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의 대전제:
시아준수 = 아름다움. 시아준수 곧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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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공은 내린샤큘, 밤공은 1막의 내린샤큘과 2막의 깐샤큘.

찰랑거리는, 이마를 모두 덮은 내린 앞머리. 내린머리와 깐머리는 각각의 장단이 있다.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낼 때의 가장 황홀한 점은 그의 아름다운 눈썹뼈가 보인다는 것. 그 눈썹으로 울고 웃을 때의 표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것.

내린머리는(특히 오늘과 같은 내린머리는) 눈썹뼈를 전부 가리기에 표정을 세세하게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앞머리카락을 타고 눈물처럼 흐르는 핏방울을 볼 수 있다. 그 덕에 드디어 만났다. 삼연곡에서 피눈물로 범람하던 그 아름다운 볼.
더불어 파워워킹에 흩날리는 머리칼과, 루시의 웨딩을 망쳐놓으며 쓸어넘긴 앞머리로 사악하게 씨익 웃던 얼굴도. 꼭 흑화한 듯한 느낌의 자체효과 같아서 콩닥콩닥.


1. Fresh Blood
백작님의 가로 횡단의 그림 같은 순간 하나 더. 망토 모자는 왜 그리 그림처럼 벗겨지는 건가요? 꼭 스위치로 조정하는 것만 같아. 그의 움직임에 따라 팔랑팔랑이다, 그의 고갯짓이 탁하고 격해지는 어느 한순간 스르르 젖혀지며 긴 은발이 드러나는데 그림도 이런 그림이 없다. 모자와 그의 조화가 얼마나 감탄스러운지. 모자에 생명이 있어 저 스스로 그의 연기에 조력하는 것 같을 정도. 무대 위의 손짓 하나, 걸음 하나 염두에 두어 계산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셨으니 이조차도 오빠가 연기로 의도하는 그림인 것이겠지?

참, 밤공에선 뱀파이어 슬레이브의 관ㅡ중앙의 것ㅡ이 닫히지 않았다. 열린 관의 위치가 오빠의 가로횡단 동선이 있는 곳이라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뱀파이어 슬레이브가 슬며시 관으로 다가가 문을 내리기 위해 꾹꾹 힘주어 누르는 모습을 포착했다.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동선으로 돌아가는데, 잠시지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꼭 주인님 가시는 길의 장애물을 치우려다 실패하고 시무룩해진 뒷모습처럼 보여서. 관은 다행히 오빠가 계단에서 내려오시기 전에 스스로 원위치 되었다.

2. 윗비
윗비에서 미나의 상냥함에 생긋 웃어 보이던 신사의 얼굴. 이 벨벳 코트 차림의 그는 너무도 근사하여 얼굴을 보아야 하나, 전신을 보아야 하나 늘 갈등하게 한다. 아름다워서요. 당신의 아름다움이 내 혈관의 모든 피를 멈춰 세우거든요. 루시의 대사, '숨을 못 쉬겠어!'가 정말 내 맘.

밤공에선 네 번의 공연 중 가장, 불청객 루시에 대한 정색이 덜했다. 조금 더 신사답고 의젓해졌다고 해야 할까.

3. Lucy & Dracula 1
밤공 그렇게 해주지의 강세는 "네가 원한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를 원망하지 마, 네가 원한 거니까.

4. 삼연곡

She Intro.
소소한 애드립의 순간.
낮공은 재밌죠?
밤공은 재밌지 않아요?
그의 애드립에 미나도 장단을 맞춘다. 여자를 '재밌게' 하는 방법을 모르시는군요.

She.
'행복한 날도 잠시뿐, 암흑의 시간들이 덮쳐'의 우아한 소리.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 '행복한 날들'을 향해 뻗는 손가락의 우아함. 그의 눈썹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찡그림의 우아함. 행동 하나하나가, 소리가 우아하고 고결하여 두 손을 모으고 바라보게 해.

괴물의 포효. 낮밤 모두 제단 위에서였다. 그렇다면, 아예 바뀐 게 맞는 거겠지. 제단 위에서건 아래에서건 모두 그림 같지만 피 흘리는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두 팔 벌려 비명을 내지르는 그는 정말 그림같다. 빨갛고 하얗고 어두운 한 폭의 잔혹동화 같아. (그 와중에 포효하는 뒷모습의 동그란 머리꼭지가 그 와중에 어찌나 귀엽던지.)

