 오늘의 '귀여움'


비밀과 거짓. 의자에서 솟아오를 때(두 번째로) 오른손이 주머니를 찾지 못해 멈칫하다, 재빠르게 주머니를 찾아가는데 그 찰나에 날갯짓하는 것 같던 파닥거림 잊지 못해. 엘의 소품인 키보드가 넘버 도중 점점 뒤로 눕던 것도 왠히괜지 귀여웠다.

초코과자를 들고 등장하면서는 왼발로 오른 종아리를 긁적긁적했어. 짐짓 무슨 일이 있나요? 싶은 태연한 얼굴이어서 더 귀여웠다. 그런데 이게 실제 엘의 디테일이라니...

사탕이 두 번 모두 체리 반 사과 반이었던 것도 귀여웠다(처음은 진한 분홍 체리, 두 번째는 연한 부농의 체리). 칼같이 과일맛으로 골라두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게 귀엽잖아.

신발 신기는 손의 도움 없이 구겨 신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구겨 신어서, 오른발등 안으로 신이 구부러져 들어갔다. 계단 오르는 뒷모습에서 왼쪽 발등은 멀쩡한데 오른쪽 발등만 찝힌 모습에 어찌나 귀엽던지ㅠㅠ 구겨 신을 때, 신발이 막 도망가는 걸 어떻게든 끝까지 작은 발을 안으로 비집어 넣어 골인시키는 모습도 너무너무너무 귀여웠다.

시합 후 숨 고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도 귀엽다. 그 하염없는 침묵이 왠히괜지 좋아. 더 기다릴 수 있다. 더 길어져도 좋아.





시아준수 외의 이야기:

린드 L 테일러는 오늘 왜 그렇게 웃겼지. 웃음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 연기가 갈수록 무르익으시는 듯.

캠퍼스. 미사미사 부대에 쫓기는 미사를 따라 뛰는 렘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웃음의 마수에 걸렸어. 렘이 뛰다니... 렘이 그렇게 뛰다니.. 아 지금 생각해도 웃음 나.

극 외적으로는 오늘 뭔가 총체적 매글의 날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