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은 내린샤큘, 2막은 깐샤큘.
그리고 빨간색 귀걸이. 빨갛게 빛나는 동그랗고 작은 귀걸이가 꼭 반짝이는 그의 작은 심장 같아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지막의 얼굴을 보았다(드디어). 기억하는 것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픈 얼굴이었다. 고통을 압도하는 슬픔과, 슬픔으로도 삭이지 못하는 고통으로 뒤범벅된 얼굴이 빨간 조명을 받아 검붉게 빛났다. 비척이며 관 안으로 잠겨든 오늘의 그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한 팔을 뻗어보지도 못했다. 한 손으로는 단검이 관통한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관의 벽면을 잡고 가까스로 기대어 서있을 뿐이었으므로.

그 상태에서 빨갛게 굳어버리며 차츰 어둡게 잠겨가는 얼굴이 마지막이었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마지막의 그에게 고통이 있었을까? 육체적이고도 물리적인 감각의 아픔이 선연하게 번지는 듯하던 얼굴이 감돌아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는다.

*

5번째 공연만에 드디어 오른쪽 구역(D). 비어있던 퍼즐의 남은 조각을 모두 꿰어맞추었다. 그간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오른 옆얼굴을 모두 보았으니까.

오늘 만난 얼굴. 기대하고 기다리고 고대하였던 순간의 가장 첫머리는 역시 붉은 사랑의 대사.

경계하는 미나에 안절부절하다가(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 여기서의 다급한 목소리만큼이나 다급한 표정이 어찌나 전전긍긍. 발동동하는지 안타깝기까지.) 아주 잠시간의 침묵이 다시금 불러일으킨 그의 끓는 마음. 억눌러도 모두 감추지는 못하는, 아주 오래 묵은 사랑.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 혈관의 모든 피를 멈춰 세우는군요.' 그 한 문장이 가져오는 무게에 짓눌리듯 홀린 그녀가 넋을 놓고 그의 눈동자를 바라만 보면, 아마 그도 보았겠지. 그녀의 눈동자 안에 비치는 자신의 눈을.

'이건 기억할 수 있을 거야.' 망설임을 살짝 덜어내고 조금 더 다가서보는 그의 사랑이 얼마나 순진한지, 어느토록 맹목적인지. 그가 사랑을 이어온 지난 세월을 그녀는 알지 못하는데, 그녀 또한 자기와 같은 마음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믿음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맹목적인지는 드라큘라 성에서의 첫 만남에서도 느꼈었다. 역시 오늘 처음으로 본, 손키스를 할 때의 눈빛.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시선. 그녀에게로 가 박힌 눈빛이 단 한번의 깜빡임도 없이 형형한 빛을 냈다.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는 고집스럽고도 직선적인 광채를 담고.

그리고 오른 시선으로 바라본, 사랑의 삼연곡.

조심스럽게 미나 옆에 나란히 앉아보는 그가 귀엽다. 말을 이어가는 얼굴에서 엿보이는 흥분과 초조함이 첫사랑을 앞에 둔 소년 같기도 하고. 마른 침을 삼키던 볼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부드럽게 쓸어주고 싶었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를 들려드릴게요ㅡ에서 살포시 엿보이는 흥분에는 마음이 아렸다. 이 러브스토리를 듣게 되면 틀림없이 나를 기억해내리라는 그의 확신이 선연하게 느껴져서.

400년의 노래. She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중에서도 어느 부분을 특히나 좋아했던 건지 알 것만 같아졌다. 쓰러진 엘리자벳사를 끌어안은 채 신에게 애원하는 그였다. 제발 신이시여. 사랑하는 나의 그녀 다시 살려주소서. 울음으로 이지러진 얼굴에서 빨갛게 빛나던 눈물. 고통으로 새긴 듯힌 눈가의 주름. 전부가 조각조각 그림이었다. 나의 심장을 짓이기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웠던 만큼 분노 또한 증폭되었던 걸까. 아주 오랜만에 듣는 소리를 만났다. 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서라도. 높게 튀어오르는 소리의 음절이 꼭 그의 마음이 내지르는 비명처럼 들렸다.

At Last에서는 그의 떨리던 손. 문자 그대로 덜덜 떨리는 손이었다. 떨림이 얼마나 심한지, 평소처럼 그녀의 볼을 쓰다듬지도 못했다. 그 볼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지도 못했어. 그저 한손을 뻗어 눈앞의 볼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얹어보기만 하였을 뿐. 그조차도 꿈인가, 닿으면 사라지는 꿈이면 어쩌나. 하는듯이 아득하게, 가까스로 그렇게만.

옆얼굴로만 보아왔던 At Last의 정면도 드디어 보았지. 감격과 애틋함, 그리움에 사무친 그의 얼굴에 내가 다 아플 정도로 선명한 감정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정면의 얼굴은 역시 너무도 아름다워, 그 빛에 표정이 가려질 지경이었다. 예쁘다고 몇번이나 말했는지 몰라. 당신의 아름다움에 나의 모든 생각이 멈추고 말아요.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 오늘도 절규 아닌 애원이었다. 제발 생각해내라는, 돌아오라는 애원.

러빙유의 오케스트라는 (못하기로는) 한결같지만, 그 오케스트라를 극복하는 그의 방식은 나날이 진화한다. 오늘은 박자의 밀고 당기기뿐만 아니라 연기로도!

조나단을 향해 선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녀 주위를 비잉 반 바퀴 돌기 시작하는 2절의 소절에서. 무릎으로 울며, 바라며, 애원하듯 바치는 눈물의 세레나데였다. 온몸을 다한.
곧이어 원래의 동선으로 돌아와 그녀 곁의 위성처럼 반원을 그리는 그의 걸음걸음이 다급했다. 마치 걸음 하나를 내디딜 때마다 그녀 마음에 돋아난 지푸라기를 하나씩 잡아보고 애구하는 느낌이었어. 제발, 한 걸음. 다시 제발, 또 한 걸음.

끝내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울음으로 동그랗게 몸을 말아 무릎으로 무너졌을 때는, 그녀가 또 한 번 그를 외면하고 나서였다.

세레나데에 대한 그녀의 화답은 ‘꿈같은 삶, 완벽한 인생.’ 감정이 가장 폭포처럼 쏟아지는 순간에는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하던가. 입 모양으로만 안돼, 안돼, 되뇌면서도 면사포를 쓴 그녀에게서 고통의 눈길조차도 떼지 못하는 그가 애달팠다.

기척 없는 눈물이 꼭, 그녀의 행복할 순간에 울음이 섞여드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서조차 포기 없는 사랑을 이어가는 그다워서.