초연과는 또 달라진 점. 쓰러진 엘리자벳사를 끌어안고 넋두리하듯 애원한다. 낮에는 일어나, 일어나.. 밤에선 죽으면 안돼애애애애애... 한없이 하염없이 그녀를 꼬옥 끌어안는 그의 어깨가 그녀의 꺼져가는 생명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는 것만 같았다.

밤공의 She에서 특히 울컥했던 소절은 '신을 위한 전쟁이 터졌죠. 온 힘을 다 바쳐 왕자는 싸웠자. 밤 깊은 지옥 속에서'
신이 원망스러워서. 그토록 헌신적이고 순결하였던 왕자님을 왜 시련에 들게 하셨나요?

At Last.
앳 라스트는 변함없는 사랑이다. 마치.. 그의 드라큘라가 그녀의 미나를 기다려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야. 그의 손길이 조심스럽고도 애틋하게 그녀의 볼에 가 닿으면, 비로소 꿈에서 현실이 된 사백 년의 기다림이 그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준다.

밤공. 이제 알 것만 같아. 하는 미나를 바라보며 그래, 안다는 듯이, 그렇게 내게 오면 된다는 듯이 애틋하게 끄덕이던 고개. 그녀의 반응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기울인 채 온통 그녀의 존재로만 수렴하던 그.

당신은 결혼했어! 밤공에선 외침이 아니라 울음 섞인 외마디였다. 제발 다시 생각해보라는 듯이... 체념이 스며든 듯한 목소리가 촛불 앞의 생명처럼 위태롭게 들렸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러빙유의 오케스트라는 왜 이리도 미묘한지. 벌써 세-네 번째 공연이지만 항상 불안하다. 그 와중에 나의 불안함을 다독이듯 소리를 지탱하는 오빠의 박자. 오빠의 소리만이 이 노래의 구심점이 되는 기분이라, 오케스트라의 들쑥날쑥함조차도 일장일단이 있는 걸까 싶게 한다.

밤공에서는 왜 그리도 강아지 같았는지 모르겠다. 동그랗게 내린 머리로 온 얼굴이 동글동글한데, 어쩔 줄 모르고 네모네모하게 울먹이는 입술에 강아지미 폭발. 그 표정으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우는데, 부들부들. 안타까워서 안절부절. 밤공에서 특히 노래를 시작하면서 한 번,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미나를 보며 한 번. 두 번이나 얼굴을 감싸 쥐어서도 더.

미나의 결혼식.
그의 입 모양이 아프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안돼, 안돼-만을 거듭 뻐금거리는 그가 얼마나 애처로운지. 턱 끝에 눈물방울을 매달고서 비틀비틀 뒷걸음질 쳐가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여기서의 부스러질 듯한 모습 덕에 루시의 웨딩을 망쳐놓는 얼굴과의 극적 대비가 더욱 살아난다. 일말의 망설임이나 그 어떤 가책도 없이 루시를 파고드는 살얼음 같던 미소.

5. Life After Life
오늘 중간에 울림통이 대단하였던 음절이 있었는데. 얼른 다시 들어봐야지. 어느 마디의 끝음절이었는데.
'피'의 진폭은 낮공에서 특히나 예사롭지 않았다. 송곳니처럼 귀를 찌르는 소리. 쇠와 쇠가 부딪혀 만난 듯한 사나운 금속성. 뱀파이어의 소리.

6. Mina’s Seduction
오늘 매우 귀여웠던 순간. 두 사람이 침대로 다가설 때는 늘 미나가 그를 끌어당기며 앞장서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의 보폭이 빠르고 커서 그가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처럼. 특히 낮공에서. ㅋㅋ

낮밤을 번갈아 내린샤큘과 깐샤큘로 모두 만나서 더 크게 느낀 것이기도 하지만, 미나의 유혹에서만큼은 역시 깐샤큘일 때가 더 좋다. 흔들리는 도입부 미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는 그의 눈과 눈썹, 입술을 고스란히 볼 수 있어서. 고혹적이세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아. 꼭 안갯속'에'의 목소리처럼.

