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훌륭한 공연이었다. 여실히 보고 느꼈다. 시아준수가 말할 때마다, 노래할 때마다 그 주위로 군집하여 뭉쳐드는 공기를.


변함없는 진실은 단언컨대 오늘이 최고였다. 내달리는 오케스트라의 뒷덜미를 비틀어 쥐고, 그대로 찍어누르는 듯한 소리였다. 이렇게 말하니 꼭 불협화음 같았단 뉘앙스가 되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니라, 강한 것을 강하게 되받아친다는 느낌이었다. 자칫하면 휩쓸려 떠내려갈 것만 같던 음의 격류. 그는 물살에 맞서는 세찬 빗줄기가 되었다. 음이 내달리고 파동칠 때면 그는 더 강한 소리로 맞받아쳤다. 열에는 열로, 강에는 강으로. 강 대 강처럼 내려찍는 소리였다고 할까.

반면 The Game Begins는 고요한 폭발음이었다. 처음 듣는 소리도 있었다. 어디에선가, 끝음을 부드럽게 끌어내는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 유혹적인 미성이 사이렌의 것 같다 느꼈다. '고등학생'이라던 순간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다소 낮은 톤이었고.

비밀과 거짓에서도 이질적인 소리가 있었다. 라이토와 마치 한 사람처럼 합체하는 순간의 시작하는 소절. '거짓말'의 첫음절이 유리파편처럼 날카롭게 튕겨 나가며 공간을 반으로 쪼개어 놓았다. 귀를 확 잡아채는 그 소리에 소름과 함께 순간적으로 희열이 올라찼다. 확연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의 음색.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저변을 메운 라이토의 목소리를 디딤 삼아 날아오르는 듯하던 이질적인 소리. 이 세상 너머의 것.

그리고 여기. 사신의 대화 도중엔 류크에게로 손을 뻗었다가, 그대로 검지를 유레카! 하는 것처럼 살짝 들어 올리며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제법인 걸, 이 게임 할 만하겠어. 하는 듯한 웃음이 그 얼굴의 마무리.

"제가 학생일 거라고 해서..." 즈음, 경찰들의 대화를 듣다가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살짜기 깨물어 무는데, 아 순간적으로 너무 귀여워서. 아아.

공연 내내 대사의 전반적인 톤이 나른하면서도 또박또박 분명한 어조였다. 키라는 당신의 아들에서는 특히 더. 여기서 또 처음 듣는 소리가 하나 있었으니, "이미 충-분히 놀라고 있어요, 야가미 국장님." 에서 있어요의 마지막 음절을 살짝 올려 말했다. 뭘 새삼스럽게? 라 되묻는 것처럼.

죽음의 게임. 두 눈은 당장에라도 라이토의 멱살을 잡을 것 같은데, 입술로는 차갑고도 단정한 미소만 머금고 있는 얼굴이 정말 섹시해 죽겠당.
본무대로 컴백하는 순간의 턴은, 평소가 다리의 회전과 함께 몸을 빙그르르 돌려가며 자리를 찾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오늘은 먼저 자리를 잡고 그대로 제자리에서 상체를 먼저 빙그르르 돌린 뒤 다리를 벌려서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제자리에서 돌았기 때문인가. 오늘의 턴은 특히, 그 언젠가 주봄누나가 올려주었던 '김턴'의 턴적인 느낌이 많이 났다. 요정인 줄.

소이치로와 사탕과 엘의 신. 의심스러운 정황은 하나도 없었어. 내 아들은 결백해! 하는 소이치로의 대사에 그의 눈썹이 꿈틀이며 반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선을 내리깐 채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일어나는 자세에서 '과연 그럴까?' 하는 뉘앙스가 팽배했다.

테니스 시합. 두 번의 점프 모두 전력이란 느낌이 들도록 혼신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시합 후의 헐떡임이 유난했다. 숨에 먹혔던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 아 들어봐야 알겠다. 뭐였지. 호흡이 섞여들어 떨리는 그 대사가 무척 섹시했는데.

캠퍼스. 미사의 등장. 류크가 오두방정을 떨며 너 이제 큰일 났다, 알려주지 않아도 그는 이미 코앞까지 닥쳐온 위험을 예감하고 있다. 등 뒤의 인물이 미사임을 알고 난 직후 크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돌파구를 찾아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말해준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를 이리저리로 빠르게 굴리며 생각에 잠긴 얼굴이 귀여운데 섹시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는 모습이라 섹시한데, 엄지를 물고 큰 눈을 또르르 굴리는 모습은 참 귀여워서.

그리고 언제나 좋았던 부분인데 오늘에야 쓰는 것. '제2의 키라가 방송국에 보낸 비디오테이프 봉투 접착 부분에서 검출된 것들.'로부터 시작하는 대사. 속사포로 쏟아내며 추리의 퍼즐을 맞추어 가는, 정면의 허공을 응시하는 얼굴이 한껏 빠져들어 있다. 숫자들과 데이터의 대사버전 같은 순간. 그렇게 퍼즐을 맞추어가며 환희에 찬 듯하였던 얼굴이 끼어드는 라이토의 대사ㅡ미사가 정말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해? 에 잠시 일그러지더니, 여유롭게 '너의 수를 다 보았다'는 듯한 웃음으로 변해갈 때. 아아. 짱짱. 세상 사람들. 시아준수의 연기가 이토록 사랑입니다.

라이토를! 도와줬잖아요.. 의 대비도 오늘 유독 컸다. 하지만 미사가 대답 대신 침묵(노래)하자, 사탕을 물고 몸을 일으켜 물러나며, 그래 어디 버텨봐 하는 것 같던 자신만만한 얼굴.

마지막 순간. 라이트? 였던 중얼거림이 오늘은 "라, 라, 라이트..?"의 희미한 속삭임으로 변했다. 의도된 변화였던 것 같지는 않고, 가장 처음의 '라'를 발음하는 순간 소리가 갈라져 끊어졌던 것을 순간적으로 이렇게 변주해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역시 시아준수의 순발력.

최후의 순간. 흐느끼는 듯 웃는 눈가에 눈물 같은 반짝임이 고여 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


스트레칭은 어제와 유사했다. 다만 끝동작이 더 길었고, 다리 운동을 끝내고도 직각 상태를 풀지 않고 그대로 정지해 있는 시간이 다소 길었다. 

오늘의 애드립은 치사빤스와, "맥심 3월호에 나왔었죠? 육감몸매 보고 완전 팬됐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육감몸매라는 단어에 한 차례, 라이토가 입을 막고 황급히 뒤돌아서는 모습에 다시 한 차례 터졌다 (내가).

딸기는 오늘도 큰~거.
사탕은 두 번 모두 핫핑크. 취조신에서 사탕즙을 쯔읍 빨아먹는 소리를 들었다.



시아준수 외의 이야기:
류크가 사과를 놓친 것은 오늘이 두 번째다. 그러나 오늘은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야구하는 줄.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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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04

the game begin에서 사이렌의 것 같다 느꼈던 소리와, 얼굴은

그림자를 조심'해'

유달리 길고 부드럽게 내어, 마치 그림의 획을 그려 넣듯이 불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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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05

다이코쿠 부두 창고에서 '라, 라, 라이트...?'는 역시 7월 3일만의 레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