7. It’s Over
아니 자꾸 괴물괴물하는데, 놈의 살인을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극에서 드라큘라가 대체 죽인 사람이 어딨다고 자꾸 악마라는 거야. 이츠오버에서도 아무도 죽지 않고, 누구도 생명에 지장이 가는 부상조차 입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이제는 극이 수정되어 퀸시마저도 죽지 않는데!

그나저나 재연에서 추가된, ‘미-이-나!’ 마지막 절규는 항상 미묘한 느낌.

8. Train Sequence
'이렇게' 내린머리와 붉은 깃옷의 만남은 너무할 정도다. 지나치게 어려보여. 갓 태어난 핏덩이 같아서.. 얼굴만..보게 되네.
깐머리는 역시 아름답다. 조각상 같아. 잘생긴 이마, 그림 같은 콧대. 미나에 감응하는 눈썹의 움직임을 샅샅이 볼 수 있어서도 좋고. 몇 번째 이야기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또 말해도 좋은, 그의 그림 같은 붉은 눈썹. 핏줄 같기도 하고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 새겨진 상흔 같기도 한 그 아름다운 눈썹. 그 눈썹으로 미나의 목소리를 찾아 두리번대며 고갯짓을 하면, 아아, 어떻게든 당신의 사랑을 완성시켜 주고 싶어 애가 탄다.

9. The Longer I Live
낮공에서 아팠던 소절은 '영원한 삶 혼자라면 의미 있나.' 곤들어박히는 음성처럼 비척비척이는 걸음걸이 때문에 더.

참. 그러고 보면 첫공 때는 이 대목에서 옷자락에 발이 걸려 넘어질 듯이 휘청하였는데, 그것을 바로 비틀거리는 연기로 이어갔던 순발력을 보았지. 2공 이후부터는 오히려 그것을 디테일로 끌어와 넘어질 듯한 휘청임을 이어가고 계시다.

넘버를 관통하는 '비척거림'은 밤공에서 특히 강했다. 무너진 기둥을 오르기 시작할 때의 그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도 힘들어 보였어. 정상에 이르렀을 땐 숨이 가쁜 것처럼 휘청휘청하기도. 갈피 잃은 목소리처럼 그의 걸음까지도 비틀비틀. 가까스로 관을 찾아 일시의 안식을 위해 몸을 맡길 때까지, 내내.

10. Loving You Keeps Me Alive (Reprise)
삼총사의 재습격에 관 속으로 몸을 숨길 때, 그 찰나에 코트 자락을 휘날리는 손길에 대하여 이제서야 쓰지만 첫공부터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장면. 순간적으로 코트자락을 쥐는 손과, 촤르륵 펼쳐지며 붉은 꽃잎을 그리는 코트의 자락 전부가 예술이다. '연기 같은' 것? 그게 뭐지? 무대 위에서의 그는 철저하게 드라큘라다. 아마 숨결조차도 뱀파이어의 것이겠지.

11. At Last
오늘 밤공의 앳라스트는 최고였다. 좋았노라 아무리 거듭 말해도 가라앉지 않은 흥분은 이다음이 계속하여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틀림없어. 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므로.

그녀는 오늘도 한사코 버텼다. 관 너머로 그의 죽음을 본 것처럼, 안간힘을 다하여 뒷걸음치기까지. 그런 그녀를 두 손으로 꼭 붙든 그의 눈이 비장했다.

그녀의 아이같은 도리질이 거세질수록 의연함을 두른 그의 결심이 단단해진다. 재연의 그는 훨씬 더 확고하게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와의 영원한 이별에 대해서는 물론, 자기 자신의 ‘소멸’이라는 결과에 대하여도 마음으로부터 깊이 각오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자유를 달라는 소절에서 순간적으로 ‘금보다 귀한 영원한 삶’을 노래하던 그가 스쳐갔다. 영원한 삶에 그가 부여하였던 가치는 산산조각났으나, 사실은 진작에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만 같은 그 얼굴 위로. 문득 1막 엔딩ㅡLife After Life의 그가 하염없이 서글퍼졌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나요? ‘누가 알까요’라 자조하던 울음기 어린 목소리가 마치 남겨진 그녀의 어깨 위로 흩날리는 눈결에 깃든 독백처럼 돌아왔다.

남겨진 것은 그녀인데, 마치 나 자신도 덩그러니 버려진 듯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